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 이른 아침
"잘 지냈어요?"
그녀의 물음에 내 머릿속에서 점점 자리를 좁히려 무단히 애를 쓰던 그가 문득 떠올랐고,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를 놓칠 의사가 아니지. 그것도 10년 넘게 봐왔으니 말이다. 정말 평소 많이 쓰는 평범한 인사말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네, 선생님도 잘 지냈죠?"
"잘 지낸 거 맞아? 안색이 안 좋은데?"
그녀는 곧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내 얼굴을 살폈고, 나는 애써 들키지 않으려 항상 함께 마시던 페퍼민트 차를 준비했다.
"자, 이제 말해봐요 무슨 일인지."
"별일 없어요. 약도 조절하며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귀신은 속여도 난 못 속이지. 무슨 걱정 있어요?"
결국, 쏟아내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숨겨둔 이야기를 내뱉는 순간, 그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해 버렸고, 눈물로 마무리지었다.
"같은 여자, 같은 인간으로서 살면서 한 번은 **씨가 진짜 사랑을 꼭 해봤으면 하고 생각해 왔었는데, 축하해요. 내가 다 기쁘다. 그리고 의사로서도 한마디 할게요. 이미 정해져 있는 답에 마음을 많이 쓰지 말라는 거예요. 어차피 결국은 정해진 결과에 도착해 있을 **씨니까. 내가 너무 **씨를 잘 아니깐 지금 어떨지 빤히 보여서 안타까워. 사랑은 결코 죄가 아니야. 짝사랑일 때를 말하는 겁니다. "
"그리고, 이제 그 남자 보러 갈 땐 약 먹지 말고 가요. 꼭 먹지 말고 가야 해요."
그렇게 상담인 듯 사랑고민인 듯한 시간이 끝났고, 멀리서 온 그녀를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러 나갔다.
"갑자기 처음 **씨 만났을 때 생각나! 내성적이고 겁도 많지만 굉장히 감정이 풍부했고 감정에 솔직했어. 근데 지금도 그때랑 똑같아. 글 쓰는 걸 취미로 하는 게 어때? 도움 될 거 같은데?"
그녀의 말에 한참을 웃고 말았다. 맞다. 그녀는 내가 무명작가이긴 하지만 작가인 지 모른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게 뭐가 도움이 된다는 걸까?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그를 향한 마음을 글자로 담아내고 나면 더 또렷하고 확실해지는 내 마음만 확인하는 꼴인데.
그녀는 내가 왜 웃는지도 모르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조심히 가라는 내 인사말과 함께 문이 닫혔다.
그러고 이내 다시 열렸다.
"상담은 비밀유지가 기본이니깐 걱정 마~ 추석 지나고 보자"
시계는 오전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다시 서재로 들어갔다.
나름 공부도 많이 했고, 똑똑하다고 생각한 내가 헛똑똑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에도 그가 보고 싶다.
너무나 보고 싶다.
이 시간에 괜히 잘 자고 있을 그가 괘씸하다.
몰래 가서 딱밤 한데 때려주고 오면 내 마음이 좀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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