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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432 당신을 아끼는 마음을 구겨보겠습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흘러가는 강물처럼 거스르지 않고
온전히 온몸으로
나무가 되어 주는 것.
보이지 않는 마음,
보여주어서는 안 될 마음,
전하지 못할 마음
드러내지 않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
진정 사랑한다면
진정으로 그립다는 건
진정 사랑했음에 놓아야 하는 것.
붙들지 말며 잡지 말며
사랑하지 말기를...


차디찬 겨울이 지나 조금씩 얼어있던 땅이 녹고,
연한 바람이 살랑 불며, 싱그러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
그 봄에 태어난 당신에게 선물이 되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의 선물이 되고 싶다는 뜻이 아녜요. 걱정 말아요.
그저, 당신의 존재에 대한 동경을 표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런데 봄이 끝나가는 와중에, 나는 당신에게 닿을 길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을 비우고자 하는 일이 이토록 힘들 줄이야..

그래서 아픈가 봅니다.
당신에게 가고 싶습니다.
가지 않겠지만, 그러하고 싶습니다.
안 되는 거 알고요, 가지 말아야 함도 잘 알아요.
그럼에도 가고 싶은 마음은 어째야 하나요.

누군가 나에게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냐고 묻는다면요,
나는 고민할 이유도 없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 사랑을 끝까지 지켜냈느냐고 물어본다면요,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끝까지 남는 것은 태도와 자세이기  때문이죠. 나는 당신에게 사랑이라는 맹목적인 이유로 질척이고 구질구질하기에...

기다림..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가장 많이 한 거랍니다.
알아요. 당신이 단 한 번도 내게 기다리라고 한 적 없으십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의 선택이었습니다. 기다림만큼 사랑을 잘 드러나는 말도 없지 않을까요.

여전히 내 마음은 당신에게 머물러 있는 걸 압니다.
이제 그 마음 모른 척하고 묻어야 함도 너무도 분명히 알아요.
당신을 향한 그 마음 위로 꽃잎과 초록 무성한 잎들이 쌓이고 낙엽이 쌓이고 눈이 쌓이고... 그렇게 몇 해 지나고 나면,
그렇게 계절이 흘러간다면, 잊지는 못해도 살아지지 않을까요.
그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쉽게 들뜨는 여름이 오기 전에 당신을 진짜 버리고 싶어요.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여름과 닮아서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그 열기가
차가운 새벽을 지나 사라지는 꿈같아서
예사처럼 다가오는 열사병과
한동안 지겹도록 앓았던 상사몽이
꼭 여름이고 그게 당신 같아서..
당신과의 영원을 꿈꾸고
당신을 욕심내고
이내 바보가 되어버리는 계절이 오기 전에
당신을 버려야겠어요.

찬란한 여름이 오기 전에.
그해 여름은 시리도록 차가워지기를.

편집장님
작가님^^

편집장님, 있잖아요.
네~ 말씀하세요^^
아닙니다.

실은요, 오늘은 꼭 말하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겠다고...
덜 좋아해 보겠다는 말은 진즉에 전한 적 있지만,
아예 좋아하지 않겠다는 말은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그 말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기다리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아주 잠깐, 나를 떠올리거나 찾을까 봐.
심심풀이처럼, 혹은 연민과 동정 같은 마음으로 나를 부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나를 잊어달라고,
아니,
내가 당신을 잊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말해두면, 당신에게로 향하는 이 마음을 내가 조금은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만날 수도 있겠다”는 당신의 한마디,
“비법 좀 알려달라”는 가벼운 농담 같은 말,
그 몇 마디에 나는 또 그 자리에 머물러버렸습니다.
원래 하려던 말은 끝내 꺼내지도 못한 채, 당신의 한마디에
그저 웃고 마는 내가 참 못나 보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당신에게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그 개자식 고객처럼, 일방적으로 마음을 보내는 사람처럼요.
그래도 나,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염치도 알고, 선이라는 것도 압니다.
아무리 좋아해도 아닌 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내가 당신 앞에서는 늘 조금씩 작아지니까요.
이제는 나를 작게 만드는 당신을 진짜 좋아하지 않으려 합니다. 당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함입니다.
도와주세요.
내가 당신을 잘 잊도록 말이에요.

사랑 아닌 눈으로 당신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혹시 만날 수도 있겠다는 말처럼, 당신과 마주한다면
사랑 아닌 눈으로 당신을 담을 수 있을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당신에게 가기 위함으로 달렸던 걸음을, 이제 당신에게서 도망치기 위함으로 내디뎌야 할 타이밍입니다.

전에는요, 사랑은 이기적이고,  뻔뻔한 사람들이 하는 언어유희라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사랑을 해본 적 없던 시절에 말이에요.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양심 있는 사람은 쉽게 사랑하지 못한다고...
수없이 멈췄거든요. 적어도 나는 처음부터 하면 안 되는 사랑이었지만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았어도.. 수없이 멈췄어요.
현실 때문이기도 했고, 책임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누군가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멈추질 못했어요.
반면,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버리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버리라 말한 적 없었어요..
당신의 선택은 어떤 사람에게는 성숙해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비겁해 보였습니다.
사랑이 옳다고 말하기도, 비겁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하지만 그 위에서 내 사랑은 계속되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공적인 자리에서 다시 만나야 했습니다.
우연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진부했고,
운명이라기에는 너무 잔인했죠.
내 짝사랑은 멈추질 못하고,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 되어 당신 앞에 섰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하는 사랑을 한 것이 아니었고,
그렇지만... 서로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습니다.
그 사이의 애매함.
함께 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당신을 놓지 않습니다.
한쪽은 일방적인 사랑이고, 반대쪽은 측은지심이겠지요.
그래서 내 사랑은 짝사랑이 아닙니다.
'끝날 수 없다'는 사실로 유지되는 사랑.. 이게 맞을 겁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머무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당신에게 가면 죄책감이, 집으로 돌아오면 텅 빈 감정이...
당신은 선택하지 못한 채 살고 있고,
결국 선택하지 못한 채 떠나야 해요.
나의 한쪽은 책임이고, 다른 한쪽은 숨이에요.
숨을 끊으면 살 수가 없고, 책임을 끊으면 내 삶이 흔들려요.
당신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지만, 사랑하지도 않으셨어요.
나에게 완전히 온 적이 없었어요.
꽤 슬프고 아프지만 나는 당신을 이해해요.
내쪽에서 당신을 끊어내면 살 수가 없기에 말이죠.
나는 여전히 당신 없이 살 수가 없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요.
살 수 없는 상태로 살아보려 합니다.
협박도 아니고, 통보 아녜요.
처음, 처음에요.
짝사랑 혼자 씩씩하게 할 만큼 기고만장한 배짱은 온대 간데없고, 지금은 구질구질한 모습만이 남아 당신 앞에 서 있는 꼴이 웃겨요.

내가 원하는 결말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희망사항이기도 하죠..

그는 두 여자를 사랑했고, 아무도 완전히 선택하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