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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8 내 공간안에 있는 그




"작가님 글에는 남자주인공은 항상 연상이에요. 연하가 주인공인 로맨스도 써주세요"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내용이다.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라 연륜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난데"라는 남자들의 쓸데없는 센 척과 자존심 세우는 남자들을 굉장히 혐오했다. 내 성향에는 강한 사람은 맞지 않을 수도, 취향의 차이일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웬만한 것은 받아들이고 젊었을 때의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이 높고, 본인의 강함을 굳이 과시하지 않으며, 그걸 또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들만이 가진 연륜이 묻어나는 어른 남자가 나는 좋다.
맞다. 세상 모든 남자가 아저씨가 되는 과정에서 내가 말한 대로 어른 남자가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차분해지고 여유를 가지는 것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자기만의 생각이 확고해지고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어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어른 남자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거기에 맞는 외모와 여유와 연륜 세 박자를 모두 갖춘 어른 남자, 내가 그를 사랑하는 객관적이자 주관적인 이유이다.
옷과 외모에 멋을 잔뜩 부리고 찐한 남자의 향수를 쓰는 젊은 남자보다는 중후한 향을 풍기는 어른 남자가 나는 훨씬 좋다.
그리고 나는 그냥 그가 좋다.
그를 보는 시간에 비해 기다림이 훨~~~~ 씬 길지만, 그 기다림 마저 좋다. 마냥 좋다. 기다림 끝에는 그가 있으니 말이다. 기다리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맴도는 그.
그를 많이 꺼내어 닳아버린 건지 그의 얼굴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일 그를 보면 내 눈에 많이 담아와야겠다 다짐해 본다. 당분간 그를 못보기에.


#내 공간

꿈을 위해, 글 쓰는 일에 집중하며 살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에게 사랑이 찾아오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런 이유에서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사랑으로 내가 위로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오면서 시간적 여유와 정서적 여유 그리고 조금의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들 틈에서 빈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 빈 공간엔 어느샌가 그로 채워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그로 가득 찬 공간이 점점 몸집을 키워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그 공간에서 그를 밀어낼 타당한 이유와 핑계를 찾지 못했고, 속수무책으로 그가 자리를 키워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터줏대감 마냥 자리 잡은 그를 내 공간에서 쫓아낸다 한들, 이미 한번 생긴 공간에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데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공간에 들어올 수 있을까? 들어오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몰라. 답이 안 나오는(?) 일에 그만 생각하자.
답은 이미 나왔는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와 그를 향한 마음에 걸림돌이 걸리는 나와의 싸움은 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