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보고 있는 저 예쁜 달이
당신에게도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같은 밤하늘을 공유하고 싶었고,
같은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풉... 나요, 당신을 좋아하다가
한 해가 다 갔어요.
#단언컨대. 지금 이 감정, 사랑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어요.
창가로 스며드는 짙은 새벽 냄새와 메마른 어둠.
그리고 밤하늘 속 무수히 박힌 반짝임이 사무치게 애틋해서...
당신이 그리워서 나는 또 쓸 수밖에요.. 어쩔 수 없잖아요.
"같이 갈래요, 가서 기다리실래요?"
"먼저 가있을게요^^"
"그래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어째서 같이 함께 해서는 안될 '그' 뿐일까.. 왜 당신이어야만 하는가.. 애당초 피지도 못하고 져버릴 사랑이면서.. 왜..
엘리베이터를 등지고 그와 마주 섰다. 그는 옛날 사람이면서 쓸데없이 키가 컸고, 나는 쓸데없이 키가 작았다. 그가 알아버렸다. 키가 콤플렉스라는 사실을...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작가님 같은 스타일'이랬으니까ㅎㅎㅎ
"조금 있다 봬요^^"
"응!"
어찌나 신이 나 던 지.. 사색은 나에게 결코 새로운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산보하듯 풀어놓은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그저 걸음을 늦추게 했을 뿐이다. 나의 사색은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기에...
내딛는 걸음마다 낯선 이들이 붐볐다. 하필이면 점심시간이었고, 직장인들이 맞은편에서 내 쪽으로 자꾸만 자꾸만 걸어왔다. 무서웠다. 하필이면 빨리 도착하고자 무서운 다리를 건너고 있었기에.. 고민을 해야 했다. 다시 돌아가 익숙한 다리를 건널 것인지..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얼마큼 왔는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순간, 강 한가운데 있다는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멈춰서 있으니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로 인해 다리가 흔들렸고, 나는 꽤 무서웠다. 무서움을 덜어내고자 버즈를 꺼내 귀에 꽂았다. '최성수 남남' 노래가 흘러들어왔지만, 내 다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이 꽤나 내게는 흔했지만, 그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리 중앙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손은 자꾸만 떨렸고, 구두를 신은 발은 제대로 서있기에 버거웠다. 들고 있던 화일은 계속 손에서 미끄러졌다 줍기를 반복했고, 쥐고 있던 목도리도 마찬가지였다. 안경을 쓰지 않았던 터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인지도 신경 쓰였다. 그에게 들키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냈다. 불안과 공포를 평생 내게서 떨쳐낼 수 없다면,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쯤은 이미 터득한 바였으니까.. 그에게만큼은 나의 겁먹은 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눈을.. 눈물을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눈을 그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도움을 받을 내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괜한 자존심이었고, 똥고집이었다. 그럼에도 싫은 건 싫은 걸...?
휘청거리는 다리와 떨리는 손부터 진정해야 했다. 화일 위에 목도리를 고이 올려두고, 두 손으로 무릎에 올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다 발아래 좁은 틈 사이로 강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바닥재가 나무 같은 소재이기에 그 작은 틈사이로 강이 보였다. 삽시간에 불안을 낮추기 위해 한 행동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았다.
"괜찮으세요?"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고, 나는 버즈를 귀에서 뺐다.
"네.. 괜찮아요"
행인은 괜찮다고 대답하는 내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를 등지고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빠르게 그를 붙잡았다.
"도와... 주세요....ㅠㅠ"
행인은 내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아보았고, 내게 왔다. 발걸음이 꽤 씩씩하고 듬직해 보였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불안장애가 있어요. 무서워서 꼼짝을 못 하겠어요.."
"아아.. 그럴 수 있죠^^ 부축해 드릴까요? 업어드릴까요? 일단, 어디로 가세요?"
나는 말없이 그와 만나기로 한 방향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같은 방향이네요^^ 부축을 해드릴까요. 아니면 업어드릴까요?"
"제가 좀 잡고 가도 돼요?"
"당연하죠^^"
그 행인은 바닥에 내려놓은 목도리와 화일을 주워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작게 인사했고, 행인은 본인 바지에 손바닥을 닦았다. 그러고선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을 생각으로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행인이 보여준 호의에 민망하지 않도록 나는 손을 잡았다.
"걸으실 수 있겠어요?"
"네.. 좀 세게 잡아도 될까요?"
"네^^"
손에 힘을 주어 나의 온 신경을 손에 몰두했다. 불안과 공포에서 도망치려는 발버둥이었다.
"아파요?"
"아니요^^ 전혀요. 더 세게 잡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행인의 친절한 배려에 감사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그렇게 천천히 그를 향해 내디뎠다.
"무서워서 떠시는 거죠?"
"네.."
"아직도 무서워요?"
"네"
"음...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점심 약속이 있어서요^^"
"누구랑요?"
"좋아하는 사람이요^^"
"좋으시겠어요. 메뉴는 뭔가요?^^"
"샐러드 먹으러 가요"
"아^^ 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요? 서른여덟입니다"
"에???? 서른요?"
"네 서.른 여덟"
"나이가 많으시네요? 아참, 저는 스물다섯입니다"
"아아... 젊으시네요"
행인은 내가 무섭다고 할 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말을 걸어주었다. 덕분에 다리를 잘 건너올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네^^"
곧장 약속장소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손을 씻고 싶었으므로.. 예민하고 불안해진 탓에 결벽증 또한 수위가 올랐으니까.
양손을 매매 씻고 나서야, 바닥에 내려놓았던 화일을 닦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곳에도 점심시간으로 사람들이 붐볐고, 나는 다시 불안했다. 잔뜩 긴장한 채, 그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보였다.
나의 불안과 강박은 그를 보는 보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예민해진 모든 감각들이 불안에서 벗어났다. 해서, 그가 뭐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연락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던 거 같은데.. 휴대전호를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저 웃음으로 때우며 핑계를 댔다. 그의 등장으로 나의 불안은 저만치 도망가버렸다. 나란히 걷는 걸음에는 구두의 경쾌한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고, 그의 작고 나긋 거리는 말투가 편안함을 재촉해 내게 데려왔다. 분명, 사랑이었다.
"머리 많이 길었네요^^"
머리를 다시 묶을 여유가 없었다. 그제야 그의 머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가히 마이콜과 같았다. 귀여웠다. 동글동글한 이미지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그러나 그에게 귀엽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남자한테 귀엽다는 말은 실례예요' 할 것이 분명하기에.. 그럼에도 그는 퍽 귀여웠다.
"그림 배웠어요?"
"그냥 보고 그리면 다들 이 정도는 그릴 수 있지 않나요? 보고 그린 건데...?"
낙서처럼 그린 내 그림을 보고 그가 말했다. 그림보다 나의 악필이 신경 쓰였고, 그 낙서에 적힌 글들이 그가 보면 본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챌까 봐 걱정스러웠다. 몰랐던 것일까, 배려였을까. 설마 글씨가 엉망이라 읽을 수 조차 없었던 건가ㅜ
"곧 오십이라, 뭘 해야 될지 고민이에요"
"주부 하세요"
'나한테 와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자는 거 좋아한다면서요? 내 옆에서 잠만 자도 좋고요, 백수하셔도 좋아요. 한량이라 해도 좋고요, 딴따라 하셔도 지지할게요. 불량스럽게 깔롱 거려도 동경할 수 있어요. 내게 와요. 나의 주부가 되어주세요. 내가 돈 벌게요^^'
그는 빠르게 식사를 마쳤고,
나는 그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빠르게 먹었지만,
여전히 느림보 식사였다.
"편집장님, 엄청 빠르게 드시네요^^;;"
"네, 천천히 먹어야 하는데..."
"^^"
본인 식사를 마쳤다고, 그렇게 빤히 쳐다볼 줄은 몰랐다. 민망했다. 여태 잘 먹다가 갑자기 예쁜 척을 하고 먹어야 하나, 조신하게 먹어야 하나 고민했고, 예쁜 척하며 먹자 다짐했지만, 어떻게 먹어야 예쁜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으므로...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머물렀고, 나는 마지막 한 숟가락을 싹싹 긁어 입을 크게 벌려 밀어 넣었다. 예쁘게, 조신하게 먹는 건 물 건너갔다.
"마지막에 떨어뜨렸네요^^"
"^^"
볼을 잔뜩 부풀리고 먹는 나를 그는 뭐라 생각했을까. 뭐라 생각하긴, 뚱땡이라고 생각하셨겠지... 오늘도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과는 달리, 먹깨비 같은 모습만 잔뜩 보여주고 말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사랑인척 오해할만한 눈을 하고서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보란 듯이 사랑을 듬뿍 담아 그를 향해 웃었다. 그는 몰랐겠지만, 알았으면 한다. 많이 사랑하고 있는 나의 눈을 알아채주길 바랐다. 입에 샐러드를 왕창 넣어 오물거리는 입으로 무작정 그에게 사랑을 함부로 고백해버리고 싶었다.
'무진장, 당신을 좋아하고 있어요.
단언컨대, 이 지구상에서 내가 당신을 제일 좋아하고 있어요. 그러니 내게 와요. 와주세요'
"에스컬레이터는 탈 수 있어요?"
"네!"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에게는 이상하게 나의 불안과 강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조신하고 참한 여자로 보이고 싶었으니까..
그가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올랐고, 나는 몇 번 망설임 끝에 타이밍을 맞춰 발이 떨어졌다. 그가 뒤를 돌아 나를 보았고, 엉거주춤한 나를 보았다. 나는 엄청 어색하게 웃었고, 사실을 고백했다.
"조금... 무서워요^^ 뉴스에서 보면 에스컬레이터에 옷이 끼여서 일어난 사고들 보여주잖아요^^;;"
나도 모르게 나의 불안을 솔직히 말해버렸고, 그는 내게 웃으며 에스컬레이터에 있는 비상정지버튼이 있는 위치와 사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 다정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고, 불안을 오지 못하게 벽을 높게 쌓아주었다. 괜히 또 욕심이 났다. 그가 내 사람이기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많이 사랑하는 쪽이 그와 함께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자신이 있었다. 어느 누구보다, 이 지구상에서 그를 사랑할 자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들켜서는 안 될 금기 사항이었다. 이런 욕심을, 과한 욕심을 그가 알기라도 한다면... 무서워할지도 모르기에.. 그는 내게 숭고한 사람이었으니까. 나의 불순한 마음들이 그를 다치게 할 순 없었으니까. 나는 또 그에게 말갛게 웃어 보였다. 그 무해한 웃음 뒤에 그를 얼마나 갖고 싶어 하는지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사실이었다..
한층 가까워진 그는 내게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바빴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양 행복에 겨웠다.
그 행복함 속에서도 괜스레 질투가 났다. 그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못난 마음은 어김없이 나를 휘감았다. 정갈한 태도와 가볍고 잔잔한 대화 중에 기어이 말이다. 마르지 않을 불순한 마음은 차창 밖의 따스한 겨울 언저리에 잠잠해졌다. 어쩌면 아직 그를 포기할 수 없는 마음과 그를 떠나는 연습 중인 나를 숨겨두려는 마음의 기만일지도 모른다. 상심은 후회를 남긴다. 그러나 후회는, 그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가능한 성숙의 감정이다. 아직 나는 상실 중이다.
못난 마음은, 나를 끝없이 못나게 만들었다. 말했지만, 늘 나에게 상처를 주는 건, 결코 그가 아니었다. 분명 나 자신이기에..
궁금했다.
다리 위에 멈춰서 떨고 있던 나를, 오도 가도 못하고 잔뜩 겁먹은 내 눈을 보고.. 그는 어떤 반응을 했을지.. 도망가시려나.. 한가득 눈물이 맺힌 눈을 보고서 뒷걸음치시려나.. 아니지, 그는 고운 심성을 가졌으니 도와주시려나.. 도와주신다고 해도 이미 삐뚤어진 마음은 곱게 볼리 없다. 그는 나 말고도 모두에게 해당하는 친절을 베풀 테니까. 기어이, 나를 베고 상처 입히는 건 나 자신이다. 누군가는 행인에게 손을 잡아 오는 그 모습만 보고 길길이 날뛰었을 테고, 누군가는 나를 본인 쪽으로 잡아끌어 안전하다고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나의 낯선 모습에 도망가시겠지..? 그는 내가 일반인들과 같다고 보기에, 불안에 휘말린 나를 버려두고 가시겠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
나의 원래 모습을 본다 해도, 나를 좋아해 주실까.
나의 슬픔들을 알고서, 여전히 나를 좋아해 주실까.

손끝 스치면 온 세상이 작은 나비 날갯짓처럼 아슬하게 떨렸다. 그리움으로 지낸 수많은 밤은, 별빛 같은 속삭임이 되어 내 마음속 가장 부드러운 살결에 고운 흉터로 남아있다. 당당히 두 발로 그에게 달려갈 수 없고, 황홀한 춤을 출 수도 없지만 내 마음에는 여전히 시들지 않는 수줍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그의 눈빛에 내가 온전히 담기던 투명하고도 눈부셨던 지난날.
그 순간들은 강물 위에 가장 아름다운 조약돌처럼 박혀 만질수록 더욱 따스한 빛을 낸다. 사랑, 그 설렘은 사라지지 않는 내 안의 반복되는 영원한 계절이다.
닿은 어깨에 신경이 쓰였지만, 테레비에는 동물들이 난무했다. 내가 수없이 상상했던 이상적인 순간이었다.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영원히 이 시간이 영원으로 남았으면.. 하고 순 엉터리 소원을 빌게 되는 꼴이라니..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다정한 안전지대로 들어간 셈이었다. 단단한 팔과는 대조적인 미지근한 체온, 그는 어깨를 두른 손으로 나와 얼굴을 가깝게 만들었고, 입술을 닿았다. 숨이 일순간 멎었다. 나의 모든 감각들이 별처럼 흩어지기 바빴고, 나는 흩어지는 감각들을 끌어모아 그의 허벅지 위에 살며시 올랐다. 두 팔에 그의 목을 가둔 채 그의 위에 있는 내 모습은 꽤나 익숙해 보였다. 익숙한 모습에 내 몸은 그의 몸을 먼저 기억해 버렸고, 마음보다 먼저 몸이 닿아버렸다. 욕망과 욕정 그 사이에서 나는 크게 휘몰아쳤다. 더는 입술에서만 머물 수 없었다. 그와 내가 닿아있던 배에 틈을 주어 그의 단단함을 쥐었다. 내게 반응하는 단단함이 나를 알아보는 듯, 반가웠다. 내게는 단단함을 속옷에서 구출할 여유 없었다. 그의 상의 위에서 나를 먼저 반기길 바랐으니까. 그의 입에선 숨이 천천히 무너졌고, 나는 그가 내뱉는 날숨을 들숨에 삼켰다. 우린 꽤 박자가 잘 맞는 듯했다. 블라우스 위에 닿는 그의 부드러운 살결과 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블라우스를 내게서 천천히 앗아갔고, 나는 그의 상의를 벗겨내려 했지만 그가 빠르게 벗어냈다. 벗어냄과 동시에 그의 입술에 닿아, 혀와 혀가 얽히고자 애를 썼다. 혀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와 얽혔으면 하는 마음은 철저히 숨기고서...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며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입술을 떼어낼 수 없을 만큼 나는 그의 입술이 좋았다. 애틋한 정서적 교감이었다. 맨살을 가린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를 벗어던지고 우리는 끌어안았다. 결코 뜨겁지 않았으나 미지근함 속에서 그와 나는 결국 또 닿았다. 그와 알몸으로 닿아있는 모든 면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는 숨결마저 황홀했다.
그는 매번 내 의도를 빠르게 알아차렸다. 연륜일까.. 경험일까..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목덜미에 코를 박아, 그를 할짝할짝 핥았다. 고운 살냄새를 목 혈관이 은근히 피어오르게 했다. 뱀파이어가 인간의 목을 무는 이유를 단번에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힘을 주어 힘껏 빨아들이고 싶었다. 아프게 하고 싶었나..? 그의 몸에 상처 새기고 싶었나..? 한 번에 많은 피를 빠르게 빨아먹을 수 있는 목 혈관에 나의 치아를 꽂아 그저 물어버리고 싶었다.
그의 다부진 상의는 내 작은 힘에도 기꺼이 눕힐 수 있었다. 반듯한 그의 가슴을 사랑에 목마른 입술로 수를 놓아 그려나갔다. 나의 혀는 본능적으로 더 여린 곳에 도달하여 핥기를 시작했다. 핥고 핥고 또 핥아도 여린 부위는 달았고, 또 달았다.
혀가 닿아 있는 곳과는 달리 다른 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래로 내려갈 수 밖이 없었다. 아래로, 더 아래로. 그래서 그의 가장 낮은 곳, 다리 사이로 내려갔다. 나는 결국, 그의 발아래서 그를 올려다보며 순종을 함부로 지껄였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저 서로의 최악을 다시 확인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의 낮은 곳에서 올려다본 그는 쳐진 눈꼬리와는 달리 그의 상체는 매우 화가 나있었다. 섹시했다. 늙은이가 별 걸 다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모순이 나를 또 살게 했다. 정확히는 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나를 버리지 못한 쪽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미련이 내일을 살게 했다. 나는 그에게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도망칠 힘이 없었고, 무엇보다 도망치면 내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 분명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내 삶의 증거였고, 나를 구원할 유일한 자였으며, 나를 망가뜨리는 유일한 증인이었다. 나는 고민해봐야 했다. 애초부터 부서질 준비로 그를 사랑한 것일까, 그가 나를 파괴함에 속은 것일까...
답이 나오기 전에, 내 목줄의 끝을 그의 발목 어딘가에 묶어두는 어리석은 자는 기필코 나였다. 질질 끌고 다니기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나를 한없이 기다리게 했다. 기다림은 습관이 되었고, 나는 그의 순한 두더지인 양 굴었다. 애완 두더지! 야생 두더지 말고..
단단함은 내 혀를 밀어내기 바빴고, 나는 그 고삐 풀린 단단함을 어르고 달래어 내 혀에 길들였다. 나에게도 그의 무언가가 길들여져 있기를 바랐으니까. 그런 와중에 그는 흘러내리는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못난 마음들은 그에게서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항상 그렇다. 그의 다정은 조잔한 마음을 더 쪼잔하게 만들었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동경이었다.
그 다정은 계속 이어졌다. 머리는 짧았고, 귀 뒤로 넘겨주는 머리칼은 계속해서 얼굴에 닿았다. 그런 그의 손길과 온기가 너무도 따뜻했다. 나는 그것이면 되는 사람이었다. 그가 줄 수 없다는 그 사랑, 결코 내게 줄 수 없다면 손길과 온기면 족하다고... 그러나 그 말을 전할 수는 없었다. 낙담과 절망하는 눈빛을 감출 수 있을 만큼 연기를 못하니까..
그런 이유에서인지 연약함의 뿌리를 내게 내어주지 않았다. 무방비한 연약함의 시작을 머금고 싶었다. 죄다 슬퍼지기 시작했다.
슬픔 안에서 만나요.
가장 낮은 아래에서 보는 그는 내게 꽤 다정했다. 아래에서 보는 그는 그랬다. 그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단단함을 물고 그를 올려다보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변태로 보는 건 아니겠지?
그 생각이 스치자 나는 얼른 아래에서 올라왔다. 이미 나는 젖었고, 이대로 슬픔 안에서 만나도 좋을 듯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의 입속을 집요히 파고드는 나를 조심히 돌려 눕혔다.
함께 한 시간은 조용히 흔들렸다. 위에 있는 그는 염치없이도 잘생겼다. 미웠다. 그냥 미웠다.
그의 입에서 흘러넘치는 타액을 나는 아래에서 받아먹기 바빴다. 달콤하고 달콤하여 세상이 멸망해 버려도 달달하게 생을 마칠 수 있을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내 손은 그의 단단함을 쥐고 기어이 나의 슬픔에서 만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슬픔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입술이 닿는 모든 피부에는 그의 온기가 오래 머물렀다 사라졌다. 숨이 겹친 자리에는 멈춰 서기도 했다.
"넣고 싶어요"
다음에는 필시 보청기를 장만해드려야 했다... 썅.
가슴을 물고 있는 그의 입술이 아렸다.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가 펼쳐진 느낌이었다. 그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손등은 이미 빠는 힘으로 아팠지만,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그에게 들려줄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몸을 베베 꼬아도 간지러움 참을 수 없었고, 허리는 활처럼 휘어졌다. 그의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마이콜 같은 웨이브는 손가락 틈새도 간지럽히느라 바빴다.
그와 시선이 맞닿았고, 천천히 깊게 슬픔에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아플 것이 또 분명했다.
"내가 위로 갈래요.."
그는 내가 위에 있는 자세를 좋아할까? 그도 역시 내가 아래에 있는 자세를 좋아하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러나 묻질 못했다. 그가 위에 있는 자세를 좋아한다고 해서 나는 양보할 수 없었으니까..
위에서 그와 시선이 맞닿았다. 사랑한다고, 좋아하고 있다고 하마터면 말해버릴 뻔했다. 그와 숨이 겹쳤고, 나는 숨을 참았다. 단단함을 쥐고 내 슬픔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파.."
"아파?"
"아니, 좋아요^^"
나도 모르게 아프다고 말해버렸고, 그는 놓치지 않고 내게 물었다. 그의 단단함이 내 슬픔 속에서 빠르게 적응했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의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위아래로 움직였고 그 자세는 나의 슬픔 안에서 벽을 긁어대고 있었다. 그의 눈은 쉽사리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낮은 소리를 내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나는 내 손등을 더 아프게 빨아대고 있었다. 허리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다 입속에 넣었다. 깊게 빨아들이느라 벌어진 입술 틈 사이로 지독하게 더 낮고 뜨거운 소리는 새어 나왔다.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말이 필요치 않았다.
넘지 말아야 될 선 앞에서 나는 자꾸만 우물쭈물했다. 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불편했고, 부담을 주는 듯 편치 않았다.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당신 없이 사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아파요?"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아파 보였으니까.. 그러나 오해였다.
"아뇨, 좋아요"
눈을 감고 대답하는 그의 속눈썹은 쓸데없고 곱고 길었다. 또 그가 미웠다. 나보다 예쁜 그의 속눈썹이..
그의 손가락으로도 새어나오는 신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의 손을 내 입에서 해방 시켜주었다. 그러곤 다시 손등으로 입을 틀어막아 빨았다.
"소리 내도 괜찮아요"
손목을 잡아 내 손을 입속에서 빼주었다. 쓸데없이 다정한 모습이 또 어찌나 멋있는지... 왜 이렇게 나를 잘 알지? 내가 너무 빤한가?
천박한 마찰음으로 가득 채운 공간에, 나의 슬피 우는 소리까지 더해 그 공간은 너무도 야했다. 해서, 나는 급히 다시 손등을 입어 물었다. 그런 내 모습에 그는 작게 조소했다. 그가 보는 내 모습은 죄다 뚝딱거리고 어설퍼 보였을 테지.. 그러니 내게 엉뚱하다고 하는 것일 게다.
슬픔 안에는 뜨거웠고,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참을성이 없던 그는 참을성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 걸까.
"힘들죠? 땀나요"
몸을 섞고 있으면서도 그는 나를 잘 보고 있었다. 잘 돌봐주고 있었다? 아마 그는 진짜 시대를 초월하는 바람둥이가 맞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정한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까..
"개처럼 해줘요"
"자극이 돼서 빨리..."
그가 말을 다 끝맺기 전에 엉덩이를 들어 보였다. 분명 변태라고 생각할 것이었을 테지.. 젠장.
더 이상 그에게 어리석어 보이기는 싫어, 배에 닿는 느낌이 꽤 들어도 말하지 않았다. 나의 안위에 대해 묻지 않았다.
"쌀 거 같아요"
"입에 해주세요"
그의 단단함을 물면 더 부풀수 없던 단단함은 더 부풀어졌고, 슬픔을 내게 토해냈다. 그에게 슬픔 따위는 남게 하지 않으려 나는 힘껏 빨았다.
"아파요??!!"
"자극이 돼서...."
아프다는 거지? 그는 언제부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흐렸다.. 보청기가 시급해 보였다. 바보.
내 슬픔 안에 있던 그의 슬픔을 다시 내게로 들어왔다. 나는 깊숙이 슬픔을 밀어놓고서야 안도했다.
그는 땀에 젖은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 손길에 나는 오늘도 그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마치 그의 단단함에 중독된 약쟁이 마냥...
그 슬픔은 붉었다.
어디서 야매로 참을성을 사 온 탓인지 그 슬픔은 꽤 길어졌다. 그의 체온이 곳곳에서 오래 남아 나를 휘청이게 했고, 슬픔은 또 다른 슬픔이 되어 그를 옭아맬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공허를 번갈아 흡입하는 일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구원할 수 있지만, 그는 내게 구원을 바라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결코 서로를 구원할 수 없다. 이런 관계에서 먼저 사랑을 갈구하는 쪽이 더 망가진다는 것도 분명히 안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나는 어리석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신과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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