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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55 선택적 다정도 다정에 포함인가요


설연휴 때의 일이었다.
나에게는 열 살 차이는 삼촌이 한 명 있는데, 나와는 꽤 친하다.
어린 엄마 대신 외할머니 손에 길러질 때 함께 자라서 인지, 외삼촌과 조카 사이보다는 남매로 불릴 만큼 가깝다. 멀리 사는 삼촌은 볼일이 있어 진주에 들릴 때마다 꼭 나를 보고 갈 만큼 가깝지만, 가깝게 지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한 명이 있다.  바로 남편이다. 남편과 삼촌 말로는 처음부터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삼촌은, 남편이 이유 없이 그냥 싫다고 했다. 내 남편이라 그냥 싫다고... 반면에 남편은, 삼촌이 기생오래비처럼 잘생긴 것도, 본인이 잘 생긴 걸 아는 것도, 나와 잘 지내는 것도 죄다 싫다고 했다. 서로 버젓이 호칭이 존재한다. 남편은 처외삼촌이라 불러야 하며, 삼촌은 내 남편을 *서방이라 불러야 하지만, 그 둘은 단 한 번도 제대로 호칭으로 부른 적이 없다. 이번 명절에는 삼촌네 가족들이 다 내려왔고, 호텔에서 묵는 것보다 딸이 둘이 있으니,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숙모는 흔쾌히 집에서 묵어도 된다고 한 내가 고마웠던 모양이다.



작은 설날 아침, 삼촌네가 우리 집으로 왔다. 오랜만에 숙모를 보던 터라 낯설었지만.. 반갑게 맞았다. 숙모가 아이들 먹을 아이스크림과 과일 그리고 잠옷을 샀다며 내게 주었다.

"선혜야, 어떤 게 더 너 취향이야?"
"이거요..(하늘색)"
"것 봐, 선혜는 부드럽고 얇은 거 좋아한다니까"
"맞아요^^;;"

삼촌은 자기가 고른 잠옷을 내가 선택하여 으쓱했고, 숙모는 자기가 고른 잠옷이 레이스도 있고 이쁘지 않냐고 물었다.
입어보라 했지만, 세탁을 하지 않았기에 입을 수 없었고 곧바로 세탁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명절이  끝나고 우리들의 명절이 시작되었다. 여동생네와 외삼촌네 남동생네 그리고 삼촌이 진주 왔다고 삼촌을 보러 온다는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뒤풀이 겸 한잔 하기로 했다.

저녁 8시 50분이 되어, 우리 아이들은 잘 시간이기에 샤워를 시키고 나도 샤워를 하고 나왔다. 샤워 후 삼촌이 사준 하늘색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아이들을 재웠다. 10분이면 자는 아이들은 놀기가 좋아 30분 만에 잠이 들었고, 나는 그제야 거실로 나갔다. 한참 알코올을 마시며 포커를 치고 있었고, 살금살금 나오는 내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야...!!!"
"????"

삼촌과 남편이 내게 빠르게 왔고.. 나는 잔뜩 화난 남편의 얼굴을 보고 눈을 감아버렸다.

"넌..  아직도 속옷을 안 입고 다니면 어쩌냐..."

삼촌의 말에 남편은 나를 돌려세웠고, 그대로 다시 큰방으로 밀어 넣었다.

"속옷 입고 나와"

분명히 샤워하고 입을 땐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거실의 밝은 조명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던 모양이었다.

"선혜야, 너네 삼촌이 이렇게 빠른 사람인지 숙모는 여태 몰랐다?"
"^^;; 집에선 안 빨라요?"
"아~ 소파랑 한 몸이야. 숙모가 볼 땐 너네 삼촌이 조카들 중에 너를 제일 예뻐하는 거 같아. 호호^^"

우리 집에서 머물게 해 준 숙모의 입바른 인사치레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 소리가 싫었던 모양이다.

"그렇죠? 숙모님이 보시기에도 그렇죠?"
"**이한테는 선혜가 첫 조카니깐. 첫 조카는 다르잖아"

삼촌 친구가 거들었고,

"그래, 우리 맨날 당구 치러 갈 때 선혜 달고 다녔잖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 뒤에 태워서 참 놀러 많이 다녔는데ㅋㅋ"
"어어ㅋㅋㅋ 그때 선혜 진짜 예뻤는데"
"압.. 지금은 안이뿌나??"
"니도 나이를 먹으니까..."
"이 씨.... 다들 각자 집에 돌아가세요"
"아이다. 니가 제일 이쁘다"
"그래, 절세미녀다"

농담들이 오고 갔으며 시간이 늦어, 다들 돌아갔다.
삼촌네는 뒷날 아침 올라가기에 우리 집에서 하루 더 있기로 했다. 남편은 먼저 씻으러 들어갔고, 나와 숙모는 거실을 치우고 있었다. 삼촌이 거들며 물었다.

"선혜야, 너네 서방이 너한테 잘해?"
"응^^"
"너한테 잘 못하면 삼촌한테 얘기해"
"삼촌이나 숙모한테 잘해ㅡㅡ"
"그래!! 나한테나 잘해봐라"

샤워를 마친 남편이 나왔고, 우리가 들어가야 씻을 거 같아 남편과 인사를 했다.

"숙모 주무세요~~ 삼촌 잘 자^^"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래, 너네도 좋은 꿈 꿔"

나와 남편은 큰방에 들어갔고, 남편이 내게 물었다.

"다 큰 조카한테 잠옷 사주는 삼촌, 이상하지 않아?"
"뭐가.. 전에 이야기했잖아. 삼촌한테 난 아픈 손가락이야. 어렸을 때부터 동생처럼 컸고, 또 나쁜 일이 있을 때도 삼촌 덕을 봤었어. 그리고 삼총이랑 장난치다가 내가 화상도 입었거든.  여자한테는 흉터는 흠이라.. 삼촌은 나한테 항상 미안한지 잘해주더라고.. 그래도 오빠가 싫다고 해서 진주와도 용건 없으면 잘 안 만나잖아"

남편은 적당히 술에 취했고, 우리는 아이들 옆에 조용히 누웠다.
삼촌네가 집에 있음에도 남편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고, 잠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남편의 손을 나는 잡아버렸다.

"오빠, 얘들 깨.. "

내 말은 들었을까.. 내 허리를 잡아 남편이 자기 몸 쪽으로 나를 바짝 당겨, 하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고 있어. 나 핫초코 마시고 올게"

그렇게 남편의 대답을 듣지 않고서 나는 큰방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잠시 냉장고에 기대어 있었다. 아침에 무슨 국을 끓일까 하며 말이다.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고, 삼촌이었다.

"삼촌 왜 깼어? 추워? 보일러 더 높여줄까?"
"아니, 물 마시려고"
"아 응! 잠시만"

삼촌한테 물을 줬고 삼촌은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넌 안 자고 뭐 해?"
"잠이 안 와서"
"요즘에도 못 자?"
"뭐 늘 똑같지 뭐^^"
"뭐 하려고??"
"아.. 따뜻한 핫초코 한잔 마실라고. 삼촌도 줄까?"
"너 안 귀찮으면"
"귀찮을게 뭐 있어^^"

삼촌과 나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딱히 할 말이 없기에, 나는 시집을 집어 들었고, 펼쳤다.

"가디건이라도 걸치고 나오지"
"안 추운데??..."

잘 거라고 속옷을 벗고 나온 걸 깜빡하고 있었다. 나는 아차 싶었고 손으로 가렸다.

"니가 볼 게 뭐 있다고...."
"이 씨ㅡㅡ"
"핫초코 말고 몸에 좋은 것 좀 챙겨 먹어"
"나 잘 챙겨 먹는데?"
"너무 말랐어.. 애 키우는 엄마가 그게 뭐야..."
"삼촌이나 잘 챙겨 먹어.. 얼굴에 좀 단디 바르고. 얼굴이 왜 그리 상했어 ㅠㅠ 삼촌 옛날에는 진짜 잘생겼었는데 ㅋㅋㅋ"
"요새 술을 마셔서 그런가"
"왜 마시는데? 삼촌, 힘든 일 있어?"
"아니.. 그냥 마시는 거지 뭐"
"왜에? 말해봐 봐 내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

삼촌은 일어나서 걸려있는 앞치마를 내게 건넸다.

"응? 배고파? 뭐 해줄까?"
"아니, 입고 있으라고"
"아... 응응^^;;;"
"아침에 밥 차리지 마. 나가면서 브런치 사 먹고 올라가면 돼"
"뭐래, 아침도 안 먹고 갈라고?"
"너 시댁에서 하루 종일 뒤치다꺼리했을 텐데..."
"삼촌 아니더라도 아침은 먹어야 해^^ 상다리 휘게 차려주진 않을 거니까, 먹고 가. 빈 입으로 가는 것도 그렇다ㅡㅡ"
"그럼 나 깨워. 도와줄게"
"에~? 내가 아는 삼촌 맞나? 이렇게 다정하진 않았는데?"
"까분다"
"치.. 삼촌 들어가서 자. 내일 삼촌이 운전하고 가야 되잖아"
"잠이 안 와"
"왜? 잠자리가 불편해?"
"편할 리가 있니"
"그럼 거실에서 잘래? 저 위에서 자면 폭신하고 좋아. 이불 갖다 줄게"
"아니야. 대충 자지 뭐"
"왜에 ㅠ 무슨 일 있잖아 뭔데??"
"너 신랑한테 가서 자. 오늘도 욕봤잖아"
"진짜 들어간다?"
"어~ 들어가서 니도 좀 쉬라"
"필요한 거 있으면 나 불러. 나 책 보고 있을 테니까"

삼촌이 일어나, 내 시집을 뺏어 들어갔다.

"그냥 좀 자. 그 앞치마도 벗어두고"
"왜에? 나 안쓰러워 보여???"
"니가 안쓰러울게 뭐 있어"
"알았어. 삼촌 잘 자~~~ 아침에 삼촌 좋아하는 샤브샤브 해줄게. 냉장고에 알배추도 있고 야채도 있고 버섯 종류별로 선물 들어온 것도 있더라..."
"거참 아줌마 되더니 잔소리가 심해졌어. 이만 들어가세요~~"

삼촌이 내 어깨를 잡고 큰 방 앞까지 밀었고, 두르고 있던 앞치마도 벗겨냈다.

"잠 안 오면 너네 남편한테 머리 좀 만져달라 해"
"너네 남편 아니고, *서방이라니까!!"
"그래, 좋은 꿈 꾸고. 잘 자라"
"응 삼촌도~~"


그렇게 뒷날 아침 삼촌네는 가고, 기나긴 설 연휴는 끝이 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편은 뾰루퉁했고, 나는 이유를 물었다.
한 번에 묻는 말에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어르고 달래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나이차이 얼마 안나는 이모나 누나 있으면 좋겠다"

고작 이런 이유였다는 사실이 개빡쳤지만.... 참아야 했다. 설부터 싸우면 일 년 내내 싸울 수도 있기에 말이다.

"오빠는 예쁘고, 귀엽고, 착한 아내가 여기 있잖아^^"

꽃받침을 하며 빙그레 웃었고, 남편도 그제야 웃었다.



뒷날, 설연휴 때 고생했다며 남편이 내장탕 사준다고 나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둘이서만 하는 점심이었다. 회사 점심시간에 맞춰 나갔고,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고 말았다.
남편의 손에는 붉은 보라색 튤립이, 내 손에는 분홍색 국화꽃이 들려있었기에 말이다.
꽃집을 지나치지 못하는 나와 그걸 알고 있는 남편의 우연이 겹친 찰나였다. 그 우연은 한순간에 낭만적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