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40 슬픔은 구원이 필요치 않아요


괜스레 마음 가는 것이 있다. 자꾸만 생각나고, 이끌리며 나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 온통 그 문장을 곱씹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이 간다'라고 한다. 그렇게 마음이 가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

내게는 "슬픔" 이 그렇다.
어린 학생의 나이임에도 슬픔이라는 단어가 퍽 쓸쓸해 보이고 예뻐 보였다. 수첩에 슬픔이라고 적고, 그 단어에 오래도록 시선을 빼앗겼다. 이따끔씩 그 앞에 수식어를 붙여보기도 했다. 안온한 슬픔, 따뜻한 슬픔, 온화한 슬픔, 아름다운 슬픔, 화려한 슬픔, 조용한 슬픔.. 또 어느 날에는 '슬픔'으로 그 뒤에 목적어, 주어, 보어를 붙여보았다. 슬픈 기다림, 슬픈 고백, 슬픈 기억, 슬픈 침묵, 슬픈 끝맺음, 슬픈 사랑.

슬픔의 적막이 좋았고, 여전히 지금도 슬픔이 좋다.
나는 슬픔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한 번도 구겨진 적 없는 빳빳한 와이셔츠 같은 사람보다는 시장통 옷걸이에 질서 없이 걸려있는 보세 옷 같은 사람이 더 끌린다. 누군가는 이런 내게 말한다. 구겨진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그런 호강에 겨운 소리를 한다고... 내가 늘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여유 있게 살아서 그런 거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나, 그래도 나는 슬픔이 좋다. 그래서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주는 다양하고 미묘한 잔재들을 동경한다. 그게 내가 세드엔딩만 쓰는 이유일지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구겨진 적 없다 하지만 글쎄... 그럴까?
철저하게 나는 보호 대상이었다.

나는 사실 집안의 애물단지였다. 똑똑하다 자만했고, 평범한 외모에 꽤 착한 심성을 가졌다며 자부하며 살았다. 해서, 마음만 먹으면 결혼 따위는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매주 보는 맞선에도 성사된 적이 없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결혼을 전제였기에, 키가 작다 싫다 했고, 솔직하고 발칙해서 싫다 했으며, 웃음이 헤프다, 4차원이다, 세상물정을 모른다, 생활력이 없어 보인다 등의 이유로 나를 싫어했다. 심지어는 내가 몸뚱이가 작아 아기를 낳지 못할 거 같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다. 충격의 연속이었다. 개의치 않았다. 내게는 결혼정보회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종합점수 100점 만점에서 나는 68점이었다. 너무 낮은 점수에 그 충격의 여파는 오래갔다. 결혼정보업체에서 여자의 외모는 꽤 컸다. 담당 컨설턴트가 직접 나의 외모의 점수를 매긴다. 기분이 굉장히 더러웠다. 그 점수가 뭐라고 그렇게 긴장했는지... 아무튼 나의 감정 요인은 이러했다. 나이가 많고, 키가 작았으며, 장녀(아직도 장녀가 감점인 이유는 모름), 취미( '읽고 쓰기'는 왜 감점일까), 특기(읽고 쓰기), 자녀계획(없다고 해서 감점인 듯), 질병유무(빈혈, 저혈압, 결벽, 강박), 결혼후퇴직 등의 이유가 있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태어나 그렇게 낮은 점수를 처음 받고, 그날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 점수는 노력으로 올릴 수 없는 것이 많았고, 나는 결혼과 한걸음 멀어짐을 현실적으로 체감했다. 남이 보는 나는 결혼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었음에 그렇게 한탄했다.
그럼에도.. 나의 모든 프로필과 인적사항을 보고도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은 꽤나 있었다. 이상했다. 100점 만점에 68점인 나를 왜...??  결혼정보업체에서 매칭해 주는 사람을 보고 알았다. 여자와 남자의 점수 기준이 다르구나 하고.. 여자들은 외모가 반이라면, 남자들은 부와 자산, 그리고 직업이 높은 점수를 차지했다. 돈은 많고 똑똑하며 직업이 좋고, 부모가 부유한 남자들은 많았으나,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나 더 궁금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한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담당 컨설턴트의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점수는 낮지만 나와 매칭 확률이 높다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떠냐는... 내 기억으론 그 남자 점수는 65점. 나보다 낮은 점수였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에 나는 기대 없이 약속장소에 나갔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약속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어머, 꽃 사 오느라 늦었나 봐요^^;;"

담당 실장님이 남자를 보고 일어서며 말했고, 나도 자리에 일어섰다. 그를 봤다. 포장 없이 꽃을 노란색 고무줄에 몇 번을 엮은 다듬지 않는 꽃을 한 아름 들고 있는 남자였다. 꽃을 들고 있어 그런 탓일까. 그동안 봤던 중매와 맞선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실장님은 서로 인사만 시켜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우리 편하게 이야기해요^^"

둘만의 시간, 그의 첫마디였다. 유독 웃는 표정이 순박해 보였고, 무해해 보였다. 예의상 웃음이 아닌,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그는 그동안 봤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캐주얼과 정장의 중간 언저리, 세미정장을 입고 있었다. 맞선에서 보기 힘든 복장이기에.. 단정하면서도 편안한 옷차림, 머리는 웨이브진 컬이었다. 회색 슬랙스 바지에, 흰색 티셔츠. 그리고 군청색 재킷. 다듬지 않은 노오란 금계국 꽃다발이 더해,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 부조화스러운 게 묘하게 어울렸던 사람.

"좋아요^^"
"갑갑한데, 걸으면서 이야기할까요? 혹시 더운 거 안 좋아하시려나요"
"여름엔 더워야죠. 나가요! 저도 여기 갑갑해요^^"

그렇게 에어컨 빵빵한 카페를 나와, 불편한 구두를 신고 그와 나는 그 근처 공원을 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점수만 듣고, 이 사람 프로필을 보지 않은 나를 후회했다. 궁금했기에...

"제가 실장님께 졸라서 그쪽 만나게 해달라고 했어요..^^"
"이유를 여쭤봐도....?"
"프로필 보고 마음에 들었거든요"
"점수도 낮은데요...?"
"다 마음에 들었어요. 혹시 제 프로필 보셨나요?"
"바빠서 못 봤어요.."
"못 봤으니 나왔겠네요???!!!"
"네????????"

나란히 걷던 그가 갑자기 한걸음 앞으로 나가 뒤를 돌며 깜짝 놀라 했다. 그 바람에 나도 덩달아 놀랬다.

"진짜 어리시긴 하다^^;;"
"여기에선 제 나이가 어린 게 아니더라고요ㅠㅠ"
"전.. 나이가 많습니다ㅠ 혹사 몇 살로 보이세요?"
"서른셋? 아니면 넷??"
"어제 팩도 하고 머리도 하길 잘했네요 ㅋㅋ 저 서른여덟입니다"
"에???????"
"나이가 많죠??ㅠㅠ"
"아니 아니, 동안이세요^^"

그의 한껏 구겨지고 찡그린 얼굴이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내 딴에는 최고의 위안을 건네는 말이었다. 그러나 빈말은 아니었다. 순박한 웃음과 그 표정은 꽤나 어려 보였으니까.

"집에 가실 겁니까??"
"아뇨^^;;;"

숨김없이 솔직하게 묻는 그가 맘에 들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제서야 한참을 들고 있던, 아까보다는 시들해진 금계국 다발을 내게 힘차게 건넸다.

"반가워요, 선혜씨^^"
"*^^* 저도요... 금계국이 꽤 시들해졌네요"
"어? 금계국, 아는 사람 처음 봐요. 다들 들꽃인 줄 알던데.."
"흔해빠진 들꽃에도 제 이름은 다 있기 마련이죠^^"

한 여름의 공원은 습하고 뜨거웠으며 더웠다. 걸을수록 금계국은 더 생명력을 잃어갔고, 그와 나도 프라이팬에 올려진 계란처럼 퍼졌다.

"우리 그만.. 걸을까요?"
"네!!!"
"풉 ㅋㅋㅋㅋㅋ 가시죠"
"네^^"

그가 차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차에 탔다. 금계국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몹시 좋았다. 에어컨의 시원함과 꽃향기에 왠지 그가 낭만적이게 보이기도 했을 만큼.

"저 사실.. 시원한 에어컨 밑에 있는 걸 좋아해요. 선혜씨가 시를 좋아하고 계절을 좋아한다고 실장님이 알려주셔서..."

솔직함에 담백함을 더한 말이 이런 말이 아닐까. 그의 고백이 퍽, 마음에 들었다.

"금계국이 곧 죽겠어요...ㅠㅠ"
"에???? 그럼 금계국 살리러 가볼까요?"
"살릴 수 있어요???"
"그럼요!"

차가 움직였고, 열심히 달리다 주차를 했다. 나는 금계국이 시들해지는 것이 못내 속상했다.

"차에 계세요. 너무 더우니까요"
"네^^"

그러나 그는 한참을 지났지만 오지 않았고, 나는 차 안에서 그가 언제 오는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화병에 물이 쏟지 않게 손바닥으로 막은 채 걸어오는 모습이... 귀여웠다. 순수해 보였다. 금계국이 죽어간다는 내 사소한 말에, 저렇게 열심히 행동하는 남자가 멋있어 보였다. 한 여름의 낭만이겠거니 생각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가 좋았다. 우리 집과는 1시간 넘는 곳에 살았지만, 시간이 되면 보라 온다고 했다. 그는 꽤 틀에 박힌 생각이 아닌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정과 낭만이 깃들어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내 프로필 사진에 잔뜩 긴장한 모습이 꼭 도살장에 팔려가는 송아지 마냥 보여 안쓰럽기도 하고,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했다. 프로필 사진을 보고 또 보고 했다고 했다. 어차피 결혼이라는 같은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면 나와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긋지긋한 맞선과 중매, 매칭 그만하고 싶었다.
꽤 오래 내 방에서 금계국이 살아있었다. 들꽃의 장점은 끈질긴 생명력이므로.. 그러나 그 금계국은 나와 함께 할 순 없었다.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봤던 날이었다.
일이 빨리 끝나지 않아, 그는 내 사무실 밑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계단을 거의 뛰어내리다시피 우당탕탕 내려갔다. 그가 보였고, 그는 내게 웃었다. 그제야 빨라진 발걸음을 진정해서 내려갔다.

"많이 기다렸...."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그는 내 종아리를 감싸 안아 나를 높게 들어 안아 올렸다. 그리고 한 바퀴를 돌았다. 무서웠지만, 기분 좋았다. 그가 장난으로 휘청거렸고, 나는 몸을 숙여 그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살고자 함이었다.

"이러면 안 내려주고 싶은데??"
"내려줘요..ㅠㅠ 회사 앞이에요.. ㅠㅠ 곧 직원들 내려올 거예요"
"그런데요? 나랑 결혼할 거라면서요^^"
"이렇게 막무가내는 싫어요!!"

작은 눈을 더 작게 만들어 웃는 그의 얼굴에는 무해함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차 안에는 늘 꽃이 있었고, 인위적인 향수보다 몹시 좋았다. 그 꽃들은 항상 내 손에 들렸고, 내 방 볕이 잘 드는 창가 화병에 꽂혔다.

그와 저녁을 먹고, 집 앞 강변을 걷고 있었다. 이렇게 바로 헤어지기 아쉽다는 그의 말에 들꽃을 풀잎으로 대충 동여맨 꽃다발을 한 손에 쥐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는 나를 잘 알았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던 건지, 연륜에 그러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어느 타이밍을 좋아할지, 어떤 말을 좋아할지 곧 잘 알아챘다. 결벽과 강박, 불안이 있다는 내게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라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게 그는 긴장을 풀어줄 장난을 치기도 했다. 가령, 결벽이 있어 거리를 두고 걷다가 갑자기 종아리를 끌어안아 높이 나를 들어주고, 한 바퀴 돌아주었다.

"선혜 씨, 낮은 공기만 맡다가 높은 공기 마시니깐 어때요?"
"내려줘요ㅠㅠ"
"어때요, 좋아요?"
"네^^ 달이 더 가까워져서 좋아요^^ 그러니 내려줘ㅠ"
"아~~~ 내려주기 시르다"
"여기 우리 동네예요..ㅠㅠ 내려줘요"

그가 혹시나 중심을 잃고 쓰러질까 봐 무서웠다. 나는 엉덩이를 조금 빼서 그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빨리요.. 내려줘요ㅠㅠ"
"이러면 더 못 내리죠^^"

그가 사뿐히 바닥에 발을 딛게 조심히 내려주었다. 내 손에 들린 들꽃들이 어지러운 듯 조용히 풀 죽어있었다. 다시 가던 길을 걸으려는데, 아빠엄마가 서 있었다. 저녁 식사하시고 강아지와 산책 중이셨다. 아빠는 왜인지 단단히 화가 나있으셨다.

"이리 와"
"누구시죠?"
"이리 오라고, 당장"
"아빠... 내가 말했지? 결혼정보업..."

아빠는 내 말을 들리지 않는 듯, 나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잠시만, 아빠. 내 말 들어봐. 뭔가 오해하나 본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집에 가서 이야기해"
"이렇게 가버리면 **씨는???"

아빠는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봤고, 그는 한 발자국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지만 아빠는 받아주지 않으셨다.
나는 안절부절했다.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도,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난감했다. 아빠 얼굴은 내게 잘 보여주지 않는 매우 무서운 얼굴이었다.

"**씨, 먼저 가볼게요. 미안해요. 조심히 들어가요"
"아, 네네"

그는 다급히 대답했고, 나의 부모님께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엄마만 그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웃어주셨다. 아빠는 여전히 내 손목을 잡고 계셨고, 강변을 벗어났을 때 손목에서 힘을 빼셨다.

"아빠, 아까는 오해예요. 괴롭히는 게 아니라 장난으로.."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집

"기껏 만난다는 게..."
"아빠... 아빠 저 사람 알아?"
"몇 번 만났다고 이러니?"
"그러니까요. 나도 만난 지 4번밖에 안 됐지만, 아빠는 한 번도 제대로 안 봤잖아! 왜 그렇게 말해"
"만나지 마"
"싫어. 나 저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나이도 많고, 지역도 다르고 거기다 부모도 없다 해서 맘에 안 들었어. 오늘 보니 앞으로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다. 다시 선봐"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데요...? 내가 하겠다는데?"
"니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서 만난 지 4번 만에 결혼한다는 거야? 대체??!!!!!"
"좋은 사람이에요. 따뜻한 사람이고, 상처도 많아서 남한테 상처 주지 않을 거고, 엄청 다정한 사람이에요"
"그거 좋아하는 거 아니야. 측은지심이야"
"아니야!!! 아빠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네가 착하고 물러 빠져서 그래"
".... 나 저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그렇게 알아"

문을 쾅 닫았다. 축저진 들꽃들처럼 나도 고개 숙여 울었다. 아빠에 대한 분노와 그에 대한 미안함이 공존했다. 사실 4번 만난 게 다였으니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는 아니었지만, 이왕 결혼을 할 거라면 대화가 잘 되고 다정한 사람과 하고 싶었다. 그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