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은 늘 조금 흔들리고,
흔들릴수록 더 투명하게 빛난다.
허망과 망상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를 이용하여 나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것이다.
#장난스러운 다정함
눈길이 닿았고
서로가 담겼고
관심이 피었고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그는 침묵했다.
"글은... 쓰고 있어요??"
"?? 연재소설이요??"
"아뇨, 내 글이요.."
그리고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꽤 잘생긴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스쳐가는 인연이었지만 날아가버릴 새가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잡기로 했고, 그 새는 기꺼이 잡혀주었다.
"아직 소재가 많지 않아서요..."
핑계였다.
차일피일 미루기 급급했다.
돌이켜보면,
그에게 사랑 이야기를 재촉했던 이유가,
소설을 쓰기 위함인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지
이제 헷갈린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란히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분명 전보다 가까웠지만,
엄연히 따지고 보면 그 적당한 거리는 결코 좁힐 수 없었다.
찰떡파이.
걸으면서 연신 아이스크림 심장을 명중시켜
포크로 잔인하게 찔러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가 내 손목을 잡아 잡아당겼다.
"아야 ㅠㅠ"
"앞 좀 보고 다녀요"
"아프다고요 ㅠㅠ"
손목에 상처가 있었고, 그것을 알리 없었다.
"조심 좀 해요. 또 부딪힐 뻔했잖아요"
"나도 봤어요!! 아파요. 놔줘요"
"미안해요. 근데 나 세게 안 잡았어요"
요구르트 전통 카트가 천천히 지나갔다.
나는 소매를 올려, 상처를 보여주었다.
"누가 그랬어요????"
"질문이 왜 그래요? 누가 그러다뇨??"
"아... 왜 다쳤어요??"
"데었어요.."
"많이 아팠겠다...."
"괜찮아요^^;;"
"미안해요"
"아뇨 아뇨! 그쪽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
그리고 그의 질문에 지난날의 내 상처를 봤다는 확신이 들었다.
"연애상담도 한다 그랬죠??"
"네????"
"방송할 때 연애 상담도 해준다면서요"
"아.. 네. 가끔. 글 쓸 때 도움되기도 해서요"
".... 아무것도 안 했어요. 키스도 포옹도 아무것도, 아무 일도 없었고요. 근데 아무것도 안 했는데, 돌아갈 수 없는 기분이 드는 건 왜 그럴까요?"
"봄이라 그래요. 무지막지하게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잖아요. 지천에 막 피어나고.. 봄 타나 봐요. 그래서 그래요^^;;;"
"어디까지가 위로인지를 모르겠어요"
"위로를 하지 마요, 그럼"
"그런가요"
"네"
"꽤 명확한 상담이네요^^"
"상담료는 받지 않을게요^^"
"^^"
#지난날
겨울의 끝자락이 봄에게 끝내 내어주기 싫은 양, 고집스레 굴었던 날이었다. 잠에 들지 못했고, 도저히 잘 수 없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했으니까. 집에 있는 건 더 싫었으니까..
기모가 들어간 러닝복을 꺼내 입고, 조끼를 입고 바람막이를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달렸다. 살 것만 같았다. 얼얼해진 두 뺨과 코끝이 시리다 못해 아린 그 기분이 죽어가는 나를 깨우는 듯했다. 그렇게 새벽을 꾸준히 달리던 어느 날, 러닝을 마치고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에 그와 마주쳤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게 달린 탓에 추운 새벽에도 더웠고, 하여, 모자를 벗어 손목에 걸고 바람막이와 조끼 지퍼는 풀어 내린 상태였다.
"어??? 운동하러 가시나 봐요??^^"
"운동을 벌써 하고 오시는 거예요?? 이 시간에??"
"네^^"
"?????!!!!!"
"응?????"
그가 나의 목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그의 행동에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점차 일그러진 그의 표정에 아차 싶었고, 얼른 내 손으로 목덜미를 가렸다. 동시에 몸을 그에게서 비스듬히 틀어, 바람막이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먼저 가볼게요. 씻고 얘들 챙겨야 해요"
"누가 그런 거예요?"
"뭐가요?"
"목에..."
"그거..... 잘 못 본 거예요"
"네, 조심히 들어가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그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 뒤로 동네에서 마주쳐도 그 상처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땐 첫째 아이 개학 전이므로 매일 아침마다 만나지 못했지만.. 학원 차량으로 만날 때에도 한 번을 묻지 않았다.
그가 물어본다면 지퍼를 잘 못 올려 멍이 든 것이라는 꽤 그럴싸한 변명도 준비해 두었지만... 목도리를 풀기까지 단 한 번도 거기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침묵이 더 불편했다. 차라리 물어보지..
지난날에 만날 때에도, '누가 그런 거예요?'
손목에 상처가 생겨도, '누가 그랬어요?'
누가 왜 그랬는지...
그는 분명 궁금한 듯싶었지만, 내게 그 상처에 대해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물어본다면, 나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텐데..
남편이 나를 퍽 많이 사랑한다고...
사랑 듬뿍 받는 여자라고...
덧붙여,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라며..
나는 괜찮다고.. 말이다.
사실이니까.
그러나, 묻지도 않는데...
그에게 먼저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즘 들어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자주 생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멈추고, 눈을 감는다.
언제쯤 세상을 당당히 보고, 똑바로 눈을 뜰 수 있을까...
내가 아직 덜 자란 것처럼 굴기도 하고,
이미 불안에 져서 굳어버린 사람 같기도 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결국 이해의 범위가 넓어지는 건데..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더 많은 것들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자주 감아버린다.
그러면 또 나는 나를 위해 합리화를 한다.
어른이 되는 건,
성숙한 시선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나를 위로해본다.
어떤 감정은 고백이 아니라 위험이고,
어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침묵이었으며,
어떤 결혼은 약속이 아니라 방패였다.
나는 그저 안온하고 무해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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