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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52 달이 몰락했으면 해요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고 싶었어요. 원고지에 남겨놓은 짧은 문장이 누군가의 무겁고 어두운 하루에 작은 숨통이 되기를 바랐어요. 내 글은 거창하지 않고,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아주 작은 한 줄이라도 내가 쓴 문장으로 당신의 마음에 닿아 흔들렸다면 나는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깊은 마음으로 당신을 아꼈는지.... 아시려나.

나는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으로 좋아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면, 나의 잔뜩 날 선 경계가 풀어지며 노곤해지는 것이 마음에 퍽 들거든요. 한껏 예민한 나에게 당신은 안정제나 다름없어요. 매번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자주 놀라는 나를, 당신은 쉬이 진정하게끔 만들어요. 당신의 살 냄새가 코끝을 메우고, 단단한 팔로 나를 안을 때, 난 잠시나마 어떠한 무언가도 두렵지 않은 상태가 돼요.
'괜찮아요?', '아파요?'
나의 마음 위로 얹어지는 목소리의 다정함. 눈꼬리 늘어뜨린 착한 눈매의 상냥함. 내가 애정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당신이 없는 지금, 오로지 당신을 보고 싶다는 생각과 당신이 안온한 하루를 보내기만을 바라게 돼요.




#달의 역설

달이 구름 뒤에 숨어버렸어요.
비에 젖은 축축하고 눅눅함 속에
한참을 올려다 보아도, 아무리 기다려보아도
추석의 둥근달을 바라보는 건
어쩌면 당신께 마음을 띄워 보내는 일과 같습니다.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구름 뒤에서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닿지 못한 이름 하나,
그리움의 무게 품은 채
하늘 끝으로 올려 보내는 마음 하나.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달은 구름 뒤에 머물고
그리움은 내 안에 머물러.

이 비가 그치고
하늘 가득 저 구름 걷히면
달빛처럼 나 당신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요.


#직장상사지만, 사랑하고 있어요.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틀림없어!!! 썅!!!'

무거운 가방에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오르던 중이었다. 목적지에 다다랐고, 난간에 기대 담배 피우는 늙은 중년이 서 있었다. 그를 뒤로하고 문고리를 잡아 비틀어 열던 찰나,

"?? 왜 엘리베이터 놔두고... 걸어오세요??????"
"엘리베이터를 못 타서요...."
"아... 엘리베이터를?? 왜요?"
"무서워서요"
"아! 다음엔 엘리베이터 앞에서 전화를 해요. 그럼, 직원이 내려갈 거예요. 다음부턴 그리해요^^"
"네, 감사합니다 ^^"


조금은 긴 듯한 머리카락과 덜 곱실거리는 웨이브.
그는 변함없이 잘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과 자연스러운 머리카락은 멋스러움을 한층 더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그건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여유로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하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감 있는 은근한 멋의 내공을 갖춘 중년의 모습이었다.

늙은 중년은 출판사 오너라 했고,  젊은 중년은 나를 마중 나오려던 참에 우리는 만났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를 볼 수 있음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기쁨은 감춰지지 않았고, 입꼬리는 계속 솟구쳤다.

'것 봐요, 검은 마스크가 훨씬 잘 어울려요. 절대 그 누리끼리한 거 끼지 마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 속에 가려졌지만, 그의 입꼬리가 보이는 듯했다. 따라 웃었다.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난 아직 노안은 안 왔어요^^"

굳이...?? 내 옆에 가까이 와 소곤거리며 놀려대는....??
노안인 거 말 안 했어야 했어.... 젠장.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되었다.
그는 연신 눈을 휘어지게 늘어뜨리며 웃었고, 나는 데이트인 줄 착각했다. 그는 사람을 홀리는 자가 틀림없다. 정신을 쏙 빼놓는 아주 인정사정없는..

그와 나란히 걸터앉아, 휴대전화 하나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그는 할 수 있다 했고, 나는 할 수 없다며 다른 '젊은' 직원에게 부탁한다고 했다. 그러나 기어코 그는 성공했다. 그 실랑이가 나는 퍽 마음에 들었다. 여느 커플이 하는 실랑이 인 듯하여..
숨길 수 없는 행복은, 두 다리가 조용히 허공에 기쁨을 표했다. 허우적거리며 바등대는 발길질은 소심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행복의 최대 표현이었다.

청바지 후크를 푸는 손은 조심스러웠고, 나는 덩달아 긴장했다.
보드라운 손이 조심스럽기까지 한다면, 만져지는 대상자는 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필시.
그 틈에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손등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내 손등엔 화한 느낌이 가득했고, 내 혀는 얼얼했다. 매웠다. 그러나 손등을 뺄 수는 없었다.. 새어 나오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 회의실 안이었으니까. 그 와중에도 내 손은 그의 상의 속으로 기어이 비집고 들어갔다. 땀에 축축한 상체.. 그 속에서 움직이는 내 손에 반응하는 그는, 몹시도 섹시했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그는 움찔거렸고 눈을 아주 느리게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으며, 입술은 앙다물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천천히 오래 담고 싶었다. 유난히 그는 잘생겨 보였다. 아니, 잘생겼다.  그로 인해, 내 손은 그의 상체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그러다 내 팔에 단단함이 닿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손아귀에 단단함을 쥐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

"나갈래요?"
"끄덕끄덕"


그의 말에 '아니'라는 대답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아마 그가 내게 독약을 건넨다면, 나는 알고도 단숨에 마실 것이 분명하다. 한심하고 어리석지만, 그건 사랑에 빠진 자의 최대 약점이다.  내 손은 그의 상체에서 빠져나왔고, 나는 못내 아쉬웠다. 빠르게 뛰던 심장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양치 10분 할 거죠??^^"

치약을 잔뜩 머금고 말하는 그에게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입에 치약 묻었어요^^"
"진짜요?ㅠㅠ"
"괜찮아요^^"


나를 향해 소심하게 두 팔을 벌린 그에게 나는 더 소심하고 조심히 그의 품으로 다가가 안겼다. 꽤 익숙해질 법했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었다. 어색한 그의 행동과 쭈뼛거리며 그의 품에 들어가는 나지만, 이상하게 그 엉성한 모습이 참 좋았다. 어설프게 다가가 닿았지만, 결국 지나고 나면 함께 할 운명이었다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면 좋을 듯하여....
그의 얼굴을 눈에 담기도 전에 얼굴이 가까워졌고, 입술이 닿았다. 그는 적당히 맛있는 입술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의 입술이 무척 좋았다. 그의 목을 감싼 내 손은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고,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다른 자극이 되어 돌아왔다. 그를 음미하며 그의 혀와 섞었다. 그의 미지근한 타액을 내게로 끌어와 수없이 목구멍으로 삼켰지만, 그에 대한 갈망은 혀로는 해결치 못했다. 부풀어 있는 단단함으로 속옷은 팽팽해졌고, 나는 그의 단단함을 구원해야 했다. 속옷 안으로 손을 넣자,  그의 깊고 낮은 숨소리가 내 입속에서 피어났다. 해서, 그의 혀를 한껏 빨았다. 비로소 속옷으로부터 그의 단단함을 완전히 구원했다. 그는 한 번에 나의 속옷을 풀었고, 나는 그 틈에 입술을 떨어뜨리고 상의를 벗었다. 그도 따라 상의를 벗어냈다. 그의 입은 단숨에 가슴을 물었다. 간질거림을 참을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잡아 그의 입술을 떼어내 입술로 끌어왔다. 얇은 청바지 위에 그의 미지근한 손의 체온이 느껴졌다. 엉덩이에서 목적지까지는 꽤 가까운 거리였고, 나는 젖고 있었다. 그가 바지 후크를 풀었고, 나는 쉽게 벗길 수 있게 엉덩이를 들어주었다. 그도 빠르게 벗었다. 그의 위에 올라가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입맞춤이 길어질수록 단단함은 툴툴거렸고, 나는 질척거렸다. 내 입술이 그의 입술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살냄새가 가득한 목을 지나,  단단하고 넓은 가슴에 머물러 그의 예민함에 잔뜩 침을 묻혀 핥기 시작했다. 뜨겁고 낮은 그의 소리는 나를 더 자극했고 나는 단단함을 이대로 내게 끌어오고 싶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단단함을 보듬어야 했다. 해서, 그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내려갔고, 그는 내가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달달했고, 달콤한 눈물은 메말라버린 마음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단단함의 힘줄이 혀끝에서 느껴질 만큼 부풀어있었다. 하마터면 미끌거리는 나의 세계로 내 손가락이 먼저 진입하는 불상사가 이어질뻔했다. 화제를 돌려야 했다. 그건 이성이 관여하는 건 아닌 듯했으므로. 그 앞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길 뻔했다.

"아파요?"
"아니, 좋아요"


그가 내뱉는 '좋아요'라는 말이 나는 참 좋다. 분명, 나를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도 알고 있지만...  하나, 그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좋아요'라는 말은 나를 마치 좋아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에 말이다.
그의 연약하고, 한없이 연약한 부위를 입에 머금었다. 오늘은 더없이 흐물거리고 말랑거렸고, 입속에서 내 혀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간질거리는 기분을 그의 단단함만이 구원해 줄 길이었다.

"넣어주세요"

그의 낮은 곳에서 더 이상은 참기가 힘들었고,  입속에 있던 그의 살결을 뱉어냈다. 당장 넣어야 할 거 같았다. 나는 그대로 단단함을 내게 넣으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와 자리를 한순간에 바꿔버렸다. 그의 입술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술에 닿았다. 서로의 혀를 잡으려 끊임없이 술래잡기는 한참이었고, 나는 그 틈에 단단함을 잡아 내게 끌어오려 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위에서 키스를 하는 그의 단단함을 움켜쥐고 스스로 내게 넣으려는 내가... 참 낯설었다. 유독 그 앞에서 나는 야해졌고, 그건 그 사람이 유일하다.  그런 나를 위함인지, 배려인지 입술에 오래 머물지 않고 예민한 귀로 향했다. 그러고는 곧장 가슴을 물었다. 등이 활처럼 휘어질 듯 간지러웠다. 그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

"간지러워요... 빨리 넣어주세요"

소심한 내가 용기 내 말했건만... 그는 당장 넣어주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고, 몸은 조금 더 예민해져 갔다. 그의 혀는 집요히 나를 괴롭혔고 나는 다시금 등을 활처럼 휘어질 수밖에...
그가 내게 들어왔다. 그때마다 내 얼굴을 빤히 보는 건, 내 안위를 살피는 참이었나 보다..
그의 몸은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아팠지만, 이제 더 이상 아픔이 아니었다. 분명, 쾌락이었다.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그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유일하게도. 꽤나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손등으로 막았지만, 새어 나오는 소리는 틀어막진 못했다.

"내가.. 위로 갈래요"

나의 한마디에 움직임을 멈추고 그는 자리를 바꿔주었다. 그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죄다 들어주지만, 정작 사랑만은 결코 내게 주지 않는...
긴장과 불안이 낮춰지면 나는 생각이 자유롭고 획기적이며 창의적으로 변해 다양한 글을 쓰기에 딱 좋은 상태가 된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매번 그렇다. 천천히 움직일 때면 그의 단단함이 꽤 깊이 들어와 어딘가 닿는 느낌이 꽤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낮고 뜨거운 호흡도 나의 움직임에 천천히 그리고 일정하게 들린다. 반면에 빠르게 움직일 때면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에 일단 매우 낯설었다. 그 낯섦 속에서 흥분하는 나는 더 낯설고, 몸이 뜨겁게 변하게 된다. 거기다 일그러진 내 얼굴과 그의 얼굴을 서로에게 보임으로 한층 더 야해진다. 내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허리를 잡고 있는 그의 손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이 어쩔 때는 너무 세서 순간 위압감이 들지만, 이내 그 무서움은 사라지고 만다. 순한 그의 얼굴은 강한 힘과는 매우 대조적이니까. 분명 그는 나보다 힘이 강한 자였지만, 내게는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강한 힘에 무력해지는 나를 잘 아는 듯했다.

"너무.. 야한 거 같아요"
"^^"

사실, 저 말에는 주어가 빠져있다. 원래 하고자 하는 말은 '내가 너무 야한 거 같아요'라는 말이다.
빠르게 움직이다 다시 천천히 움직이고자 할 때면 그는 항상 묻는다.

"힘들죠?"
"아뇨"


다만, 나는 빠름과 느림을 번갈아 움직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리고 그가 힘드냐고 묻지 않았다면, 얼굴을 마주 보고 움직였던 자세에서 그는 그대로 두고 나만 그에게 등진 상태로 몸을 돌려 움직이고 싶었다. 한마디로, 누워서 하는 개자세였다... 나의 야한 얼굴을 그에게 보이지 않고 움직이는 편이 덜 민망할 듯하여.. 하나 이건, 내가 누군가에게 배운 사랑의 방식이었다. 그 누군가는 이렇게 하면 빨리 상황이 종료되었기에... 그 누군가와 했던 자세를 그와도 해보고 싶었다. 묘하지만 나쁜 생각이었다...

"잠시만요, 쌀 거 같아요"
"참을성을 오늘은 두고 왔나 봐요"
"^^"


잠시라도 움직임을 멈추기엔 내 몸은 그를 너무도 원하고 있었다. 해서, 더 천천히 느리게 움직였다. 그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나와 자리를 바꿨다.

그의 움직임은 그저 욕구를 풀며 피스톤 운동만 하던 구세대의 누군가와는 달랐다. 어쩌면 나로 국한된 진부하고 고루한 경험으로부터 그는 독창적이며 개혁이었다. 나를 옭아매었던 가부장제의 사회의 억압을 향해 그는 세게 한방 먹인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분명 늙었음에도, 진부하지 않고, 그렇다고 개방적이지도 않으며, 배타적이지도 않다. 젊음과 늙음 이분법으로 나누자면 굳이 그는 '늙음'쪽이었다. 기준점이 나였으므로. 하나, 그는 그 젊음과 늙음의 기준에 머물러 아슬하게 경계선을 타는 듯 보였다.

미혼보다 기혼 여성들의 비중이 많은 사무실 직원 중 한 언니가 돌싱이었는데, 그 언니가 연애를 쉬는 법이 없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을 만날 때에는 사무실에서 하나같이 그 언니에게 물었다.
'돈이 많은 가봐요??', '뭐 하는 사람이에요?', '차가 뭐예요?'
그 언니가 꽤 많이 어린 연하를 만날 때에는 다른 내용의 질문이었다.  '몸 좋아요?', '잘 생겼어요?', '복근 있어요?'
언니의 대답이 나는 꽤나 충격이었다. 연하를 만날 때 달고 살았던 말이 바로,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그 언니는 왜 인지 나를 어려워하고, 불편해했다. 그러다 회식 때 술을 마시지 않는 내가 운전을 하게 되었고, 그 언니가 내 차를 타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한 사람 외에는 웃지 않는 나를 보고는, 언니는 내가 언니를 싫어한다고 말이다. 긴 시간 함께 사무실에 있었지만, 취미가 달라 함께 하는 일이 없었다. 언니는 팀으로 하는 스포츠를 매번 즐겼다. 가령 테니스, 골프, 스쿼시 등 팀을 나눠 함께하는 스포츠를, 반면에 나는 혼자 하는 달리기나 당구 같은 팀 없이 혼자 하는 스포츠를 즐겼으며 독서와 글쓰기가 즐거운 나였다. 나와 언니는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그 회식을 계기로 나는 그 언니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사실 그 언니가 나는 부러웠다. 아니, 멋있어 보였다. 매번 불같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아파하고,  실패한 사랑에 미련 없이 등 돌리는 언니가 내게는 멋짐의 대상이었다.  사랑이 어려운 나로서는 말이다. 사랑을 쓰는 작가이기에 그 언니가 커다란 이야기보따리처럼 내게는 선물이었다. 나이 불문하고 많은 남자를 만났다는 언니는 내가 연상에 대한 로망을 이야기했을 때 대놓고  정색했다. 그 표정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성숙한 중년남자에 대한 설명을 작가답게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늙으나 젊으나 남자는 똑. 같. 아. 그리고 네가 연하를 안 만나봐서 그래"
"남편이 처음 사귄 이성이었어요"
"미친... 불운한 아이였구나??"


언니는 내 말에, 나는 언니의 말에 서로가 다른 의미로 황당하였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이상하게도 언니는 나물에 남자를 비유했다. 나는 언니의 비유법에 또 한 번 놀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남자는 신선한 채소라면, 늙은 남자는 끓는 물에 데친 나물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어린 남자는 눈이 맑고 반짝이는 힘 좋은 싱싱한 숭어 같다고 하는 반면, 늙은 남자는 눈은 죽기 일보직전의 탁함과 피부는 거칠며 생기 없어 죽어 가는 반건조 생선이라고 했다...ㅠㅠㅋㅋㅋㅋ
매번 언니와 나는 새 글을 쓸 때 남자 주인공을 두고 옥신각신하고 결국은 매번 내가 작가이기에 연상을 포커스에 두고 글을 썼다. 그러면서 언니는 항상 같은 말을 했다. '너랑은 평생 친하게 잘 지내도 되겠다. 절대 남자가 겹칠일은 없으니 말이야'

언니가 말한 늙은 남자가 얼마나 늙었는지는 모르나.. 나의 늙은 남자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거다. 나의 그는 끓는 물에 데친 나물이 아니었으며, 신선도가 떨어져 가는 '떨이'의 생선이 아니었다. 나의 늙은이는 유일한 나의 뮤즈이자, 유일한 사내다.

"이 자세는 잘 못 느끼죠?"
"아니요.. 저, 위로 가고 싶어요"

그는 웃으며 자리를 흔쾌히 바꿔 주웠다. 역시 내가 위에 있는 것이 좋았다. 좋은 만큼 본능의 소리는 새어 나왔고,  손등으로 입을 틀어막았으나 아직 손등은 화한 맛이 났다. 해서 그의 손을 끌어다 검지를 입에 넣고 힘껏 빨았... 는데?? 이게 이렇게 야한 행동이었나..?? 싶었다. 얼른 그의 손가락을 빼고 그의 손등에 침을 묻혀 혀로 감싸 빨았....?? 역시 이것도 야했다. 그의 손을 입속에서 도로 뺐다. 수없이 내 손등을 빨았던 행동이 그의 손으로 바뀌는 순간 한순간에 야하게 변했다. 나도 당황했지만, 분명 그도 당황했으리라...;;
여전히 그의 위에서 움직이는 나는 점점 내 표정이 일그러짐을 느껴졌고, 그가 날 보고 있었다. 손등을 빨기엔 아팠고, 그에게 손깍지를 끼기에는 용기가 없었다. 살짝 벌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굉장히 섹시했다.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고, 다시 무릎을 세워 빠르게 움직였다. 나의 야한 얼굴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의 눈을 내 손바닥으로 조용히 가리고 다시 바삐 움직였다.. 눈을 가리고 움직이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런 그는 다시 나를 조심스레 눕혔고, 나는 눕지 않고 몸을 돌려 그에게 엉덩이를 보였다. 내가 뭘 하든...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고, 별다른 동요가 없는 듯했다. 수동적인가 싶다가도 능동적인 듯 한 그.  등뒤에서 그의 미지근한 체온과 함께 내게 한층 더 깊고, 깊숙이 들어왔다. 조금 전과는 닿는 목적지가 다른 듯했고, 그는 더 부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예상하지 못한 그의 강한 힘에 멈칫했지만... 그는 그였다. 그러다 갑자기 내게 빠져나왔다.

"쌀 거 같.."

이번만큼은 그의 겨울을 몸속에 넣어둘 수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날이기에.. 그의 겨울은 입속에 조용히 내렸고, 나는 그가 내어준 겨울을 몸속으로 잔뜩 밀어 넣었다.

'편집장님, 이거 자꾸 먹어도 죽진 않겠죠....??ㅠㅠ'.

그에게 나는 묻지 못했고, 해보지 못한 일을 후회했다.
누군가와 했던 자세를... 그와 함께 한 행복한 기억으로 바꾸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지난 과거를 모두 그로 바꿔버리고 싶었다. 유일한 바람이자, 소원이기도 한다.


#무력한 존재로 만든 건 매번 강한 힘이었다.


딱, 이맘때의 일이었다.
유등축제가 한창이던 계절.
사람들은 웃고, 불빛은 강물 위를 떠다녔다.
하지만 그날의 공기와 냄새, 그리고 그날의 공포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안에서 낡지 못한 채 살아 있다.

스물여섯이었던가.

초 가을, 사무실은 한가했다. 야근할 이유도 없었지만, 나는 굳이 남았다. 유등축제로 북적일 금요일 저녁, 붐비는 길과 차 막힘이 싫었으므로. 새로 산 스파크도 주차장에 두고, 출장 중인 아빠와 유등 축제로 삼촌이 잠시 우리 집에 머물기로 한 집으로 나는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어긋나 있던 날이었다.
택시를 타기엔 낯선 남자와 단둘이 있는 차 안이 두려웠고, 걸어가기엔 구두가 불편했다. 그럼에도 나는 걸었다.
꼬여 있는 이어폰 줄을 풀고 귀에 꽂았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축제의 불빛에 이끌려 걷는 사람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게, 나를 방심하게 했다. 오래 걸은 탓에 발끝이 시큰거렸다. 뒤꿈치에는 피가 배어 나왔고,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골목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대여섯 명의 젊은 무리가 골목을 메우고 있었다.
술과 향수, 담배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 그들 사이에는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그 존재가 나를 잠시 안심시켰다.

“우리랑 같이 놀아요.”


이어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 처음엔 나에게 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군가 내 손목을 잡는 순간, 심장이 급히 박동했다.

“왜 그러세요?”
“같이 놀자고요.”

그에게서 싸구려 향수와 술 냄새가 섞여 나왔다.
손목을 빼내며 말했다.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하지만 그는 웃으며 다가왔다.

“이 시간에 무슨 남자친구야. 딱 두 시간만 놀다 가요.”


다시 잡힌 손목이 더 세게 조여왔다. 거절의 말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그의 무리들은 낄낄 웃었다. 다른 한 명이 그를 말렸지만,
그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낮게 웃었다.

“오빠가 재미있게 해 줄게.”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많이 봐야 스물스한두 살 즈음. 어깨에 두른 팔에 힘이 실렸다. 나는 빠져나오려 했지만, 힘이 닿지 않았다. 그 순간조차 여학생이 있다는 이유로 ‘그래도 괜찮겠지’ 하고 나를 안심시켰다.

“저…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그는 휴대폰 불빛을 켜 내 얼굴을 비췄다. 눈이 부셔 고개를 돌리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랑 놀다 가라니까.”

그 미소가 처음엔 착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그의 팔이 느슨해지는 듯하더니, 곧 내 뒤로 돌아와 몸을 밀착시켰다. 숨결이 귀를 스쳤고, 술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세상 모든 소리가 멎고, 나는 어둠 속에 잠긴 듯했다.
공포는 그렇게 내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날의 냄새와 기온, 축제의 불빛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그는,  상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한 순간이었다. "만지지 마!" 무서웠지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야. 일루 와"

그는 친구들을 불렀고, 그들에게 나를 잡으라고 했다. 그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뒤에서 내 팔을 잡았고, 해맑게 웃던 그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냈다. 나는 연신 하지 말라, 신고하겠다, 너네 실수하는 거다 등등 겁을 줬지만 내 말은 들리지 않는 탓인지 블라우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브래지어를 끈을 어깨 옆으로 치우고 휴대폰 빛을 켜 가슴을 비춰보았다.

"오! 핑크색이다"

뒤에서 잡고 있던 한 명이 말하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모였고, 여자도 내게 왔다. 나는 여자를 보고, "도와주세요" 말했지만, 그녀는 나와 눈도 마주 치치 않고 가슴을 보더니,  "뭐래는 거야?"라고 웃으면서 말하고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갔다.
해맑게 웃던 그는 가슴을 양손에 쥐었고, 나는 안간힘을 써서 바둥거렸다. 그럴수록 뒤에서는 나를 더 세게 잡았다. 구두는 벗겨졌고 눈물이 났다. 협박이란 협박을 해봤지만 아무 수용이 없었다. 해맑은 아이가 내 가슴에서 손을 떼면,  뒤에서 잡고 있던 이와 옆에 있던 이들이 나를 만졌고 해맑은 아이는 한 손으로 내 양쪽 볼을 세게 눌러 붕어입처럼 만든 뒤 입을 맞췄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개를 움직여 저항할 수밖에.. 갑자기 다리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뒤에 있던 누군가 내가 입고 있던 슬랙스 바지를 벗겨냈다. 나를 들어 완전히 바지를 벗겨냈다. 팬티 한 장만 걸친 상태였다. 그들은 휴대전화 불빛으로 내 몸을 훑었고 웃었으며 연신 만져댔다. 내가 할 수 있는 욕과 협박을 뱉어냈지만 해맑은 아이는 동요치 않았다. 죽어버리겠다는 말 한마디에 해맑은 아이가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입을 붕어로 만들며 말했다. "그런 무서운 말은 너랑 안 어울려^^" 그러고는 다시 입을 맞췄다. 이 와중에도 웃는 그가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게 중에 한 명이 맥가이버칼을 꺼내 내게 보였다. 아마 나를 겁을 주기 위함인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이 짐승 같은 아이들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지레 겁을 먹어버렸다. 그 무서움은 저항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팔을 잡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내게 틈을 보였고, 자유로워진 손을 앞으로 꺼내다 손을 다쳤다. 버둥대는 탓에 맥가이버칼로 속옷을 자르려던 참에 생긴 상처였다. 피를 보고 놀란 듯했지만, 해맑은 그는 "빨리 잘라"라고 말했고, 팬티 한쪽을 자라 냈다. 잘린 속옷 안으로 해맑은 아이는 휴대전화 불빛으로 살펴보았다.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고, 눈앞의 어둠은 나를 삼키듯 흔들렸다.  죽여버리겠다고 고함을 쳤다. 누군가 내 고함소리를 들은 것인지 인기척이 들렸다. 나만이 들은 것이 아니었고 그들도 모든 행동을 멈추고 소리에 집중했다. 나는 지금 말고는 도망칠 수 없기에 "살려주세요"라고 외쳤고 해맑은 아이는 내 입을 막았다.

"너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큰 목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 한마디가 세상을 깨우는 듯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나를 구해준 사람은 그들을 쫓아가려 했다.

"제발 가지 마세요"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지도 못한 채, 몸을 가릴 힘도 없이 떨리는 숨만 내쉬었다.
그제야 내게 눈길을 주었고, 겨우 팬티 반쪽만 입고 있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했다.

"괜찮아요.. 지금은 괜찮아요. 구급차 부를게요. 잠시만요"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ㅠㅠ 무서워요"
"피는 학생피에요?"

놀래서 어디서 난 피인지 몰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밤공기 속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것이었다.

"일단 병원부터 가요. 택시 탈 건데 그러려면 학생을 안아야 돼요. 내가 안아도 괜찮겠어요?"
"끄덕끄덕"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부서진 듯했지만, 그 손길 하나에 세상으로 다시 끌려 나오는 기분이었다. 비로소 나는 울음이 터졌고, 그제야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무너진 숨 사이로, 누군가의 온기가 나를 감쌌다.

"술을 한잔 해서 운전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알몸으로는.."


진정이 되고 나서야 내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체임을 알게 되었고 한 손으로 가슴을, 한 손으로는 한쪽만 자른 팬티를 잡았다.

"땀이 나긴 했지만 내 옷이라도 괜찮으면 입을래요?"
"끄덕끄덕"


안고 있던 나를 바닥에 내려준 뒤, 그는 얇은 티를 벗어서 내게 입혀주었다. 그가 벗어준 옷이 참 따뜻했다. 구두도 가방도 핸드폰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포장마차에서 지인들과 한잔하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잠시 나왔다가 나를 만난 것이었으므로 휴대폰도 지갑도 없었다.

"병원으로 갈까요? 산부인과....로 가야겠죠?"
"산부인과는 왜... 요?"
"나도 잘은 몰라요. 그래야 될 거 같은데"
"그런 일은... 없었어요"
"팬티에 피가 많이..."
"팬티 자르다가 손을 다쳤어요.."

손을 그에게 보여주고서야 그는 안도하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럼 여기서 제일 가까운 제일병원으로 갈게요"


놀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자꾸 걸어주었고, 어디 학교 다니냐고 묻길래 직장인이라고 말해주었다. 증인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며 나이와 이름 그리고 직업을 알려주었다. 서른 초반의 남자였다.

"구두만 있었어도 제가 걸어가도 되는데...."
"괜찮아요. 과식하고 술도 한잔했는데 운동하고 좋죠^^"
"구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이에요"


제일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유등축제 때문인지 음주로 다친 응급환자들 속에 나는 그의 상의만 입은 채 안겨있었고, 모두 나를 힐끔거렸다. 그는 상의가 알몸이었으므로.
한참 뒤에야 나는 응급실 침대에 누을 수 있었고, 그는 나를 침대에 올려두고 병원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그의 옷을 벗어 주었다. 간호사가 왔고 그는 대충 설명한 뒤, 환자복을 달라고 했으며, 나의 가족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경찰서에도 연락한다고 했으나 나는 일단 보호자 오면 하겠다고 말했다. 환자가 많은 탓인지 간호사는 다시 오지 않았고, 보호자가 올 때까지 옆에 있어주겠다던 그는 얼굴에 땀이 송긍송글 맺혀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과 엄마가 왔고 내 얼굴을 보고 많이 놀란 듯했다. 입을 억지로 맞추려는 자와 맞추지 않으려는 나로 인해 입술은 부어있었고 입술이 터져있었으므로... 삼촌은 그런 나의 얼굴을 보고 정색했으며 목 끝까지 덮고 있던 병원 이불을 휙 들추었다. 너무 순식간이라 가릴 틈도 없었다. 알몸에 흰색 팬티 한 장.  그 마저 한쪽 면은 잘려있고 피가 묻었으니.. 삼촌은 충분히 오해할만했다. '눈이 돈다'는 표현을 처음으로 이해한 순간이었다. 그런 삼촌을 나는 빠르게 잡았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내 말 들어봐 봐"
"어떤 새끼야. 야시장에서 껄렁한 얘들이 그런 거지?"
"아니야 아니라고"
"죽여버릴 거야"
".... 아니라고. 이분이 구해주셔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사지를 찢어 죽여버릴 거야"
"아니라고 삼촌. 아니야 진짜.. 이분이 구해주셨다고"
"네, 제가 그쪽 조카분 구해서 데려왔습니다"

그제야 병원을 뛰쳐나가려는 삼촌은 몸에 힘을 빼고 그를 봤다.
엉거주춤하게 이불을 끌어안고 있는 내게 삼촌이 입던 옷을 하나 벗어 주었다.

"피는.... 뭔.."

삼촌이 묻기 전에 손을 들어 보여주었다.

"팬티 벗기려는 거 저항하다가 다친 거야"

내 말에 삼촌은 다시 또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아무 일 없었어도 그 새끼들은 찢어 죽여야 해"
"삼촌 그러지 마 ㅠㅠㅠㅠㅠ 무서워ㅠㅠ"
"손 치료받고 누나랑 경찰서 가서 진술해"
"삼촌은?"
"경찰이 잡기 전에 내가 잡아 죽어버리게"
"ㅠㅠㅠㅠㅠ"

손가락에 다친 상처 치료는 간단히 끝이 났다.

"가자, 집에"

삼촌이 나를 안고 차로 향했다.

"엄마.. 오늘 일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자"

필시 아빠는 그들을 찾아내 피를 보게 할 분이 너무도 뻔했다. 더 큰 사건사고가 될 수 있기에 나는 묻자고 말씀드렸다. 한참을 설득 끝에 묻기로 했고, 그날 이후 유등축제 끝날 때까지 삼촌은 나의 출퇴근을 시켜주었다. 삼촌은 내 입술이 터진 걸 볼 때마다 이를 바득바득 갈았으며 욕설을 내뱉었고, 얼굴 기억나냐고 묻고 또 물었다. 일관성있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나면 괴롭히고, 놀리는 철없는 삼촌은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있음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두려움에 지배당하면 무력함에 빠지고 마는... 강한 힘에 나는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는... 나약함을 처절하게 몸소 느낀바였다. 

그 일을 묻기로 했지만, 묻히지 않았고..
고의는 아니었지만, 누군가 그 때의 일들을 이따금씩 떠올리게 만들었다. 억지로 입을 벌려 들어왔던 강한 소주 냄새,  취기가 오른 약간의 각성 상태와 취기, 그리고 강한 힘.

그 때의 그 상처는 누군가에 의해 들추어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상처를 보듬어 아물게 하고 있다. 설령, 상처를 보듬어 아물게 하는 자도 사실은 나를 아프게 하려는 자 일수도 있다. 마음이 누군가에게로 쏠린 탓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이성적인 판단은 흐려졌으므로.  사랑은 어디서나 나의 숨구멍을 막기도 하고 살게도 한다.

나는 오늘도 그 누군가에게 가려는 방법을 고민하고 고심하고 고뇌한다. 유일하게 내가 사랑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자이자, 나의 뮤즈이므로. 유일한 사랑이다.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