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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 너에게로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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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공기, 익숙한 향기, 익숙한 노트와 펜.
그리고 익숙한 자리에 앉아 원고지 노트를 펼친다.
휴대폰 액정화면에는 정각 오후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모든 게 완벽하다.
이로써 글 쓸 준비는 마쳤다.

그렇다.
나는 강박장애와 불안장애가 있는 완벽주의자 신출내기 무명작가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내가 장르는 로맨스로 웹소설을 쓰고 있다니..

"징징징ㅡ 징징징 ㅡ"

요란한 진동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채 베개 옆에 있는 휴대폰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는다. 그러고 번뜩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깨닫고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간다. 칫솔을 입에 문 채 핸드폰 속 노래를 재생시킨다. 기분 좋을 때 듣는 노래, 최성수 남남.

'오늘밤만 내게 있어줘요 더 이상 바라지 않겠어요
아침이면 모르는 남처럼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빠르게 잠옷과 속옷을 벗어 내린다.
샴푸 통을 거칠게 세 번 누르고 젖은 머리에 손을 얹어 문지른다. 부드러운 거품이 손에 느껴지고 이내 곧 달콤한 향이 코 안으로 스며 들어온다. 부드러운 샤워볼에 향긋한 바디워시를 묻혀 몸 이곳저곳을 문지른다. 콧노래는 절로 나오고 그를 볼 생각에 벌써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그와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나의 행복한 출근길.
젖은 머리와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빠르게 닦아내고 화장대 앞에 섰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강박과 공포!
헤어 드라이기 앞에서 한참을 대치 중이다.
결국 한번 켜보지도 못하고 에먼 헤어드라이기만 노려본 뒤 젖은 머리를 대충 물기만 닦아내고 질끈 묶어버린다. 옷장을 열어 처음에 눈에 띈 옷을 꺼내어 입는다.
공들여서 예쁘게 화장을 하고 싶었으나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소질이 꽤 없는 편이다.
아침을 아주 든든하게 챙겨 먹은 뒤,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다시 최성수 남남을 듣는다.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수록 그가 너무 보고 싶다.
신발장 속 많은 구두 중 익숙한 구두를 꺼내신고 거울 속 내 모습에 주문을 외운다.

'들키지 말자. 절대 티 내지 말자!'

완벽하게 주차해 놓은 운전 실력에 스스로 감격하며 차에 오른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꽤나 서글프다.
이미 그리움은 산처럼 커졌고, 기대감은 하늘만큼 높지만 그에게 가는 길은 끝끝내 닿을 수 없어 돌아오지 않는 소리 없는 메아리만 간지럼 태운다.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 그에게로 가던 발걸음이 이제는 빠른 걸음이 되어 이렇게 쉼 없이 그를 향하고 있다. 그를 향한 마음에 가속도가 붙은 듯.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지만 그는 나에게 오지 않을 걸 알지만 오늘도 간다. 대책 없이 가고 있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고 어쩌면 안쓰러운 짝사랑의 비에.

"잘 지내셨어요?"

그의 평범한 인사 한마디에 나의 모든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고, 나의 입은 나도 모르게 반달을 그리고 웃는다.
하지만 나도 분명하게도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영원히 마주할 일이 없는, 나와는 닿을 수 없는 존재. 결코 현실이 되지 않을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슬픈 일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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