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일 오전 그 시각.
당신이 머무는 곳 앞에서 다시 한번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다시는 멈추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놓고도.. 결국 또 그 자리에 서고야 말았어요.
그러나 그곳에 멈춘 건, 다른 이유였습니다.
겉으로는 나무에 핀 꽃을 찍기 위함이었지만요, 실은, 나조차 어떤 이유였는지 정확히 말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나를 보기 위해 멈춰 섰는지, 꽃을 찍기 위해 멈춘 건지, 아직도 마음은 분간을 못하고 있습니다.
고민했어요.
그동안 당신이 내가 쓴 글을 보고 있으리란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래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전에 작가님이 이야기해 줬어요"
곱씹어 보아도, 당신께 잘 보여야 하는 입장에서 나의 지난 가출 이야기를 꺼낸 기억은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 당신은 알고 있었지요.
요즘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스스로도 내가 뭘 말했는지 헷갈릴 정도라.. 한편으로는 '내가 말했던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시 내 글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의 입장에서요.
비참했어요.
그제야 선명해졌습니다.
그동안 당신이 나에게 건넸던 모든 다정함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얼마나 가엾어 보였을까요.
얼마나 안쓰럽고 작아 보였으면, 그렇게까지 잘해주셨을까요.
나는 내 마음을 당신이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이렇게 모두는 아니란 말이에요. 지금 돌아보면 당신에게 비친 나는 애틋한 존재가 아니라, 연민의 대상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챈 순간, 슬프게도 모든 것이 이해되었어요.
아마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아요. 누군가 나를 이리도 간절히 바라고, 많이 좋아하고, 애절히 사랑하고, 끝없이 동경한다 그러면 내가 설사 상대를 좋아하지 않아도 잘해주고 싶으니까요. 당신도 그런 마음이겠죠. 분명히. 당신이 헷갈린다는 말도 내게는 설렘이었지만, 이제는 아님을 알아요.
나는요, 당신에게 부담이 되기는 싫었는데,
그 무게를 결국은 내가 주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끝끝내 모르셔야 했어요.
알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저 사랑한다는 사실만,
딱 거기까지만 머물렀어야 옳았던 것을.
당신이 보실 줄 알았으면 이렇게 내 마음을 다 까발려 적진 않았을 테니까요. 후회해요. 당신을 적지 말았어야 했어요. 당신을 주인공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어요.
들키지 말아야 했어요.
내가 글을 믿는 사람이라서 일까요.
글에는 말보다 오래 남는 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스스로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짊어지지 않아도 될 부담을, 내가 거두어 가려합니다.
나는 참 어리석었고,
당신은 그 어리석음을 끝까지 믿어주려 애쓴 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가엾어 보였다는 반증일까 싶어 조금은 무섭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당신을 참 많이도 좋아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에 대한 고백이었으니까요. 당신을 처음 좋아하게 된 날의 설렘과 끝내 붙잡지 못한 사랑 앞에서 절망과 낙담까지.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여지없이 꺼내보였어요.
여전히 사랑이 남아있는 애틋함이지만, 그만 내보여서는 안 됨을 압니다. 잔뜩 때 묻은 세상 속에서 내가 가진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당신께 전하고자 했어요. 그게 잘 되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애쓰지 마세요.
더 이상 내 사랑은 당신께 사랑이 아닌 것을 알았어요. 부담이었을 거예요.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봄이 주는 설렘, 여름의 뜨거운 사랑,
가을의 애틋함, 겨울의 고요한 독백.
두 계절이 아니라, 네 계절을 두 번이나 건너면서도
나는 단 하루도 당신을 허투루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독히도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을 앓았어요.
올해는 또 비도 많이 내렸어요. 유독 이상하게도 말이에요. 그 비를 핑계로 그리움에 질식되지 않게 장마처럼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당신을 썼다 지웠다 골백번은 반복했어요.
남몰래 울컥했고, 조용히 지쳐냈고, 목젖까지 차오른 그리움 사이에서 무수히 당신을 썼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좋아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고 기어이 오늘까지 왔어요.
그리고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지금조차도,
낡고 조금 진부한 고백이다만, 나는 당신과 함께 하는 겨울을 상상합니다. 당신의 온기만 있다면 결코 시리지 않을 겨울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가령, 내 목에 다정히 목도리를 둘러주던 당신의 상냥함이 그리워지기도 하고요..
더 이상 나는 당신과는 낭만적인 것을 함께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그 낭만 속에 나를 두지 않으려 합니다.
마음이 난장판이 되어버렸어요. 알아버린 마음은 다시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나는 오랫동안 착각했습니다.
혹시나, 혹여나.. 당신이 나를 좋아하고 있을 거라 믿은 하루들이 분명 있었으니까요. 설레었어요. 그런데요, 그게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어요.
나 혼자 하는 착각이었고, 오해였어요. 당신은 철저한 연민이고 나를 향한 분명한 동정이었어요.
그 믿음은 연민이었고, 그 다정은 동정이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
그럼에도 나는 또 쓰는 쪽에 서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씁니다.
앞으로의 문장이 날을 잔뜩 세워, 누구를 찌를지, 나를 베일지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내 발이 또 당신의 창가.. 그 길목에서 발길을 멈출지조차 알 수 없고요.
다만 오늘만큼은, 이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당신은 부디, 오늘은 누구의 짐도 아닌 채
안온히 잠들기를 바랍니다.
잘 자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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