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릴 때마다 당신의 이름이 젖습니다. 그 이름은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마르지 않았거든요. 어렸을 때는 비가 하늘이 울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건 하늘의 울음이 아니라, 내 마음의 울음이었어요. 유리창을 타고 내리는 빗줄기마다 내가 참아낸 날들이 묻어 나왔어요. 젖은 세상 속, 누가 내 슬픔을 닦아줄까요,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요.
비는 지난날의 기억을 데려옵니다.
처음 만났던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죠. 숨 막힐 만큼 좋았던 그날의 기억이에요. 당신의 살냄새가 진동하는 차 안, 운전대를 부드럽게 잡고 있었지만 와이퍼는 저 홀로 무척 바삐 움직였죠.
와이퍼와는 달리, 당신은 엄청 여유로웠고, 무척 부드러웠어요. 꽤 멋있고 성숙한 모습에 어른 남자다웠어요. 당신과 내가 주고받는 대화는 온통 다정했고요, 이따금씩 대화 중에 눈주름 파여 웃는 당신의 웃음에 어쩔 줄 몰라 고개를 떨어뜨리기 일쑤였어요. 그날, 우산을 함께 쓰고 걸어볼 걸 하면서 후회해요. 서로의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간격 속에서 당신과 걷고 싶어요. 필시, 나의 걸음에 맞춰 걸어주실 당신의 다정함에 퍽 행복해질 내가 눈에 선해, 무척 서글픕니다. 내게 우산이 꽤 많이 기울어져 당신의 젖은 어깨가 빤해서 무척 시립니다.
당신과 함께 빗속을 걷고 싶어요.
나는 결코 당신과 많은 걸 바라지 않았어요. 우산 하나를 쓰고서, 단지 빗속을 걷고 싶었을 뿐이에요.
시간이 지나도 비의 냄새는 똑같아요. 젖은 흙냄새, 오래된 기억의 향, 그 냄새가 코끝을 스칠 때마다 마음속 무언가가 흔들렸어요. 당신을 잊는 법을 배우고 있지만, 향으로 남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에요. 여전히 내 안에서 당신은 살아있어요. 다들 그러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고. 그렇지만 나는 알아요. 괜찮아진다는 건 상처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란 걸요. 그 흉터는 비가 내릴 때마다 다시 젖어요. 그리고 나는 그 위를 천천히 어루만집니다. 몹시 아픕니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요, 그칠 줄 모르고 내립니다. 밤새 내리려나 봐요. 나는요, 당신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한껏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당신의 품에 안기고 싶어요. 나의 약점을 온통 드러내고 있어도 괜찮은 당신을 안고 싶어요.
당신의 목을 세게 끌어다 안고서, 많이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막 함부로 사랑을 고백해버리고 싶어요.
당신을 떠올리다 보면 없던 성공 욕심이 마구 생겨요. 내가 아주 유명한 작가가 되면, 당신을 데리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요..
당신이 그늘이 필요하면 아무 망설임 없이 그늘이 되어주고요, 웃음이 필요하면 기꺼이 광대가 되어줄 수 있어요. 당신에게만 바람에 흩날리는 강아지풀처럼 살랑거리게 됩니다. 아주 어마어마하게 당신을 좋아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걱정은 마세요. 당신을 잊는 법을 배우고 실천 중이니까요.
당신과 나는 어제도 멀었고, 오늘도 멀었으며 내일은 더 멀 것이기에..
'언제 한번 봐요, 비 좋아하잖아요'
당신과 주고받았던 문장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두 로망이었네요. 기억하시려나요. 당신이 했던 말인데... 비 오는 날, 억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그러면 안 되겠지요.. 내년 여름까지 기다려야 되니까요.. 상상해 봤어요. 신고 있던 신발 안으로 비가 질척거릴 것이고, 억수같이 내리는 비로 옷은 우산을 쓰고 있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젖을 테고, 그럼에도 당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빗속을 걷고 있음에 나는 '너무 좋아요'를 연신 내뱉으며 당신을 볼 것이고, 당신은 그런 나를 보고 예쁘게 웃어 주실테죠. 그 낭만은 상상만으로 너무 좋아 몸서리치게 됩니다.
진심이었기에 매일 밤 무너져 내렸고,
사랑이었기에 매일 힘들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분명 아물겠지요?
왜 하필 당신은 그토록 예쁜 모습으로 내 안에 머무르시나요.
눈꼬리 길게 쳐진 바람둥이 같은 웃음이 매 그리 좋다고... 노화와 중력으로 주름이 깊게 파인 그 눈웃음이 매 그리 좋다고.. 작은 눈매가 반달을 그리고 웃는 그 흔한 웃음이 매 그리 좋다고.. 나는 당신을 못 잊는 걸까요.
윽...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오늘은 진짜 자야 하는데 모두가 잠든 밤, 나 혼자 남겨져있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잠결에도 쉬이 내게 다정을 내어줄 것 같은 당신 품에 기어이 파고들고 싶어요. 당신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있으면 노곤노곤 잠이 올 듯도 한데 말이죠. 잠이 달아날 수도 있겠군요. 상상해 버렸어요. 잠들어 있는 당신 모습을요.
눈썹을 만지고, 결 따라서 속눈썹도 쓸어보고, 콧방울도 눌러보고, 입술 선을 따라 만져볼 테고.. 고이 닫고 자고 있는 당신 눈꺼풀을 억지로 열어볼 테니까요.. 괴롭히고 싶어요.. 당신을요, 무척이나요.
내가 괴롭힌데도 예쁘게 웃으며 몸을 내어줄 것도 같아서 그런가 봅니다. 이건 다, 당신이 내게 너무 다정한 탓이에요. 내 탓이 아니라고요..
이만 노트북을 끄고, 자야 될 거 같아요.
이대로라면 밤을 새워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내가 안 봐도 비디오이기에..
잘 자요, 당신.
꼭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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