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그의 첫마디는 잘 지내셨어요가 아니었다.
"오늘은 안 늦고 딱 맞춰오셨네요?"
뜨끔했다.
내가 건 내기를 그가 알리가 없는데 들킨 줄 알았다.
맨날 늦는 내가 시간을 맞춰와서 그냥 하는 인사였을텐데 혼자 몰래 사랑하는 입장에서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 되었다.
평소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려는 편이다. 하나의 강박처럼.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되면 내가 나한테 건 내기 또한 별 의미 없는 나가리가 되기 때문이다.
'마스크 한번 벗겨내 보마!!!'
그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왜 유독 그동안 그에게만 눈이 마주치기가 힘들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환공포증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 사랑이 그에게 들킬 거 같아서, 티가 날까 봐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날 속였다.
정확하게는 그가 속인 게 아니라 내가 속은 것이었다.
그는 마흔둘이 아니었고 그보다 더 많으셨다?
동안의 외모에, 다부지고 탄탄한 몸을 가진 그였기에 속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억울했다. 그리고 괘씸하기도 했다. 사실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마흔둘이든 쉰둘이든 나에게 상관없다. 아니, 조금 더 섹시해 보였다고나 할까? 내가 그리던 어른 남자의 로망이 현실에서 실현된 듯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잘 지내셨어요?"라고 물었고 , 나는 형식적인 대답으로 "네"라고는 했지만, '보고 싶었어요'가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곧이어 "잠은 좀 자요?" 티 없이 맑은 얼굴로 내게 물었고 '너 때문에 못 잤다 왜 묻는 건데!!!!!'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평소 맡아보지 않는 냄새가 났다. 기분 좋았다. 손크림 냄새인가? 그게 뭐든 그냥 과장님이 하는 건 죄다 좋다.
날 만지는 그의 손에 이끌리 듯 내 몸은 그의 작은 움직임에 따라 즉각 반응하고 만다. 반응하지 않으려 하지만 내 의지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 의해 이미 축축하게 젖어갈 때 그는 기다린 듯 그의 단단함을 내게 보였다. 그는 한없이 뜨거웠고 단단했다. 마치 차갑지 않은 내 손이 차갑게 느낄 정도였으니.. 나의 서툰 움직임에 그도 반응하고 있었다. 서로의 반응을 직접 본다는 것에서 오는 성적 자극은 실로 컸다. 다소 자제력을 잃은 격양된 목소리를 삼키려 무단히 애를 썼고, 그는 눈을 감는 행동으로 이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하고 싶어"
"여기선 안 돼요."
도리도리로 답할 거라 생각했는데, 반은 거절이고 반은 긍정인 대답에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었다. 나는 다시 그에게 물었고, 그는 내게 조금 더 가까이 와서 말해주었다.
"여기선 안돼"
반말하는 남자가 무례하지도 않고 어쩜 이렇게 섹시할 수 있는가. 무슨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으나 가까이 온 그의 얼굴에 있는 마스크를 일말에 망설임도 없이 벗겨냈다. 마스크 속 그의 얼굴은 좀 더 앳된 모습이었고, 입술은 마스크 속 습기 때문인지 촉촉해 보였다.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았으면 그의 귀를 나에게로 당겨서 입을 맞췄을 것이 분명하다.
마치 그는 나의 마지막 남은 퍼즐 한 조각을 위한 딱 맞춰진 퍼즐이다.
'넣고 싶어, 과장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의 빨라진 손에 나의 손도 덩달아 빨라진다. 점점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깊이 빠져들어갔다. 새어 나오는 소리를 손등으로 막고 나의 손은 여전히 움직였다. 겨우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어짐과 동시에 단단한 그를 내 입으로 넣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 입으로 가기 직전에 바로 직전에, 먼저 늪에서 나온 건 그였다.
한바탕 봄꿈처럼 헛됨, 인생만사 일장춘몽.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먹었던 항불안제의 탓인지 직업상 작가의 상상인지 모를 한바탕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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