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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437 값을 정해둔 명제


책임지고, 살아남고, 견뎌온 시간.
너무 오래 묵묵히 걸어온 자들만이 느껴지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당신이 그래요. 나는 당신의 사랑일 순 없지만, 잔잔한 위안이 되고 싶었어요. 내게 숨을 쉬게 해 준 당신에게 나도 작은 위로가 되는 것, 그뿐이었어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당신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마흔은 불혹이라 흔들리지 않는다고,
쉰은 지천명이라 하늘의 뜻을 안다고..

어렸을 적에, 나에겐 늙음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어느덧 젊음은 온데간데없고 거울 속엔 중년이 되어있네요. 젊지 않은 나이에 다시 저 문장을 곱씹어봅니다.

중년에는요.. 다 해봤기에, 계속 버텨봤기 때문에.
이제는 버티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선 위에서 흔들리는 사람들. 넘지 않으려 버티면서도 돌아보는 사람들. 결코 아니라고 골백번을 곱씹지만 자기 마음을 속이지 못했다는 점. 그렇게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 삶인 것이죠.

당신이 다치지 않을 만큼, 누군가를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 조심히 하던 사랑이 버거워졌어요. 누군가를 다치지 않게 한 행동들은 고스란히 나를 아프게 하고 있으니까요.
한번 움직인 마음이 멈추기란 쉽지 않고, 끝까지 가보지 않았기에 미련이 남는 법이죠. 알아요. 누구보다 잘 알아요. 사랑을 해보지 않았지만, 수많은 책들이 하는 메시지들은 비슷하니까요.
흔들리고 있는 나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니나.. 강압적인 사랑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강압적인 사랑만 받다가 다정한 당신을 만난 건 내게 너무 달콤했습니다. 맹목적일 만큼요.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여기 있으면 저쪽이 생각나고, 저쪽에 있으면 이쪽이 마음에 걸리니..

나는 단 한 번도 헷갈린 적 없었어요.
의심할 것도 없이 당신만을 사랑했으니까요.
그래서 저 말이 참 많이 아팠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를 참 많이도 미워했어요. 된통 당신 마음에 걸리기를 바라며 무서운 저주도 걸어보고, 마법도 부려봤지만 한사코 걸리지 않았으니까요..
부러웠어요. 일면식도 없는 그가 너무도 부러웠어요. 동시에 내가 너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고요. 그마저도 나는 모른 척 덮어버렸지만요.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한순간에 비참하게 만들더라고요. 마냥 세상을 아름답게 살진 않았지만, 불안 속에서도 내 소신은 지키며 살았어요. 각박한 삶 속에서도 조금 번거롭고 느리더라도 낭만과 다정스럽게 세상을 보려 했어요. 그런 나의 노력은.. 당신을 만나고 파스텔 색감들이 모두 원색으로 바뀌고 말았어요. 이제 내가 원색이었는지, 단색이었는지, 파스텔색상이었는지 구분 조차 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나의 모든 삶에서 당신이 사랑이 아니었다, 나의 착각이었다는 값을 정해두고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며 얽힌 실타래를 풀고 당신을 버리려 합니다.

나는, 단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다정함을 동경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