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38 사랑은 하면 할 수록 폭력적이다


한 침대에 누워 각자의 등을 지고 자는 날이 지속되었다. 어느 날은 이불 사이의 간격이 유독 멀게 느껴지고, 다른 날은 누운 사람이 죽부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더 이상 내게 설레지 않고, 기대조차 하지 않아 한편으론 편하고 좋았다. 결혼생활 7년이면, 키스는 커녕 손 한번 잡기도 어색해지는 사이가 될거라 생각했다. 안심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목이 늘어지고 젖이 흘러 얼룩진 티셔츠에, 더이상 달달한 샴푸향이 아닌 비릿한 젖냄새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를 안았다. 출산한지 불과 1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가슴에서는 젖이 흘러넘쳤고, 그럴 수록 그는 내게 더 파고들어 집요히 날 안았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일이 단지 욕망의 해소가 아니라 위안이고 교감이며 존재의 확인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일방적인 관계가 싫었다.

성욕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욕정은 왜곡이다.

성욕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따뜻한 끌림이며, 욕정은 상대를 물건처럼 보는 충동이다. 욕정은 감정이 없고, 목적만 있다. 성욕은 관계를 살리고, 욕정은 관계를 망친다.
부끄러워할 건 부부간의 욕망이 아니라, 욕정을 잘못 다루는 태도다. 욕망을 감춘다해서, 부정한다고 해서, 품격이 생기는 건 아님을 나도 안다. 사랑없는 욕망은 공허하고, 사랑 위의 욕망은 아름답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만 욕망했으며 욕정했다. 그건 결혼한 횟수가 9년이 지났지만 여전하다.
특별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뛰어난 외모라던지, 특출나게 좋은 몸매라던지와 같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아줌마. 딱 그정도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자면 단점이 많은 나였다. 경험이 부족해 지겨웠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안으려 한다. 9년 중 4년은 어쩔 수 없이 안을 수 없는 상황이였고, 그렇다면 5년동안은 평균적으로 석달에 한번, 최근에 와서야 한달에 한번으로 정했다. 안다. 적은 횟수라는 것을.
나에게도 말못할 고충은 있다. 엄살이 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통증에 취약하다. 뿐만 아니라, 뜨거움 보다는 미지근함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마디로 몸보다는 마음이 먼저다.
눈빛 하나에 불이 붙고, 하루 종일 그 생각뿐이던 신혼 시절은 내게 한번도 없었다. 아팠고, 무서웠다. 그러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와서는 힘으로 안았던 적이 있다. 그날은 내게 씻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박혔다.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밀어내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무기력은 오래갔다. 병들어 갔음을 알지 못했다. 어리지 않았지만 세상물정을 몰랐던 나는 다들 그렇게 산다고 단정 지어버렸다. 그러다 임신을 했다. 내  뱃속에서 아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꽤 신비롭고 그런 내가 기특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길지 않았다. 아이는 이유 없이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또 임신을 했다. 그 아이도 지키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태동까지 느낄 수 있을만큼 뱃속에서 튼튼하게 컸다. 기특했다. 조그만 내 배 안에서도 아기가 산다는 것이, 정말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했다. 그 시기 만큼은 날 안을 수 없었다. 나는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강한(?) 엄마였으니까.
골반이 좁아 자연불만하면 아기와 산모만 고생할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나는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참 많다, 인생에는. 조산으로 응급 제왕으로 출산했다. 엄마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도 아직 덜 컸는데 내 젖을 먹고, 내 품에서 잠들고, 날 보고 웃는 아기.
거기다 그런 어리숙한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까지. 버거웠다. 유독 유두가 작은 나는 젖먹일 때마다 곤욕이었다.  아기와 나는 한 겨울이었지만 한 여름을 방불케했다. 아이는 작은 유두에서 나오는 젖을 먹으려 안간힘 썼고, 어미는 작은 유두가 아기 입에서 빠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아기는 잠이 들고 나는 거실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눈은 충혈되어 있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가슴에는 모유가 흐른 자국까지, 속목에는 아대를 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 남편은 사랑해주었다.
둘째를 낳고 나도 중년이 되었다. 전보다는 남편이 편해졌고, 내게도 여유가 생겼다. 익숙함의 여유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물었다. 잘 하지도 못하는데 왜 자꾸 하려고 하는지.. 그의 대답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내가 처음이 아니었고,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남편이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했다. 남편도 처음엔 내가 경험이 처음이라 그런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뭔가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특출나게 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러나 출산을 하고,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다르다고 대답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남편이 회사 사람들과 용한 점집에 다녀왔던 날 내게 녹음한 파일을 들려준 적 있었다. 남자가 잘 꼬이는 사주에, 남자 손을 잘 탄다는 사주팔자를 갖고 있다 했다. 몰랐음 몰라도 들었으니 찝찝했다. 어머님께서 가끔 부적을 써주시는데,  나도 한번 따라가고 싶다고 해서 간적이 있다. 무서웠다. 굉장히도.. 화려한 장신구들과 그림만으로도 기가 눌릴 것 같은 중압감.

총각도령이라는 그 무속인의 첫마디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잊을 수 없었다.

"어느 누구와도 속궁합 잘 맞고, 착하기 까지 한데, 어떤 남자가 싫다하겠어. 그렇게 타고 난 것을. 부적 백날 써도 타고난 사주팔자는 못고쳐"

어머님과 나는 서로 민망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웃돈을 더주고 부적을 써달라했고, 나는 그 부적을 지갑 깊숙히 넣어두었다. 부적이 효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임신부적은 대충 쭈셔넣고, 남자 안꼬이게 하는 부적은 고이 접어 넣어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짜 눈에 보이지 않는 사주 때문인가 하고...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남편이 나를 지겨워하기를 바래야 하는 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싸는 소리인가...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이상적인 여성이자, 엄마이자 아내이고 싶었다. 내가 꿈꾸던 어린 날에는, 내가 어른이면 내가 중년이 되면 그렇게 될거라 생각했다. 어렴풋이 지금은 이상적인 여성이 되어 가는 길쪽으로 걷고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내면에 무언가 뻥 뚫린 듯 꿈틀거리며 그 존재를 드러냈다. 그 존재는 '사랑'이었다. 내가 수없이 생각했던 사랑은, 사랑을 하면 할 수록 나를 망가뜨렸다. 처음하는 사랑이라고 마냥 아름답진 않았고, 처음 한다고 봐주는 법은 없었다. 나를 파괴시키고, 금기를 파괴시키는 폭력성을 지닌 지독한 사랑은 색다르게 변질되어 갔다. 안 된다고 도덕심이 외치지만, 그럴 수록 집요하게 괴롭혔다.
중년이 되어 잃어버린 건, '욕망'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이라 믿고 싶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랑을 뮤즈로 이용해 글을 쓸 것이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 사랑을 버릴 것이다.




#등굣길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아침 밥을 급히 차려주고, 빠르게 욕실로 향했다. 20분은 족히 걸리는 샤워시간은 5분만에 마쳐야 했다. 머리를 말릴 시간도 없이 화장만 대충하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유치원 차량은 간신히 놓치지 않았고, 당연하게 우리 넷은 등굣길에 올랐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머리 푸니깐 달라보여요^^"
"말릴 시간이 없어서...."
"예뻐요^^"
"^^;; 감사합니다"
"왜 맨날 묶고 다녀요? 푸는게 훨씬 예쁜데?"
"얘들 키우는 데 머리 풀고 다니면 거추장스러워요"
"풀고 다녀요. 진짜 예뻐요"
"남편이 싫어해요"
"예뻐서요?"
"아니요!!! 저랑 이미지가 안맞다네요"
"???"
"머리 풀면 여성스럽데요"
"머리 묶으면 남성스럽고요?"
"아니^^ 쾌활한 모습만 보다가 여성스러워서 어색하데요"
"에이, 머리 푸는게 예뻐서 행님이 그냥 하는 소리에요^^"
"^^;;"
"왜 그렇게 웃어요?"
"낯간지러운 소리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하기에..."
"진짜 예뻐요^^"
"감사해요^^"
"뭐 안 사줘요??"
"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씨... 물러요!!!"
"ㅋㅋㅋㅋ 농담입니다^^ 호빵 사줄까요?"
"오늘은 사무실 일찍 가봐야해서요"
"태워드릴까요"
"버스 놓치면요^^"
"우리 조금 천천히 걸을까요?? 나 다리 아픈 거 같은데"
"진짜.. 원래 이런 이미지였어요?"
"늘 이랬는데?"
"외관상...법 없이도 살 거 같았는데,  오빠도 그랬고요"
"푸하하 ㅋㅋㅋ 제가요??"
"아니에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했을텐데요?"
그쪽은 원래 잔뜩 긴장하다가 본인 기준에 괜찮다 싶으면 긴장을 풀어버리나봐요?"
"다들 그러지 않아요?"
"전 어떤 기준에서 좋은 사람이 된건데요?"

그의 물음에 정확한 계기가 떠오르지 않았고, 나는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만 했다.

"나 좋은 사람 아니니까 경계 막 풀고 그러지마요"
"그렇게 말한 사람 치고 나쁜 사람 본 적 없어요"
"진짜에요. 형님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거라니깐요^^"
"네네~~ 다시 경계 모드 들어갈게요. 저, 출근할게요"
"그래요. 오후에 봐요"
"네~~"




#보호 해드리겠습니다, 내가.

본인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극구부인한 사람은 강아지를 보고 쩔쩔 맸다. 바보.
한마리도 무서워하던 그는 두마리를 보고 경악했다ㅋㅋㅋㅋㅋ
우리에게 관심도 없는 강아지를 굳이 나더러 시선을 끌라고 했고, 그 틈에 키만 멀대같이 크고 실속없는 사람은 긴 다리로 혼자 지나갔다. 진짜 나쁜 사람이 맞았다.
위험으로 부터 나를 미끼로 던졌으니 말이다.

"진짜 나쁜 사람이 맞았어요. 날 미끼로 던진 셈이잖아요"
"전개가  또 그리 됩니까 ㅋㅋㅋㅋ"
"정작 강아지들은 아무 관심도 없는 데 혼자 무서워하는 모양새가 퍽 웃깁니다^^"
"진짜 너무 무서워요ㅠㅠ"
"길가다 목줄 풀린 강아지 만나면 연락해요 ㅋㅋㅋ 달려갈게요"
"오~~~"
"보호해드릴게요, 나쁜 사람을 ㅋㅋㅋ"
"뒤끝있죠??"
"뒤끝만 있겠어요??ㅋㅋㅋㅋ"
"ㅋㅋㅋㅋ 아주 듬직하고 든든합니다!"

그는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만큼, 보호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했다. 조금만 더 일렁이면 나의 시선을 그가 끌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지금은 그를 보호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