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촌! 삼촌도 혹시 봄이 오는 냄새 나?"
나는 물었고, 삼촌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그런 냄새를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 웃는 모습은 내가 삼촌을 기억하고 있는 모든 순간을 통틀어, 금방이라도 피어날 것처럼 꽃봉오리가 몽글몽글거렸다.
"왜 웃어? 웃긴 이야기 아닌데...?"
"너다워서....^^"
나답다...?
삼촌이 단 한 번도 나를 '너'라는 호칭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나는 삼촌에게 언제나 '조카'였고, 삼촌은 나의 '보호자'였다.
그때부터였다. '나답다'라는 말에 흥미를 가지게 된 건.
"그러면, 봄이 오는 소리는 들려???"
"응? 봄이 어떤 소리를 내는데?"
"설마 진짜 봄이 무슨 소리를 낸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
"바보"
"봄이 뭐라는데??"
".... 연분홍 빛들이 사륵사륵 눈 녹는 소리를 내잖아"
"난 하나도 안 들려"
"...."
#잊지 못할 흉터와 잊히지 않는 상처는 오래도록 곪고 곪았다.
<흉터>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그때의 나는 누군가를 탓해야만 했다.
일곱 살 무렵이었다. 삼촌이 고등학생이었으니까..
잠결에 집 안에 퍼지는 컵라면 냄새에 이끌렸다.
삼촌은 막 물을 부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삼촌~~~~~”
나는 유난히 삼촌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까탈스럽고 쉽게 울던 나를 단번에 달래던 사람이었으니까.
삼촌이 오면 울음도 멈췄다. 아이스크림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삼촌이라서 좋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삼촌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뻐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갔다. 그 한순간이었다.
나를 안으려던 삼촌의 움직임,
그리고 상 위에 놓여 있던 라면.
뜨거운 물이 그대로 내 허벅지와 발목 위로 쏟아졌다.
비명.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
순식간에 집 안이 뒤집혔다.
할머니는 급히 옷을 벗기려 했지만, 뜨거운 국물에 젖은 옷은 피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를 안고 욕실로 뛰어가 찬물을 틀었고, 삼촌은 119에, 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의 고통은… 지금도 설명할 수 없다.
구급차, 가위로 잘려나가는 옷, 무언가를 붓던 손길, 그리고 계속되는 비명. 삼촌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응급실에서는 마취도 없이 익어버린 피부를 긁어냈다.
그래야 새살이 난다고 했다. 나는 울고, 또 울고, 몸을 비틀며 버텼다. 그리고 중환자실.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울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그 말과 함께, 나도 울었다.
며칠 뒤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그때부터였다.
외할머니와 삼촌은 어느새 ‘죄인’이 되어 있었다.
일주일 후 일반병실, 또다시 일주일 입원 후 퇴원.
그리고 시작된 통원치료.
붙어버린 거즈를 떼어내고, 생살을 긁어내고, 다시 소독하고.
그 과정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세 달, 그리고 네 달이 다 되어갈 즈음, 긴 치료는 끝이 났다.
하지만 진짜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더 이상 레이스 달린 양말을 신을 수 없었다.
반바지도 입을 수 없었다. 허벅지와 발목의 흉터는 나만 아는 비밀 같으면서도 세상 모두가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부 이식도 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삼촌을 미워하기로 했다. 그게 쉬웠으니까.
누군가를 탓하면 조금은 편해졌으니까.
그렇게 나는 삼촌에게 쌀쌀하게 굴었다.
삼촌은…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으니까. 그게 서운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교복을 맞추다 발목의 흉터를 본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삼촌이 학교도 빠지고
중환자실 앞에서 기도했다는 것. 내가 병원에서 먹었던 포도는
모두 삼촌이 두고 간 것이라는 것. 나는 몰랐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삼촌은 미안해서 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바로 삼촌을 찾아갔다.
그동안 보지 않았던 탓에, 전역한 삼촌의 짧은 머리가 낯설었다.
“왜 말 안 했어…”
“뭘?”
“왜 내가 삼촌 미워하게 했어…”
“무슨 일 있어?”
“엄마한테 다 들었어…”
삼촌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내 잘못이니까.”
“내가 달려간 거잖아…”
“그래도. 넌 어렸잖아.”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삼촌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삼촌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주었다.
그렇게 길었던 오해는 풀렸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가까워졌다.
전역 후 대학교 때문에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어렸을 때처럼 같이 웃고, 같이 지내고.
할머니는 나에게 “삼촌 사고 치는지 잘 보라”고 했고, 나는 스파이가 되었다. 책만 읽던 나를 데리고 삼촌은 바깥으로 나갔다. 그중 하나가 당구장이었다. 공과 공이 부딪히는 소리.
그 묘한 울림이 이상하게도 좋았다. 그날 이후, 나는 당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삼촌의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내기 당구를 할 때면 다들 나와 한 팀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자 친구가 되었고,
그날의 사고는 아픈 기억이면서도 우리를 더 단단하게 이어준
하나의 이야기로 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열여덟 살,
한창 예쁘고 피어날 나이에 친할머니는 내가 죽을 운명이 들었다고 했었다. 항상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며, 아빠 몰래 부적까지 엄마 손에 단단히 쥐어 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백일장에 나갔었는데, 상을 받았었다.
얼마 후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어느 대학교 교수님이 내 글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백일장에서 대상을 탄 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은 나의 내신 성적을 보시면서 이대로라면 실기 전형이나 수시로 넣어보라고 추천하셨고,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또 얼마 후 나를 만나보고 싶다며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연락을 달라고 연락처를 남기셨다고 했다. 그때 썼던 글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며, 이런 상황을 말씀드렸다. 엄마는 원고지를 읽어본다 했지만, 아빠는 길길이 날뛰었다.
"막살 해. 작가는 아무나 하나? 시집 잘 가는 은행 직원이나 해"
나의 오랜 꿈은 현실에 저물고 있었다.
이런 내가 엄마 눈에 안쓰러웠던 건지, 같이 가보자고 하셨고, 나와 엄마는 아빠 몰래 그 학교를 찾아갔다. 그 교수님은 나를 꼭 한번 보고 싶었다고 했다. 여고생 치고는 글을 이끌고 가는 힘이 있고 탄탄하다 했으며, 글감이 예쁘다며 나를 면전에 두고 칭찬하셨고 나는 뿌듯했다. 그해에 어떤 일이 있었고 아빠는 하루아침에 나를 이유로 직장을 잃으셨다. 그리하여 그 나쁜 일은_ 할머니가 말한 그 나쁜 일인 줄 알고 모두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12월 말이었기에 그 조심해야 나이는 지났다고 믿었다. 아빠는 새 일에 몰두하셨고 집을 비우는 일이 많으셨다.
나는 방학이었고, 교수님이 하시는 일에 작게 도움이 되어 출간할 때 내 이름도 넣어주신다 하였다. 어린 나이에 그마저도 무척 행복했다. 그렇게 방학 때 일주일 한 번 대학교를 갔다. (교수님은 중년의 여성)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었지만.. 거울 속에 나는 영락없이 고딩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우리 집에 자고 가기로 한 날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곳이었고, 일기예보에 눈이 내린다 하여 같이 집에서 눈을 보기로 했다. 뒷날 아침, 온 세상을 덮은 눈으로 친구와 나는 시골강아지 마저 눈을 밟고 놀았다. 엄청난 양의 김치볶음밥을 친구와 만들어 나눠 먹었다. 그리고 친구는 남자친구 만나러 가기 위해 치장하느라 바빴고, 나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 필기구를 챙겨 옷을 입었다. 나를 보고, 이런 꼴로 가냐고 물었고, 나는 가방을 메고 한 바퀴 뱅그르르 돌아 보여주며 말했다.
청순해 보이지 않아??? ^^
어디 가서 내 친구라고 하지 마라...
그렇게 친구의 화려한 손길에 나는 화장이라는 걸 처음 해보았다. 거울 속 나는 낯선 여자였다. 분명히.
매일 선크림과 립밤만 바르던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청바지와 후드티에 패딩을 입었던 차림에서 골찌소재로 된 긴치마와 니트 스웨터로 다시 입었다. 외투는 코트였다. 나조차 내 모습이 낯설었지만, 묘하게 기분 좋았다. 각자 가는 길이 달랐기에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졌다. 그 손을 흔들던 때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이런 비극은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순조롭게 내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집 앞 장류장을 지나쳤다. 일부러.
그날은 유난히 해가 빨리 졌다. 아직 여섯 시도되지 않았는데, 시장 골목은 이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지 않은 눈은 그대로 쌓여 있었고, 나는 그 위를 일부러 밟으며 걸었다. 어그부츠 밑창에서 나는 뽀드득 소리가,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아줬다.
집 앞 정류장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심장이 계속 빨리 뛰었다. 곧장 집에 가지 않는다는 건, 나에게는 꽤 큰 일이었다. 갈 곳도 없으면서, 그냥 조금 더 밖에 있고 싶어서였다. 그곳이 내게는 시장이었다.
약과를 샀다. 봉지를 들고 나오면서도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생이 좋아하는 튀김을 사려고 골목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기름을 빼고 정리하는 중이었다. 다른 가게를 찾아 더 깊이 들어갔다. 시장 안쪽은 더 어두웠고, 문 닫은 가게들이 늘어날수록 사람 기척도 점점 사라졌다.
괜히 이어폰 볼륨을 더 키웠다. 주변이 너무 조용해지면, 오히려 불안해지니까.
그때였다.
누군가 내 손에 들려 있던 약과 봉지를 툭 잡았다.
“어디가?^^”
귀에 음악이 크게 울리고 있었는데도, 그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어왔다.
심장이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
“저… 아세요?”
말을 꺼내자마자, 그 사람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담배 냄새가 바로 코앞까지 확 올라왔다. 오래된 옷 냄새랑 섞여서 더 역했다.
“이제부터 알면 되지~~”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한 발만 더 오면 닿을 것 같았다.
“이런 데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오빠가 데려다줄게.”
“아녜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내가 바빠 보여??^^”
그는 웃으면서 얼굴을 더 들이밀었다.
숨이 닿을 정도였다.
“너 혼자야?”
“지금은… 혼자지만 집에 가족 있어요.”
급하게 말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계속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몇 살이야?”
“열여덟이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투를 바꿨다.
“학생이면 알지. 몸 불편한 사람 도와야 되는 거.”
대답을 안 하자 다시 물었다.
시선을 피하지 못해서, 결국 작게 “네…”라고 했다.
그때부터 이상했다.
“오빠가 몸이 좀 불편해. 도와줘야지.”
멀쩡히 서 있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편안해 보였다.
“오빠 쉬야해야 하는데, 와서 좀 잡아줄래?”
그 말이 뜻한 바를 알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히 들었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눈길에서 뛰어본 적도 없고, 신발은 미끄러울 것 같았다.
괜히 도망쳤다가 잡히면 더 큰일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시간을 끌기로 했다.
“장갑… 벗고 도와드릴게요…”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일부러 천천히 움직였다.
지퍼를 여는 척하면서 샤프를 손에 쥐었다.
손이 떨려서 지퍼 소리도 크게 느껴졌다.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순간 숨이 막혔다. 손이 차갑고 거칠었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터졌다.
“니는 담배를 하루 종일 필끼가?!”
그가 잠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나는 왼손에 쥐고 있던 샤프로 그의 손등을 세게 찍었다.
“아 씨발!”
손목이 풀렸다.
그대로 뛰었다.
뒤에서 욕이 쏟아졌다.
“쟤 잡아!”
눈은 이미 녹아서 질척거렸고, 발이 계속 미끄러졌다.
어그부츠가 헐거워져서 벗겨질 것 같았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얼마 못 가서 잡혔다.
몸이 공중으로 들렸다가, 그대로 눈 위에 내던져졌다.
등이 닿는 순간 숨이 확 막혔다. 폐 안에 공기가 한 번에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더럽게 빠르네.”
처음 그 남자에, 다른 남자 둘이 더 붙었다.
세 명이었다.
그제야 확실히 알았다.
도망 못 간다.
그가 쪼그려 앉아서 내 얼굴을 내려다봤다.
"모처럼 비싼 음식 먹어보겠네"
그 많은 비유와 은유들 중에 나를 왜 하필 음식에 비교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경은 벗겨내 벽에 던졌다.
시야가 흐려지면서 얼굴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되는 일 하나도 없네"
욕설과 함께 뱉어졌고, 도망가던 나를 잡은 남자가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피를 봤다며 피를 본 값은 치러야 한다고 대답했다. 억울하듯 그에게 토로했다.
그가 씩씩거리며 내게 가까이 왔고, 내 앞에 쪼그려 앉더니 양쪽 발목을 잡아 세게 당겼다.
치마가 한 번에 위로 올라갔다.
차가운 눈이 허벅지에 닿았다.
숨이 멎을 것처럼 차가웠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자??"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옷을 거칠게 잡아당겨졌다.
나는 팔을 휘둘렀다.
잡히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막으려고.
근데 힘이 안 됐다.
섬유가 끊어지는 소리가 귀에 크게 들렸다.
손이 계속 떨렸고, 숨이 가빠서 제대로 소리도 안 나왔다.
덕분에 발목까지 오던 치마가 올려졌고, 동시에 나는 차가운 눈바닥에 눕혔다. 나를 다시 일으킨 건 그 사람이었다. 그는 내 양볼을 한 손으로 잡아 일으켰다.
"몸으로 갚아"
그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옷을 벗기려 했고, 나는 있는 두 팔을 휘두르며 벗겨지지 않게 애를 썼다. 그러나 골지 치마는 쉽게 벗겨졌고, 스타킹은 엉망으로 찢겨 나갔다. 속옷까지 벗겨지고 나서야 눈물이 터졌다.
"입 닫아. 네가 벌인 일은 책임져야지"
코트를 거칠게 벗겨내고, 니트 카디건도 거침없이 뜯겨 나갔다. 그는 사람이 아닌 멧돼지 같은 짐승 같았다.
눈물은 그치지 않았고, 그의 뒤에 있던 지인에게 내 입을 막으라 했다. 그러나 누구도 내 입을 막으러 오지 않았고, 그는 뒤를 돌아 다시 말했다. 그중 한 명에 내게 가까이 왔고, 화들짝 놀래는 모습이었다. 안경이 벗겨지고,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를 보고 분명 놀랜 듯했다.
"얘, 돌려보내"
"졸았냐??"
"얘 병아리 형님 여동생이야"
"...."
나는 장녀였다. 나에게는 흔한 친척오빠 하나 없는...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나 보다 싶었다.
"확실해. 흉터 가린다고 저런 띠 두른다고 했었어"
"...."
긴치마를 입었고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지만.. 삼촌이 선물해 줬던 연보라색 짧은 스카프빔 같은 천을 감아 리본으로 묶고 다녔다. 교복을 입을 때도 일부러 치마를 올려 보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는데도 허벅지와 발목에 두르고 다녔다. 사실 흉터를 가리기 위함이었지만, 그것은 나를 위한 위안이었다.
그 누군가가 그걸 알아보았고, 나는 희망이 생겼다.
"니 병아리 동생 맞아?"
나는 병아리가 누군지 알지 못했지만 살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짧은 욕을 뱉고 일어났다.
분이 풀리지 않아 보였고, 다시 쪼그려 앉았다.
브래지어를 뜯어내다시피 해서 벗겨냈다. 가슴을 가린 손을 거칠게 잡아당겨 말했다.
"니 팬티, 니 브래지어
네가 직. 접 찾으러 와. 니 발로. 또 보자. 기다릴게"
그러고선 그의 혀로 나의 입술부터 코까지 핥았고, 나를 짚고 일어섰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몸만 틀어 내 앞에서 소변을 보며 말했다.
"꼭 다시 보자"
그렇게 내 속옷을 잠바 주머니에 욱여넣고 갔다. 나를 잘못 아는 듯한 남자가 나를 자꾸 힐끗거렸지만 결국 그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못 움직였다.
몸이 너무 떨렸다.
추워서인지, 무서워서인지 구분이 안 됐다.
신발도 없었다.
맨발로 눈을 밟았을 때, 처음엔 감각이 없었다가
몇 걸음 지나니까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찢긴 옷들 대신 긴 코트만 입고 신발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맨발로 눈길을 걷기엔 발이 너무 시렸고, 신발을 찾아 나선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박선혜!!!!!!!!!!!!!"
누군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그 소리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부르는 또 다른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린 목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삼촌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발을 벗어 내 앞에 놨다.
“신어.”
그 말 한마디. 그때부터였다.
차갑던 것들이, 하나씩 따뜻해지기 시작한 건.
"삼촌 신어. 난 괜찮아"
"신고 집에 가자"
어두워서 삼촌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안경도 없었고.. 나는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따뜻한 큰 운동화를 신고 파장한 시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삼촌 친구는 내게 다정히 물었고, 가방도 찾아줬다.
"**아, 선혜 춥겠는데?"
그제야 앞장서서 걷던 삼촌이 가까이에서 나를 보았고, 코트 안에 상의가 없는 것을.. 찢어진 스티킹 사이로 속옷이 없는 걸, 머리가 헝클어져있다는 걸 알았다. 삼촌 눈이 한순간에 무섭게 변했다.
"아무 일 없었다더니"
삼촌이 갑자기 등을 지기에 빠르게 삼촌 옷을 잡았다.
"어디 가게"
"넌 집에 가있어"
"나 너무 추워"
삼촌을 잡고 있는 손에 코트가 벌려졌고..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그렇게 알몸을 감쌌다. 삼촌이 다시 나를 돌아보았고,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서 내 어깨에 둘렀다.
"가려줄 테니깐 코트 벗어"
나는 삼촌이 시키는 대로 코트를 벗었다. 키가 큰삼촌은 허리를 굽혀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려주었다. 다른 삼촌도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삼촌에게 줬고 삼촌은 그 잠바도 허리에 묶어주었다. 젖은 내 코트는 그렇게 벗겨졌고, 따뜻한 삼촌들 옷으로 입었다.
"선혜 집에 좀 바래다줘"
"어디 가게"
"넌 집에 가 있어"
삼촌친구는 삼촌을 못 가게 거들었지만, 막무가내였다.
"나 못 걷겠어"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삼촌을 잡을 수 없기에. 걷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래, 선혜 업고 집에 가자. 내가 업을 순 없다 아이가. 알몸인데"
다시 내게 오더니 쪼그려 앉았고, 나는 삼촌 등에 가만히 업혔다.
"내리라 내려. 안고 가야야겠다. 바지가 없어서 안 되겠다"
삼촌 친구가 말했다. 나는 다시 삼촌에게서 내려왔고, 삼촌은 나를 안았다.
삼촌의 옷, 삼촌의 손, 삼촌의 목소리, 삼촌의 체온.
차갑던 것들이 전부 따뜻하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삼촌, 나 무겁지?"
"하나도 안 무거우니깐 입 닫아"
"삼촌 화났어?"
"...."
"나 괜찮아"
"맨날 니는 뭐가 그리 괜찮노?? 맨날천날 괜찮나?"
"아한테 뭐 한다 씅을 내노. 아 놀래그로"
삼촌이 내게 화를 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걸음이 멈췄다. 누군가 왔다.
"찾았네. 아휴 다행이다"
"연락 안 해줬으면 우짤뻔했노"
"그러니까. 선혜를 내 동생으로 오해했더라고"
앳된 보이는 삼촌은.. 삼촌 친구였다. 그동안 나는 삼촌 아는 동생인 줄만 알았으나 삼촌과 같은 나이였다. 엄청 어려 보였으니깐. 그 삼촌 별명이 병이리였다. 고등학교 때 오토바이 타다가 크게 다쳤고, 성장판이 멈춰 고등학생 때 모습을 하고 있는.... 나는 그 오해 덕분에 나쁜 일은 면할 수 있었다.
나를 오해했던 사람이 병아리 삼촌한테 연락해 주었던 모양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삼촌이 고등학교 때 날라리였다는 사실을.
"아! 삼촌 신발 신어. 발 시리겠다"
"신고 있어"
"그래도..."
삼촌이 주차해 둔 곳에서 삼촌 친구들과 헤어졌다.
나는 삼촌 차에서 얼른 허리에 묶은 삼촌 친구 잠바를 풀었다.
"삼촌, 이거 친구 줘. 밖에 추워"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집으로 출발했다.
"삼촌..."
"...."
"삼촌..."
"왜"
"나 내려주고 이렇게 만든 사람 찾으러 갈 거지?"
"안가"
"거짓말"
"..."
"아무 일 없었어. 진짜야!"
"알아"
"그러니까 가지 마"
"그래"
또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고, 차는 막혔다. 연말이었고 복잡했다.
"삼촌이 사준 이 끈 보고 날 알아본 거 같아"
"..."
"나랑 말 안 할 거야?"
"다친 데는 없어?"
"등이 좀 아파..."
"왜??"
"모르겠어 지금도 아파"
신호는 길었고 차도 많았다. 그제야 눈길을 내게 주었고, 그제야 삼촌은 뒷좌석에 다리를 덮을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에는 아무것도 있는 게 없었다. 헤어스프레이 말고는..
"등 보자"
삼촌은 목 끝까지 올린 패딩 지퍼를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뒤돌아서 내려봐 봐. 어떤지 보게"
나는 삼촌 말대로 삼촌이 볼 수 있게 등을 보여주었다.
"...."
"어때??"
"긁혔어"
"아파..."
".. "
"어디에 긁혔는지 모르겠어.."
"...."
"근데 많이 따가워"
"집에 가서 약발라줄게. 집에 매형 있어?"
"없어"
"누나는?"
"없어"
"집에 아무도 없어?"
"응"
"일단 집에 가자"
"응"
신발을 벗어 삼촌에게 신으라고 했고, 삼촌은 나더러 신으라고 했다.
"삼촌.. 삼촌이 신발 신고 아까처럼 안고 가줘"
삼촌이 차 트렁크에서 뭔가를 찾았다. 결국 검은 모자 하나를 들고 와, 나에게 깊게 씌워주었다. 삼촌 품에 안겨 그대로
욕실로 가서, 내려주었다. 삼촌이 물을 틀어 삼촌 발을 먼저 씻었다.
"뒤돌아서 벗어봐. 밝은 데서 보게"
"응"
"뾰족한데 긁혔는 가 보다. 병원 갈래?"
"아니. 괜찮아. 약 바르면 돼"
"니 여기 앉아봐"
삼촌이 가리킨 곳은 변기였고, 나는 앉았다. 달랑 수건 한 장으로 가리고서.
"발 들어봐"
삼촌이 시키는 대로 발을 들었다.
"바로 씻을 거지?"
"응"
"스타킹... 이거 벗어봐"
"응"
발바닥이 다친 건, 씻고 약 발라야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다른 쪽 발도 들어보라 했고.. 나는 불편했다. 수건으로 가리는 것도, 변기에 앉아 발을 드는 것도 힘들었다.
"삼촌 힘들어. 팬티가 없어서 더 불편해"
쪼그려 앉아있던 삼촌은 벌떡 일어섰고, 씻고 나오면 약발라준다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샤워를 마치고 샤워가운만 입고 나왔다.
"등 따갑지?"
"응"
"이리 와"
구급함도 미리 꺼내놓고 있었다. 알코올 솜으로 닦는데 너무 따가웠다.
"아파ㅠㅠ"
"참아"
집에 돌아온 뒤에도 삼촌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상처를 닦아주고 약을 발라주었다.
아프다고 말하면 참으라고 했지만, 손끝은 누구보다 조심스러웠다.
삼촌은 툴툴 거리지만,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었다.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몇 개나 뜯었는지 모를 정도로 붙였다.
"상처 부위가 길어?"
"응. 이제 발 올려"
발바닥에도 소독솜으로 닦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그 틈에 샤워가운이 벌어졌고, 삼촌이 물었다.
"이렇게 흉이 심했어....?"
"응?"
"화상흉터 말이야"
얼른 가렸다. 삼촌이 발목에 흉터는 본 적 있어도 허벅지 안쪽은 볼 일이 없었기에..
"겨울에는 조금 흉터가 도드라져 보여. 추워서 그런가 봐. 괜찮아"
"...."
"그때가 언젠데 하나도 안 아파"
"니 속옷은 어쨌어?"
"그 사람이 주머니에 넣어 갔어"
"왜"
"직접 내 발로 찾으러 오래. 또 보자고"
"... 선혜야. 매형한테 오늘 일 말하지 마. 아니, 누나한테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너랑 나랑만 아는 비밀이야"
"응"
"없었던 일이야. 오늘 일 전부. 약속해"
"응"
"놀랐을 텐데 일찍 자. 삼촌 갈게"
"어디가?"
"약속 있어"
그 뒷날 삼촌이 집으로 왔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
"응"
"경찰서에서 만약에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면 돈 뺏겼다고만 해. 다른 말하지 마. 속옷을 들고 갔다느니.. 벗겼다느니 이런 말은 말하지 말라고"
"그럴게"
"자, 니 거"
삼촌 주머니에서 꺼낸 건, 들고 간 속옷이었다.
"삼촌이 찾아온 거야? 필요 없는데.."
"니 거잖아"
삼촌 손에는 피가 묻어있었고, 덜컥 겁이 났다.
"삼촌 다쳤어?"
"아니. 그 새끼도 그 일 입 밖으로 내진 못해. 삼촌이 그렇게 하고 왔어. 아무 걱정 말고 잊어버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삼촌이 경찰서에 있다고... 그러고 잠시 뒤 할머니한테서도 연락이 왔다. 아빠는 삼촌이 사람을 많이 때려 잡혀갔다고 했다.
나 때문이었다.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들어줄 리 만무했다.
삼촌이랑 약속했지만 지킬 수 없었다. 등에 상처를 보여주고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사실대로 토했다. 그리고 삼촌이 속옷을 찾아와 줬다고도 덧붙였다. 아빠는 삼촌이랑 똑같은 말을 하셨다.
"삼촌 말대로 해. 그날 있었던 일은 없었던 거야"
그러나 삼촌은 쉽게 나오지 못했다. 상대는 많이 다쳤고 합의는 없었다. 아빠와 삼촌은 내 이야기를 경찰에 말하지 않는 듯했다. 경찰서에 찾아갔다. 직접 내 이야기를 해서 삼촌은 잘 못 없다고 말하면 해결되는 일인 줄 알았다.
"삼촌 보러 왔어요..."
삼촌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무슨 서류를 작성해야 된다 등등... 나는 삼촌 얼굴만 보고 가겠다고 울었고 그렇게 오래 매달려서 삼촌을 잠깐 볼 수 있었다.
"니가 여길 왜 와"
"삼촌 미안해ㅠㅠ"
"삼촌이랑 약속한 거 안 잊었지?"
"끄덕"
"그래 잘했어. 위험하니깐 집으로 곧 장가"
"삼촌은?"
"사람을 때렸으니 죗값 받아야지"
"나 때문이었잖아"
"조용히 해"
삼촌이 체포되고 하루가 지나, 합의가 되어 풀려났다.
흉기가 없었고, 여러 명 가담한 폭행이 아니었으며, 상승범이나 재범이 아니었기에 합의금만으로 풀려났다고 했다. 대신, 아빠가 큰돈으로 합의를 했다고 했다.
삼촌이 이번 일은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했고, 나는 잘 지켜지던 약속을 지금에서야 지키기를 거부했다.
어린 나는 그 약속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숨겨야 하는지, 왜 없던 일이 되어야 하는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았다.
그건 숨김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는 걸.
삼촌은 대신 기억했다. 내가 잊어도 될 몫까지
잊자고 한 사람은 삼촌 쪽이었지만, 몇 년 뒤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삼촌의 한마디가 이 일이 아직 삼촌 기억 속에 있었음을 알았다.
"어떤 새끼야. 시장에서 그 껄렁한 얘들이 그런 거지?"
서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아직 그 일들이 이어져 있을 수도 있다. 삼촌은 나를 아픈 손가락쯤 생각하는 듯하다. 그 덕에 삼촌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숙모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삼촌 첫사랑은 박선혜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이후, 삼촌의 사랑은 조금 이상해졌다. 과할 만큼 많았고, 이유 없이 깊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지키지 못할 뻔했던 것에 대한 평생의 책임 같은 거였다는 걸.
나는 여전히 그날을 완전히 잊지 못한다. 흉터가 사라지지 않듯, 기억도 흐려질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고등학생이었던 삼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화상이었기에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주지 않으면 죄책감에 견딜 수 없었으므로.
그날 이후로 나는 오래 앓았다. 몸살이라고 했지만, 열보다 먼저 무너진 건 마음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겨울 저녁의 냄새를 맡으면 그날이 먼저 떠오른다. 젖은 눈 냄새, 기름 빠진 튀김 냄새, 그리고 가까이서 맡았던 담배 냄새. 그 냄새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면, 나는 잠깐 숨을 고르게 된다. 그때의 나는 숨 쉬는 법을 몰랐으니까.
그날 이후,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살았다. 말하지 않기로 했고, 실제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빠도, 삼촌도, 나도.
그게 왜 그렇게까지 중요했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나를 그렇게 만든 사람보다, 그 사람을 때린 삼촌이 더 조심해야 하는지.
나는 한동안 억울했다. 내가 당한 일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왜 없던 일처럼 해야 하는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세상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삼촌은 그날, 나를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끝내러 간 사람이었다.
내가 겪은 일을 세상에 꺼내는 순간, 나는 계속해서 설명해야 하고, 증명해야 하고, 견뎌야 한다는 걸 그는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막은 거였다. 나를.
대신 본인이 다 가져간 거였다.
그날 이후로 삼촌은 조금 이상해졌다. 원래도 무심한 사람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더 자주 우리 집에 있었다.
별것도 아닌 걸 사 왔다. 과자, 옷, 학용품.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
그리고 늘 물었다.
“어디 다친 데 없나.”
그 질문은 한동안 계속됐다.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을.
나는 매번 괜찮다고 했다.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삼촌은 한 번도 그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아무렇지 않은 날에 삼촌이 툭 던지듯 말했다.
“시장 같은 데 혼자 다니지 마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잔소리 같았는데, 잔소리가 아니었다.
몇년 후 삼촌은 갑자기 결혼을 했다. 술자리에서 밤을 함께 보낸 여자이자 삼촌 아이를 임신한 여자와 말이다. 그 결혼이 행복했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삼촌은 끝내 어딘가에 머물지 못했다는 거다.
집에도, 사람에게도.
늘 겉돌았다.
가끔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 삼촌 안에 무언가가 남았을 거라고. 모두 삼촌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잊어도 되는 것들을, 삼촌은 계속 기억하고 있었을 거라고.
그래서였을까.
결혼 전에 삼촌이 나한테 했던 말이 있다.
“그 흉터로 네가 약점 잡히면, 무조건 나한테 와라.”
그때는 그냥 지나쳤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흉터 얘기가 아니었다. 나를 지키지 못했던 순간에 대한 자기 자신과의 약속 같은 말이었다. 삼촌 잘못이 아닌데...
나는 아직도 그날을 완전히 잊지 못한다. 흉터가 옅어지듯, 기억도 흐려졌을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날의 나는 분명히 혼자였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으니까.
누군가는 끝까지 나를 찾으러 왔고, 누군가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침묵이 방치가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선택이, 나를 지켜냈다는 것도.
나는 삼촌과 애틋한 관계가 아니다.
다만, 삼촌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삼촌의 죄책감일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그게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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