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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58 어디에도 없는 길을 기어이...



달려갈게요 기다려요
천천히 와요^^
보여요?
보입니다^^
다행이에요. 오늘은 어긋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오늘은 볼 수 있어서


나는 당신과 이따금씩 주고받는 대화가 좋아요.
달려간다고 기다리랬더니 천천히 오라는 느릿한 다정함도, 보이냐는 물음에 보인다고 즉각 대답해 주는 뜨뜻미지근한 배려가, 나의 말을 인용해서 대답할 줄 아는 재치와 성숙함이.. 나는 너무 좋습니다. 나의 작은 행동과 말투에도 심도 있게 답변해 주는 당신의 친절에 몹시도 말이에요. '편집장님'이라고 부르면 금방 답장이 오는 것도 실로... 너무 좋아요.
내 쪽에선 당신이 보이지 않지만, 마스크 속 옅은 당신의 미소가 떠올라 내 입꼬리가 꽤 오래 초승달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못 보는 줄 알고 달려왔어요. 안 달렸으면 또 못 볼 뻔했어요.
안 달려도 괜찮습니다. 힘들게....


곱디곱게 말하는 당신의 다정을 받아내고 있자면, 문득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싶었죠. 그렇게 구름에 매달려 하늘로 두리뭉실 떠오르다, 내게만 특별히 다정히 대해준 적 없다던 한마디에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곤 합니다.

모르셨지요?? '괜찮아요' 말에는 '괜찮지 않습니다'는 뜻이 숨어있다는 사실을요.. 바보.

울컥울컥 올라오는 설움에 맥 빠지듯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리움은 그런가 봅니다. 포기할 뻔할 때쯤 당신과 어긋나지 않았거든요.

쪼그려 앉은 모습도 그쪽에선 보이나 봅니다.
다리에 힘이 풀렸거든요. 진료가 늦게 끝나 병원에서부터 숨 한번 고르지 않고 달려왔어요. 그동안 매일 달렸던 이유가 당신에게 단숨에 달려가기 위함이었던 거죠^^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겠다며 둘러갔던 대나무숲길도 당신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지없이 지나왔어요. 이렇게 사랑은 무섭다니깐요... 호환마마보다도요.
어디 아프냐 물으시길래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실은,  꽤 많이 아팠어요. 덕분에 살도 빠졌고요.. 역시 다이어트는 맘고생 다이어트가 제일 효과가 빠르듯 해요^^

한 번을 가져본 적 없는 당신을 잃고자 한 게, 매 그리 어려운 건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단 한 번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가져라도 봤으면 억울하지도 않을 터인데.. 미련하게 맘 고생하느라 몸이 덩달아 고생합니다.  누군가의 손에 끌려갔던 한의사는 돌팔이가 아녔어요. 숨 한번 고르지 않고 달려올 때보다 당신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에 더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빨리 뛰는 거보니 영 돌팔이는 아녔던 거죠.  아마도 심장이 게으른 게 아니라 제 역할을 퍽 해내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손 흔들고 있는 것도 보여요.

그렇게 멀리서도 잘 보이시면서, 왜 내 마음은 보지 않으시려는지 따져 묻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뱉지 못한 말들이 부지기수로 쌓여 거대한 산이 되었답니다.

"물 귀신이 산 사람을 부르면 같이 죽자는 거야. 조심해^^"

젊은 할머니께서 느릿한 자전거를 타고 가시며 내게 하신 말씀입니다. 퍽 이상했나 봅니다. 할머니 눈에는요. 하긴 그럴 만도 하죠.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손 흔드는 내가 이상하지 않게 보는 것이 더 이상하네요. 그 물귀신이 나인 듯하여 슬펐습니다. 당신에게 나는, 물 귀신과 같죠. 허나, 당신을 홀려 꾀어낼 수 있다면 기꺼이 물귀신도 좋습니다. 걱정 마세요. 당신이 물에 발이라도 담그려 들면 내가 다시 밀어낼 테니까요.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나 물 엄청 무서워해요^^;; 아직 친해지지 않았거든요. 내게서 당신은 언제나 안전지대입니다.

사랑은 제각기 다른 온도로 나를 아프게 합니다. 날 사랑하지 않는 당신 때문에, 혹은 너무 사랑해서 상처받고 아픈 상처에도 당신 때문에 웃고 우는 나로. 역시 사랑은 아파야 사랑일까 싶어,  아픈 지금 내가 당신을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고, 숨죽여 설레는 시간들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아서, 그저 넘어갈 작은 말 하나에도 상처받고 오해하는 그런 반복 속에 사랑은 달아올라서, 사랑이 아프다는 건 정말이지 열병이 맞나 봅니다.
지금 내가 그 열병을 앓고 있는 중인가 봐요. 꽤 많이 아프거든요. 단단히 앓고 지나가려나 봅니다.

"저 지금 내려가요"

당신을 보러 가는 길은 너무 멀고, 굉장히 험하며, 결코 쉽지 않습니다. 거리상 멀지 않으나 체감상으로는 태평양 보다 먼 곳이죠. 그 걸음 쉬이 떨어지지 않지만, 나는 기어이 갔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당신께 가는 걸음, 무겁고 버거웠지만 마음만은 들판에 사뿐히 나는 나비처럼 가벼웠습니다. 결코 당신께 도착하지 않을 걸음마다 절망과 낙담이 난무했어요. 당신께 가고 싶어요, 진정으로.
당신을 볼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당신을 보고 너무 좋았습니다. 꾸준히 멋있었고요, 나를 향해 성큼성큼 오시는 걸음에 당장에 달려가 반기고 싶었습니다. 안고 싶었어요. 다행인 줄 아십시오. 용기가 없는 것에 말이에요^^
나란히 서, 내게 걸음을 맞춰 걷는 당신의 상냥함에 나는 참 따뜻했고, 참 아팠습니다. 나란히 걷는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지 여태 몰랐어요.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날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에 나는 꽤 오래 슬펐어요. 얼핏 본 당신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 담겨있었어요. 몸은 괜찮은지, 살이 많이 빠져 보인다는 걱정에 그만 한없이 말랑거렸습니다. 그 걱정이 썩 마음에 들어 더 아픈 척을 해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니깐요^^  
유난히 커 보이는 당신 모습에 그만, 웃음이 새어나왔어요. 난 당신보다 훨씬 작은데.. 그 멀리서 볼 때에는 내가 얼마나 작았을까 하고요. 내가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웃겼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의 시력이 좋다는 것에.

"편집장님, 키가.. 더 크신 거 같아요^^"
"작가님 신발이 낮아서...^^"

괜한 질문이었어요ㅠㅠ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상하고 바보 같은 말만 내뱉었네요. 엉뚱한 말에 당신이 또 눈꼬리 늘어뜨리며 말갛게 웃는 얼굴에 그저 난 좋았습니다. 사실 많이 보고 싶었거든요. 멀리서 당신을 못 본 게 그렇게 분했었나 봐요^^ 그리 좋은 걸 보니...
오늘 알았어요. 내가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 말이에요. 다정함은 타고났거나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기에.. 상대의 배려가 얼마나 나를 위하고 있는지 알 수 있거든요. 거창한 선물도, 화려한 말이 아닌 그저 다정한 눈 맞춤, 무심한 듯 내어주는 손, 그리고 담백하고 짧은 말속에 깃든 온기가 전부예요. 내 마음의 무게를 아는 게 다정이고, 그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마음 써 주는 게 다정이니까요. 결국 내 사랑이 현실에서 지지 않고 계속 이기는 이유는 대단한 사랑이 아닌, 그저 당신의 다정함일지도 몰라요. 내게만 다정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게 너무 큰 상처이지만 말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의 겉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가도 다정하지 않으셨다면 내 짝사랑은 진즉에 끝이 났을 거예요, 분명.

"밥 같이 먹어요^^"
"네^^"


당신은 내가 내디딘 발걸음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내게 친절했고,  나는 또 사랑이라 착각하며 걸었던 짧은 길이 결국에는 모두 사랑이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설령 같은 걸 주지 않았어도  그 끝은 서로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명분하에 주고받았던 것들이라 믿고 싶어요. 다 알면서도 모른 체했고 모르면서 아는 체했던 우리는, 어쩌면 사랑인 줄 모르고 시작한 관계일 지도 몰라요. 아팠고, 슬펐고, 행복했으며, 즐거웠고, 낭만적이었고, 로망이었고, 미안했고, 조심스러웠고, 사랑했고, 후회스러울 수 있지만. 모든 감정들이 드는 순간에 남은 하나의 문장.
결국 모두 사랑이었습니다.

빈여백에 당신의 이름을 적고, 그 옆에 내 이름을 따라 적었어요. 앞으로 나란히 불릴 일은 결코 없기에, 서로의 이름으로 부르지 못한 채 고요히 원고지에 쓰여있는 이름이 오늘따라 유난히 지는 빛처럼 서서히 나를 슬픔에 적셨어요.

한 편의 책 한 권이 끝나듯, 여름이라는 계절이 저물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노을은 일찍 저물고, 밤하늘의 별들이 오래 반기는 계절. 낮 동안의 지기 싫은 여름의 잔요동도 내년을 기약하며 천천히 내어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계절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 어쩌면 계절을 통해 이미 이별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의 가을이 춥고 쓸쓸하지 않게 따뜻한 빛과 고요한 평안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나는 이만 당신께 가는 발걸음을 멈추려 합니다.

해서, 이번 초가을에 당신을 후회하지 않게 사랑해 보려고요. 내게 다신 없을 사랑일 테니까요. 내게 사랑을 주지 않는 당신이 미워 그만두려는 게 아닙니다. 내가 살려면 당신을 버려야 함을 안 것이죠. 당신을 품고 평생 살고자 한 지난날의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그럴 수 없으니까요. 살면 살아진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은 가능할지 몰라도 나는 안 돼요. 당신을 품고서.... 살아지지 않아요.
11월부터 가을의 절정이라죠? 나는 당신을 버릴 겁니다. 당신이 아닌, 내가 먼저 당신을 버리겠다는 겁니다.
올 가을 나는 무척 많이 아플 예정이고요, 한동안 가을에 갇혀 살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당신을 버릴 거예요.
초가을, 나는 더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당신을 먼발치에서 볼 거고요, 좋아하고 좋아해서 내가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거예요. 그리고 내가 얼마나 깊은 마음으로 당신을 아꼈는지 말해줄 거예요. 또 당신을 만나면 다 말해버릴 거예요. 하고 싶은 말도 전부 해버릴 거고요,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도 당신의 얼굴을 보고 말해버릴 거예요. 내가 울더라도, 울음이 터져버려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조리 다 쏟을 때까지만요. 후회가 남지 않게 말이에요. 미련이 남지 않게 마음을 다 써서 당신을 사랑해보려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도 당신을 보러 끝내 공적인 이유를 들고서 찾아갈 내가 뻔하지만.. 멈춰야 하는 건, 맞아요.  여기서 멈춰야 할 거 같아요. 자꾸만 욕심이 커지는 걸 막을 방법이 없거든요. 지금 내가 무슨 생각까지 하는지 당신은 모르시잖아요. 안 돼요. 당신의 안전지대가 되어 드리겠다는 내 다짐을 지켜주세요.
당신의 외로움을 껴안아주고 싶었어요. 당신의 슬픔을 다 마셔버리고 싶었어요. 당신의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대신 지고 싶었어요. 당신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그뿐이에요. 내가 바라는 건, 단지 그거뿐이에요. 정녕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았어요. 여기까지가 한계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바라게 되더라고요. 당신이 나를 이유로 슬프기를, 당신이 나를 그리워하기를, 사랑하기를, 내게 와 주기를, 나를 잡아주기를, 나와 함께하기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고 싶어요. 당신 마음속에서요..
이번에는 진짜 잊어볼게요. 누군가를 이용해서라도 기어이 당신을 잘 버려볼게요.

우리, 빨리 만나요.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말이에요.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병가 그만 내고 복귀하라고요. 당신과 나도 서로 바쁜데 볼 수 있는 날이 있긴 할까요...
나는 당신이 매일 보고 싶고요..

당신과 저만치 떨어져 서로 보고 있을 적에 말이에요. 그때 당신이 '보고 싶다' 한마디 하셨으면, 나는 단번에 달려가 당신에게 갔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에게 가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게 몹시도 나를 아프게 할 모양이에요.

나는 기어이 또 멀리 있을 당신을 보기 위해 운동복을 꺼내 입겠죠. 윽... 너무 뻔해서 진절머리가 나요.
사랑도, 나에게도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