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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88 당신을 잡아 먹는 야만인이 되겠어요, 기꺼이


애매모한 밝기의 조명아래,
너는 나의 어깨를 둘렀고, 나는 너의 입술을 입에 가득 물었다.
이윽고 알 수 없는 신음이 터졌다.
너의 눈은 순진무구히 아래로 늘어뜨렸고,
나는 너의 위에서 천박히 마찰음에 리듬을 탔다.
당장에 사랑을 저지르고 싶었다.


마중 나갈게요. 도착하면 연락해요.

낭만과 다정을 내게 쉼 없이 쏟아낸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그는 필시 꼬리 999개 달린 천년 묵은 늙은 여유임이 틀림없다. 내 언젠가는 그의 정체를 만천하에 밝혀 까발릴 것이다.  '인간 세계에 정체를 숨기고 사는 천년 묵은 여유'라는 타이틀로.
택시 안에 몸을 맡긴 후, 마중 나와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뽀글뽀글 라면 머리를 하고 있을 그를,  왔다 갔다 천천히 걷고 있을 그를... 내 입은 단번에 반달을 그려 멈춰 낮달을 띄워냈다. 순간, 그 낮달은 저물어버렸다.  추운 날씨에 얇게 입고 있을 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저씨, 조금만 서둘러주세요..."
"예"

너무 빨리 연락을 드린 것 같아 미안함과 조급함이 일순간 밀려들었다. 그저, 그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 부른 후회였다. 다행히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허둥지둥 내렸고, 기사님은 뛰는 나를 불러 세웠다.

"아가씨!!!!!"
"네?"
"목도리!!"
"아.. 감사합니다^^"


그를 향해 내딛는 구두의 굽소리와 두근거리는 소리가 서로 뒤엉켜, 나를 극에 달하게 만들었다. 쿵쾅쿵쾅, 가히 내 발걸음은 거인의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리라. 벅찬 마음을 감출 수 없기에..  그러나 현실은 땅꼬마,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역시, 그는 얇고 얇은 차림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못마땅했다. 조금 더 친했더라면 주먹을 꽉 쥔 채 한 대 때렸을 것이 분명했다. 감기 걸리겠다며 눈을 잔뜩 흘기며 말이다.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선 마음, 나는 그를 꽤 많이 아끼고 있었다. 그 마음은 그는 알 길이 없었을 테지만...

"잘 지냈어요?^^"
"안 추우세요?"


서로 다른 안부를 내뱉었지만, 그 안에는 걱정과 배려, 다정과 낭만이 넘실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숨이 막혔다. 여러 이유였다. 공간의 공포와 불안이었고, 그를 당장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침묵의 욕망이었다.

'다부진 그의 팔은 차가울까, 미지근할까'

다부진 두 팔과는 달리 그의 손은 공손히 앞쪽으로 모아있었고, 나는 그 양손을 풀어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의 양팔에 갇히고 싶었다. 그래, 이 표현이 맞는 표현이었다. 높아진 불안을 낮추기 위한, 살기 위한 생존본능이라 바락바락 우기며 말이다.
그 짧은 상상은 공간의 두려움을 한 발짝 물러나게 했다. 웃겼다.
거울 속에 비친 나와 그는 꽤 사이가 널찍히 떨어져 있었고, 우리는 거리만큼 키 차이도 많이 났다. 심지어 그는 쓰레빠였고, 나는 구두였다.

앞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삐리삐리뽀는 없었고, 안테나가 없음에도 나의 온 신경이 그에게로 쏠렸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었다. 걸을 때의 모습, 어색한 표정과 행동, 설백한 웃음, 나긋 거리는 음성. 어디 하나 미운 구석이 없었다. 그것이 도리어 미웠다면.. 말 다했지 않은가.

'이날 본 당신은 전에 본 당신보다 한 뼘 더 멋있어지셨어요'


"작가님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겠어요^^;;"

그는 나를 멋진 사람이라고 해준 덕분에 진짜 멋진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다. 그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해주니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가 말썽이었다. 온갖 주접이란 주접은 다 떨고 싶었다. 못난 마음은 그와 함께 있을 때 더 자주 피어올랐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그를 더 사랑하면 된다는 알 수 없는 든든함이 내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가 그의 인생이 힘들다 한들 내가 끌어안아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당신을 지킬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될게요. 그러니 당신은 그저 내 사랑 안에서 둥글고 온안 하세요'

그동안 아픔과 슬픔이 있다면 내게서 다 잊고서 행복함을 되찾기를 바랐다. 과거를 지울 만큼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줄 자신이 있었다. 또 그렇게 그는 나를 바꿔놓고 있었다. 삶에 지쳐있던 나를 살게 해 준 것처럼, 숨는 쪽에 섰던 나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준 것처럼, 용기 없는 쫄보에서 용감하고 씩씩하게.

'내게 낭만과 다정이 계속 유효하다면, 나는 당신에게 평생 상냥하고 애틋하고 싶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무척 길고 힘든 노동도 그의 한마디면 눈 녹듯 사라져 갔다. 그런 그에게 나도 모르게 자꾸 다짐하게 된다. 어떠한 형태로든 항상 당신께 다정을 잃지 않겠다고... 그 다짐은 쉽사리 나를 슬픔으로 휘감게 했지만 말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그는 잘하는 것도 많고 여러 분야로 다양히 지식도 폭넓었다. 덕분에 나의 부족함을 그를 통해 채우고 싶었다. 동경이었다.

'동경하고 있어요, 무척이나요'

"무서워요. 제 영혼이 저기로 빨려 들어갈 거 같아요. 저기서 쥐꼬리 같은 게 툭 튀어나올 거 같아요..ㅠ"


꽤나 묵직한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과 고민들을 덜어주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그 미소 한방이면 말랑말랑해지고 만다. 무서워하는 내게 별거 아니라며, 다이다이로 맞서 싸우기를 권하기도 하고, 내가 이길 수 있다고 말해준다. 신기했다. 불안이 그의 말 한마디에 덜어낼 수 있었다면 나는 여태 왜 불안하고 살았을까. 그동안 나는 사랑이 없어, 불안했던 걸까. 그동안 나는 사랑이 없어, 글을 쓰지 못한 걸까, 그동안 나는 사랑이 없어, 불행했을까.

"지금도 근육통이 있습니다^^"
"살 빼고 다시 출근했을 때 작가님 못 알아봤잖아요"


'당신과 오래오래 함께 하려면 내가 무얼 해야 하나요? 결코 우리가 슬픔이 되고 싶지 않거든요.. 한때 사랑이었다로 매듭짓기는 싫어요. 끝없는 사랑과 애정이고 싶어요'

'전에 말했잖아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살 뺐어요.."


그가 들려주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상은 마냥 아름다웠고, 무용했다. 무용은 취할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들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반짝거렸고, 나는 꽤 많이 그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럴수록 나만 상처였지만...
마스크 속 그의 천진한 웃음이 보이는 듯해 남몰래 따라 미소 지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를 사랑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공적인 이유였지만, 나는 그와 함께 하는 시간 그 모두가 사적이었다. 그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겠지...

그가 내 뒤에 서고, 나는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곤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갑자기 지난 일이 떠올라, 무서웠다. 나쁜 기억이 그 찰나에 비집고 들어왔다. 어지러웠고, 앞이 깜깜했다. 결코 강한 힘으로 나를 잡은 것이 아니었고, 양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한 것도 아니었으나, 그 자세가 지난날의 무서웠던 날이 오버랩되었다.

"키가 크셨네요^^"

지난날에 나를 구해주었던 우렁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니나, 뒤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금방 눈물이 후드득 떨어질 뻔했다. 나는 괜스레 머리가 엉망이라며 눈물을 말려야 했다. 뒤를 돌아 그를 마주하고서 안아달라고 말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무해해야 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거울 속 그와 나는 나란히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가 내게 허락된 일이었고, 그것은 꽤나 나를 아프게 했다. 그에게 향하는 마음이 멈췄으면 바랐다.


#번외

<저 야만인 같이 생겼어요?>
<아뇨~ 작가님은 보호해 주고픈 사람인데 생긴 거랑은 달리...>
<편집장님은 조신하고 조용하고 얌전하고 성숙하고.... 그런 사람 좋아하시죠?>
<뉘신가요? 아뇨. 작가님 같은 스타일?ㅎㅎ>
<편집장님은 제가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을 텐데요?>
<전혀요......ㅎ 약간 허당끼 있고 엉뚱하면서 챙겨주고 싶은?ㅎ 도통 알 수 없는 사람 같아요>


언제부터 아셨던 걸까...
필시, 편집장님 앞에선 조신하고 얌전하고 그런 모습만 보여드렸는데 어째서 안 거지? 그래도 다행이다. 엉뚱한 나를 싫어하지 않아서.. 어쩜 말도 저렇게 곱게 하실까.
작가님 같은 스타일.. 작가님 같은 스타일... ^^^^^^^^^^^^^^^^
오늘도 밤을 지새워 여즉 자지 못한 건, 모두 당신 때문이라는 걸 그는 알지 못하겠지.

이제 일어나요! 녹즙 마시고 운동하러 가셔야죠^^
안온한 성탄절 되세요. 모쪼록 건강 조심하세요. 나는요, 병원 가봐야 할 듯합니다. 많이 많이 추우니, 따뜻하게 입으시고요, 너무 멋진 모습 막 길바닥에 흘리지 말고요^^
흘리려면 내게 흘려요. 오늘도 안온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