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 남자에 대한 나의 로망의 시작은 무례한 어린 남자들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열여덟 여름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빤히 자신을 요리조리 쳐다보고 있다. 작은 체구와 작은 키에 평범한 얼굴. 그리고 뿔테 안경.
10대 때 누구나 한 번은 외모 콤플렉스가 지나갈 때 그쯤이었다. 8월 무더운 어느 날, 1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날. 하복을 입은 여고생은 이어폰 속 '윤건, 갈색머리'를 들으며 버스정류장에 서성이고 있다. 등하굣길 학생들과 뒤엉켜 버스를 타는 일은 결벽증 심한 여고생에겐 있을 수 없는 일. 그래서 오늘도 학생들이 거의 다 빠지고 난 후에 버스에 오른다. 현관을 열어 중문 앞에서 알코올소독으로 손을 닦는 일을 마쳐야 드디어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오늘은 집에 아빠가 일하는 후배 가족을 초대한 날. 시끌벅적하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숙녀가 다 됐네? 언제 이렇게 컸어! 시집가도 되겠다"
"이리 와봐, 아저씨가 용돈 줄게. 예쁜 옷 한 벌 사 입어라"
"감사합니다."
다녀왔다는 인사한마디에 아줌마와 아저씨는 열 마디는 더 하는 듯했다. 더 이야기를 했다간 몸속 기가 다 빨려나갈 기세에 시험 치고 와서 좀 쉬겠다고 말한 뒤 방으로 도망쳤다.
손님이 온터라 빵빵한 에어컨 바람이 온 집안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었다. 문을 조금 열어둔 뒤 가방만 내려놓고 침대에 대자로 벌러덩 누웠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원한 바람이 더 이상 방에 들오지 않았고 더운 바람이 부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 눈을 떴을 땐 아줌마의 아들이 하복 교복 단추를 풀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고 당황한 남학생은 밀치는 여고생의 두 팔을 잡았다. 동생의 강한 힘에 여고생은 두려움에 울음이 터졌다. 곧이어 여고생 아빠가 달려왔고, 그 자리에서 그 남학생은 건장한 중년의 주먹에 수차례 맞았다. 남학생 부모가 와서 주먹질을 멈추게 하려 했으나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셈이었다. 분명, 그의 아내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는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경찰서에 가게 되었고, 남학생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얼마 후 중년 남자는 군인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여고생에게는 군인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를 예전부터 사업을 하고 싶다고만 이야기해 줬지만, 여고생도 아는 듯했다. 한 살 어린 남학생의 호기심으로 여학생에게는 잊지 못할 일이 되었다.
#스물셋, 겨울
남의 돈 벌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계산만 하는 쉬운 편의점 알바 또한 청소는 기본 중에 기본.
강박과 불안 그리고 결벽증까지 있는 이에게 아르바이트는 큰 산이었다. 그러다 더럽지 않은 아르바이트를 찾았고 처음 시작이 힘들지 익숙해지면 개꿀알바. 바로 결혼축가와 과외.
과외하는 학생 중 한 명이 유난히 밝고 해맑지만, 노력해도 공부머리가 없는 고2 남학생. 열심히 하려는 학생에게 잘 가르쳐주고 나의 진가를 학생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반년 정도를 일주일에 두 번씩 꾸준히 과외를 받았다. 그동안 성적이 올라 같이 피자도 먹으러 가고, 햄버거도 사 먹고 나름 과외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유지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여느 때와 다르게 책상에 나란히 앉아 과외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대뜸 삼행시를 하겠다고 운을 띄워보라는 아이. 수업이 끝나면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얼른 삼행시 듣고 공부를 이어가고자 운을 띄웠다.
나 : "사!"
학생 : "사실 쌤한테 할 말이 있어요. 쌤이"
나 : "랑"
학생 : "랑 키스 하고 싶어요"
나 : "해"
무방비한 상태에 너무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렇게 내 첫 키스는 스무세살의 나이에 어린놈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그 과외는 그만뒀다. 학생 어머니가 성적이 올라 돈을 더 주겠다고 한참을 연락하셔서 해달라고 하셨지만, 더 이상 같은 공간에서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거절했다. 어린놈의 새끼는 수없이 연락을 해왔지만 완벽하게 수신거부와 차단을 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어린 남자를 싫어한다. 호기심과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해 범하는 행동에 나는 예고 없이 당하는 입장에서 위험하고 겁 없는 연하 남자를 싫어하는 분명한 계기가 되었다. 이에 반면, 어른 남자에 대한 로망은 더 갈망하게 되었고, 30대가 된 지금에서도 젊고 에너지 넘치는 연하보다는 연륜이 묻어나는 내공 있는 어른 남자가 내게는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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