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실 안
그는 지금 내 앞에서 내가 쓴 소설을 읽어 내려가고 있다. 일에 집중하는 남자, 그것도 내가 짝사랑하는 그가 말이다. 그런 그를 나는 한시도 내 눈에서 놓칠 수 없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를 내 마음속에 새겨본다. 이곳이 더워서일까. 그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하나 둘 맺히기 시작했다. 땀 흘리는 남자가 이리도 섹시했던가. 땀은 노폐물이오, 그 흔적은 오물이라 생각해 왔는데 어째서인지 그의 땀을 오물로 치부하기엔 현기증 날 정도로 야하다고 생각이 바뀐 걸까. 내 손으로 그의 땀을 닦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내 마음을 요동친 순간, 회의실 안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괴롭혀주고 싶다.
연륜 있는 저 순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른 남자를 못살게 괴롭히고 싶다.
나로 인해 그의 여유 있는 얼굴을 당황시키고 싶다.
마치 삼촌이 귀여운 조카를 괴롭히는 마음과 비슷 하다고나 할까?
항상 일할 때마다 서 있는 그를 나와 있을 때만큼은 쉬게 하고 싶었다. 계속 서 있는 그를 일단 앉히기로 했다.
"과장님, 여기 앉으세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고, 그는 이내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의자에 앉아 내가 쓴 소설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검은 일회용 마스크 속 부드러운 목소리를 담고 있는 그의 입술이 궁금해졌다. 목소리만큼이나 입술도 부드럽겠지? 그의 입술은 촉촉할까 아니면 메말랐을까.
나는 그의 입술이 마른 입술이었으면 좋겠다 생각 들었다. 내 입술로 충분히 그를 촉촉하게 만들어줄 자신도 있고 확신도 있었기에..
벗겨내고 싶다. 그의 입술을 숨기고 있는 마스크를.
벗기고 싶다.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듯한 마스크를.
자석에 이끌리 듯 그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고에 집중한 그는 내가 옆에 온지도 모르는 듯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가까이서 그를 훔쳐보는 게 더 좋았으니까.
나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이 났고, 나는 다짐했다.
'까짓 거 사직서 내버리지 뭐'
무슨 용기였을까. 의자에 앉아서 집중하고 있는 그의 무릎 위에 얼굴을 마주 보게끔 포개어 앉았다. 이미 내 눈동자에는 이성을 찾아보기 힘든 상태만이 덩그러니 남겨져있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날 밀어내기 전에 그의 넓은 어깨를 잡고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땡겨앉았다. 누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회의실이라는 장소가 주는 긴장감과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더욱 짜릿함을 나를 더 부채질하고 있었다.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 갔고, 당장이라도 그를 두르고 있던 옷을 벗겨내고 싶었다.
'응?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밀어내지 않는 그의 행동에 나에 대한 긍정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곧바로 그가 입고 있던 상의 속으로 떨리는 손을 밀어 넣었다. 그의 상체는 차가웠고 굉장히 부드러웠다. 미끄러지 듯 내 손은 그를 탐했고, 그런 내 손에 그의 움찔함이 귀여웠다.
여름옷의 특성상 얇고 짧은 옷들 위로 드러나는 그의 단단함과 이것이 서로의 땀인지 나의 것인지 그의 것인지 모를 축축함은 지금의 상황을 더한 늪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입은 흰 반바지와 흰 속옷 위로 그의 단단함이 고개를 들 때 그도 지금만큼은 나와 같은 마음을 확신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 말았다. 원래도 단단한 그였는데 지금은 더욱 한층 더 단단하고 부드러웠으며 충분히 끈적이고 미끌거렸다. 상체와는 다르게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내 손에 의해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원하는 바다.
조금 더 그를 괴롭혀주고 싶었다. 어른 남자가 나의 손에 의해 이렇게 만들었다는 묘한 성취감에 나는 더 흥분했으며, 이내 곧 나는 그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을 후회하고 말았다. 그의 손은 부드러움을 완전무장하고 무방비한 상태의 나에게로 미끄러지 듯 들어왔다.
이따금씩 질끈 감기는 그의 두 눈과 점점 눈빛이 달라지는 그의 얼굴. 그리고 그의 움직임에 새어 나오는 거친 내 호흡은 나를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하게 했고, 이미 괴롭힘을 당하는 쪽은 그가 아니라 나임을 깨달았다.
얇은 내 속옷이 거추장스러웠고 벗어버리고 싶었다.
'넣고 싶어'
용기 내 하고 싶은 말을 그에게 내뱉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본능이 말을 걸었다.
"하고 싶어"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젓는 그는 나에게 싫다의 뜻을 보였다. 사랑은 나를 이상하게 만든다. 혼자 품은 사랑에 심장이 콱 막힌 것 같다가도, 괜스레 마음이 착잡하여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이 착ㅡ가라앉는 기분. 찬물을 끼얹은 그의 대답.
멈춰야 하지만 멈출 수 없었고, 나는 다시 뱉고 말았다.
"하고 싶어"
그는 고개를 저어 거절로 답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대답과 그의 몸이 말하는 대답은 서로 달랐다. 그때 또다시 사실을 정확하게 느꼈다. 이것이 나만 하는 짝사랑임을.
그렇지만 나는 그의 입으로 "싫다"라는 말도 직접 듣고 싶었다. 싫다고 말하면 그 입술을 내가 직접 막으리라.
마스크를 벗겨내야겠다. 손을 뻗어 마스크를 향했다.
"징징징ㅡ 징징징"
요란한 진동소리에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알람을 끄고 곧장 화장실로 갔다.
거울 앞에 있는 나는 더운 여름의 날씨 탓인지 꿈의 여운 탓인지 두 뺨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고 내가 내뱉는 호흡 또한 거칠고 뜨거웠다.
칫솔을 입에 물고 빠르게 잠옷과 속옷을 벗어 내렸다. 미지근함과 차가운 경계의 물줄기를 맞으며 이제야 꿈에서 서서히 깰 수 있었다.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어 샤워볼에 땀인지 모를 미끌거림을 씻어내고서야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역시 꿈이었다.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는 나만의 꿈.
나만 하고 있는 이 사랑이 나를 너무 충만하게 한다.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사랑방울이 방울방울 흘러가 그를 마구마구 흔들어놨으면 좋겠다.
혼자 하는 사랑이 그와 같이 하는 사랑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은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하나, 이제는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누군가 당신을 이렇게 이만큼이나 좋아하고 있다는 기억이 당신의 삶에 남아 언제나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기억 속에 좋은 기억으로 살고 싶다는 건 내 욕심이 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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