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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64 낮술의 휴유증


미치지 않고서야.. 가지 말았어야 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신이 나서, 쫄래쫄래 간 거냐고ㅠㅠ
아니지. 그가 퍼뜩 연락을 주었다면, 나는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바빴고, 꾸준히 바빴다.

<이제 가요>
<오지 마요. 내가 가는 중인데..>
<나도 가요>

오지 말라면서도 그를 보러 가는 길 내내 내 입꼬리는 반달모양으로 굳어있었다. 휘어진 눈은 반쯤 감겨 앞이 보이지 않았고, 심장은 더 요란히 뛰었다. 술에 취한 탓인지, 그를 본다는 사실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숨 한번 고르지 못한 채 요란하게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문을 박차고 세게 열었다. 술기운의 힘은 대단했다. 그러나 그가 보이지 않았고, 빠르게 풀이 죽어갔다. 그러나 어디선가 그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랐다. 술에 취해도 잘 놀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상하게 유달리 더 잘생겨 보였다.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그 한 사람만 또렷하게 남았다. 너무너무 좋았다. 당장에 손잡고 콩콩 뛰고 싶었지만,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기까지 꽤 힘들었다. 술에 취한 나는 용기가 그득 찼으니까....ㅜ

"뛰어왔어요?"
"네^^"
"술 마셨어요?"
"나 안 취했어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취해 있었다....... 왜 사람들이 꼭 '안 취했다'라고 말하는지 그제야 알았다.
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감추려 애쓸수록 모든 게 들통났다. 들고 있던 물건은 떨어뜨리고,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찾았으며, 똑바로 걷고 싶었지만 발은 천근만근, 내 몸인데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분은 너~~ 무 좋았고, 이상하리만치 행복했다. 내 옆에는 내내 그리워하던 그가 있었으니까. 자꾸, 자꾸만 흥이 났고, 신이 났다.  연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밝아 보여서 좋네요^^"

평소 무던히 조용한 편인데.. 술에 취해 업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ㅠㅠ 못 산다 진짜.
머릴 쓰다듬고 싶었다. 잘 컸다고, 아주 잘 컸다고 엉덩이도 토닥거려 주고 싶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참아냈으니까.
아마 그랬으면...  윽, 생각도 하기 싫다.

"태워줄까요?"
"아뇨!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냥 타고 가요^^;;"
"네^^ 나 절대 안 취했어요^^"

입에 재갈을 물렸어야 했다. 묻지도 않은 말을 연신 내뱉었다.  '나 안 취했어요'  그 말이 입버릇처럼, 유행어처럼 흘러나왔다.

"눈이 빨개요"
"울었어요^^"

술에 취하면 조금 더 솔직해지는 나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자랑이다....
취한 나에게도 그는 친절했고, 무진장 다정했으며 상냥했다.
힛, 너무 좋았다. 술에 취한 나도 그를 사랑하나 보다. 웃겼다.
나는 단단히 취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울고 난 직후라 기분이 최강 좋을 때였다ㅜㅠ 그나마 엉엉 울 때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해야 될는지...

술에 취한 걸까,
그에게 취한 걸까.
하이볼이 달았는지,
사랑이 달달했는지.

나는 웃고, 또 웃었다.
그 웃음 사이로 그의 얼굴이 번졌다.
그리고
그를 끌어와 입을 맞추고 싶었다.
하이볼보다 그의 입술이 필시 더 달았으리라.

안경을 썼는지, 쓰지 않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취기가 올라.. 그만 그에게 술주정을 부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경멸하는 사람이 술구세와 술주정하는 사람인데.. 내가 그랬다. 그것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말이다. 얼마나 나를 못나게 보셨을까.. 운전하는 그의 옆에서 쉴 새 없이 웃고 떠들고..... 미친 게지. 그는 어떤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을까ㅠ

"과장님! 사탕 드실래요??^^"
"주세요^^"

웃긴 이야기 같지만, 사실 슬픈 이야기다. 나는 먹을 것을 잘 나눠주지 않는다. 내가 먹을 것도 부족하기에.. 그러나 그에겐 자꾸 주려하는 내가 보여, 안타깝다. 그는 모르겠지.

"과장님!! 여기 하수구 있어요!!!!!"
"알아요^^"

.... 아마 이 일이 그에게 잊힐 때까지 먼저 연락할 일은 없다. 창피한 게 아니라 쪽팔리니까ㅠㅠ
적당히 취한 나는 평소와 다르게 씩씩했고 용감했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굳건한 사람이었다.


작가님 술도 깰 겸 바람 좀 쐴 겸 해서 같이 있으려고 했는데 편집할 게 있어서 바로 왔어요..
나쁜 작가!!!!!! 만수무강하세요 ^^ 편집장님

아니.. 나도 작가면서, 나쁜 작가라고는 왜 그랬니..ㅜ
미쳤어 정말.  그러나 그 나쁜(?) 작가는 나쁜 작가가 아니었고, 나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그가 잠시 시간이 되어, 나와 같이 있게 된다면.. 바람만 쐬고 있을 내가 아님을 안 봐도 뻔하다. 눈에 선해서 이제는 지겨울 따름이다. 기분 좋게 술에 취했고,  내 옆에는 그가 있고... 취했으니 용기도 있고.. 그러고 보니 다 있었지만, 또 내게 향하는 사랑은 없었네.
나는 그에게 필시 안아달라 했을 거고, 그는 거절하지 못했겠지.  허벅지 위에서 나는 그의 목에 코를 박았을 것이다. 손끝이 차가운 내 손은 옷소매로 숨기고서 말이다. 그러고는 내 코가 살냄새에 무뎌질 때쯤 그를 탐하겠지.. 그의 동의 따위는 구하지 않고서 말이다. 취한 나는 용감하고 씩씩하니까.
그러고는 또 어려운 말을 기어이 꺼내고 말겠지.
넣고 싶어요.
그에게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고, 질척이는 나는 취하던 취하지 않던 매한가지였다.
그의 말에는 또 내게 여지를 주고 있었다.

'바람 쐴 겸 같이 있으려고 했는데'
'바람 쐴 겸 같이 있으려고 했는데'

나 또 하이볼 한 캔 마시고 가???ㅋㅋㅋㅋㅋ
제발 속 보이는 짓 하지 말자. 곧 마흔이잖아^^

바람 쐬면 금방 괜찮아져요^^

그는 분명히 내가 술에 잔뜩 취한 줄 알겠지.. 아닌데.. 많이 취한 건 진짜 아닌데.. 팩소주 하나 마실 때보다 덜 취한 건데.. 나는 그와 같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사이가 아니기에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거지..?

술에 취해 그를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말았다.
아마 글을 안 보시나 보다. 잘 된 일이었다. 너무 구질구질하고 질척이는 나를 보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살 안 빼도 돼요~
충분히 예뻐요^^

바람둥이가 하는 말은 전부 사탕발린 소리인 걸 알지만, 그래도 나는 좋았다^^ 아닌가? 사탕이 좋았던 것일까. 아마 이때부터 기분 좋음은 서서히 상승세를 탔던 것 같다. 반주를 즐길 정도면 그는 애주가일 것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웃겼을까. 하이볼 그거 고작 하나 먹고, 비틀거리고 막.. 막 웃고 아무 때나 웃고 잔뜩 신이 나 있는... 나를 더 싫어하시려나 모르겠다. 그건 너무 무서운데...

오늘 기분 좋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내가 평소 암울해 보였나..? 막 또 내가 한없이 우울하고 그런 사람은 아닌데.. 그가 보는 나는 어떨까..
이토록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때는 한참 지난듯하나 나이에 맞지 않게 나는 자꾸 그에게 설렌다. 올해도 다 갔다. 날은 계속 추워지고,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다 잡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어느 날은 차갑게도 불고, 어떤 날은 시리게도 거세게 부는 찬바람에 매일 휘청거린다. 나는 그 속에서 매일 다짐한다. 딱 오늘만, 오늘까지만 사랑하는 거야, 하면서... 이렇게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나는  마냥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여기서 그를 더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섭다.
그를 끌어안고픈 날들을 참느라 수없이 많은 밤들이 고통이다.

어김없이 나는 그가 머무는 길목에서 멈추겠지.
이제 거기 멈춰 선다고 해서 나를 보시기를 바라며 연락하지 않는다. 어긋나고 어긋나기에 상처를 덜 받고자 함이다.
그 먼 거리에서 그가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그게 나의 낙이었다. 나의 세상이었다.
그는 매번 내 세상에서 빛나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고서.  그 덕에 나는 며칠 힘든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었다.  

모르는 이들 앞에서
노래를 하고,
웃음을 지어 보이고,
목소리를 팔며
나는 그렇게 나만의 방법으로
그에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