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은 언제나 돌아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구태여 바라지 않아도 계절은 늘 돌아옵니다.
꽃은 저마다 그 계절에 피어나고요.
당연히 찾아오는 것들이죠.
너무 애쓰지 말아요.
애쓰지 않아도 당신의 계절은 반드시 돌아올 거니까요.
사계에 내 마음 듬뿍 싣고, 나 당신에게로 갑니다.
그 마음, 당신이 모르시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나의 마음이 당신에게로 흘러가는 것은,
계절이 돌아오듯 당연한 이치입니다.
#언어유희가 난무했지만 괜찮았어요. 당신이 있기에,
언제부턴가, 모르는 이들 앞에서 잔뜩 긴장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어졌다. 마치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하려나... 어린 날, 학교에서 착한 사람이 되어라 가르침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착한 자들은 이용만 당할 뿐이다. 나는 그 이용을 많이 당한 쪽이었고, 해서 나의 약점은 철저히 감추려 한다. 그럼에도 태어나기를 그렇게 생겨먹어, 예측 못할 상황에서는 늘 잔뜩 움츠러든다.
나는 화장이라는 가면을 쓰고, 입술에는 어울리지 않는 붉은색 컬러로 무서움을 숨긴 채, 회식 겸 회의장소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게 일제히 눈길이 쏠렸다.
"어~ 어서 와. 멀리 온다고 욕봤지?"
"아닙니다"
모임에 자주 나가지 않았기에, 안면이 있는 인물보다는 처음 보는 인물들이 많았고, 다소 긴장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는 찰나,
"여기 앉으세요^^"
낯선 자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어디에도 내가 편한 자리는 없어 보였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자, 올 사람들은 다 온 거 같은데 우리끼리 인사할까요?"
"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짧게 본인 소개를 했다.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제작 관리자, 유통사, 마케터, 서평단 운영자, 작가들... 한 권의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일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함께 작업하기로 한 작가, ***입니다"
그렇다. 나는 출판사의 간곡한 부탁에 공동 작업을 맡기로 했다. 기획 의도 자체부터 마음에 들지 않다만, 힘이 없는 작가이기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할 수밖에...
다들 길게 본인 소개를 했지만, 나는 짧게 소개를 끝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방송으로 볼 때 보다 훨씬 앳되보입니다? 혹시 나이가....??"
"아.. 저 올해 서른아홉입니다"
그렇게 함께 작업하며 종종 연락을 주고받아야 할 그들과 공적인 이야기와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낙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 부제가 오래 남아요"
"그런가요?"
"내가 쓰는 사랑과는 성질이 달라, 이질적이에요"
"사랑의 밝음 이면에는 분명, 어둠이 존재하니까요. 나는 그 부분에 조금 치우쳐 글을 쓰는 거죠^^"
"발라드 부르는 사람은 특유의 얼굴에 슬픔과 우울이 있어요. 작가님은 얼굴에 그런 그림자 없이 밝아요. 슬픔과 어울리 않는데..."
"공동작업할 때면 우리 꼭 만나네요. 우연이라기엔 자꾸 마주치네요^^"
"운명이라기엔 그 틈이 너무 긴 거 아닌가요? 1년에 한 번은 보긴 보나요?^^"
"하지만, 결국 또 이렇게 만났잖아요"
"작가님은 여자 꼬시려고 글 쓴다는 풍문이 사실인 거죠??"
"정확히는 선혜작가님이요^^"
"제가 만만한가요?"
"작가님은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건드려요"
"제가요?"
"작가님은 말없이도, 마음이 보이거든요"
"저는 달콤한 말을 하는 자가 싫어요..^^"
"작가님은 글 왜 쓰시나요?"
"잊으려고요. 그립고, 아픈 것들을 다 잊으려고요"
"어?? 나랑 같은 이유네요^^"
"작가님은 밝은 글 쓰시잖아요. 나는요, 슬픈 사랑을 쓰니까... 쓰면 쓸수록 마음이 자꾸 남아서, 그 마음을 어디다 놓을 데가 없어서 그래서 글을 써요"
"작가님은 천상 작가님이시네요^^ 우리 짠할래요?"
"네. 작가님 글에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쓸게요^^"
"^^"
작가님과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허나, 공적인 업무에서만 만났고, 그마저도 끝이 흐지부지 되어 성사된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내 생일, 비 오는 날, 보름, 크리스마스, 새해, 연말 등에 카톡을 보내며 내게 관심을 보였고, 나는 한결같이 읽씹을 유지했다.
"낙담사, 잘 보고 있어요^^"
"낙담사요??"
"낙담 없는 사랑, 엽편소설이요^^"
"아... 요즘 제 연재소설보다 손바닥소설을 더 찾더라고요ㅎ"
"그 카페 올려진 건 해결했어요?"
"출판사에서 처리해 줬어요^^"
"진짜 실화는 아니죠?"
"네 ㅎㅎ 당연하죠. 제가 맨날 동화 같은 슬픈 이야기, 예쁜 이야기만 쓰다가 현실적인 화법을 그것도 독백으로 써서, 실화냐고 묻는 거 같아요. 실화 일리가 있나요...ㅋㅋㅋ"
"카페에 올라간 글은 경험담이던데...?"
"편집장님, 제가 아직 20대인 줄 아시죠? 저 곧 마흔이에요. 그런 경험은 얼마든지 글로 쓸 수 있죠^^"
얼마 전, 내 sns 수익이 하루아침에 엄청나게 발생했다. 그 이유는 남자 커뮤니티에 내가 쓴 글과 사진이 캡처해서 올라와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누군가 올린 탓이었다.
<나의 페티시는 이런 작가와 차에서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썅..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돈을 들여, 카페에 글을 내렸고 소설임을 명시해 주고 일단락이 되었다. 그 덕분 나는 돈을 벌고자 했던 글이 아니었는데도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렇게 돈이 되는 글을 작정하고 쓸 때는 벌리지 않던 돈이 말이다.
댓글에는 작가가 고운 말과 예쁜 말만 할 것이라는 판타지가 있는 듯했고, 나는 조소했다. 사투리 쓰며, 욕도 종종 쓰는 작가임을 그들은 결코 알 길이 없을 테니까..
나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페티시가 되어있었고, 남편은 길길이 날뛰었다...
핸드크림을 손등에 짜서, 꼼꼼히 바르고 있었다.
"향이 좋네요. 나도 바르고 싶어요^^"
"아.. 네.."
나는 편집장 손등에 손크림을 짜주었다.
"내 손에서 작가님 향이 나는 듯해요^ㅡ^"
"풉 ㅋㅋ 그게 뭐가 그리 좋다고..."
편집장은 손냄새를 킁킁 맡으며 웃었고, 나는 그저 무해하게 웃었다. 대충 공적인 이야기와 일정에 관한 공지한 바를 듣고, 곧장 회식 자리로 옮겼다.
"콜라 많이 마시면 뼈 삭습니다^^"
연신 콜라만 주야장천 마시는 내게 물었고, 술을 못한다 말해주었다. 그마저도 화장실 가야 함에 있어, 마음껏 마실 수는 없었다. 맥주컵에 소주를 잔뜩 부어 마시는 사람들 속에 나는 콜라만 홀짝일 뿐...
그럼에도 출판을 위해 건배사는 해야 한다며 기어이 술을 권했고, 나는 또 거절하지 못하고 소주잔에 잔을 채웠다.
석 잔 마셨으려나.. 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고 마셨던 탓일까 온통 세상이 구슬피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술주정을 할 수 없는 노릇, 나는 외투와 가방을 챙겨 나왔다.
"저, 잠시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 내 몸에 있던 알코올이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크게 숨을 한번 고르고, 편의점으로 천천히 걷던 중이었다. 폴라포 하나 먹고 들어가서, 인사하고 집에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같이 가요, 작가님!"
편집장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빠른 걸음으로 내게 오고 있었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뇨. 그냥 술도 깰 겸 아이스크림 사 먹으려고요^^"
"치사하게 혼자만요?^^"
"가요, 편집장님도 사드릴게요~^^"
"좋습니다! 안 추우세요?"
그렇다. 조금은 추웠다. 날씨가 풀렸다지만, 아직은 겨울이었다. 편집장은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 내 목에 감아주었다. 그 행동에 나는 누군가를 떠올렸고, 기어이 울지 않으려 꾹 참고 있던 내 눈은 눈물이 차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취하면 울어요"
"그 몇 잔 마시고??"
"네. 많이 취하진 않았어요. 그냥 조금 감정이 슬플 뿐이에요"
그는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눈물이 차오르는 덕에 땅이 뿌옇게 보였고, 구두 신고 걷는 나는 자꾸 삐걱거렸다.
그가 내 어깨를 붙잡았고 나는 화들짝 놀랬다. 놀라는 나와 눈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안심하세요. 부축입니다"
"괜찮아요. 취한 건 아니에요. 시력이 나빠서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작가님 눈이 참 예쁘시네요^^"
"^^;;;;"
"원래 많이 울면 눈동자도 예뻐지나요??^^"
"너무... 오글거려요ㅡㅡ"
"그죠 ㅋㅋㅋㅋㅋㅋ 저도 민망하네요"
"^^"
나는 폴라포를, 그는 더위사냥을 손에 쥐고 편의점을 나섰다.
"날도 추운데, 제 차에서 먹고 갈까요?"
솔깃한 제안이었다. 폴라포를 잡고 있는 손끝이 시려, 아프기 시작했으니까..
"아뇨. 추울 때 먹어야 제맛이에요. 아이스크림은^^"
"바로 요 앞에 있는데"
"아니에요..^^"
불필요한 과한 친절은 늘 조심해야 한다. 득과 실이 분명치 않는 관계에서 더욱더...

#약과 보고 그쪽 생각 했어요.
현관 문고리, 검은 봉지에 담긴 약과가 있었다.
누가 걸어두었는지는 단번에 알았다. 달달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통에 먹지 않을 수가 없었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다. 달콤하고 달달한 것이 극락이었다. 이에 붙은 쫜득한 식감... 감사하고 감사했다.
"약과, 맛있게 잘 먹었어요^^"
"맛있드죠??"
"네, 완전요!^^"
"산거예요?"
"그럼 오다 주웠겠어요?"
"그 말이 아니잖아요ㅡㅡ"
"약과 보고 그쪽 생각했어요"
"제가 약과를 좀 좋아해야죠??^^;;"
"약과를 보고 지나칠 수 없었어요"
"얼마예요? 송금해 드릴게요"
"ㅡㅡ"
어색한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나는 장난처럼 넘겨보려 했지만, 그는 한사코 그렇게 넘어가지 않았다.
"담배는 언제 배울 거예요?"
"당분간 보류해요"
"왜요?"
"지금은 글이 막 잘 써지러는 타이밍이거든요"
"변덕쟁이.."
그를 이용하고자 했으나..
이용하기에 지금이 너무도 완벽하나,
이용하기를 멈추기로 했다.
당분간 기나긴 겨울이 봄인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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