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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30 금목서 향기에 가을이 실려왔다


등굣길)

"추석 잘 보냈어요??"
"네^^ 그쪽도 잘 보냈죠?"
"네. 살이 더 빠졌네요. 바쁘셨나 봐요"
"네.. 뭐^^"

"엄마, 이거 무슨 냄새야??"
"아~ 이거 금목서라는 나무에서 피는 꽃 향기야. 저기 저 나무"
"냄새 좋아"
"냄새 좋지??^^ 엄마도 좋아해"
"이모~ 저 나무 원래도 있었어요? 오늘 처음 맡는 거 같은데..."
"응. 예전부터 있었어. 금목서 꽃은 기온이 낮아지기 시작하면 한 번에 개화해서 갑자기 향기가 나^^ 지금부터 금목서 향기 맡을 수 있는데 그 기간이 길진 않아. 향이 너무 좋아서 가을의 향수 나무라는 별명도 있어^^"
"이모는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 엄마 꽃 좋아해. 엄청~~ 그렇지??"
"맞아. 이모는 꽃이랑 나무 좋아해. 좋아하니깐 잘 아는 거고^^"

그렇게 금목서에 대한 이야기로 등굣길을 함께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와 나는 또 나란히, 그러나 일정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렇게 나란히 학교 앞 횡단보도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초록불이 바뀌었고, 좀 빠르게 걸었다. 멀리서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셋이서 빠른 속도로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앞에 조심!"

그는 내게 조심하라고 했고, 앞을 보았을 때 자전거가 내 쪽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부딪힐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가 내 손목을 세게 잡아당겼다.

"아니, 거기서 눈을 감으면 어쩌자는 거예요! 피해야지"
"..."

그는 내게 화를 냈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와서 내게 다시  물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옆으로 피해야지. 왜 눈을 감아요??'
"무서웠어요"
"내가 안 당겼으면 진짜 부딪혔어요"
"알아요. 그래서 눈 감았잖아요"
"아니 그래 왜 감았냐고요. 학생도 그쪽이 피할 줄 아는 눈치였는데"
"무서웠다고 말했잖아요"
"....."

뭐 때문에 저렇게 단단히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어색한 분위기가 불편해 나는 설명해야 했다.

"불안장애, 강박장애가 있다는 거는 전에 이야기했잖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무서운 상황이 닥치면 그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지레 몸이 굳어요.. 상담선생님은 겁을 먹으면 몸이 굳는 건 생존을 위한 신체 반응이래요. 전 조금 심할 뿐이랬어요. 반사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일들이 내게는 의지와는 다르게 작용한데요... 그래서 치료받았었어요"

앞만 보고 걸으며 나는 이야기했고, 그는 내 말을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대답도 없었다. 집에 다 와갈 때쯤, 그는

"안 다쳤으면 됐어요"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안해요.."
"아니에요"
"조심히 들어가요"
"네"


뒷날, 비 오는 날

"추운데, 차 타고 등교시킬까요?"
"그렇게 하세요. 전 얘랑 같이 걸을게요^^"
"같이 걸어요, 그럼"

내리는 가을비에 우산을 받쳐 들고 나란히 걸었다. 그와 주고받는 대화는 없었다. 나는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누구 연락 기다려요?"
"아뇨^^"
"뭐가 또 기분이 좋아요?^^"
"비가 와서요. 같이 뛸래요?"
"헬스장에서?"
"아뇨. 밖에서요^^"
"그쪽 감기 걸렸잖아요"
"괜찮아요"
"다음에 비 안 올 때 같이 뛰어요"
"난 오늘 뛸 거예요^^"
"둘째 고집 센 이유를 여태 모르시겠어요? 그쪽을 빼다 박았어요"
"ㅡㅡ"

있는 힘껏 눈을 흘겨줬다.

"나 고집 안세요!!!"
"박고집.."
"이 씨. 그쪽은 뛰지 마요"
"또 삐졌어요?? 같이 뛰어요"
"싫어요"
"우비 안 입고 그냥 뛸 거죠?"
"네^^"
"그.. 비 올 때는 흰옷 이런 거 입지 말고 좀 제대로 입고 와요.. 10분 뒤에 입구에서 봐요"
"네!"

"날씨가 영 추운데요??"
"뛰면 덥고요, 또 비가 와서 시원해요. 우중러닝의 매력을 모르시네"
"운동화도 다 젖을 텐데..."
"그럼 집에 가요"
"아니에요^^;;"
"몇 킬로 뛰실 거예요?"
"10킬로"
"........ 가시죠"

아무도 없는 강변길을 나와 그는 달렸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는데 그가 자기 이어폰 한쪽을 내어주었다.

"또 우울한 거 듣지 말고 제 것 듣고 가시죠"
"좋아요^^"

'관심 없는 표정 짓고 있지만 흔들리는 네 마음 다 들켰어 인정해'

"ㅋㅋㅋㅋㅋㅋ 이 노래 진짜 오랜만에 들어요"
"박경림 노래죠 ㅋㅋㅋㅋ"
"이런 노래 좋아해요??"
"신나는 노래가 찾으려니 생각이 안 나서^^"

웃겼다. 그런데 좋았다.
가을비는 소리 없이 내려 나를 적셨고, 그 음악은 젖은 마음을 말리듯 흥겨웠다. 쉴 새 없이 웃음이 나왔다.

"아! 따라와요. 이쪽으로"

그가 앞장서서 달렸고, 나는 그 뒤를 달렸다. 강변이 아닌 풀을 지나 그를 따라가는 길에 금목서 향기가 났다.
비에 흠뻑 젖은 큰 금목서가 있었다. 가을비로 인한 흙냄새와 풀냄새.  금목서의 향기까지 더해져 덧없이 향기롭고, 더없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비와 금목서, 그 가을의 향기. 그리고 음악.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를 향해 활짝 웃었고, 그는 내게 말했다.

"우중러닝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거 같아요^^"
"나한테 감사해하세요^^"
"그럴게요^^ 가시죠"

분명히 그는 나보다 페이스가 좋았다. 그러나 내 페이스로 맞춰 함께 달렸다. 달리는 사람들은 본인만의 페이스가 중요하다. 그 페이스를 내게 맞춰 달리는 그가 조금은 낭만적이었고, 다정해 보였다. 비가 내렸으니 더 그래 보였던 것 같다.
내 페이스에 그는 여유로웠고, 날 향해 물구덩이에 물도 튀기며 열심히 달렸다. 너무 좋았다. 그가 좋았다는 말이 아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어폰으로 양혜승 화려한 싱글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만 웃음 터져버렸다.

"노래 선곡이 너무 탁월하십시다^^"
"제 나름의 삘입니다 ㅋㅋㅋㅋ 더워요????"
"추워요. 좀 더 빠르게 뛰면 안 추울 거예요"
"열나는 거 아니에요? 입김 같은 게 그쪽에서 보이는 거 같은데"
"괜찮아요. 뜨신 물에 샤워하고 낮잠 자면 괜찮아요"

그는 내게 손등으로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닿았다.

"이만 돌아가요. 열나요 그쪽"
"괜찮아요. 올 가을에 마지막 비 일 수도 있어요"
"집에 가요"
"네.."

'난 요즘 들어 달라진 널 느낄 수 있어. 너의 안에 가시 돋친 그 말을 꺼내서'

김현정의 단칼 노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발걸음은 풀이 죽었지만 노래는 여전히 신나 있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네 괜찮데도요~~~^^"
"여우인 줄 알았는데 곰 중에 상곰이네요"
"ㅋㅋㅋㅋㅋ상곰은 뭐예요"
"상남자 할 때 그 상을 붙여서 상곰이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여우인 줄 알았어요?"
"네"
"어째서요??"
"하는 게"
"내가 뭘 했는데요?"
"눈 흘기고, 잘 웃고... 뭐 암튼 여우가 아니라 곰이었어요"
"째려보는 게 여우 같아요??ㅋㅋㅋㅋㅋ"
"추워요??"
"조금요"
"바람막이 벗어 줄까요?"
"아뇨. 그쪽 감기 걸려요. 우리, 집까지 뜁시다. 추워요ㅠㅠ"
"으이고... 4킬로는 더 가야 되는데.. 뜁시다"

제시의 인생은 즐거워 노래를 시작으로 빗속을 나는 그와 나란히, 어제보다는 조금은 가까운 거리를 두고 달렸다.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나는 이런 낭만 좋다. 하필, 지금 옆에 있는 자가 이웃이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캔 가라 가라 노래가 들려왔다.

"오늘 들었던 노래 전부 캡처해서 보내주세요^^"
"그럴게요. 대신 밥 사요"
"빵 사서 문 앞에 걸어둘게요"
"같이 가요. 갓 나온 빵이 제일 맛난 법이거든요"
"네 ㅋㅋㅋ 근데 왜 그쪽은 살이 안 쪄요? 빵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이래 봬도 저녁에 육퇴하고 헬스 갑니다ㅜㅠ 관리하거든요"
"아... 몰랐어요^^;;"
"내 복근도 만져봤잖아요"
"내가요?"
"에?? 기억 안 나요??"
"언제요...?"
"휴가 때요.. 그쪽 술 먹으면 필름도 끊겨요??"
"그런가?? 저 그런 사람 아닌데...."
"형님한테 물어보세요. 아니면 우리 와이프한테 물어보시던지.."
"기억이 안 나서 아쉽네요^^;;"
"ㅋㅋㅋㅋ뭐지?? ㅋㅋㅋ 지금 만져볼래요??ㅋㅋㅋ"
"아뇨!!"
"나도 싫어요"
"치... ㅡㅡ"
"뛰죠? 그쪽 감기 심해지겠어요"
"좋아요"

그 후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달렸다. 꽤 좋았다. 슬픈 음악들만 듣고 달리던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는 나의 슬픔에서 꺼내주기 바빴고.. 그럼에도 나는 원래의 슬픔으로 돌아가려 했다.
계속 핸드폰을 들여봤다. 혹시나 연락이 왔나 하여.
슬픔의 온도가 올라가고도 남았지만, 기어이 그는 내 슬픔의 온도는 낮춰주었다. 아파트에 도착했다.

"누구 연락을 그렇게 기다립니까?^^"
"아닌데요?"
"아니긴요. 그쪽을 안 지가 얼만데요.. 이렇게 폰 오래 들여다본 적 없어요. 그것도 수시로"
"나 사진 찍느라고 자주 보는데요?"
"그니까요. 기껏해야 꽃이나 하늘 찍을 때만 꺼내면서..."
"어서 들어가 보세요. 꼭 뜨신 물에 샤워해야 감기 안 걸려요. 따신 차도 마시고요^^"
"그쪽 몸이나 신경 써요. 열 많이 나는 거 같던데"
"네^^ 오후에 봬요. 오늘 같이 가줘서 고마워요. 신나는 노래도^^"
"네 들어가요. 추워요"
"응. 잘 가요"
"네 나중에 봐요"



얘들 등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가 아이스크림 먹자고 했고, 나는 폴라포, 그는 빠삐코를 입에 물었다. 가을이 온 탓인지 아이스크림을 잡은 손이 꽤 시려, 맨투맨 옷소매를 길게 늘어뜨려 폴라포를 잡고 먹었다. 날씨가 비가 오기전처럼 꽤 흐렸고 어두웠다.

"요즘 계속 운우지정 날씨네요"
"켁켁...."
"왜 그러세요??"
"켁켁 ㅠㅠ 운우지정을 날씨에 비유를 하는 거예요???"

그의 말에 폴라포를 베어 물던 나는 그만 사레가 들려 아이스크림을 뱉었다. 필시 그 뜻을 그는 정확히 모르는 듯했다.

"?????? 그게 왜요?"
"아.... 아니에요"
"구름과 비를 나타내는 말 아닌가요?"
"그런 셈이긴 하죠?? 운우지정(雲雨之情) 구름 (운), 비 (우), ~의 (지), 마음, 뜻, 정 (정) 직역하면 구름과 비가 나누는 정이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왜 아이스크림을 뿜었어요??"
"직역하면 그런 뜻이긴 한데요, 뜻과 의미는 다르게 표현돼요"
"???"
"육체적인 깊은 애정...? 남녀 간의 정교, 성관계? 한마디로 남녀 간의 육체적인 사랑을 시적으로 표현하는데 써요"
"아..... 몰랐어요!"
"그런 거 같았어요^^"
"그쪽은 어떻게 알아요???"
"나... 작가잖아요..."
"아... 맞다. 오늘은 진짜 작가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날씨에 그런 사자성어에 비유하지 마요.  뜻을 아는 사람들한테 오해받아요"
"아마 제 주위에 이 뜻을 아는 사람은 그쪽뿐일 거 같은데요?"
"또 그리되나요??^^;;;"
"그런데 왜 운우지정이 그런 뜻으로 사용되는 거예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중간생략
그래서 그 하느님의 딸이 남긴 말이 사자성어가 되었어요. 저는 아침에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마다가 당신을 그리며 지내겠습니다"
"우와 ㅋㅋ 또 다른 이야기도 해주세요. 재미있어요"
"돈 내야 될 텐데요??"
"얼마든지요^^"
"다음에요. 너무 추워요.. 아이스크림 먹어서 그런지 더 추워요"
"그 바지를 좀 긴 걸 입고 다닙시다. 운동화 끈 묶어줄 때 너무 짧더라고요"
"얘들이랑 다닐 때 츄리닝이 제일 편해요. 그리고 괜찮아요. 아무도 내게 관심 없어요^^"
"^^;; 절대 한 번에 오케이 한 적이 없다니까.. 어서 들어가요 추워요"
"네~ 출근 잘하시고 나중에 봐요"
"네^^ 내일도 옛날 이야기 해주세요"
"생각해 보고요~"

그는 내가 매번 작가라는 사실을 화들짝 놀라는 게 마냥 웃기다. 내가 작가라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다는 건지.. 아니면 아기 엄마가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건지는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신기해하는 거 같다. 가끔 아이들과 등굣길에 짧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항상 그가 제일 귀담아 집중해서 듣곤 한다. 조금 귀엽다..?? 그의 외모가 귀엽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하는 짓이 딱 막냇동생 같다는 거다.
전보다는 일정거리를 두고 걷는 거리가 조금은 좁혀졌다. 하나, 그 거리는 좁혀졌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가까워졌지만, 그냥 편해졌다는 말과 같은 말이니까.

내가 나이가 더 많은 인생선배이자 누나지만, 자기가 어른인 것처럼 행동하고, 나는 기어이 나를 이기려는 자를 내가 더 이기고자 할 뿐이다. 이 또한 그저 내게는 승부욕인 것이다. 이 애매모한 관계에서 공격과 수비가 바뀌면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큰 단점이 숨겨져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