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그렇게 내뱉어지고 말았다
"그쪽이 우리 오빠한테 쌀쌀맞게 대하는 거.. 내가 예민해서 그렇게 느끼는 거죠...?"
"맞는데?"
"왜? 왜 그런 거예요?"
"몰라서 물어요?"
"네"
둘째 등원할 때 남편과 함께 했었다. 교육으로 출근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왜인지 그의 태도가 매우 거슬렸다. 전과는 달랐으니까.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차량에 오르고 남편도 교육받으러 갔다. 첫째들과 등굣길에 오르며 나는 물었다.
그가 몰라서 묻냐고 아니 꼬아 되려 물었고, 그 대답이 채 끝나기 전에 나는 대답을 했다. 정녕 이유를 몰랐었기에.
"일단 얘들 등교부터 시키고"
아이들이 교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왜 그런 무례한 행동을 했는지 떠올려 보았지만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돌아섰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왜 그러는지 도통 이해가 안 돼요"
내 말에 그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저건 또 무슨 표정인지... 평소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난 그쪽이 더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렇게 살아요.... 얘들 아빠라 그래요??"
"네???"
그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무슨 말일까...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살아요....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달라고 말을 해요"
"아니 아니..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
"얘들 아빠라는 이유로 참고 감싸주면 끝도 없어요"
"아니 아니, 잠시만요. 내 말 먼저 들어봐요"
"무슨 말을요. 또 숨기기만 할 거면서"
그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뭐가 이토록 그를 흥분하게 했을까. 낯선 모습이었다. 그의 이런 행동은 나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셈이었다. 하여, 나는 입을 닫았다. 그가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기에.
"혹시 모르니 사진은 찍어놔요. 나중에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니..."
아까보다는 목소리가 차분해졌지만, 그가 도통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몰라서 묻는 거지만 그는 내가 숨긴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말에 수긍이라도 하듯 되물었다.
"뭘 찍어요?"
"맞았던 곳, 전부요. 사진에 찍힌 날짜와 시간, 장소가 있으니 증거자료가 될 거예요"
"......."
아니라고 잡아떼면 또 그는 내가 숨긴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그는 내가 맞고 있다고 알고 있다. 어째서?? 왜??
"잠시 걸을까요?"
내가 물었고, 그는 끄덕였다. 아파트 뒤, 강변을 천천히 걸었다.
"나한테 이왕 들킨 거, 편히 말해도 돼요. 그래야 그쪽도 숨을 쉬죠"
"나 맞고 살 만큼 형편없어 보이나 봐요....?"
말하면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예상치 못한 눈물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으면 그 말을 하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그렇게 울음이 터졌다.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아니에요. 전혀요"
옆에서 어쩔 줄 몰라했고, 강변을 뛰는 동네 사람들이 많기에 나는 고개를 숙여 걸었다.
"오늘 출근 안 해도 돼요?"
"오후에 학교 가는 거 말곤 없어요"
"이제 진정 좀 됐어요?"
"네.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
"언제부터 내가 맞고 산다고 생각한 거예요? 며칠 전에... 새벽에 운동하러 나오면서 마주쳤잖아요, 그때... 그런 생각한 거죠?"
"그전부터 의심은 했지만, 그날 확신했어요"
"그전부터????? 언제요?"
"얼마 전에 마주쳤을 때, 그동안의 행동들이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
"술만 마시면 그런 거죠? 가정 폭력은 못 고쳐요..."
가정폭력.. 그 단어가 참 무거웠다.
나를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보는 그와 나를 걱정하는 그.
어이도 없고, 웃기기도 하고...
"손목에 상처는 화상이에요. 목에, 쇄골에 있는 건
... 키스마크고요. 치마 입었을 때 봤던 다리 멍들은.. 나 유도 배워요. 그리고 손목에 멍들은... 호실술도 같이 배우는 데 거기서 손목 잡았을 때, 뒤에서 껴안았을 때 뭐 이런 상황극 하다가 생긴 멍들이에요.."
"네???"
"나 가정폭력 아니라고요..."
"네?? 그럼 조금 전에 왜 울었어요?"
"그건.. 그쪽 눈에 내가 가엽고 안쓰럽게 비친다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자기 연민에 울었어요"
"그럼.. 몰래 편의점에서 팩소주 사러 오고, 맨날 울고..."
"원래 나 잘 울어요. 작가잖아요. 감성적이고 예민해요. 그리고 나 맨날은 울지 않습니다"
"그럼 잘 놀라고, 움츠러들고, 눈감고 그런 것도.."
"그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겁도 많고, 소심하고.. 불안과 강박, 사회불안장애가 있어요"
"아... 그럼 그 그때 목에 멍들.."
"그건.. 키스.. 마크예요. 맞아서 생긴 멍이 아니라요....... 대체 나를 어떻게 봤길래 가정폭력....."
"다행입니다. 진짜 너무 다행이에요"
가정폭력이 아니라는 말이 이렇게 기쁜 일인가.. 기분이 이상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나를 연민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혼자 고민 많이 했어요.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 수도 없는데 칠칠한 그쪽이 자꾸 상처가 보이니깐...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랐어서.."
"나 안 칠칠맞아요"
"칠칠맞은 건 맞습니다. 아이고, 한시름 놨네요 ㅎㅎ"
"그럼 왜 그동안 나 피했어요?"
"그쪽이 먼저 피했잖아요. 난 배려였어요. 가정폭력을 나한테 들켰으니.. 민망할까 봐"
"난 창피함이었어요. 오빠가 남긴 목에 상처를 그쪽이 봤으니까"
"아......"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를 피했다.
"그럼 그동안 행님이 회식한다고 할 때마다 왜 그렇게 불안해했어요?"
"티 났어요?"
"네. 처음에 그거 때문에 의심했었어요. 항상 보면 행님이 회식하고 온 날 냉랭하고 그래 보여서..."
"자세히도 봤네요^^;; 그건..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려요. 오빠가 술만 마시면.. 나를 안아요....
그런데 그건 내 잘 못이 커요. 부부사이에 부부관계는 당연한 거니깐요. 오빠가 술만 마시면 하려는 이유가 평소에 안 하니깐 그렇게 변했어요. 그러니까, 내 책임도 있는 거죠. 이제는 합의를 봐서 아예 안 하지는 않은데, 술만 마시면 그렇게 하려고 하더라고요..."
"아...."
그렇게 한참을 말이 없었다. 뻘쭘하고 민망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속이 시원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아싸리 남에게 털어내 버린 양.
한순간에 내 꼴이 우스워졌더.
그렇게 술취한 오빠를 미워하던 내가, 오빠의 입장에서 오빠를 대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전히 나는 남의 시선이 중요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에게 더 깊이 말하기는 싫었다.
"그날, 새벽에 마주쳤던 날도 술을 많이 마셨더라고요^^;;;;"
"미안해요"
"네???"
"행님이랑 앞으로 술 안 마실게요"
"아녜요! 그쪽이 뭐가요^^;; 적게 마실 땐 그렇지 않아요^^;; 많이 취해서 이성을 잃으면 그래요... 괜찮아요"
"그래서 유도 배우시는...?"
"아뇨 아뇨. 아니에요^^;;;; 그건 날 지키기 위함이에요"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사과가 없고,
사과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사과만 난무했다.
"그동안 혼자 마음대로 오해하고 나한테 잘해 준거예요?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그건 아닙니다 ㅋㅋㅋㅋ"
"나 맞고 살지는 않으니까... 앞으론 그런 오해하지 마요"
"네^^;;;"
"설마 그때말한 상담... 위로.. 그거 나 아니죠?"
"압.. 비밀보장이라면서 이렇게 누설해도 됩니까?"
"미안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매사 조심스럽고, 그는 조금 더 솔직한 편이었다.
"오늘은 라면 4개 끓여 먹은 얼굴이에요^^"
"예쁘게 해서 어디 가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아파요?"
"무슨 일 있어요?"
"뭘 또 그리 입에 한거석 넣고 와요ㅋㅋㅋ"
등하원 시에 보는 짧은 관계였다. 그 짧은 시간에 나눈 대화에서 그는 나를 관찰하는 세심한 이었다. 나의 안색을 살피고, 나의 안위를 물어봐주는.
왕래가 잦은 만큼, 가까워진 만큼, 알고 싶지 않은 그의 가정사와 나의 가정사를 알게 모르게 서로 알게 되기도 한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가끔 애써 괜찮은 척하던 얼굴이 들킨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
대신,
"점심에 밥 다섯 그릇 먹어요^^"
"오늘 중에 행운이 하나 찾아갈 겁니다. 내가 장담하죠!"
하고 말을 바꿔준다.
어느 날부터 나는 내 표정을 의식하게 되었다.
누군가 내 안색을 살핀다는 사실이 낯설고 따뜻했으니까.
그렇다고 깊은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는다.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묻고, 옷 따뜻하게 입으라 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웃으면 이유를 묻지 않고 함께 웃는다. 가끔은 주위를 살피지 않는 나를 자신으로 끌어당겨 챙겨주기도 하고, 내가 피곤해 보이면 아이스크림 먹을래요라고 묻는 정도. 별 거 아닌 말들이 유난히 오래 남는 건, 직업 탓이겠지.
누군가의 관심을 경계하지 받아도 되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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