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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50 더 이상 상냥하지 않아


모르실 줄 알았어요.
창문을 등지고 엎드린 내 눈이 자세히 보일리 없다 생각했거든요.

"왜 울어요"

다정히 묻는 당신의 차분한 눈빛과 미지근한 온기와 포근한 목소리. 너무도 따뜻했어요. 마치 내 세상인 양 당신이 굴었어요. 당신의 모든 것은 날 향해 있었거든요. 그 모든 것은 분명, 내 것이었어요.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깊은 이야기를 뺀 나머지 대화들을 주고받았어요. 그것이 나는 못내 서글펐어요. 당신은 나를 배려한 탓이었을 테고, 나는 당신을 밀어내려 함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전하고자 한 말을 한마디도 건네지 못한 채, 나는 속이 답답했어요. 입도 벙긋 못하는 내가 참 바보 같았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못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만일 입 밖으로 나왔더라면 한없이 무너져 내렸을 거예요. 울고 불고 당신을 붙잡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집에 가기 싫다고.. 돌아갈 때가 없다고.. 오늘이 어떤 날인 줄 아시냐고.. 그걸 알고도 당신을 만나러 온 내가 괜찮냐고..
짝사랑은 매번 독백이 많아진 탓이었을 거예요.
그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자 눈물이 터져버렸어요. 등뒤에 느껴지는 당신의 온기는 나를 한층 더 비참하게 만들었지만요.. 언제부턴가 당신의 낭만과 로망이 내게는 슬픔이 되었나 모릅니다. 그럼에도 슬픈 낭만과 로망, 슬픈 다정함과 슬픈 상냥함은 나를 살게 해요. 내내 슬퍼도 내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죠.  눈물을 닦아주는 당신의 손길에 너무도 쉽게 행복해져버리고 말았어요. 내게는 행복이 그다지 멀지 않고요, 슬픔도 그리 멀지 않아요.. 내 곁에 있어주세요.
작게 토닥여주는 위로, 등을 쓰다듬어주는 배려에 당신에게서 나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어요. 멈추지 않는 눈물을 굳이 당신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여기서 더 이상 불쌍해 보이긴 싫었으니까요.

"왜 자꾸 불쌍한 눈으로 쳐다봐요^^"

당신을 오래 담아두고 싶었어요. 또 언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 아닌 것들에 시선을 두었어요. 그것이 나는 또 애달프게 했어요.

'나여서 그런 것이겠지....? 그 여인은 눈동자 가득 담아 눈을 마주하겠지?'

지독한 짝사랑은 지독하게도 나를 기어코 아프게 하려나 봅니다. 내 마음을 아셨는지 당신의 몸을 나에게 향했죠. 좀 전보다는 자주 눈을 마주치긴 했지만, 당신의 눈동자에 나를 가둘 만큼은 아니었어요. 나를 담고 있는 당신의 눈을 볼 때면, 꼭 당신과 함께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건 내게 행복이니까요.

상처를 핑계로 당신의 눈을 만져봤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당신과 몸은 섞지만, 그 외에 다른 스킨십은 선뜻 멀게 느껴져요. 마치 닿을 수 없는 지평선처럼요.
언젠가는 당신의 손을 잡는 일이 퍽 쉬워질까요..
언젠가는 당신의 얼굴을 쓰다듬을 만큼 가까워질까요..
그럴 수가 있을는지..

'사계절이 한창 절정일 때, 그때마다 우리, 만나기로 해요. 그래봤자, 일 년에 꼴랑 4번이에요.. 일 년에 4번만 나를 오롯이 사랑해 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말이에요'

"못하는 게 없으시네요"

'다 소용없어요. 나는 당신의 여자가 되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되고 싶은 건, 그 무엇도 아니었어요. 당신의 여자가 되고 싶은 거였어요. 그 꿈은 크지 않으나,  죽을 듯이 노력해도 나는 결코 될 수 없죠. 나는요, 그저 당신 삶 속에서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거예요. 가령, 당신이 내 무릎에 누우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다던지, 귓속을 살살 파주며 테레비를 본다던지, 아니면 별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한다던지 것도 아니면, 책을 아주 멀리 하시는 당신을 위해 내가 책을 읽어준다던지.. 뭐 그런 소소한 일상을 말이에요.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당신과 나는  그럴 수 없죠.

"피곤하시죠?"
"아뇨^^"
"졸리시죠?"
"아니요^^"


편집할 게 많다는 당신은 꽤 고단해 보였어요. 그 모습에 나는, 당신이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 싶었어요.. 몹시도 말이에요.

당신의 보드라운 손길로 등을 토닥여주는데, 잠이 솔솔 오는 듯했어요. 불면증이 있는 내가 그 손길이 뭐 그리도 좋다고... 그 토닥임 몇 번으로 평생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줏대도 없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려고 했을까요..  스르륵 잠이 오는 나 자신이 싫었어요. 짝사랑은 이래서 싫다는 거예요. 그냥 잠이 올 수 도 있는 건데..  당신이 그 속에 들어와 버리면 나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또 그걸 또 믿게 되고, 또 바라게 되는 지긋하고 지독한 짝사랑. 당신 없이 못 잤던 것처럼, 당신 없이 글을 못썼던 것처럼 구는 내가 구질구질해요.
나른한 음성과 차분한 목소리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나의 것이 될 수 없음에 한없이 또 풀이 죽었어요..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요'

당신에게서 이토록 빠진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아무도 몰래 마음 깊은 곳에 당신을 품고 사는 건, 내 작은 자유였어요. 내게 자유은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 당신을 사랑하고부터 내가 내뱉은 숨은 무언가에서 잠시 벗어나 내 본래의 호흡을 되찾는 것 같았지요. 이제는 당신이 내게 남긴 무게를 똑똑히 알아요. 그러나 당신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려고요. 내 젊은 날의 반항, 누구에게도 끝내 보여주지 못한 민낯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믿을 겁니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 망각이라고 하듯, 나는 당신을 잊을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왜 그토록 끌렸고, 결국 당신은 내게 등을 돌려야만 하는지, 왜 끝내 잠시도 곁을 주지 않은 건지, 내게 중요하지 않는 일로 만들 겁니다.

살아보니 그런 관계들이 있어요.
존재만으로 상처가 되는 사람. 나를 너무도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 끊으내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 나를 살게 하는 사람. 많이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이제 조금은 알 거 같아요. 이 세상에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요.
당신이 내게 그래요. 그런데도 대차게 내게 한 번은 된통 걸려라 주문을 거는 나를 어째버릴까요.....
알아요, 내 글은 온통 모순이에요. 모순이라는 말도 부족해요. 죄다 모순 덩어리예요. 내게 사랑을 주지 않는 당신에 대한 슬픔의 변질쯤이라고 하면 이해하실까요..

"이 와중에 너무 생뚱맞지만... 편집장님, 종교가 뭐예요?"
"천주교요"


해서, 나는 당신이 믿는 신께 기도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자렵니다. 당신이 믿는 신은 다정히 내 기도를 들어주길 바라며 말이에요. 당신처럼 당신이 믿는 신도 내게 다정하시기를, 내게 상냥하시기를..


자비로운 하느님 아버지,
저의 마음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바라볼 때마다
순결한 기쁨과 설렘을 느끼게 하시니,
이는 주님께서 제 안에 사랑의 불을 지펴주신 은총이라 믿습니다.
주님, 제가 품은 이 마음이 저의 욕심이나 아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자라나 주님의 뜻 안에서 맺어지게 인도해 주소서.
제가 짝사랑하는 그 사람이 주님과 뜻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 또한 주님 손에 맡기오니, 그가 평화롭고 기쁘게 살아가도록 축복해 주시며, 만일 주님의 뜻이라면 제게 사랑으로 잠시 머물게 하소서. 그러나 저의 바람보다 주님의 뜻이 우선임을 믿사오니, 제가 원하던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주님 안에서 더 넓은 사랑과 깊은 평화를 찾게 해 주소서.
만일, 제 기도가 제 욕심에만 머문다면 그 마음을 정화시켜 주시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사랑만이 제 안에 머물게 하소서. 제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주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더 넓은 자비와 인내를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