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장님, 민원건 하나 들어왔는데 과장님께 주라고.."
다른 팀 막내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발끈하고 말았다.
"왜!!!!! 왜 또 나야!!! 싫어!!"
여자 비율이 많은 사무실에서 서른 중반은 딱 어중간한 나이다. 40대 언니들과 어린 20대들 사이에서 30대는 나와 다른 한 명으로 꼴랑 사무실에 둘 뿐이다. 그마저도 나는 과장, 그 직원은 대리다 보니 딱히 친해질 일도 같은 팀에서 만날 일도 없다. 그런데 나이가 꼭 문제만은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인상 좋아 보이고, 말 조곤조곤하는 사람이 나로 자리매김 되어있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고객님들이 좋아하는 싹싹하다는 이유로 민원고객은 내가 주 전담하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부터 민원 고객을 받고 싶지 않았고 나는 발끈했다.
막내의 표정을 봐선 곧 울 거 같은 얼굴이었고, 나는 막내나 울리는 꼬장꼬장한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 냉큼 서류를 낚아챘다.
먼저 유선으로 상담해도 될 듯하여 개인정보를 보았고 나는 금방 내 기분이 흐림에서 바로 맑음이 되는 순간을 느꼈다. 고객 이름과 그의 이름이 굉장히 비슷했다. 순간 얼핏 보았을 땐 이름이 같은 줄 알았는데 모음 하나만 다르다. 그런데도 뭐가 이리도 반갑고 좋은지 모르겠지만 나의 기분을 맑음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어? 과장님 혼자 뭐가 그리 좋아요? 같이 웃어요"
내 옆자리 앉은 직원이 회전의자를 밀며 가까이 와서 내게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닌데? 과장님 이렇게 웃으시는 거 처음 봐요"
"뭐래는 거야. 내가 잘 안 웃는 사람도 아니고..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잘랐다. 요즘 세상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직급 상사 말도 툭툭 자르고...
난 절대 꼰대가 아니다.
"에? 몰랐어요? 과장님 평소 안 웃으시잖아요."
생각해 보니 타인으로 경계가 풀리기까지 곁을 두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과장 말이나 자르는 이 무례한 우리 팀 막내는 나보다 무려 8살이나 어린 남자직원이라 조금은 불편했다.
"더 많이 웃어줄게^^"
"무서워요 과장님"
얼마 전 사무장님 부탁으로 같이 외근가게 되면서 이전보다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까지 친해졌다.
"아! **씨! 나 어때요?"
"에에?? 지금 과장님 저한테 플러팅 하시는 겁니까?"
"놉!!!! 나 글 적을 때 도움 좀 받으려고. 나 어때요?"
"좀 더 질문이 구체적일 순 없나요? 밑도 끝도 없이...?"
"내가 만약에 **씨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어떨 거 같아요?"
"일단 좋죠. 날 좋아해 준다는데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엄청 못생기지 않고서야 좋죠. 과장님 정도면 뭐 일단 나이가 많아서 그렇지 좋은 감정 생기는 건 금방 아니겠어요?"
"나 정도면 괜찮은 편이에요?"
"뭐... 나쁘지 않죠. 약간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긴 하지만 나름 괜찮아요."
뭐지..?? 이 철없는 막내 말에 은근히 기분이 나쁜 건 나만의 착각인가?
여하튼 좋게 봐 줘서 고오맙다.
다른 남자 직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바빠요?"
"아닙니다. 뭐 필요하세요?"
"아뇨!!! 잠깐 탕비실에서 차 한잔 할래요?"
나와 우리 팀 막내와 다른 팀 남자직원 이렇게 셋이 탕비실에 앉아 아까 우리 팀 막내에게 물었던 질문을 다시 물어봤다.
"전 완전 콜이죠! 나이가 많은 게 흠이지만 그건 과장님 잘못은 아니잖아요"
"왜 완전 콜인지 물어봐도 돼요?"
"과장님 정도면 콜 안 하는 사람이 이상한 건데? 과장님이 내성적인걸 아는 사람이면 더 좋아할걸요? 내성적인 사람이 나를 위해 용기 냈다는 기쁨 플러스 일할 때 멋있고, 일하는 시간 외엔 보호본능 일으켜서 지켜주고 싶고, 놀 때는 또 정말 잘 놀고 귀엽기도 하고, 또 배운 여자라 좋죠. 밥도 복스럽게 잘 먹고. 여튼 난 과장님이 저한테 고백하면 현수막 걸고 환영식해줄랍니더"
"오늘 점심 내가 고기 사줄게^^"
그렇게 우리 셋은 오늘 점심으로 소고기를 먹었다.
사회생활을 꽤 잘하는 직원들과 함께 말이다.
여하튼 요즘 젊은 남자는(?) 나를 호감형이라 생각한다지만, 나의 그는 젊은이가 아니다. 그에게 나는 호감일까 비호감일까. 비호감도 아니라 극혐이면 어쩌지?
그가 날 어찌 생각할지 너무도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다. 물어보는 순간 어른 남자인 그는 분명 내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이라도 알아채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내가 나이가 조금만 어렸어도 젊음의 패기 삼아,
내가 불안, 강박 장애가 없이 평범했으면 용기를 핑계 삼아, 그에게 가는 길이 좀 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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