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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41 엘리베이터는 안전하답니다




겨울의 동백이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품은 까닭은 붉고 푸르고  하얀, 색조의 견딜 수 없는 조화이기 때문이다.


"수업 잘하고, 오후에 봬요^^"
"네, 운전 조심하세요~"

등교를 마치고 각자 헤어졌다. 바로 출근해야 했지만, usb를 두고 온 탓에 집에 들러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잡아 탔다. 문이 닫히던 찰나, 숫자 버튼을 눌렀다. 숫자 버튼 위 작은 전구가 3층을 향해 올라가는 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의 꿀렁임 이후, 바닥이 아주 가볍게 '쿵'하고 울렸다. 그 뒤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위로 올라가는 느낌도, 멈추는 느낌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천장등은 켜져 있었고, 빛 전체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흔들리는 건 내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공포와 두려움이 온몸을 덮쳤다. 열림 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조그만 환기구에서 들어오던 공기 흐름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바람이 아닌 팬이 도는 소리와 같은, '웅ㅡ' 하는 낮은 소리가 천장 안쪽 어딘가에서 울렸다 끊겼다 했다. 그건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층수 표시창에는 5라는 숫자가 그대로 박혔다. 5는 다음 숫자로 넘어갈 기색이 없었다. 그 숫자가 점점 조금씩 커지는 듯 느껴지고, 주황색이었는지, 노란색이었는지, 빨간색이었는지도 헷갈렸다. 나는 객관적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열림'버튼을 눌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힘을 줘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비상호출' 버튼을 누르는 그 짧은 시간에, 누르면 누가 받기나 할까, 어디로 연결되는 걸까, 괜히 누르는 건 아니겠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눌렀다. 작은 '삑'소리가 공간을 뚫고 나왔다. 그러나 삑 소리 이어지는 몇 초 동안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공포와 밀폐감에 숨이 막혔다. 나 스스로 나를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휴대전화를 찾기 시작했다. 이미 나의 모든 행동은 느림보 마냥 느려졌다. 겁을 잔뜩 먹었기에 공포에 지배를 당했으므로..
천장 모서리 쪽 cctv 렌즈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인지, 센서인지는 구분하지 못했다. 누군가 보고 있다면 내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서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숨이 가쁜 와중에, 이 좁은 공간에 산소가 얼마나 남았을까,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들로 나를 더 두려움에 빠지게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엄마는 통화 중이셨고, 아빠는 내 전화를 거절하셨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전화가 왔다.

"오빠ㅠㅠㅠ 으어어 엉 ㅠㅠㅜ 와줘"
"어디야"
"엘리베이터가 안 움직여. 문도 열어주고, 열리지도 않아. 비상호출 버튼 눌러도 연결이 안돼. 오빠 무서워ㅜㅜㅜㅜㅜㅜ"
"진정해. 괜찮아. 우리 집 아파트야?"
"응"
"경비실에 전화하고 다시 전화할게"
"오빠, 만약에 추락하면 나 죽어?ㅠㅠㅠㅠㅠ"
"내가 알려줬잖아. 엘리베이터 안전장치 8개가 필수야. 절대 추락할 일 없어. 일단 끊어봐. 다시 할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어어 엉ㅠ"

금방 전화한다는 남편은 전화가 없었고, 나는 갇혔다. 남편의 배신감보다 두려움이 더 컸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호흡이 아까보다 빨라졌고, 열림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끝에는 혈관이 뛰는 감각이 내게 전해질 정도로 극도로 예민해졌다.
손끝 발끝이 저릿저릿 서늘하고 둔해진 걸 느꼈고, 곧 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삽시간에 공포가 극에 달했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혜야, 경비실에 연락했어. 금방 문 열어줄 거야. 괜찮아?"
"아니 한 개도 안 괜찮아ㅜㅠㅠㅠㅠ"
"울지 말고 숨 천천히 쉬어봐봐"
"무서워서 안돼ㅠㅠ"

남편과 통화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밖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조명 불이 꺼졌다.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과 갇혔다는 두려움에 다리를 얽어매 놓은 것 같았다. 꼼짝할 수 없었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곧 열어드릴게요!! 잠시만 계세요"

<선혜야? 선혜야, 선혜야!>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극도의 두려움인지, 밖에서 들리는 사람 소리에 안심이었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눈꺼풀이 굉장히 무거웠고,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는 손도 무거웠다. 버거웠다.
문이 열렸고, 그 앞에는 이웃 주민인 그도 함께 있었다. 온몸에 힘이 풀려버렸고, 손은 아래도 떨어졌다. 몸에 감각이 없어졌고, 나는 눈을 감았다.

"아기엄마!!"



"왜 이런 거야, 누가 그런 거야!!!!!"

쩌렁쩌렁한 아빠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웃겼다. 나는 이렇게 살아있음을, 내가 누워 있는 곳이 저승이 아닌 이승임을 한방에 알 수 있었다.

"아.. 저.. 그게 따님은 과호흡니다. 엘리베이터 갇힘 사고로 인한 일시적인 공학발작..."

아빠는 그의 말을 끊고, 내게 오셨다.

"괜찮나? 정신 좀 드나?"
"응 ^^ 괜찮아^^"
"지금, 웃음이 나오나? 다친 데는 없고?"
"응~ 저분이 넘어지는 걸 받아줘서 다친 곳은 없어"

나는 아빠가 그에게 인사를 하길 바라는 마음에 눈을 그를 향해 두고 말했지만, 아빠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나만 보셨다. 늘 한결같은 분임에 웃겼다.

"안 다쳤으면 됐다. 근데 니 서방은 와 안오노?"
"멀리 있잖아. 괜찮아. 아빠 바쁜 데 가봐"
"영양제 다 맞고 가. 엄마 오고 있으니깐 보고 가고"
"나 가봐야 해. 늦었어"
"검사해야 돼서 당장은 못 갑니다"

그가 말했고, 아빠는 그제야 뒤를 돌아 그를 보셨다.

"우리 구면이죠?"
"네"
"오늘 일은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인데요 뭐^^"
"일이 있어서, 선혜 엄마 올 때까지만 잠시 부탁 좀 할게요"
"네네, 바쁘신데 어서 가보세요"
"마치고 집에 갈게. 니 좋아하는 딸기 사서"

그렇게 아빠는 가셨다.

"무슨 검사한데요?"
"뇌신경, 경추척추, 심장 그런 거요"
"안돼 안돼! 나 바빠! 의사 좀 불러줘요ㅠㅠ"
"검사받고 가요"
"나 자주 이래요. 빨리 불러줘요ㅜ"

성화에 이기지 못한 그는 간호사를 불러왔다.

"저 그냥 단순히 기절한 것뿐이에요. 불안장애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저체온증도 있고, 혈압과 맥박이 너무 떨어져 있어요. 발작도 있어서 검사를.."
"저 빈혈 있고요, 저혈압이고 기립 저혈압도 있어요. 자주 있던 일이에요. 그러니까 검사 안 해도 돼요"

썅. 결국, 검사를 해야 했다.

"자주 눈앞이 침침하고 귀가 먹먹해지나요?"
"네, 매일이요"
"갑작스러운 어지러움과 구역질은요?"
"아침에 일어나면 대부분 그래요"
"손발은 원래 차갑고, 식은땀은 자주 나는 편이에요?"
"무서우면 그래요"
"심장이 두근거리다가 점점 느려지는 느낌도 드나요?"
"네, 그러다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가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이렇게 기절하더라고요"
"혈관 미주신경성 실신이고요. 이게 잦으면 안 됩니다. 신경학적 정밀 검사나 심장 정밀 검사받으세요"
"네, 다음에요. 다음에 할게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새끼발가락이 제일 아팠다. 이는, 몸에 힘이 풀려 들고 있던 휴대폰을 새끼발가락에 떨어지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발가락은 퉁퉁 부었지만 병원에서 아프다고 했다간 발도 검사할지도 몰라 말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남편이 바로 내게 전화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남편은 근무지가 멀어, 당장 올 수 없었으므로. 덕분에 다치지 않았다. 이렇게 기절할 때면 뒤통수를 찧던지 타박상이 있기 마련이었는데, 이번엔 그가 받아줘서 상처하나 없었다. 그 덕에 나는 내 큰 일정을 별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뒷날, 등굣길>

"어제는 감사했어요. 전화나 카톡보다는 직접 보고 인사하는 게 좋을 듯해서요"
"이제 괜찮아요? 당분간 엘리베이터 못 타겠네요"
"뭐, 운동한다 생각해야죠^^ 어제 구급차 불러서 간 거예요?"
"아뇨, 구급차가 오는 시간도 있고 해서 제 차로 갔어요. 행님이 스트레스가 심하면 가끔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왜요?"
"아뇨.. 고맙고 미안해서요. 나 많이 무거웠죠??"
"엄~~ 청요^^ 농담이고요, 의식이 없는데도 가벼웠어요. 살 좀 쪄야겠어요. 50킬로는 넘어요?"
"아뇨.."
"어쩐지... 사람 기절하는 거 드라마에서나 봤어요. 더군다나 제 주위사람이 쓰러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놀랬죠?"
"네, 많이요. 무서웠어요"
"그쪽도 겁쟁이네^^"
"예전에 내 첫사랑 이야기해준다했잖아요? 이뤄지지 않았다던..."
"아, 네네. 그게 왜요?"
"죽었어요. 저랑 같이 있다가.."
"어쩌다가요..."
"제가 운전하고 가는데 사고가 나서 저는 살고, 여자친구는 죽었어요. 유등축제 보러 가다가요..."
"아..... 아......."
"그래서 그쪽도 잘못되는 줄 알고 걱정되고 무서웠어요"
"아.. 전 아주 건강해요. 가끔 픽픽 쓰러질 때도 있긴 하지만. 엄청 씩씩하고 건강합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걱정됩니다'라고 말하던 누군가가 떠올려버렸다. 그는 느닷없이 누군가를 번번이 떠올리게 했고, 나는 그것이 몹시도 거슬렸다.

"또, 또 어디 아파요? 무서워요?"
"아니 아니, 아무 때나 쓰러지지 않아요! 잠시 다른 생각했어요"
"몸이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미리 말해요"
"지금 이상해요"
"어디 가요? 어지러워요?"
"아뇨. 그쪽이 안 놀리고 잘해주는 게 이상하다고요"
"난 또...."
"나 진짜 괜찮아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ㅡㅡ 나 시한부 아니고 그냥 불안장애로 기절한 것뿐이니까요"
"인심 썼다! 등교시키고 나랑 같이 엘리베이터 익숙할 때까지 연습합시다"
"괜찮아요. 계단으로 가면 돼요"
"얘들 있을 때도요?"
"그땐 뭐... 업고 가던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 탈 때 같이 타던지"
"제가 바쁜 일 있으면 안 되지만, 그쪽이 괜찮아질 때까지 같이 타요"
"감사해요^^"
"오늘부터 해볼까요?"
"오늘은 안될 거 같은데.."
"나도 바빠요. 어차피 집에 가서 출근준비하고 나올 거잖아요? 오늘은 올라가는 것만 같이해봐요. 가요!"

갇혔던 엘리베이터를 다시 탄다는 생각에 이미 나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손끝은 차가워지고, 운동화 속 발끝도 동상 걸리기 전의 무딘 감각이 느껴졌다.

"무서워요"
"시간 지나면 더 타기 힘들져요. 나랑 같이 타면 괜찮아요. 믿어요. 안심하고^^"

<1층입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내디뎠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 나를 그가 잡아당겨 강제로 탔다. 눈앞이 캄캄하고, 호흡이 가빠졌다.

<문이 닫힙니다>

"괜찮아요?"
"도리도리"

맞잡고 있는 양손은 생살을 뜯으며 불안을 이기고자 노력했다. 그런 나를 보았는지, 그는 내 손을 풀어 손을 잡았다. 손깍지로 단단히.

"사심 아닙니다"

긴장으로 내 손이 차가운 탓인지, 그의 손은 굉장히 따뜻했고 한 순간에 불안이 조금은 사라졌다. 급한 불은 꺼진 택이었다. 그에게서 전해져 오는 따뜻함은 꽤나 따뜻했고, 그 따뜻함은 마치 한 겨울에 봄이 온 듯했다. 긴장이 갑자기 풀려 나른한 기분마저 들었다.

<문이 열립니다>

손깍지 낀 채 나는 그와 내렸다.

"어때요, 별거 아니죠? 탈만하죠?^^"
"끄덕"
"아주 잘했어요!"

그는 아이들한테 대하듯이 내 머리를 꾹 눌러주었다. 이럴 땐 머리를 쓰다듬어야지, 꾹 눌러 칭찬하는 그가 웃겼다.

"고마워요"
"나도 데려다줘요"
"다시 못 타요"

그는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다시 나를 끌어다 태웠고 다시 손을 잡았다. 손을 잡는 것에 다른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갇혔던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두려움은 컸으므로.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의 손이 꽤 따뜻한 온기가 머물고 있었고, 굉장히 단단하다는 사실을.

<문이 열립니다>

"처음보다는 낫죠?^^"
"네"
"이제 혼자 탈 수 있겠죠? 올라가요"
"아니, 아직은..."
"풉 ㅋㅋ 그쪽이 나한테 같이 타달라고 한 겁니다?"
"끄덕"

다시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확실히 처음보다는 나았다. 그가 있었으니 그런 탓일까. 학습이었을까.

<문이 닫힙니다>

안내 음성이 들리고 문이 닫히자, 그는 다시 내 손을 깍지를 껴 잡았다. 이제는 그가 잡고 있던 손을 세게 잡지는 않았다. 그가 아플 수도 있기에.. 그 생각이 미치자, 엘리베이터의 두려움은 10분의 1만큼 줄어들었다.

"며칠 연습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고마워요. 여러모로..."
"내가 고맙죠~"
"뭐가요?"
"농담입니다. 오후에 봬요"
"네, 조심히 가요"
"요새 왜 저한테 안온하라고 안 해요?"
"아.. 안온한 하루 보내세요^^"
"엎드려 절받기구만 ㅋㅋ 가볼게요"
"네~"

집에 들어와, 유독 내 오른손이 따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왼손과 확연한 온도 차이였다. 그가 머문 자리에 따뜻한 온기가 꽤 오래 남았다. 그것은 한 겨울, 눈 덮인 나뭇잎 아래 더 붉은 동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