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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66 고마, 우리 친구합시다


하얀 순백색의 조그만 팝콘 같은 꽃잎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다.  익숙한 향기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은목서. 금목서 보다 향기의 진하기가 덜하지만, 가슴 깊이 파고드는 은은함과 하얀 순수함이 청초해 보인다.
어지러이 흩어지는 계절에도 당신을 사랑하는 향기는 여전했고,  나는 그가 사무치게 그립다.

휴대전화 너머로 당신의 연락이 피어날 때
가슴은 끓어오르고 숨결 끝에서 손이 멎는다.
달아난 기운을 붙들어 넘겨본 한마디,

"편집장님"

결국 전송치 못하고
따사롭지만 어딘가 서늘한 가을 끝에 매달린 호칭.
닿지 못할 손길과
건네지 못하는 마음이
당신 하루를 향하는
그런 날이 계속 이어졌다.



밤공기가 고요히 가라앉고, 숨소리 마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움이다.
나는 숨을 삼켰다.
당신의 얼굴 선, 길게 늘어진 눈꼬리, 운전대 위의 조금 작은 듯한 손마디. 그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눈을 떼지 못했다. 순간마다 내 기억 속으로 박혀 들어왔다. 피부로, 심장 깊은 곳으로.
영영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직감. 당신을 붙잡아야 한다는 확신이 가슴 깊숙이 나를 죄어오지만, 그 어디에도 당신을 붙잡아야 하는 연유는 없었다.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선율이 휘몰아쳤다. 그 순간, 숨이 덜컥 멎었다. 깨문 입술 사이로 그리움이 터져 나왔다. 괜스레 속옷 안으로 손이 들어갔다. 그리움을 견디는 법 따위는 애초에 몰랐다. 당신은 상상 속에만 있었고, 나는 그 허상을 핑계로 스스로를 저급하고 질척이게 만들었다. 나에게는 당신이 필요했다. 숨결조차 화음처럼 길게 울리다 사그라지는 아름다운 당신이..
당신의 세계가 다시 나를 붙들었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밤은 길어졌고, 당신을 오래 그리워할 수 있다고.... 나의 손은 오래도록 속옷 안에서 나오질 못했고, 또 오랜 시간 당신에게 질척거렸다. 짝사랑이었다.
밤이 두려워졌고, 새벽이 무서워졌다.
손끝에 남은 그리움의 잔열로 글을 쓰고 있다. 낯설지만, 그게 지금 내 모습이었다. 절망과 낙담 대신 글을 적는 일, 나는 지금 살아있었다.

나를 기다렸으려나..
기다리지 않으셨으려나..
나와 같지 않는 당신의 마음은 화살이 되어 늘 내게 향했고, 이번엔 꽤나 깊어, 상처가 심했다. 어느 누구와도 주고받는 연락, 그 흔한 연락 하나에 울고 웃는 내가 참 싫었다. 못나보였다. 자꾸만 자꾸만 당신에게 연락하려는 나를 다그치고, 어르고, 달래느라 종일 땀까지 흘릴 정도로 바빴다. 그 마저도 익숙해져 습관처럼 휴대전활 쥐고 쉽게 행복에 휩쓸리는 내가 참 어리석었다. 멈춰야 했다. 미웠다. 매번 좋아하는 쪽도 나지만, 멈춰야 하는 쪽도 나라는 사실에. 당신은 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날 밀어내지 않았다. 도깨비도 바람둥이도 아니지만 나를 그저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하는 당신이 미웠다. 내 쪽에서 먼저 당신이 싫증 나기를 수천번 바라고, 나에게 당신을 사랑 아닌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날이 오기를 수만 번 바란다.

혼자 좋아하는 짝사랑, 외사랑 이런 거 말고, 그냥 친구 할걸.. 처음부터 사랑 고백 말고, 너랑 친구 하고 싶다고 우정을 말해버릴 걸 그랬어.  나이차이가 좀 나긴 해서 친구가 썩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말이야. 그랬더라면, 친구로 오래오래 당신 옆에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어차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는 건  매한가지니까.. 우리가 친구였다면, 당신은 내게 지금처럼 다정히 대해주었을까. 나는 분명하게도 당신에게 잘해줬을 거야. 다정히 당구도 가르쳐주고, 상냥하게 골프도 가르쳐줬을 거야. 그뿐이게? 게임도 친절히 알려줬을 거야. 그러고는 내기 당구를 하는 거지. 나는 쉽게 당신을 이기고, 맛있는 밥을 사달라고 할 거야. 그리곤 배꼽이 튀어나올 정도로 빵빵하게 먹은 다음, 나란히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금목서 핀 나무 근처를 걷는 거지. 당신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부러워하고, 나는 당신을 보고 한껏 으스대며 웃었겠지. 한참을 금목서와 은목서 핀 공원을 걷다 헤어지는 거야. 어때? 좋지?
그다음에는 같이 필드 나가서 하루 종일 붙어있고, 끝나고 나면 무알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거지. 그래도 난 분명히 취할게 뻔하지만.. 당신한테 말이야. 당신은 또다시 내 머릴 쓰다듬으며 말하겠지,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나는 예쁘게 웃으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을 테고^^
그다음 날은 피시방에서 당신에게 게임 한판 하자고 불러낼 거야. 그러면 당신은 슬리퍼 끌며 편한 옷을 입고 어슬렁 나올 거야. 그 모습마저 내 눈에 무진장 멋져 보일 테지만. 우정 뒤에 숨긴 진짜 마음은 모니터에 숨겨두느라 엄청 분주하겠지? 나는 또 모든 게임에서 이길게 빤하지만, 자꾸만 지면 당신이 지루할까 싶어 나는 일부러, 일부러 져주는 척하겠지. 빤해.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나를 이겼다고 좋아하겠지? 그럼 나는 짱 멋있다고  엄지손가락 높이 들며, 물개 박수를 쳐줄 거야. 연기를 잘해야 될 텐데...^^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게 많을 줄 알았으면, 그냥 당신이랑 친구 할 걸 그랬어... 늦었지만, 그냥 친구 할까? 그게 좋을 거 같아. 딱딱한 호칭 말고, 이름을 부르기엔 너가 너무 나이가 많고... 삼촌이라 부르기엔 아직 젊고, 오빠야라고 하기엔... 어색하네. 아무래도 이름을 부르는 게 낫겠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열 살까지 다 친구라더라고^^;; 맞을 거야. 아마.
계속해서 날 사랑하지 않을 거라면, 우리 관계를 다시 맺어보자고.. 나는 당신을 보지 않고선 살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  우정을 방패 삼아 선만 넘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나 할래!!!!!
너랑 친구 할래^^
나랑 친구 하자.
나 같은 친구 어디서 구할 수 있을 거 같아?
없어, 그러니까 하자고 친구^^
문방구 가서 같이 우정 반지 하나씩 골라서 나눠 끼고 말이야. 같이 가서 골라야 해. 넌 사기를 잘 당하니까... 아마 그 반지를 나눠 가진다면, 나는 그 반지 평생 네 번째 손가락에서 뺄 일은 없을 것이고...

우리, 친구 할래요?^^




매사 여유 있고 유연한 당신과는 다르게 나는 늘 어설펐어요...
서툰 고백이 가장 진심이라는 거, 알고 계신가요? 있죠. 난 당신을 어머어마하게 좋아해요. 당신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요. 나만큼 좋아해 달란 적 없는데.. 그만큼은 바라지도 않는데..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조잘조잘거리고, 텐션이 높은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렇게 해볼게요. 그럴 수 있어요. 나의 성격과 영 반대는 아니거든요. 당신 앞에서 실수할 까봐 말을 아끼고, 침묵을 택해서 그렇지, 나도 발랄할 수 있어요. 그렇게 바뀌면 사랑해 주실 건가요? 뭐, 설마... 키 165 넘어야 좋다 이런 거 아니죠? 그러면 나 울어요.
당신이 날 사랑한다고 해도요, 같이 도망가자고 그러지 않을 거예요. 책임지라고도 하지 않을 거고요. 달라지는 건 단연코 없어요. 그냥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어요.. 당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어떤 건지 궁금해요. 그저 당신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 중에 잠시 포함되고 싶을 뿐이에요. 당신이 원래 사랑하는 이를 미워하란 말이 아니고요, 나만을 사랑해 달라고도 하지 않았어요. 잘 모르시나 본데, 나요, 당신이 날 사랑해도 당신의 옆자리를 꿰찰 정도의 막무가내는 아녜요!!  그렇게 어리석진 않고 억지 부리는 사람 아녜요.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슥하지만, 나 참 착하고 조신해요^^;;;
내가 신경쓰인다매요! 온통 나를 흔들어 놓고, 설레게 해 놓고 정작 또 사랑은 안 주시는 거, 그게 바로 바람둥이예요. 모르셨지요?

곧 당신에게 가는 마음을 정리할 거예요.
가지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이 마음 왜 아직 품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내게 너무 가혹하십니다, 당신은.
잊지도 못하고, 지우지도 못하는 이 마음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려 들고 있어요.  내게 너무 하십니다, 당신은.
이별하지도 못하면서, 떠나버리지도 못하면서 붙잡고 있는 당신을 놓아줄 겁니다. 내게 정말 잔인하십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한결같이 사랑을 고백하고 있지만,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요.
당신의 자리를 다른 누군가를 메우고 글로 채우다 보면 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초콜릿우유를 좋아하시는 듯한 취향도 그 누군가와 닮았고요, 내게 다정한 것도 비슷해요. 당신과 닮은 점이 많고, 비슷한 점이 많은 그 사람으로 땜빵으로 억지로 메워보려고요. 기다리세요, 내 사랑에서 자유로울 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어요. 훨훨 날아세요. 도망갈 기회 줄 때 내게서 멀리 떠나가세요. 아마 마음은 당신에게 더 기울 거예요, 한참은. 뻔하죠. 별 수 있나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두고두고 가슴에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다른 누군가를 그 자리를 대신하다 보면 내 뮤즈가 당신에게 그 누군가로 바뀌지 않을까요. 그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말은 아녜요. 당신을 사랑 없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이용한다는 겁니다. 노력해 볼게요.. 당신이 그랬잖아요, 난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잘 자요, 내 사랑.
잘 자요, 나의 뮤즈여.
잘 자요, 내 친구.
잘 자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