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듯 오지 않는 듯
이미 온 듯 아직 안 온 듯
기다린 듯 잊어버린 듯
무심한 건 애매모한 가을이 아니라,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내 마음이오.
창문을 열어도 이미 바람은 가을
하늘을 보지 않아도 이미 하늘은 가을
나무도 풀들도 냄새도 죄다 가을이 스미는데
여전히 어느 계절도 속하지 못하는 나.
오래 기다린 것은 내게 오지 않고
간절히 원하는 것은 늘 곁에 없는 나날들.
숨결마다 사무치게 차오르는 당신은
다시, 가을입니다.
#그 손목 아무나 잡아도 되나 보네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어디 아파요?"
"괜찮아요^^ 잠을 못 자서 그래요..."
평일에는 하루 두 번, 아니, 그 이상을 만난다. 오후에 만나고 그 뒷날 아침에 보는데 그 찰나의 미묘한 내 감정과 표정 그리고 안색을 살핀다. 감사한 일이지. 내 주위에 몇 없을 다정한 사람이자, 좋은 사람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둘이 나란히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늘 안 뛰었죠?"
"네, 이제 뛰어야죠."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이는데요..? 다리는 괜찮아요?"
"뛰다 보면 괜찮을 거예요^^"
"아참.. 그때 그분은 진짜 삼촌이에요?"
"아... 네네! 외삼촌이에요^^ 제가 첫 조카라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고, 같이 커서 그런가 장난이 좀 심해요. 놀랐었죠?"
"조금요, 그쪽은 볼 때마다 손목이 잡히네요?"
"볼 때마다? 그럼 매일인데요?"
"그게 그거지"
"내가 삼촌 말고 언제 또 잡혔는데요?"
"형님한테는 뭐 맨날 손목 잡혀가고, 횡단보도에서 예진이 아빠한테도 손목 잡히고, 저번에 애슐리에서 남자들한테 둘러 쌓여서 잡혀있고, 또 올초에는 선배라는 사람이.. 금요일에는 삼촌이.. 뭐 그쪽 손목은 아무나 잡아도 되나 보네요"
"남편은... 제가 손을 빼고 도망갈까 봐 손목을 잡더라고요? 그리고 예진이 아빠는 횡단보도에서 전동킥보드랑 부딪히는 줄 알고 그랬고요, 불안이 있어서 큰 소리로 절 부르면 놀래서.. 당황해서 선배가 괜찮냐고 물은 거고, 애슐리는 남편 체대 친구들이 새로 생겼다 해서 왔다가 나 보고 반갑다고... 아니, 근데 이걸 왜 그쪽한테 설명하고 있죠?"
"그러게요. 전 설명해 달라고는 안 했습니다^^"
"네....ㅡㅡ"
"폴라포 먹을래요?"
"아뇨"
"그럼 뛰기 전에 저랑 다이소 갈래요? 신상 연필이 왔으려나?"
"...."
그는 분명 나를 잘 안다. 좋고 싫고가 분명히 얼굴에 표가 나서 일 테지만, 그는 나를 잘 아는 게 분명하다. 나의 수를 다 알고 있는 듯한 말투.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꼭 마주쳤으면 하는 날에는 보지 못하고, 마주치지 말았으면 하는 날에만 만나게 되는 건 운명의 장난인지, 그냥 우연인지..
"그쪽은 출근 안 하세요?"
"제가 사장이라...^^"
"전 오늘 뛰어야 해요"
"난 오늘 아침에 뛰었는데..."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오늘도 안온한 하루 보내세요"
"네 오후에 봬요. 그 옷 좀 따뜻하게 입고 다녀요. 너무 얇고 너무 짧아요. 환절기 감기 독해요"
"저 아직 젊어서 괜찮아요^^"
"늙었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는데?"
"그쪽 억양과 표정에 그 말이 이미 베이스에 깔려 있더라고요. 내가 그걸 또 기가 막히게 포착했네요?^^"
"작가라서 그런가 말장난 좋아하죠?"
"좋아하는 건지, 지기 싫은 건지 아직 구분하지 못했어요^^"
"^^"
횡단보도 끝에서 그는 다시 또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직 나는 그의 손인사에 화답할 수는 없었다.
금요일 아침)
등교 후 집 쪽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와 나는 횡단보도에 나란히 섰고, 주고받는 대화는 달달?? 했다.
"그럼 그쪽은 웹소설만 써요?"
"아뇨. 다양한 글을 적고 싶어서.. 장르가 좀 다양해요"
"그쪽이 쓴 책 읽어보고 싶어요"
"다음에 선물할게요"
"왜요? 지금 알려주나 다음에 알려주나 같은 책인데?"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마무리되면 알려줄게요"
"오~~~ 지금도 쓰고 있어요?"
"^^"
초록불이 바뀌고 나란히, 그렇지만 적당히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선혜야"
"????"
누군가 불렀지만, 등교하는 학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퍼뜩 찾지 못했고, 두리번거렸다.
"누가 제 이름 불렀는데..."
"저도 들었어요"
"이쪽이야. 어딜 보고 찾는 거야?"
순간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았고, 당황해서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자주 보지 않으니까.. 그리고 낯선이에 대한 경계가 강하므로.
낯선이는 나의 외삼촌이었다.
열 살 차이 나는 천방지축 말썽꾸러기 삼촌.
"누구십니까?"
그는 물었고, 나는 삼촌이라고 이야기했다.
"왜 연락도 없이 왔어??"
"전화를 해도 받아먹어야지. 폰 어쨌냐?"
"아침에 바빠서 깜빡했어. 나 여기 있는 건 어찌 알았데?"
"누나한테 전화했지. 여기서 기다리면 볼 수 있다데?"
"일단.. 인사해. 저희 삼촌이에요"
"팬 아니고 진짜 삼촌이에요?"
"네 ^^;;;;"
"안녕하세요"
"네"
"삼촌은 왜 인사 안 해!!"
"난 남자한테는 인사 안 해"
".... **아빠, 먼저 갈게요. 천천히 와요"
삼촌은 그와 인사하는 나의 손목을 잡아끌었고,
"니 서방 바꼈어?"
"입 닫아. 다 들리겠어ㅡㅡ"
인상을 풀어 그에게 다시 가볍게 인사를 했다.
"오후에 봬요^^"
"차 어디 주차했어?"
"스파 앞에"
"방문차량 등록하고 들어가지! 거기 끊겨!"
"네가 전화를 안 받았잖아"
"입 놔뒀다 어디에 쓸 거야!!!!!! 경비실에 방문 차량이라고 하면 되지!!!"
"동호수를 몰라. 그리고 아침엔 안 끊겨"
"끊겨. 여기 신고정신이 투철해서.. 손목 좀 놔. 뛰어야 해"
뭉그적거리는 삼촌을 잡아끌었고, 나이만 먹고 철은 전혀 안 들은 삼촌은 그제야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너 저 남자, 그냥 학부모는 아니지?"
뛰는 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주먹을 배에 꽂았다.
"입 닫아 좀!"
"윽 아파"
"삼촌은 맞아도 싸. 조카한테 할 소리다"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섰고, 긴 신호에 그도 같이 섰다.
"삼촌이랑 사이가 좋으시네요^^"
"그래 보여요?? 전혀요^^"
"왜, 우리 좋잖아"
삼촌을 째려봤고, 무의식적으로 삼촌은 가드를 올렸다. 아팠던 게지.
"오늘 어디 가세요?? 출근은요?"
"아.. 벌초하러 가요"
"그쪽이요?"
"네^^"
"아..."
뒤에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삼촌이 왔구먼? 하는...
"삼촌, 아침은 먹었어??"
"아니, 네가 해주는 밥 먹고 갈라고"
"먹고 왔어야지!! 나 아침밥만 몇 번 차리는 줄 알아??!!"
옆에서 웃는 그가 보였지만 태세를 바꿀 수 없었다.
"그럼 사 먹고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뭘 또 아침부터 사 먹어. 그냥 집밥 먹고 가자ㅠ"
"신호 바뀌었는데....^^"
신호등만 보고 있었지만, 정작 초록불로 바뀐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가 친절히 말해주었고, 7초 남았다는 신호가 눈에 갑자기 들어왔다. 서둘러 건너려다가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려 했다. 삼촌은 나의 등뒤에 있는 티셔츠를 잡아당겼고, 그는 나의 팔을 잡아당겨 넘어지지 않게 도왔다.
"큰일 날뻔했네^^;;"
나는 민망했고, 삼촌은 놀려대기 바빴고, 그는 걱정을 했다.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질 뻔"
"괜찮으세요?"
#난 이미 읽혔다
"그쪽이 쓰는 글에는 누가 있어요?"
"네...???"
"작가들은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던데.. 맞아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전, 안 그래요"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세요 아니면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세요?"
"둘 다 좋지만, 굳이 하나만 선택해야 된다면 듣는 쪽이요"
"에이.. 그쪽 이야기 듣고 싶었는데.."
"^^"
"그럼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드릴까요?"
"아뇨. 이제 거의 다 왔어요"
"그럼 첫사랑 이야기는요?"
"좋아, 좋아요! 해줘요! 근데 첫사랑이 이뤄졌어요?"
"이뤄지면 첫사랑인가요. 그리고 다 왔다면서요^^"
"공원 한 바퀴 돌고 가죠 뭐. 어차피 그쪽은 사장이라면서요..."
"속이 빤히 보이십니다^^ 저 오늘 바빠요"
"사장이라면서요ㅡㅡ"
"오늘은 진짜 바빠요^^"
"놀리는 거죠?"
"아뇨^^ 다음에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해요. 아! 근데 제 이야기가 궁금한 거예요? 그냥 스토리만! 궁금한 거예요?"
"둘 다요..."
"거짓말"
바로 들켜버렸다. 어찌 안게지? 스토리만 궁금하다고 하면 필시 그는 또 이야기 안 해줄 것이 빤하기에 둘 다 궁금하다고 답했지만, 그는 나를 잘 알았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사랑이야기는.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
새벽에 그와 함께 뛴 적이 있었다. 그날 그는 이어폰을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폰을 두고 왔는데, 같이 들어도 될까요?"
"네^^"
30분 정도 내가 듣는 음악을 들으며 강변을 달렸다. 적당히 거리를 둔 상태. 그러나 결코 가깝지는 않았다. 딱 그 정도의 선은 유지되었다. 멀어지면 블루투스가 꺼지므로. 적당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선은 적당하지 않았다.
"매일 이런 노래 들으면서 달려요?"
"네"
"폰 줘봐요"
나는 폰을 내밀었고, 그는 내 폰을 가져갔다.
<Dyskoteka Gra> 노래가 흘러나왔다. 익숙하고 신나는 일렉토닉 음악이었다.
"이런 노래를 들어야 신나서 더 잘 뛰죠!"
"ㅋㅋㅋ 전 조용한 노래가 생각하기도 좋고 뛰기에 좋더라고요^^"
"혹시 그쪽은 달릴 때 일정 구간에서 도파민 터지는 순간이 있어요??"
"러너스 하이!!!"
"오~~~~ 알아요?"
"네! 그거 때문에 이렇게 뛰는지도 몰라요 ㅋㅋ"
"제가 러너스 하이 경험할 때 들었던 노래가 Dyskoteka Gra 에요. 러너스 하이 경험해 보니 어땠어요?"
"전.. 5킬로 정도 천천히 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고 페이스 올려서 뛰는데 갑자기 몸이 찌릿찌릿하면서 기분이 너무 좋아지더라고요. 땅을 박차고 달리는 순간도 힘이 넘치게 짜릿했고요. 잡생각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진짜 하얘지더니 몸이 굉장히 가벼웠어요. 그러고 22킬로까지 뛰고 쓰러졌어요..."
"아이고.... 22킬로요??"
"네^^ 근데 그쪽은 잘 뛰시네요? 그쪽도 폰 줘봐요"
그는 패턴을 풀고 내게 내밀었다.
"어??? 러닝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안 했어요? 페이스가 일정하고 좋은데?"
"저 예전에 육상선수였어요"
"어? 나도! 나도 **국민학교 대표 선수였어요"
"ㅋㅋㅋㅋ국민학교 다니셨어요?ㅋㅋㅋㅋ"
"압... ㅡㅡ"
"말했잖아요. 그쪽은 나보다 한참 어려 보여요"
"감사해요^^"
"아참, mbti가 뭐예요?"
"INFJ요"
"거짓말, I일리가 없어"
"나 내향인 맞는데?"
"그쪽이 내향인이라고요? 길에서 춤도 추시는 분이?"
"???? 내가요???"
"네, 전에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춤추면서 가던데??ㅋㅋㅋ"
"아... 아 ㅋㅋ그건 얘들이랑 신나서 ㅋㅋㅋ
아니, 근데 그쪽은 맨날 날 어디서 보는 거예요?^^"
"시선이 계속 그쪽으로 가요"
"아..."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다 그런가..
그는 나와 비슷한 면이 많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무용한 것들에 대한 뜬구름 잡는 대화도 잘 통한다. 해서, 새벽 러닝을 하지 않는 것이다. 때마침 적당한 타이밍에 다리를 다쳐 핑계도 좋지 않은가.
"긴장 안 하셔도 돼요. 내가 워낙 한량 같은 사람이라^^"
"제가 긴장할 필요가 있나요??^^"
이용하겠다 마음먹은 건, 필시 내쪽이었는데...
뭔가 수비와 공격 포지션이 묘하게 달라진 듯하단 말이지.
#그의 언어유희는 이러했다
"그쪽은 희로애락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요"
"급하다면서요, 폰 봐요. 난 그쪽을 볼 테니까"
(노안이 있는 나를 위한 배려)
"고슴도치는 서로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를 찌르는 법이죠"
"지나간 일은 담배연기에 담아요. 흩어져버리게"
"공허?? 허무? 그건 없는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말해지지 못한 말이 아닐까요?"
그는 말을 잘했다. 그와 말을 주고받을 때면 퍽 즐거웠다.
첫사랑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지만, 그 첫사랑이 시집을 즐겨 읽는 문학인이었고, 덕분에 그는 시를 많이 읽었다고 했다.
내가 봤을 땐 그냥 언변이 좋은 편인 거 같다. 그는 사람을 말로 너무 들었다 놨다 하여 혼을 빼놓는...?
'감성 글쟁이 > 엽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엽편소설)#1-349 덧없는 인연, 더 없는 우연 (1) | 2025.09.29 |
|---|---|
| 엽편소설)#1-348 떠나보낸 뒤에도 놓지 못하는 (0) | 2025.09.26 |
| 엽편소설)#1-347 과격해지셨네요 (2) | 2025.09.24 |
| 엽편소설)#1-346 엉터리 기도 탓이라고 탓해버릴래요 (1) | 2025.09.22 |
| 엽편소설)#1-345 결말을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6) | 2025.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