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44 쓸모있는 낭만


#아름답고 무용한 낭만, 사랑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사랑한다. 쓸모없는 것들에 마음이 흔들린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용돈이 없어 가불은 했지만, 늘 손에 꽃을 놓지 않았다.
아무 쓸모없지만, 봄이면 벚꽃 잎이 떨어져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 여름이면 더할 나위 없이 반짝임에 일렁이는 윤슬, 가을이면 낙엽 밟히는 소리, 겨울에는 나리는 눈이 손끝에서 사라짐에 눈물을 흘렸다.

비틀어진 현실에서 가면을 쓰고 회피를 선택한 사람이 나였다. 쓸모없는 것들을 좋아하던 마음은 한계 없이 사랑을 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쓸모없는 것들이 내게는 달이 뜨고 별이 움트는 하늘이고 우주였다. 꽃이 피는 들판의 웃음과 솔직함이 낭만이었다. 이런 것들이, 사랑이 많지만 사랑이 없는 나를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상에 지지 않겠다는 마음의 신호라 굳게 믿었다.

그런 나를 결코 공감할 수 없던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빠'였다.
중년이 되고서야, 그때 아빠 말 들을 걸 하며 후회한다. 어리석었다. 하나, 예나 지금도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고 있다.

"굳이 쓸모없는 인간이 되려거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거라. 나이 차면 시집가서 취미 생활로 글 써.  니는 가만히 있는 걸로 니 할 일은 다 했다"

현실에 살지 못하는 나를 탐탁지 않아 하셨다. 늘 뜬구름 잡는, 그 시절 아름다움을 쫓던 나를 뜯어고치고자 하셨다.
권태롭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는 숨이 막혔다. 아침에 일어나 등교를, 하교 후엔 학원을, 하원 후엔 집에서 과외를, 자기 전에는 학교에서 배웠던 수업의 복습과 내일 수업 할 과목의 예습을 해야 하는 학생 시절.  10대의 나는 늘 숨이 턱턱 막혔다. 늦은 밤, 오롯이 일기 쓰는 일과 책을 읽는 것으로 조인 숨통을 풀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가출을 다짐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가져오고자 함이었다. 여름 방학이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나는 가출이었지만, 나는 출가였다. 번뇌에 얽매인 나를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자유를 실현시키고자 했다.
편지 한 통을 썼다.

'염려하지 마세요!!!
제발, 끝까지 편지를 읽어주세요.
누구의 강요가 아닌 저 스스로 판단하여 집을 떠납니다.
이렇게 살기는 싫습니다. 그렇다고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니, 걱정 마세요.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지금 이대로는 죽어도 싫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나가서 개고생 해봐야 집 귀한 줄 알지'라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계셔 주세요.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절에 가서 조용히 있다가 오겠습니다. 찾지 마세요. 1년 치 용돈은 가불 해서 가겠습니다. 부모님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합니다'


거실 식탁에 편지만을 남겨두고 열여덟 살이었던 나는 그렇게 집을 나왔다. 그리고 나온 지 3일 만에 집으로 들어왔다. 나의 첫 가출은 그러했다. 아니, 출가였다.

갈 곳을 정해둔 출가는 아니었다. 왜 하필 절이였냐면... 영화나 책 속에서 갈 곳 없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절에서 묵을 수 있게 해 주신 스님의 이미지가 강해서였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어디로 갈지 한참을 고민 후 '산청'으로 노선을 정했다. 짊어진 가방은 몹시도 크고 무거웠으며 그날의 날씨는 굉장히 무더웠다.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웠고, 높은 건물들이 없어 오로지 덥기만 한 산청이었다. 잔치국수를 한 그릇 사 먹고 배를 채운 뒤 근처 점방에서 쭈쭈바 사며 물었다.

"저... 조용한 절을 찾고 있는데, 근처에 없을까요?"

용기가 없던 나는 절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다 결국 가방을 벗어두고 쪼그려 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스님은 아닌 듯했지만, 입고 계셨던 복장은 절복고ㅏ 비슷한 듯했다.

"왜 이러고 있어?"
"...."
"일단 들어가자"

머리카락이 긴 스님(?)은 손수건으로 머리를 두건처럼 두르고 계셨다.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스님, 나와보세요"

이번에는 진짜 연세가 지긋한 스님을 뵐 수 있었다. 첫인상부터 심상치 않았다. 분위기와 기세에 눌릴 것만 같았다.
가출한 청소년쯤으로 나를 보신 듯했다. 정확히 보신 듯했다.

"출가가 아니라면 돌아가시오"
"가출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스님은 죽어도 되기 싫어요...."

그제서야 내게 눈길을 주셨고, 한마디만 잘하면 이곳에 머물 수 있겠다 싶었다. 얼른 덧붙였다.

"토끼고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스님이 되려면 육고기는 못 먹는다면서요. 그건 싫습니다"
"하하하. 법당에 가서 삼배 올리고 들어오너라"
"....."
"얘야, 따라와"

두건을 두르신 분의 뒤를 조용히 따라 들어갔다.

"신발 벗고 들어가서 부처님께 합장하고 반배드린 다음..."
"합장요? 반배요?"
"너 절 처음이니?"
"네..."
"그럼 나하는 거 보고 따라 해"
"네..."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중앙에 활짝 열려있었음에도, 우측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벗으라 하여 가방을 한쪽에 내렸으며, 그분은 두르고 있던 두건을 벗었다.  두 손을 조용히 모아 부처님께 허리를 반쯤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러고 나선, 불단에 절을 하기에 나도 따라 했다. 3번을 했으며, 아마 삼배였던 것 같다. 다시 두 손을 모아 허리를 반쯤 숙여 인사했다. 이것이 반배였던 것 같다.

두건을 다시 두르시면서 따라오라 하셨고 나는 가방을 메고 뒤를 따라갔다. 스님은 방석에 앉아 나무로 된 앉은뱅이 긴 테이블 위로 차를 준비하시는 듯 계셨다.

"합장하고 반배드려야지"
"아.. 네"
"됐다. 안으로 들어와서 앉아"
"네"

가방을 내리고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육고기 때문에 출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가출은 아니올시다?"
"네..."
"맛있더냐"
"네?"
"그 육고기가 그렇게 맛있더냐고^^"

인자하게 웃고 계신 스님 덕분에 긴장이 조금씩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스님이 스님 되시기 전에도 안 드셔보셨어요?"
"끄덕^^"
"억울해서 어쩐대요..  앞으로 계속 못 드세요?"
"하하하 그럴 일은 없다만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게 되면 꼭 한번 먹어봐야겠구나"
"그때 제가 꼭 사드릴게요^^"
"하하하하"
"스님.. 저 며칠만 여기서 지내도 될까요. 세상에는 공짜가 없죠!  저 돈 있어요. 숙박비, 식비 전부 지불할게요. 단 며칠만 지내게 해 주세요. 집에 돌아가기 싫습니다"
"이유가 뭔가"
"하루하루가 권태롭고 남루해서요.. 숨이 막혀요"
"공부를 썩 못하는게지?"
"아뇨! 저 정학금 받아서 공락금도 안 내는데요?"
"그럼 그 이유가 무엇인고?"
"달라질 것 없는 저의 매일매일이 지겨워요. 아무도 저를 이해 못 해요. 아빠엄마도요..."
"너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디 한번 들어보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세상에 쓰임이 되는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대학도 취직도 결혼도.. 전부 다요. 그냥 시를 읽고 소설을 읽다가 그게 지겨울 때쯤 밖에 나가서 걷고 싶어요. 계절의 변화를 살피고, 하늘을 올려다 보고,  꽃과 나무를 보고.. 뭐 그런 것들을 보면서 살고 싶어요"
"한량이 되고 싶구만?"
"한량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저는..."
"현실은 성에 안차고, 쓸모없고 무용한 것에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구나?"
"네!! 아주 정확하세요"
"그러고 살고 싶다는 게야, 부모님한테 반항하고 싶은게야?"
"잘 모르겠어요. 집에 있으면 죽을 거 같아서 무작정 편지 남겨 놓고 나왔어요"
"토끼고기는 없어. 괜찮으면 묵어. 돌아갈 때 값은 제대로 치르고 가야 한다"
"네!! 감사합니다^^ "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스님은 한사코 나를 쉬지 못하게 괴롭히셨다. 새벽 기도에 참석하라 하시었고, 기도하러 절을 찾으신 분들을 뫼시라하셨고, 밥을 준비하시는 보살님들을 도우라고 하셨으며, 설거지도 시키셨다. 뿐만 아니었다. 절에 앞에 버리고 간 병든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내라 하시었고, 108배도 하시라 하셨다. 또한 천문을 여는 기도라는 책도 읽으라 주셨다. 책을 읽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빠르게 읽고 스님을 찾아가면 꼭 읽었는지 확인하시면서 책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첫날은 너무 고되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씻고 쉬고 싶었다. 그러나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물은 굉장히 차가웠고,  도저히 씻을 수 없었다.
아빠가 알려주신 맨손체조를 하려다 떠올린 아빠엄마 생각에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해서, 법당으로 조용히 들어가 108배를 했다. 땀이 절로 났으므로... 그렇게 차가운 물에 샤워를 했다. 서러웠다. 좋아하던 하얀 레이스 달린 잠옷으로 갈아입고, 그날이 내 가장 빠르게 잠이 들었던 날로 기억한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나는 눈을 떠 움직이지 않으려는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많았다. 초하루라고 했다.
스님은 바쁘셨고, 보살님도 바쁘셨던 모양인지 나를 찾지 않으셨다. 잠옷을 입은 상태로 양치와 고양이 세수만 한채,  절 근처 여름을 감상하고 여름을 느꼈다. 조용했고 새벽의 여름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그 여름을 오롯이 만끽했다.

잊지 않고 피어나는 들꽃, 나비의 조용한 날갯짓, 이슬을 머금은 잎사귀, 맨들맨들한 돌멩이를 쌓아 올린 아슬한 돌탑, 여백이 있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여름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카락과 낯선 샴푸향기. 그 모든 것들을 그저 바라봤다. 그들도 제가 아름다운 걸 알고 스스로 빛을 내어 반짝였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그 젊음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을 것이다.

일과 중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것이 무척 즐거웠다. 농담이 난무하였고, 인자하신 스님은 호탕하게 웃으셨다. 내게 본인이 무섭지 않냐고 물으셨고, 나는 한 개도 무섭지 않다고 대답했다. 맑다고 하셨다. 나의 영혼은 맑아도 너무 맑다고 이야기하셨다. 스님은 내게 입담이 좋다고 하셨고, 나는 스님의 내공과 지혜가 부러웠다. 나를 예뻐하심이 느껴졌다.

"예수님, 하느님, 부처님, 신부님, 장로님.. 전부 '님'자를 빼도 호칭이 되는데 스님은 '님'자를 빼면 너무 이상해요... 스!!!!!"
"하하하 그렇네 여태 모르고 살았어"


그렇게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평온한 시간이었다. 정확하게는 이틀하고 반나절이었지만...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급하게 주차하고 거칠게 한 남자가 내렸다. 발걸음 소리와 멀리서 본 실루엣만으로 단숨에 아빠임을 알 수 있었고, 엄마는 그 뒤를 바삐 걷고 있었다.

절 입구에서 엄마는 합장하여 예를 갖추었고, 아빠는 갖추지 않고 직진해 내게 오셨다. 그 모습은 가히 불도저가 따로 없었다. 한 대 맞겠구나 싶었다.

"아빠........"

나를 지나쳐 스님이 계시는 곳으로 향했고, 아빠는 고개를 깊이  숙여 스님께 인사드렸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는 나를 보고 우셨고, 그런 엄마를 보고 나도 울었다.
부모님은 스님이 계신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셨고, 나는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물건들을 챙겼다. 그러고 법당으로 가는 계단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절에서는 한량은 안 받아준다. 쓸모없는 것들을 아끼는 건 부모 그늘아래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돌아가거라. 꽃처럼 살고자 하지 말고, 꽃이 되지도 말라. 잡초로 살며, 사색하지 말고 살아야 인생이 풀린다. 허나, 그것도 너의 선택이다. 하고자 하는 일에는 반드시 대가는 치러야 한다"

눈길도 주시지 않고 제 할 일 하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법당에 반배하고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 올리고, 일 년 치를 도둑질한 용돈을 올리려 했다.

"도둑질한 공양미는 필요 없다. 들고 가거라"

뜨끔했다. 결국 도로 들고 나와야 했다. 법당에서 나옴과 동시에 엄마는 법당으로 들어가 합장과 반배 후 삼배를 올렸다. 그리곤 지갑에 있는 모든 지폐를 불전함에 넣고 다시 합장하여 반배 후 법당을 나오셨다. 그렇게 나의 출가는 3일 만에 끝이 났다. 두건을 쓰시고 밥을 준비하시는 보살님과 이야기 나눌 때 아빠가 뭐하는지 물으셨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었다. 그 일이 아빠를 오게 한 듯싶다. 여전히 그 일에 대해선 말씀 없으셨다.

백미러로 본 아빠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순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딸을 찾은 기쁨과 걱정 그리고 분노를 조용히 삭이는 듯 보였고, 엄마는 계속해서 나의 얼굴을 만지고 쓰다듬으셨다.

"이제 니가 하고 싶은 건 다 해. 대신 집을 한 번만 더 나가면 그때는 다신 집에 못 들어올 줄 알아. 명심해"
"네.."
"니가 미워서 니가 좋아하는 것들을 못하게 한 거 아니다. 니 말대로 피고 지고 이런 것들만 보고 글을 쓰면 사람이 약해진다.  아빠는 니가 세상 누구보다 밝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서 그런 거야. 다른 뜻은 없다"

그때 아빠의 말대로 쓸모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행복했을까.
필 때의 기쁨과 질 때의 슬픔, 다시 피어날 때까지의 기다림.  달이 뜨고 별이 뜨고 달이 비워지고 채워지는 밤하늘의 낭만. 나의 모든 글이 무용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나약했지만 강하기도 했다.
그를 만나기 전, 내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아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기도 했다. 그것은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속임수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 분명 행복도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그를 사랑하고부터 그가 보여준 세상들이 자꾸 지금의 불행을 발목 잡고 있다. 그도 분명 내게 무용한 것들 중 하나다.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리겠다 해서 버릴 수도 없는. 내게 새겨진 아름다운 낭만이 바로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