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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4 현실로 돌아갈 때



그의 여운은 여전히 가시질 않고 나에게 머물러 있다.
그와의 만남으로 내 일상생활이 멈춘 이유와 본업에 집중할 수 없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온통 그에게로 가 있다. 몸이든 마음이든 어느 것 하나 내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의 것이다. 고로,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서야 계속 이 멈춘 상태로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짝사랑 결말.
이 일방적인 사랑이 점점 변질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루는 그를 향한 마음으로 설레었고,
하루는 그를 향한 마음으로 간절했으며,
하루는 그를 향한 마음으로 원망도 하였고,
하루는 그를 향한 마음으로 미워도 했다.
그리고 하루는 그의 스킨십에 두근거려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정돈해 준 행동일지 모른다. 내 머리카락을 이렇게 이렇게 해줬는데 하, 내가 작가임에도 마음이 너무 많이 실려 표현하기 쉽지 않다. 내 머릴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내 볼을 두 손으로 감쌌는데..?? 아닌가? 이게 진짜 꿈인가 착각인가? 희망사항인가? 이제는 현실인지 상상인지 조차 구별되지 않는다. 그를 만날 때 약을 먹지 않고 가야겠다 다짐한다.
아니, 꿈과 착각이 아니라 만약에 현실이면? 왜 그랬을까? 티가 났나? 내 마음이 어른남자 눈에 보인 걸까? 왜 그랬어! 사람 헷갈리게 왜 그랬어. 그의 행동에 나는 그와 같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 감히 상상했다가 이내 부정하고 만다. 짝사랑의 단점 중에 가장 큰 단점은 별거 아닌 행동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김칫국을 마신다는 점이다. 그다음 짝사랑의 단점은 자꾸 바라게 된다는 것.
자꾸 그가 욕심이 난다.
그에게서 나는 뭘 바라는 걸까?
그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의 육체적인 관계를 원하는 것일까. 그게 뭐가 되었든 지금의 나에게 그가 너무도 간절히 필요하다는 사실.

그를 사랑하기 전,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를 향한 내 마음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이치에 어긋나는 질문이다. 애초에 내 마음은 원래 주인에게 향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진짜 사랑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랑을 접고 내 원래의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 모르는 일이다.
왜 지금에서야 그를 만난 걸까, 만나지나 말던가, 왜 이렇게 사람을 쉼 없이 이래저래 치이게 하는 걸까.
그와 함께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괴로워했고, 괴로웠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움에 사무쳤다.
그와의 만남은 아주 잠시였으나 그 만남으로 인해 아픔은 내 인생을 휘청거릴 만큼 충분했다. 나로 하여금 멀찌감치 떨어져 그를 지켜만 봐야 하는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그와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행여 내 마음이 들킬까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의 정리는 나의 사랑을 고백하는 걸로 마무리 지어야겠다 다짐해 본다.

혼자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좋아하고 있었다고,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이제는 그만둬야겠다고,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 오늘 내가 하는 고백을 꺼내어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 나 잊지 말고 꼭 기억하라고,
한 사람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고,

고백하고 사직서 내면 끝!
다짐하고 결정하기까지 힘들어서 그렇지 결론을 내리면 무조건 나는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 고백하지?
마지막을 상상하고, 그를 더 이상 못 볼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내가 받을 타격감이 어마무시하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힘들지만 끊어내는 것도 힘들구나.
사랑에 쉬운 게 하나 없다.
그렇지만 일단은 고백을 미뤄야겠다. 안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은 미루기로 했다.  그냥 지금은 그를 더 보고, 만지고 옆에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