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 낀 새벽의 밀도 있는 헛된 실마리
잠은 원래부터 쉽게 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삼촌 품에 기대어 잠깐, 아주 잠깐
깊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올랐다.
휴대폰 진동 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직 어두운 방, 그리고 여전히 내 옷자락 안에 머물러 있던 삼촌의 손. 나는 조심스럽게 그 손을 빼내고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잠결에 묻는 목소리.
“목말라서…”
“밖에 나가지 마. 위험해.”
짧은 경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로 나오자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술 냄새가 가득했고, 어른들의 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문득, 내 몸에 밴 냄새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도 깨지 않도록 조용히 샤워를 했다.
밖은 비가 남기고 간 안개로 가득했고, 밤인지 새벽인지 모를 시간이었다. 창밖 풍경은 어딘가 낯설고,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도 삼촌의 휴대폰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화면에 뜬 이름을 잠깐 바라보다가, 괜히 모르는 척
시선을 피했다. 여자 이름이었다.
“이리 와”
짧은 한마디. 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그 옆에 누웠다.
“씻었어?”
“응… 냄새 나서.”
삼촌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나를 끌어당겼다.
따뜻한 체온이 젖은 머리칼 사이로 스며들었다.
“감기 걸린다…”
낮게 중얼거리며 내 머리를 정리해 주던 손길이 천천히 멈췄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삼촌… 하나 물어봐도 돼?”
잠깐의 정적.
“그냥 자.”
단호한 대답. 괜히 입이 삐죽 나왔다.
“치…”
“뭔데.”
결국 돌아온 물음.
“나중에… 나 결혼 못 하고, 삼촌도 혼자면… 우리 같이 살까?”
말을 꺼내놓고 나서야 조금 어색해졌다.
삼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왜 그런 생각을 해.”
조용한 목소리.
“그냥… 삼촌이 편해서.”
솔직한 대답이었다.
“너만 편한 거야.”
그 말에 가슴이 살짝 내려앉았다.
“삼촌은… 나 불편해?”
나는 무심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나를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왔다.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아니.”
짧은 대답. 그 한마디에 다시 숨이 돌아왔다.
“그럼 왜…”
“사람들이 뭐라 하겠지.”
그 말은 나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세상을 대신 설명하는 말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다시 조용히 등을 돌린 채 가만히 있었다. 그날 밤은,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서로가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조용히 배우던 밤이었다. 괜히 심술이 났다. 삼촌이 아파할 말을 해버렸다.
“흉터… 때문은 아니지?”
어둠 속에서 꺼낸 말은 생각보다 더 작았고,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흉측해서… 그런 거 아니지?”
짧은 침묵.
“……그런 거 아니야.”
그 한마디. 그걸로 충분한 척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이 밤도 조용히 지나가나 싶었는데, 잠에 잠긴 줄 알았던 삼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서른 살 돼도 결혼 못 하면 그때 같이 살자.”
나는 웃었다.
“응^^”
장난처럼, 가볍게 대답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누나랑 매형은 니가 설득해.”
“알았어^^”
그리고 잠깐의 정적 뒤에, 조금 더 낮고 단단한 목소리.
“니 입으로 너를 흉측하다고 하지 마.”
“…응.”
그때의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 흉터가 평생 숨겨야 할 무언가라고.
어릴 때부터 받아온 과한 걱정과, 생일마다 삼촌이 사주던
길게 내려오는 잠옷, 얇게 덮어 감추는 스카프들.
그 모든 것들이 말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가려야 하는 거라고. 숨겨야 하는 거라고.
양말을 벗을 때마다 보이던 발목의 다른 색.
그걸 본 누군가는 짧은 한숨을 쉬었고, 어른들은 괜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정 없어. 이 정도는 있어야지~”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어린 나는 그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 이게 내 흠이구나. 이게 내가 숨겨야 할 이유구나.
겨울이 되면 그 흉터 위로 작은 반점들이 올라왔다.
그걸 바라보는 나 자신조차 가끔은 눈을 피하고 싶었다.
싫었다. 내 몸인데, 내 일부인데, 그게 싫었다.
“너는… 너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볼 뻔했다. 자는 줄 알았던 삼촌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응…”
“아무도 그렇게 안 봐.”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겨울엔 좀… 보기 싫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난 괜찮아…”
괜찮다는 말이 이상하게 가볍게 느껴졌다.
그때, 삼촌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발목을 조심스럽게 들어 손으로 감쌌다. 따뜻한 손이었다.
“하나도 안 그래.”
천천히, 한 번 더.
“하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야.”
그 말은 설득이 아니라 단정이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누구나 하나쯤은 있잖아.”
“아니라고"
조용히 되풀이되는 말.
“알았어… 이제 자.”
나는 대화를 끝내듯 말했지만, 그 말은 끝나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다시 등을 돌려 누웠다.
잠시 후, 익숙하게 목 밑으로 들어오는 팔. 다시 만들어지는 팔베개. 그리고 등 뒤에서 전해지는 조용한 체온.
그날 밤은 누군가가 내 흉터를 처음으로 흠이 아니라고 말해준 밤이었고, 내가 나를 조금 덜 미워해도 될 것 같다고
처음 생각해 본 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오점이야.”
끝까지 버티듯 말했지만, 사실은 설득당하고 싶어서 꺼낸 말이었다.
“삼촌이라서 그렇게 말해주는 거잖아. 이제 그만하고 자…”
대화를 덮어버리듯 말했지만, 마음은 전혀 덮이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뭐가 그렇게 걱정인데.”
조용한 질문.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거 보고 나를 징그럽다고 할까 봐.”
말로 꺼내는 순간, 그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
“… 아니라니까.”
짧고 단단한 대답.
“삼촌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 일단 알았어.
자… 내일 운전해야 할 수도 있잖아.”
또다시 대화를 끝내려 했지만,
“삼촌이라서 그런 게 아니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한 번 더 되돌아오는 말.
나는 잠깐 웃었다.
“… 나 책 진짜 많이 읽잖아.”
괜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듯 말했다.
“근데… 흉터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없어. 그러니까…
삼촌이니까 그런 건 맞아.”
내가 아는 세상은 그 정도였다. 어렸으니까.
그 순간, 배 위에 있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그리고 내 몸을 살짝 돌렸다.
삼촌이 나를 마주 보게 했다.
“아니라고 했잖아.”
그 말은 설명도 아니고, 설득도 아니었다.
그냥, 부정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을 마주치는 게 조금 어려웠다.
잠깐 후, 삼촌이 몸을 조금 더 당겼다. 서로의 시선이 같은 높이에 놓였다. 피할 수 없는 거리.
“왜.”
짧은 한마디. 그 안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
“그렇게 숨기고만 살 거야?”
그 질문은 나를 향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가둬놓은
그 생각을 향한 말 같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눈을 피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그날 밤은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려고 했던 밤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밤이었다.
"누나하고 매형한테 안 들킬 자신 있어?"
"뭐?"
"지금부터 할 거"
삼촌 무릎으로 내 허벅지 사이를 벌렸고, 등에 손을 넣어 옆구리 언저리에서 멈췄다.
눈물이 났다.
"그거 때문에 그런 거지...?"
"응?? 뭐라고?"
"만지고 싶은 그 사주 때문에 그런 거냐고"
"아니야 그런 거"
"맞잖아"
"아니라고"
징글징글 맞았다. 내가 숨어야 될 이유는 사실은 흉터가 아닐지도.. 그건 만지고 싶게 하는 빌어먹을 음기와 사주 때문에 아빠는 나를 그렇게 꽁꽁 숨겼다. 정말 진정머리가 났다. 평생을 나는 숨어 살아야 했으니까. 친구들이 가방에 화장품 파우치를 넣고 다닐 때, 나는 무기가 될만한 것을 들고 다녔다. 손을 빼려는 삼촌 손을 잡았다.
"해"
삼촌 손을 끌어다 내 가슴 위에 올렸다. 삼촌은 손을 빼려 했고 그럴수록 나는 빼지 못하게 세게 잡았다.
"너 진짜 못됐다"
"알아"
삼촌이 한순간 손에 힘을 뺐고 몸을 일으켜 내 위에 잠옷을 목 끝까지 올려버렸다. 삼촌의 무릎은 허벅지 안쪽 끝까지 들어왔다.
민망하진 않았다. 화가 났으니깐. 눈을 감아버렸다.
가슴 위에 있는 손이 더 움직이지 않았다.
"눈떠"
"..."
"내가 여기서 멈출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 나도 남자고, 니가 하라고 붙잡았으니까. 더더욱.
근데도 멈추는 이유는 제대로 알아. 니를 아껴서 그런 거니까"
"..."
"한 번만 더 이러면 진짜 혼나. 알았어?"
"끄덕끄덕"
삼촌이 잠옷을 원래대로 만들어주고 삼촌이 일어났다.
"씻고 올게. 자고 있어"
"빨리 와"
"응"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왜 안 자고 있어"
"잠이 안 와"
"이제 혼자 자"
"같이 자"
"나랑 같이 자도 되겠어....? 안 불편해?"
"불편한 것보다 무서운 게 더 무서워"
다시 삼촌은 내 옆에 왔고 팔베개해주었다. 나는 삼촌을 마주 보게 돌아누웠다.
"이제 자자 선혜야"
막 씻고 나온 삼촌에게서 좋은 냄새가 났다.
"자, 빨리"
"응, 삼촌도 잘 자"
나는 삼촌 품에 더 파고들 수 없을 정도로 파고들었다.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 속, 삼촌의 따스한 온기와 빠르게 뛰던 심장소리. 덩달아 같이 빨리 뛰던 내 심장소리에 집중하던 차에 나는 잠에 들었다.
뒷날 아침,
삼촌들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다 큰 아가씨가 삼촌이랑 잔다며 한참을 놀려댔고, 삼촌은 옆에 있던 베개를 정확하게 삼촌 친구에게 명중시켰다.
집에 돌아갈 때도 나는 삼촌 허벅지 위에 앉아 갔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이상 삼촌은 내 배를 감싸지 않았다는 거다. 그날 밤 이야기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꺼내지 않았다.
"잘 놀다 왔어??"
"응~~^^ 나 계곡 한가운데 바위까지도 갔었어!!"
"잠은, 혼자 잔 거지?"
"응^^;;"
삼촌과 눈이 마주쳤다 빠르게 시선을 옮겼다. 이래서 아빠가 외박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셨구나 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남녀가 밤을 같이 보내면 많은 일이 생길 수 있음에.
예전에 했던 삼촌말들이 종종 생각난다.
나와 닿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말,
마음 없이 몸만 닿기를 바라는 자들을 멀리하라는 말,
'그'가 삼촌이 말하는 자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삼촌은 말해주지 않았다.
모두 알고도 그러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분명한 건, 지금 삼촌이 나를 다시 찾고 있다.
뜸하던 연락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오고, 나를 만나러 오고..
술 마시고 걸려오는 전화가 잦다.
삼촌한테 말 못 할 고민이 생긴 게 틀림없지만,
말해주지 않는다. 조금만 있다가 이야기해 준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돈문제도, 여자문제도, 사고를 친 게 아니라면 내게 말 못 할 일이 뭐가 있는 걸까....
스물아홉, 삼촌이 말했던 서른 되기 일주일.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달라졌을까.
만약, 진짜 서른에도 혼자였으면 삼촌은 약속을 지켰을까..
어디에도 머물지 못했던 삼촌은 결국 혼자가 되어 돌아왔을까.
결국, 새로 생긴 호텔에서, 유명한 셰프를 모셔와, 제일 비싼 뷔페음식을 준비하고, 값비싼 웨딩드레스를 입고서 나는 식을 올렸다. 크리스마스이브, 선물 같던 날에 급하지만 화려한 결혼. 모두가 부러워했다. 아빠는 행복하셨고, 엄마는 한시름 놓았고,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다들 데릴사위라고 했지만, 나는 나를 팔아 기나긴 숙제를 끝마친 기분이었다. 삼촌은 급한 일이 있어 올 수 없었고, 숙모와 조카만 왔었다. 가끔 숙모는 그날을 그렇게 설명했다.
"선혜가 다른 남자 손 잡고 들어가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거지 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삼촌이었을까, 나였을까.
그 약속은 진짜 약속이었을까, 농담처럼 지나가는 이야기였을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 이야기는 누군가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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