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워냈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담뱃갑을 만지작 거리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럴수록 그의 낯빛은 더 슬픔으로 물들어가는데, 그는 아마 모르는 듯싶었다. 안쓰러워 보였다. 이럴 거면서 그는 왜 이야기해 준다고 말했을까...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눈썹산이 없는 매끈하고 단정한 눈썹이 연신 움찔거렸고,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전에 말했지만, 그 여자는 죽었어요.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고요. 내가 운전을 했거든요..."
그의 지난 사랑이야기에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표정은 그러하지 못했고, 그 차분한 목소리 하나가 마음을 시리게 했다.
사고사. 결말은 그러했다.
그가 운전하는 차가 갑작스레 사고가 났고, 그녀는 죽었다.
그렇게 그 둘은 현생에서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 가히 슬픈 끝맺음이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줄거리나 과정만을 빠르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때의 감정과 생각까지 내게 세세히 알려주었다. 아마 그건 날 위한 그의 배려였지 싶다. 내가 작가이므로..
가끔, 그는 이야기를 멈추고 머그컵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가볍게 웃기도 했다.
다정한 배려가 퍽 고마웠다. 그가 들려주는 에피소드에 발을 동동 구르며 웃기도 하고,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도 하고, 민망해서 붉어진 얼굴을 손부채질로 식히기도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그는 빙그레 웃기도 하고, 놀려대기도 했다.
그러나 울지 않으려는 나의 끈질긴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눈물이 터지자, 멈춰지지 않았다.
그동안 그가 '보호'라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를 한 번에 이해되고 말았다.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안쓰러웠고 안타까웠으며, 불쌍하고 처절해 보였다.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잠시 고민하게 되었다.
이건 육체적인 것과는 다른 마음이었다. 조용히 어린 그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다 지나갔다고, 잘 견뎠다고, 괜찮다고 토닥토닥 등을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내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마음이 힘들 때 과한 친절과 넘치는 배려는 오히려 오해를 부르기에.. 나는 그저 그를 대신해 속 시원하게 우는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만 좀 울어요.. 사람들이 내가 울린 줄 알겠어요.."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요"
가깝게 마주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가 손을 뻗었다. 눈물을 닦아주려는 심산인 듯했다. 나는 소파에 등을 살포시 기대어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는 다시 팔을 접어 티슈를 내게 건넸다.
"참나... 그만할까요? 이야기는 다 끝났어요"
"아뇨. 더 해줘요. 아직 다 =&$>÷>$&'xj"
자꾸만 우는 내게 장난스러운 협박을 했고, 나는 조를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요? 울지 말고 말해요.."
눈물은 쉼 없이 흘러내렸고, 그가 이번엔 다정히 물었다.
그러나 우는 사람에게 따뜻한 목소리는 더 울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뭐가 서러운 건지 나는 진정하지 못했고,
"아직 이야기 안 마쳤잖아요"
"자꾸 우니까.. 어떻게 계속 이어요ㅡㅡ"
장난스러운 협박에도, 다정한 목소리에도 눈물을 그치지 않아 그가 뾰로통해진 것일까.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어 멀어졌다.
#등원길
"사진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아직 가지고 있어요??? 아기 엄마가 알면 서운할 만한 데요?"
"죽어서 그런지.. 별말 안 하더라고요"
"아...... 그럼 보여주세요^^"
"잠시만요"
잠시 뒤 내게 휴대폰 화면을 돌려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여자보다 그의 어렸을 때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이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여자는 참 예뻤다. 같은 여자지만, 참하고 예쁜 얼굴이었다. 여자를 어깨를 감싸 안은 그의 입에는 불이 붙이지 않는 담배가 물려있었고, 그는 담배가 물려있음에도 웃음이 비집고 나와 내게 전해졌다. 여자는 예쁜 얼굴을 더 예뻐 보이게 생긋 웃으며 그에게 머리를 기대어 카메라를 한 손으로 셀카로 찍은 모습이었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너무 행복한 모습이 담겨있네요^^"
"어디서 익숙하지 않아요??"
"아기엄마랑은 다른 생김새인데요?"
"아니, 그쪽이요"
"에?? 그쪽이 나 되게 이쁘게 보나 봐요?"
"보조개 들어가게 웃을 때 좀 많이 닮았어요"
"이것 봐 이것 봐! 평소에 나 엄청 예쁘게 보고 있었구먼???"
"얼마 전에 사진 찾아보다가 놀랬어요"
"에이~ 나랑은 완전히 다른데요?? 닮은 구석이 전혀 없는데?"
"그.. 웃을 때 찡그러지는 얼굴이랑 입모양, 보조개가 닮았어요"
십여 년이 지난 사진이기에 화질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여자는 꽤나 예쁜 얼굴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쳤다면 눈길이 가는, 예쁘장하게 생긴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이었다. 평범하게 생긴 나와는 달랐다. 그럼에도 그는 자꾸 나와 닮았다며 열변을 토로했고, 그 여자가 하는 행동이 나와도 많이 겹친다고 했다.
"그 여자도 겁이 많았나 보죠 뭐..."
"네 굉장히요. 그런 쫄보를 혼자 보냈어요"
"...."
그의 한마디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옛다~ 내가 인심 썼다!! 나 예쁘다고 합시다^^"
장난스러운 한마디에 그는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 눈꼬리는 휘어지게 웃었다.
"나 하나만 물아봐도 돼요?"
"그 질문하지 말고 그냥 물어보세요...ㅡㅡ"
"서로 부르는 호칭이나 애칭 있었어요?"
"평소에는 서로 이름 불렀어요.. 그러다 싸우거나 삐지면 나는 '누나'라고 불렀고, **는 내 이름을 성까지 넣어서 불렀어요"
"유치했네요^^"
"뭐, 별수 있나요. 기껏해야 20대인데..^^"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문장이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었다. '뭐, 별수 있나'는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곱씹으며 걸었다.
"나도 뭐 하나 물어봅시다. 갑자기 대화 중에 멍 때릴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아.. 별 생각 안 해요^^"
"그 별생각 없는 생각 좀 들어봅시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그쪽이 말해서 그냥 되씹고 있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요?"
"뭐, 별수 있나요.. 이 말이요"
"그 말을 좋아하는 구만?"
"ㅋㅋㅋ 표정이 왜 그래요"
그는 약점이라도 잡은 듯... 아니, 재미있는 걸 발견한 표정으로 웃으며 걸었다.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을래요? 뭐, 별수 있나요. 날이 따뜻한데??^^"
그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만들었고, 나는 따라 웃었다.
"나 이시려요..."
"그럼 빵또아 먹으면 되죠"
"살쪄요"
"에이, 아이스크림은 살 안 찐다면서요"
"나, 담배 진짜 배우고 싶어요"
"아.. 또 시작이다. 진짜 왜 그래요. 몸에도 나쁜 걸..."
"딱 한 갑만 펴보고 싶어요. 미련이 안 남게"
"담배에 무슨 미련이에요?"
"한 번은 켁켁 거리지 않고, 연기를 삼켜내고 싶어서요..."
"진짜 엉뚱하다니깐.. 왜 하필 담배에 꽂혀가지고. 그냥 피고 싶을 때 대리만족은 안 되겠어요?"
"네"
"고집도.. 둘째 황소고집이 그쪽을 닮아서 그렇다니깐요"
"이 씨..."
"이봐이봐, 성격도 괴팍하고.."
"안 알려줘도 이제 내가 피울 수 있어요! 그때 배운 것처럼 하면 되지 뭐"
"진짜 피우게요?"
"여태 내가 하는 말은 귀꾸녕으로 안 듣고 뭘로 들은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았어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쪽 눈 시뻘게져서 켁켁 거릴 때...."
"거릴 때? 뭐요?"
"아니에요^^ 담배 가르쳐드릴게요. 대신 행님한테 허락받고 와요. 괜히 내가 나쁜 거 알려준 사람으로 몰리긴 싫어요"
"네^^"
"그렇게 웃지 마요. 정들어요"
웃는 얼굴을 일순간에 바꿨다. 최대한 눈을 세모나게 뜨고 눈을 가늘게 떠서 그를 째려보는 표정으로... 그런 나의 얼굴을 보고선 그는 세상 좋은 웃음을 흘렸다. 무해했다. 그는 내게 무해하다.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충분히 짧은 글이 만들어질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시작하기 어려운 걸까.
보여주기 부담스러운 것일까.
그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 두려운 탓일까.
슬픈 이야기를 다듬어 그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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