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을 미학으로 만든
“선혜야, 너를 이해하고 싶어”
그 말은 누군가를 사랑해서 꺼낸 말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궁금했던 말이었다.
왜 그렇게 참고 사는지, 왜 아무 일 없는 얼굴로 견디는지.
어쩌면 그 말은 결국 내가 내 자신에게 향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 중반의 가을이었다.
술 취한 어린 남자들에게 붙잡혔고, 끝내 미수로 끝났지만 내게는 충분히 끔찍했다. 몸은 무사했을지 몰라도 마음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여자로 살아가는 일이 버겁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틀 뒤, 몸이 망가졌다. 마음만 아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온몸의 근육이 찢기는 것처럼 욱신거렸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빠는 바빴고, 삼촌이 나를 회사까지 데려다주었다.
“진짜 괜찮은 거지?”
“응. 괜찮아”
괜찮다는 말은 참 쉬웠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 더는 묻지 않으니까. 가을인데도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치아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웠고, 마우스를 쥔 손가락은 클릭 한 번조차 버거웠다. 퇴근 후, 삼촌이 나를 데리러 왔다.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해.”
“안 아픈 게 이상한 거지 뭐.”
“괜찮은 거 맞아?”
“응^^”
“맨날 괜찮대”
그 말 끝에 담긴 한숨을 나는 들었다. 집에 돌아온 뒤 혼자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혼자인 게 차라리 좋았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울음을 숨기지 않아도 됐으니까.
이불속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소리 내 울다 보면 이상하게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울음이 또 다른 울음을 불러왔고, 나는 숨이 막힐 만큼 오래 울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왜 그래?”
엄마는 늘 그랬다. 목소리만 들어도 내가 울었는지 웃었는지 알아챘다. 나는 감기몸살인 것 같다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늦게 온다 했고, 나는 약 먹고 먼저 자겠다 했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 거칠게 이불을 걷어냈다.
놀라 눈을 뜨자 삼촌이었다.
“미안. 삼촌이야.”
“….”
“노크를 몇 번 했는데 대답이 없어서”
취기가 조금 남은 얼굴이었다.
"누나가 전화가 왔더라고.."
삼촌은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 많이 나"
"괜찮아. 약 먹었고, 자고 나면 괜찮아져"
"병원 가자"
"싫어"
"왜"
"그 병원 사람들은 나를 알아볼 거 아니야.. 싫어"
삼촌은 그대로 내 방을 나가버렸다. 잠시 뒤 손에는 커다란 양동이가 들려 있었다.
“숙모가 애 열날 때… 이렇게 하더라고…”
그 말이 왜 그렇게 어색하고 힘들어 보였는지. 나는 아픈 와중에도 웃음이 날 뻔했다.
“병원 안 갈 거면 얌전히 누워”
삼촌은 물수건을 내 이마에 올렸다. 너무 세게 짜서 거의 마른 수건 같았다.
“이럴 거면 그냥 마른 수건 아니야?”
“아, 그래?”
다시 적셔 온 수건은 이번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삼촌, 이제 내가 할게.”
“안 돼. 열 많이 나”
그날의 삼촌은 서툴렀다. 손을 닦아주는 대신 양동이에 통째로 담가버릴 정도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서툰 손길이 자꾸 마음을 울렸다. 나는 추워서 이불을 끌어당겼고, 삼촌은 다시 걷어냈다.
“열날 땐 시원하게 해야 된대.”
“내가 애기야?”
“아무튼 손.”
억지로 꺼낸 손끝이 차가운 물에 잠겼다.
삼촌은 내 얼굴과 목, 팔과 발목을 계속 닦아주었다.
몸은 덜덜 떨렸고, 숨은 뜨거웠다.
그러다 삼촌 시선이 멈췄다.
목과 어깨에 남아 있던 멍과 상처 때문이었다.
짧은 한숨이 들렸다.
“… 근육통이랑 몸살이 같이 왔나 보다.”
모른 척해주는 말이었다. 나는 그게 고마웠다.
결국 삼촌은 나를 안아 들었다.
“다른 병원 갈게. 가자"
잠옷 위에 얇은 가디건 하나 걸친 채, 나는 택시에 실려 응급실로 갔다.
“40도예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임신 가능성은 있냐, 마지막 생리는 언제냐, 언제부터 열이 났냐. 질문들은 쏟아졌지만 삼촌은 대부분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점점 감기는 내 눈을 보다가 결국 화를 냈다.
“나도 몰라요. 몸이 불덩이인데 뭐라도 좀 해줘요”
그 말이 이상하게 서러웠다. 의사가 왔고, 뭔가 이야기를 했다. 피를 뽑고, 팔에 주사 바늘을 꽂았다. 눈을 뜨는 것보다 눈이 감기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간호사는 잠옷 단추를 풀고 생리식염수로 내 몸을 닦아냈다. 나는 무서워서 삼촌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누군가 내 몸을 만지는 일이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차가운 수건이 피부 위를 지나갔고, 냉각담요가 덮였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열은 조금 내렸고, 세상은 덜 흔들렸다. 그런데 응급실 한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다급한 발소리. 울부짖는 목소리. 의사의 외침. 고개를 돌린 순간 보였다. 얼굴이 검게 질린 사람. 뒤집어진 손톱.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모습.
“농약 먹은 지 얼마나 됐어요?!”
나는 단번에 알았다. 저 사람이 죽으려 했다는 걸.
너무 무서웠다. 삼촌은 황급히 가림막을 쳐주었지만, 이미 봐버린 뒤였다.
“삼촌… 무서워. 집에 가고 싶어…”
“그래”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삼촌… 아까 그 사람은 살았을까?”
“살았을 거야.”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사연이 있었겠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삼촌은 내 이마를 딱밤으로 세게 때렸다.
“넌 조그만 머리에 왜 그런 생각만 하냐?”
“아파!”
“이제 좀 살만한가 보네”
그 말에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아마 그 가을은 내가 사람의 온기를 가장 무섭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가장 간절하게 붙잡고 있었던 계절이었다.
“삼촌, 바빠?”
“아니. 왜?”
“그럼… 엄마 아빠 올 때까지만 있어줘.”
“… 그래.”
삼촌은 거실 소파에 기대어 테레비를 켰고, 나는 천천히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을 오래 맞고 있었는데도 몸속 한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젖은 머리를 대충 말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거실에서 들리던 테레비 소리가 괜히 크게 느껴졌다.
“그거 끝나면 끌 거야?”
“왜?”
“나 오늘 자야 내일 출근하는데…”
“들어가서 자.”
“… 혼자는 무서워.”
“다 큰 애가 무슨”
툴툴거리는 말투였다. 하지만 삼촌은 결국 리모컨을 들어 테레비를 껐다. 집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웠고, 삼촌은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다시 내 이마를 짚었다.
“이제 아무 생각 말고 푹 자.”
“…응.”
“아, 맞다. 몸에 연고는 발랐어?”
“아니.”
“기다려. 발라줄게”
괜찮다고 말할 틈도 없이 삼촌은 방을 나갔다.
긴 다리가 복도를 빠르게 지나 멀어졌다가, 곧 약통을 들고 돌아왔다. 삼촌은 면봉에 연고를 묻혀 내 입술 끝부터 조심스럽게 발라주었다. 상처 난 입술 위로 차가운 약기운이 닿았다.
그리고 목. 어깨. 잠옷 사이로 드러난 등 위의 멍까지.
“멍이 심하네.”
“괜찮아”
“뭐가 그렇게 맨날 괜찮아.”
“괜찮으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면봉 끝이 천천히 멈췄고, 삼촌은 낮게 말했다.
“이해하고 싶어.”
“응? 뭘?”
“너”
나는 고개를 돌려 삼촌을 바라봤다.
“곧 죽을 사람 같아.”
“삼촌이?”
“아니. 너”
그 말에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왜 죽어.”
“너 일기 봤어.”
“…….”
숨이 턱 막혔다.
삼촌은 면봉을 내려다본 채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잘 이해가 안 돼.”
“….”
“왜 그렇게 아픈 걸 혼자 삼키는지”
“….”
“그래서 이해하고 싶어”
나는 작게 대답했다.
“이해 안 해도 돼. 이해해 달라고 한 적 없어”
그러자 삼촌이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이해하고 싶다고”
그 말은 오래 남았다. 누군가 나를 바꾸고 싶다고도, 고치고 싶다고도 아닌. 그저 이해하고 싶다고 말해준 건 아마 처음이었으니까.
삼촌은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대화를 할 때면 오래 생각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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