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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426 봄의 끝자락은 나를 기어이 데려왔다


#부디, 내 사랑이 당신께, 안온했으면 해요.

바쁘게 살고 있었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를 스스로 다독이며,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며 그렇게요. 그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린 봄비가 나를 가만히 붙잡아 세웠습니다. 잊으려고 애쓰며 덮어두었던 시간 속에서
나는 분명 살아가고 있었지만, 정작 살아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우울은 더 깊어졌고 숨은 자꾸 막혔으며
불안과 강박은 나를 조여왔습니다. 밤은 길어졌고 잠은 오지 않았고
약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게 되었고, 당신 또한… 끊어낼 수 없었습니다. 별일 아닌 순간에 눈물이 흐르고 아무 이유 없이 눈을 감아버리던 날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늘 혼자라는 느낌 속에
나는 또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보며 “괜찮아, 잘 버티고 있어” 스스로를 속이고, 모른 척하며 그렇게 하루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노력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비가 내리던 날,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졌거든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멈춰 있던 마음이 다시 당신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숨을 쉬었습니다.
살아졌습니다.
이게 옳은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당신을 그리워하는 일은 지금의 나에게 살아가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조용히 붙잡아주는 사람이니까요.

나는 마지막처럼 입을 맞췄지만,
내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당신과 입술은 떨어져도 마음은 아직도 당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인생은 내게 슬픔을 주었고, 사랑은 그 슬픔 위에 꽃을 피워냈다. 당신은 내게 슬픔이자 꽃, 그 어디 중간쯤 존재한다.
꽃일랑 피지 말고, 슬픔일랑 오지 마라.



#마음을 쓸고 온, 아픈 계절에

당신에게도 유난히 아프고 시린 계절이 있나요.
봄은 꽃을 피우기 위해 조용히 스며드는 비였고,
여름은 초록을 더 짙게 만들기 위해 한없이 쏟아지던 장마였으며,
가을은 마음을 적셔 더 깊은 고독을 남기는 비였고,
겨울은 어깨 위에 내려앉아, 묵묵히 쌓이던 눈의 무게였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계절일 뿐이었는데, 당신을 마음에 들인 순간부터
나의 사계절은 전부 당신이 되어버렸습니다.

봄은 귓가에 스며들던 당신의 부드러운 목소리였고,
여름은 숨결 가까이에서 느껴지던 당신의 뜨겁고 낮은 호흡이었으며,
가을은 한 번 마주하면 빠져나올 수 없던 당신 눈동자의 깊이였고,
겨울은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 끝없이 길어지던 차갑고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아픈 이 계절이 언제쯤 지나갈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이미 꽃은 모두 져버렸고, 흩어진 꽃잎들은 거리 위를 떠돌다 이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는데,
왜 나는 아직도 그 봄을 놓지 못하고 이토록 미련하게 붙잡고 있는 걸까요.
아마도 그 봄에는 계절이 아니라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가슴이 자꾸 뛰면 안 되는 당신에게만 향해요

왜 나는 당신에게만 이토록 가슴이 뛰는 걸까요.
사랑은 늘 향해야 하는 사람에게만 향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가장 가지 말아야 곳으로 조용히 스며들 때가 있어요. 머리로는 안된다는 걸 누구보다 아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고 이성으로 절제해야 하는데 심장이 먼저 뛰어버립니다. 나는 누구보다 평범한 얼굴을 하고, 이미 무너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나 속은 비어있었거든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살아 있지 않고, 부를 가졌지만 평온을 갖지 못했으니까요. 숨이 막혔어요...
당신과의 첫 장면은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지극한 일상이었어요. 그 처음 만남부터 알았습니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았어요. 당신은 이미 다른 사람의 삶 속에 놓여 있었으니까요. 끝내 넘지 않을 선이 분명했죠.
당신은 욕망을 단정한 사회적 위치로 가리고,
나는 욕망을 글로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섞이려야 섞일 수 없었죠.

"괜찮으세요?"
"네...."

"무서워요...."
"몇 년째 근무 중인데 한 번도 쥐 나온 적 없어요"

당신은 매번 침착했습니다. 엉뚱한 대답에도 동요하지 않았고요. 그런 당신 모습에서 결핍을 알게 되었어요. 내게는 무언가 빠져있다는 것을요. 나는 분명히 비어있었거든요. 그 빈자리를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되는 인물이 당신입니다.  
편집으로 숨이 닿고, 시선이 얽히고, 손끝이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거리. 허락해서는 안 되는 온도가 허락되고, 건너서는 안 되는 선이 조용하게 넘어가버렸습니다.

여기 있으면 저쪽이 생각나고, 저쪽에 있으면 이쪽이 마음에 걸리니....

선을 그으면서 선 바로 앞까지 나를 데려오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어요. 더 깊은 안쪽까지 한 발 들어오라는 초대장처럼 보였거든요.

다행이에요. 오늘은 어긋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오늘은 볼 수 있어서

당신의 문장은 훨씬 더 강하게, 더 깊게, 더 오래 내게 남았습니다. 당신을 향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감정 앞에서 나는 스스로도 당황했습니다. 심장이 다르게 뛰고, 숨이 다르게 쉬어지고, 눈길이 자꾸 가고, 자주 그립고 보고 싶은... 나는 당신을 지독히고 사랑하고 있었죠.

회의실 안, 사고, 돌이킬 수 없는.
밀폐된 공간,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 눌러왔던 욕망의 분출, 당신을 향하는 마음이 한꺼번에 표출되었어요.

하고 싶어요

회의실 밖에는 삶이 있고, 규율이 있고 질서가 있지만, 회의실 안에는 당신과 나뿐이었습니다. 사고였다고 말하기엔 몸이 먼저 답을 내버렸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 곁에 머무르고 싶었어요. 이 관계를 잠시라도 현실처럼 느끼고 싶은 욕망이 생겼죠. 둘만의 공간, 둘만의 시간, 둘만의 숨결. 당신을 작업실 밖에서 만났습니다. 당신과 나의 시간들은 가장 아름답고 동시에 가장 슬펐습니다. 지난 과거들이 동시에 떠올랐기에.
만지고 만져지고 싶은 대상자에서 누군가를 만지고 만져달라 말하는 내가 슬펐거든요. 당신을 볼 때면 끝을 예감하는 사랑의 마지막 발악처럼 당신을 애정했습니다. 뒤얽힌 공간 속에서 당신과 나는 가장 가까웠지만, 가장 멀어진 미래를 향해 가는 향해 갔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기대고 무너지고 싶었습니다. 나를 도려내는 마음으로 당신을 내게서 죽이고 죽여보지만, 자꾸만 나를 살리시기에 이제 그만 죽이고 싶어요. 나는.... 오늘을 살기 위해,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게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