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서지는 햇살 속,
하얗게 흩날리는 벚꽃은 그리움이었다.
이어지지 못한 인연으로
자주 멍하니 창밖을 보고,
설거지를 하던 손을 자주 멈추고,
하던 일을 멈추고 울컥거리며,
글을 쓰다 펜을 내려놓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늘었다.
"**엄마!!!!!!!"
화들짝 놀랐다.
누군가 내 아이 이름을 넣어 나를 크게 불렀으니까.
내 두 눈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허공을 떠돌다 횡단보도에 아이 손을 잡고 있는 익숙한 실루엣이 멈췄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 아빠였다. 어째서 나를 부르는 걸까...
"네?? 저 부르신 거죠?"
"저 급해서.. 유치원 차량에 탈 때까지 부탁 좀 합시다"
"아... 네. 신호 바뀌면 제가 건너갈게요"
출퇴근 시간이므로 차량과 사람들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횡단보도 끝에서 그는 내가 듣지 못할까 봐 크게 말했고 시선은 그와 내게로 쏠렸다. 그는 무릎을 굽혀 아이에게 무어라 말하곤,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몸을 싣고 가버렸다.
"**엄마, 미안해요. 부탁드립니다"
"아.... 네네"
그는 횡단보도에 아이를 두고 떠나버렸다.
"기다려. 아줌마가 건너갈게^^"
여섯 살이면 아직 어린데.. 그런 아이를 횡단보도에 두고 가는 아빠의 심정은 오죽할까 하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겨우 참아냈다.
"**엄마"
이번에는 그가 불렀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에요?"
아이 아빠가 내게 맡긴 아이와 둘째를 양손에 잡고, 첫째는 둘째 손을 잡고서 차량이 오는 곳으로 갔다.
"아... 나도 몰라요. 아이 아빠가 아이만 맡기고 떠났어요^^;;;"
"그쪽이 만만해서 그래요..."
"아빠 차가 꼼짝 안 해서 택시아저씨 불렀어요"
내 손을 잡고 있던 아이는 조그맣게 이야기했고, 나는 허리를 숙여 아이 눈을 마주쳤다.
"정말? 놀랬겠다ㅠ 놀랬을 텐데 울지도 않고 진짜 씩씩한데?? 아줌마가 너 안 본 사이에 엄청 듬직해졌네^^"
"나 이제 김치도 먹어요!!!"
"^^"
아이 목소리가 드디어 커졌다.
나에 대한 경계가 조금은 풀렸다는 의미다.
"뭐라고 했죠??"
"그쪽이 만만해서 그렇다고요.."
"뭐가요?"
"나도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였고, 여기 같은 어린이집 다니는 부모가 많은데 굳이 멀리 있는 그쪽을 부른 거 말이에요"
"근데... 요??? 뭐가 문제예요??"
"사람 좋은 얼굴로 하고 다니지 말라고요"
"그럼 뭐 인상이라도 쓰고 다닐까요??^^"
"ㅡㅡ"
"그쪽은 내가 만만한가 보죠?"
둘째 아이 차량이 먼저 도착했고, 한눈팔면 늘 사고인 아이인지라 내게 맡긴 아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우리 엄마야!!!!!!ㅠㅠ"
둘째가 유치원 차량에 오르기 전에 나와 손잡고 있는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며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야. 그거는 변함없는 사실이야^^"
"응 ㅠㅠ 야!!! 우리 엄마 찌찌는 내 거야!! 만지지 마라??!!!"
"^^;;;;;"
엉뚱 발랄한 둘째는 불타오르는 질투의 눈물을 소매에 꾸욱 닦고 차량에 올랐다. 아무리 손을 흔들었지만, 한사코 흔들어주지 않았다. 황소고집. 남편을 닮아있었다. 단단히 삐친 게다.
"차 오면 씩씩하게 타는 거야~ 알았지?^^ 아줌마는 형아도 데려다주고 와야 하거든"
"네..."
"바쁘시면 먼저 가요"
"금방 올 건데 같이 가요"
곧이어 유치원 차량들이 몰려왔고, 그중에 아이가 탈 차량도 있었다.
"부모님께 인사!"
"아줌마, 다녀오겠습니다"
"응^^;; 재미있게 신나게 놀다 와^^"
그렇게 유치원생들은 등원을 마쳤다.
첫째들은 학교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고 나는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쩍 갑자기 커버린 첫째가 대견하여 또 울컥했다.
"왜... 왜 그러세요?"
"??"
"왜 또 울라고 그래요"
"얘들이 너무 커버린 거 같아서요ㅠㅠ"
"참... 울일도 많네요"
"대견해서...."
"대견해서 울고, 예뻐서 울고, 꽃 떨어진다고 울고, 꽃 피었다 울고, 얘들 울면 따라 울고, 기뻐도 울고... 안 우는 날이 있긴 해요?"
"뭐죠? 오늘따라 왜 시비예요..."
"....."
시간이 촉박했다. 조금 빠르게 걸었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내 품에 파고드는 시간보다 벗어나 있을 시간들에 또 울컥했다. 호르몬의 문제라기보다는 나는 잘 우는 편이다. 엄마를 빼다 박은 탓이었다.
".... 행님 어제 술 많이 마시고 왔나 보죠?"
"....."
무례한 질문이었다.
술을 많이 마신다는 뜻을 알고 묻는 것이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의 치부를 건드린 느낌이었다.
아니, 상처 위에 굵은소금으로 문지르는 듯 아팠다. 그렇게 툭 내뱉어진 말에 고스란히 상처를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니... 아니, 그 말이 아니라..."
그의 말투에 실수였다고 미안하다고 할 거란 걸 알았지만, 나는 그를 두고 앞서 걸었다.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미안해요. 해선 안 되는 말이었는데.."
"...."
"나도 모르게 상처가 될만한 말을 했어요"
"들어봅시다. 아침부터 왜 그런 거예요?"
"아...?? 그게....."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지, 연유에 대해 묻자 당황해했다.
"그게 뭐요?"
"아침에 그쪽을 아이 이름 넣어서 '**엄마' 부른 게 꽤 거슬렸어요"
"그럼 나를 누구누구 엄마로 불러야지, '선혜씨' 라고 불러야 되나요??"
명확하게 거슬린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뭔가 캐물으면 안 될 듯했다. 해서, 삼천포로 빠지는 질문을 해버렸다. 내가 봤을 땐, 그는 꽤나 충동적이기에..
"그런 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그쪽이 내 기분을 망친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
"미안해요"
더 이상 그와 함께 등굣길을 하는 건 불편할 거란 걸 알았다.
점점 횟수를 줄여야겠다 생각했다.

#추억을 나눠가지며
작년 겨울부터였을까. 이사철인지, 유난히 엘리베이터 앞에 붙은 ‘이사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메모가 자주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그 반복 속에서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질 것 없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장을 보던 중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혹시… 선혜??”
고개를 드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놀라움.
“맞는데… 어????”
“오랜만이야. 나 **. 진짜 오랜만이다. 넌 그대로네?”
20년.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고 어색함 대신 반가움이 먼저 튀어나왔다.
우리는 양손을 꼭 잡고,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그 시절 아주 특별히 친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졸업을 앞두고 내 옆자리에 앉았던 그 아이였다.
장을 대충 마무리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함께 집으로 향했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그동안의 시간을 조금씩 꺼내어 나누며 걷다가 같은 아파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같은 동. 같은 라인.
그때 알았다. 이 우연이 그냥 우연이 아니라는 걸.
그날 이후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서로의 집에 초대해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나눠 먹고, 아이들 이야기로 웃고 떠들었다.
신기하게도, 친구의 막내와 우리 첫째가 동갑이었다. 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더 가까워졌고, 어느새 서로의 하루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비 오는 날이면 같이 목욕탕에 가고, 날이 좋으면 산을 오르고, 반찬 하기 싫은 날엔 서로 음식을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 학원 차량을 기다리다 친구를 만났다.
별일 아닌 대화 속에서 친구는 그를 내 남편이라고 생각했고,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빠르게 정정해 주었다.
남편이 아니라, 이웃이라고.
순간의 당황스러움과 어색한 웃음. 하지만 그 인연마저도 이어졌다. 아이들이 친구가 되었고, 우리의 관계도 조금 더 넓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남편들까지 함께 만난 자리.
“어???”
“ㅋㅋㅋㅋㅋㅋㅋ박선혜”
“둘이 알아??”
세상은 정말 좁았다. 친구의 남편은 내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날, 우리는 정말 많이 웃었다. 입이 아플 정도로,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친구와 나는 자주 만났다. 자주 만나도 할 이야기는 늘 넘쳐났다.
그러다 어느 날, 늘 집밥만 먹던 우리가 밖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너 생일이니까 니 먹고 싶은 거 먹자.”
“월남쌈 좋아해?”
“그거 먹고 싶나? 그래, 먹으러 가자.”
"쌀국수도 먹자. 니 면 좋아하나?"
"엉. 그럼 화요일 11시 반에 울 집에 내려와. 같이 걸어가서 점심 먹고 차 마시자"
"그래. 르반부 말고 가자"
"왜? 거기 맛있는데"
"너무 자주 가서... 다른데도 가고 싶어"
"그럼 다른데 가자. 거기도 걸어가도 된다. 거기도 맛있어^^"
"어 좋아 좋아"
소소한 약속, 익숙한 말투, 변하지 않은 웃음.
“벚꽃 보면서 걸어가면 되겠다^^”
“아직도 꽃 좋아하나?”
“아직도라니? 꽃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ㅋㅋㅋ”
“니는 여전하네.”
“여전하지 않은 것들도 많아…”
그 말 끝에, 잠시 조용해졌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많은 것이 그대로라는 걸.
그날의 우리는 잠시 여고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시절의 공기와 감정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었다.
참 이상하다. 수많은 사람 중에,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
그리고 다시 이어진 인연.
확률로 따지면 거의 기적 같은 일이겠지만,
어쩌면 이건 그냥, 다시 만나야 했던 사람들이 결국 다시 만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친구가 점심 약속이 설레는 것일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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