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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48 떠나보낸 뒤에도 놓지 못하는

애훌하다는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옛 표현인데요, 비슷한 현대어로는 가련하다, 측은하다, 불쌍하다, 안쓰럽다, 애처롭다입니다.


몸은 괜찮아요?
아뇨. 많이 많이 아파요!


괜히 심통을 부렸어요. 하루 종일 핸드폰만 바라보게 한 투정이 당신의 연락에 불쑥 튀어나와 버렸어요. 그런 마음을 채 숨기기도 전에 말이죠. 당신은 나의 이유 없는 투정에 또 다정히 약을 챙겨 먹으라 했죠. 나도 당신처럼 매 순간 다정하고 상냥스럽고 싶은데 잘 안되어요. 특히, 당신 앞에서는요. 얼마나 나를 못나게 보셨을까요... 안 봐도 빤해요.


저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개인적인 질문인데도요?
네~물어보세요^^
용기가 없어서 직접 물어보진 못할 듯하여, 물어보는 거예요.
그 문자, 보고 싶다는 말을 돌려 말하신 건 아니시죠?
당최 편집장님 문자가 어떤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당신의 연락에 울고 웃고 그것도 모질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는 당신을 괴롭히고 싶었어요. 괴롭힌다 해서 당신에게는 내가 그렇게 비중이 있는 사람이 아닌지라, 답변하기 어려운 걸 질문해서 당혹스럽게 해야지 하는 조잔한 마음으로요. 그 마음이 먼저였지만, 그래도 그 연락에 담긴 의미도 무척 궁금했어요. 사실 너무도 궁금했지만, 묻지 못한 거였거든요. 내게 상처가 되는 말을 예상했으니까요. 당신은 본의 아니게 매번 상냥하고 다정하게도 나를 참 아프게 했으니.. 많은 말을 하진 않지만, 그 속에 항상 날 향해 슬픔이 잔뜩 묻어있었어요. 하여, 겁이 났어요. 괜히 혹 떼러 갔다가 붙여올까 봐요..

당연히 보고 싶죠~
안 본 지 오래되었으니^^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도 묻고 싶고요~^^


이럴 줄 알았어.. 분명 당신을 당혹스럽게 해서 괴롭히고 싶었지만, 항상 그 괴롭힘 끝에는 날 향한 총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요.

아.. 대외적인 것들이죠?

무슨 용기였을까요. 아마 당신을 마주 하고 있지 않아 용기가 생긴 탓이겠죠?

그냥 못 본 지 오래되어서 궁금했어요.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내가 '그냥' 궁금하지만, 나는 아니에요. 나는 당신이 매일매일 그립고요, 하루 종일 궁금해요. 한순간도 당신이 내게 없던 적이 없거든요..
나는 아는데, 당신이 모르면 어째요.. 당신이 그랬잖아요.
'삶에 지쳐있던 저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어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라고요.
당신이 말한 대로 딱 그냥 한번 불고 지나간 바람. 당신에게 나는 바람, 딱 그거예요. 꽤 오랫동안 바람 한점 없는 당신에게 살랑 부는 바람말이에요.


편집장님과 다르게 전, 대내적으로 보고 싶어요..
부담드리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잊어요.


수없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어요. 사실은요,
'너무 보고 싶어요. 지금 볼 수 있어요?'
'그냥 나 보고 싶다고 한 번만 말해주시면 안 되나요? 어려운가요?'
'편집장님을 보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요. 살아지지가 않아요.'
'아주 많이, 그 무엇을 생각하던 그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이런 내용을 무수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감정이 많이 담기지 않은 말을 담아서 전송했어요. 그마저도 당신이 싫어할까 혹여나 부담스럽다 하실까 잊으라고 덧붙였고요.


감사해요. 어떻게 말씀드려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이런 감정을 설명할 수가 없네요.
편집장님이 착하셔서 그럴 거예요. 신경 쓰지 마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오해하잖아요. 당신이 하는 말은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이에요.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해요. 전부, 당신이 착해서 그런 거예요.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당신과 나는. 그런 관계 속에서 직업이 예술가라는 핑계로 기어이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당신이 보기에는 얼마나 철없고 한심해 보였을까요. 그 사랑마저도 첫사랑, 짝사랑, 외사랑, 끝사랑이라고 하며 당신의 곁을 맴도는 내가 얼마나 안쓰러워 보였을까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측은지심이에요. 동정과 연민이에요. 그건 당신이 착하고 선해서 내가 불쌍해 보이는 것뿐이에요. 헷갈리면 안 돼요. 그러면 나는 더 많이 휘청거릴 테니까요. 헷갈려하지 말아요.
필시, 애훌한 정이 심중에 가득한 것뿐이니...


내가 한 엉터리 기도를 신이 들으시고 내게 주는 위로였을까요. 이러면 나는 기도만 주야장천 할 게 뻔한데 말이죠. 당신을 만나면 당신의 종교가 무엇인지 물어봐야겠어요. 거기에 맞는 기도를 하면 더 좋을 듯하여...
당신의 연락이 오는 날엔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 듯합니다.
그것이 나는 참 좋습니다.
비 오는 날에만 나를 사랑해 달라 말하면 당신은 더 이상 비를 기다리지 않으실 테지요? 그럴 것이 분명하지요..

자비로운 주님,
가엾고 가련하온 자를 구원하소서.
병든 이에게는 치유를,
슬퍼하는 이에게는 위로를,
저에게는 그를,
주님의 따스한 손길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신다면,
저 또한 연약한 형제를 외면치 아니하고
동정과 자비로 감싸 안는 작은 도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거룩하신 부처님 전에 삼가 발원하옵니다.
세상 모든 중생이 가련하고 애훌하옵기에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혹 어둠 속에 길 잃은 이가 있거든 등불이 되어 인도케 하시고,
혹 슬픔 속에 허덕이는 이가 있거든 지팡이 되어 의지케 하시고,
혹 스스로를 지옥불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그와 인연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어리석고 가련한 자를 살려주옵소서.
그리 이루어주신다면, 남은 여생을 모든 이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참된 평안과 해탈의 길을 빌고 빌며 살겠나이다.
나무아미타불.

당신을 버리고 싶어요.
하지만 이 말속에는 나를 버리지 말라는 애원과 간절함이 숨어 있지요. 나는 아직도 쥘 수도 없는 당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나에게 '버리고 싶다'는 '날 버리지 마세요'라는 역설이에요. 버리고 싶다고 수 없이 다짐하지만, 끝내 당신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어요.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건, 그만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휴대폰 알람 소리에 당신의 연락을 기다리던 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없이 기대하면서, 한없이 애타는 마음.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던 늦여름밤과 초가을밤의 공기는 살짝 끈적이면서고 서늘했어요.
종일 그 연락을 기다리면서 알았어요. 떠나보내는 일보다 어려운 건, 떠나간 뒤에도 붙잡혀 있는 마음을 버리는 일이에요. 나는 오늘도 그 마음을 내려놓고 앉아, 돌아오지 않을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도 이런 감정을 설명할 수가 없네요'

그동안 내게 보였던 당신의 마음은 연민과 동정, 안쓰러움과 애훌함이 확실하건만, 자꾸 당신의 말에 흔들립니다. 압니다. 나는 정확히 알아요. 나와 같지는 않으셨으니까요. 그런데도 저 말을 곱씹을수록 헛된 희망을 품게 되는 까닭은 당신에 대한 미련이겠지요. 당신이, 당신의 마음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아마 당신을 내내 좋아하던 내가 갑자기 뱉은 한마디 때문일 거예요.  '편집장님을 덜 좋아해 보려고요..'라는 말이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 알죠? 분명 그 마음일 거예요.  사랑을 꾸준히 받다가 주지 않겠다 하니, 아쉬운 게죠. 당연해요. 아마 나도 그럴 거예요. 허락도 없이 사랑해 놓고 다시 무례하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당신 입장에선 줬다 뺐는 기분일 테고... 그래서 생긴 애매모한 감정일 뿐이에요. 그러니 헷갈려마세요. 당신이 헷갈리면 나는 뿌리째 흔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