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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25 첫 담배


"귀여워요"
"원래 표현이 솔직한 편이세요?"
"네. 원래 그랬어요"
"아닌데?"
"맞는데?"

#솔직함과 솔직함이 만나면

구질구질하게 굴어도 괜찮은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체로 썩 괜찮은 척하고 살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감추고 숨기고 가는 것은 오래 못할 짓이다. 다들 그런 사람 한 사람은 있지 않을까? 가까운 사람에게는 못할 이야기를 모르는 남에게 하는 편이 아싸리 편한 것처럼 말이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뒤숭숭했다. 회사는 널널한 시기였고, 해서 그냥 하루를 쨌다. 자를 테면 잘라라지.... 배 째라 이거야!
새벽에 일어나 가볍게 10킬로를 달리고, 내 작은 아이들을 등원 등교 시켰다. 물론 그와 함께 말이다.

"어?? 오늘 출근 안 해요?"
"네.."
"쉬는 날이에요?"
"휴가 냈어요"
"어디 아파요?"
"아니요"

나는 빠르게 집에 돌아왔고, 갑자기 생긴 땡땡이에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괜히 새벽에 달린 것을 후회했다. 당장 할 일이 없었으므로... 책을 읽자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글을 쓰자니 대낮에는 잘 쓰지 않는 편이라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영화를 보자니 보고 싶은 영화가 떠오르지 않았고, 또 달리자니 구미가 확 당기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담배.
며칠 전, 담배 한 갑을 구매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술에 취하면 몽롱한 취기에 글이 잘 써지듯, 담배를 태우면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그리고 궁금했다. 몸에 해로운 걸 알면서도 중독될 수밖에 없는 담배의 심연이. 할 것도 없는 오늘, 드디어 내게는 담배를 태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는 또 고민했다. 동네에서 태우다 이웃을 만나면 어쩌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사서 고민하는 나의 고질병. 결국 스테이트 보드를 타고 멀리 나가기로.. 보호장구를 착용하면 내가 누군지 더 알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택한 선택이었다.



보호장구를 모두 착용하고 스케이트 보드를 챙겼다. 아무도 모르게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담배와 라이터를 넣은 채 말이다. 심장이 발랑 발랑 했다. 기호식품이라고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켜 보지만, 한편으로는 나쁜 일을 몰래한다는 생각에 설레는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모른 채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보드를 타려면 종합 경기장까지 가야 하는데, 걸어가기엔 롱보드가 무거워서 강변 야외 농구코트가 있는 곳에서 타기로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내 키와 맞먹는 크기의 롱보드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이선희의 라일락이 질 때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낑낑거리며 무거운 롱보드를 들고 겨우 도착했다. 타기도 전에 이미 땀에 흠뻑 젖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여름은 간 줄 알았지만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농구코트에 롱보드를 내려놓고 발을 올렸다. 역시, 잘 굴러갔다. 농구장은 보드가 잘 굴러갈 것 같았던 생각이 아주 기가 막히게도 맞았다. 내심 뿌듯했다.
한 발을 보드 위에 올리고 앞으로 밀면서 앞으로 나갔다. 적당한 바람과 속도감에 날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좋았다. 뒤숭숭했던 마음이 바람에 날아갔고, 그 자리에는 자유로운 영혼이 자리 잡았다. '이선희의 라일락이 질 때' 노래와 굉장히 잘 어울렸고, 나는 그 한곡을 무한재생하며 열심히 농구장을 돌고 돌았다. 얼마나 돌았을까.. 속도를 점점 멈추고, 담배를 태울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그러다 계단에 누군가 앉아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경계였다. 하필 그 농구장은 다리 밑이라 어두웠고..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였기에 더 긴장했다. 그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겁을 먹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 나이기에... 어찌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 사람은 엉덩이를 털털 털며 내게 오는 것이었다.

"**엄마"

내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안심했다. 익숙한 목소리는 아기 아빠였다. 그는 손을 흔들며 내게 왔고, 점점 그의 얼굴이 눈에 익을 때쯤 화가 밀려왔다.

"놀랬잖아요!!!"
"불러도 대답 안 한 건 그쪽이에요. 놀랬어요?"
"네.. 진짜 놀랬어요"
"그렇게 겁이 많은데 왜 혼자 나왔데요??"
"...."

맞는 말만 하는 그의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안 더워요?"
"놀래서 더운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여긴 왜 왔어요?"
"아.. 헬스장에서 러닝머신하다가 지겨워서 강변 뛰러 나왔다가 그쪽 보고 앉았죠"
"아...."
"물 마실래요?"
"네"

그가 앞장섰고, 나는 롱보드를 들고 그를 따라갔다.
그는 계단에 털썩 앉았고, 나도 그와 일정 거리를 두고 앉았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더웠던 탓인지 그 물은 내게 너무도 달콤하고 시원했다.

"저번부터 느낀 거지만, 보호장구들이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칭찬이죠??^^"
"네. 당연, 칭찬이죠. 귀여워요"
"원래 표현이 솔직한 편이세요?"
"네, 원래 그랬어요"
"아닌데?"
"맞는데?"
"아니었는데?"
"맞아요. 그쪽이 날 너무 경계하니깐 거기에 맞춘 거지. 나 원래 솔직한 편이에요^^"
"아... 그래도 제 나이를 몰랐음 몰라도 아는데 귀엽다는 쫌... 전 그쪽보다 나이가 많아요"
"연하 콤플렉스 있어요?"
"아뇨??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런 반응이니까요"
"....."

매번 느끼는 거지만 그는 한 번씩 대답을 못하게 만든다. 자꾸 대화를 이어가다가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말을 많이 하기에 입을 닫았다.




"누가 이런데 개똥을 버리고 간 건지...."
"그거 개똥 아니고, 제 거예요"

그는 계단 한쪽에 검은 봉지를 보고 말했고, 나는 검은 봉지를 주웠다.

"또 팩소주????"
"참나.. 누가 보면 저 술주정뱅인 줄 알겠어요ㅡㅡ"
"하하 그쪽은 매번 보이면 안 되는 것들을 검은 봉지에 넣더라고요 ㅋㅋㅋ"

그는 크게 웃었고, 나는 검은 봉지를 손목에 걸었다.

"거짓말도 해요?^^"
"소주 아니라니까요!"
"누가 봐도 팩소준데요?"

이렇게 그와 이야기를 이어가면 맨날 내가 손해 보는 느낌이다.
결국 나는 손목에서 봉지를 풀어 담배를 끄집어냈다.

"아니죠? 그쵸?!!"
"흡연자세요?"
"아뇨!!"
"ㅋㅋㅋㅋㅋㅋ 뭘 또 그렇게 정색하세요 ㅋㅋ담배 필수도 있죠^^"
"아니, 아니라고요. 안 핀다고요. 그냥 궁금해서 펴보려고요"
"하하하하 사춘기세요? ㅋㅋㅋㅋㅋㅋㅋ"
"씨...."
"씨??ㅋㅋㅋㅋㅋ 욕도 하십니까..ㅋㅋㅋㅋ"
"네 해요 해요! 욕도 하고, 담배도 하고, 술도 해요. 다 해요!!"
"ㅋㅋㅋ미안해요 그런 말이 아니었어요. 담배는 피워보셨어요?"
"아뇨 그게 궁금해서 펴보려고요"
"근데 왜 하필 던힐이에요. 향이 좋은 것도 많을 텐데"
"예전에 친정아빠가 피시던 거라 익숙해서요"
"아.. 어렸을 때 담배 심부름 많이 하셨겠네요"
"단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담배 심부름.. 아빠가 담배랑 커피 심부름은 절대 하지 말라 하셨거든요"
"아... 멋진 아빠시네요. 라이터는 있어요?"
"네"
"진짜 필 거예요?"
"끄덕끄덕"
"피는 방법은 알아요?"
"방법도 있어요??"
".... 일단 불부터 붙여요"
"펴보셨어요?"
"네, 전에는요. 지금은 금연한 지 8년 됐어요. 담배 줘봐요"

나는 담뱃갑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왜 한 개비 밖에 없어요?"
"버렸으니까요"
"왜요?"
"궁금한 것만 해결하면 되니까요"
"역시 특이하셔...."

다시 담배를 내게 건네줬고, 나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볼랬지만 라이터가 무서워서 한참을 실패했다.

"..... 라이터도 못 켜는데 무슨 담배를.... 줘봐요. 아니, 헬멧이라도 벗던지,  누가 보면 내가 학생한테 담배 알려주는 나쁜 아저씨 같아 보일 텐데요??"
"ㅋㅋㅋ아니에요^^;;;"
"불 붙이면 바로 연기를 빨아야 해요"
"잠시만요. 이거 한번 핀다고 죽거나 폐암에 걸리거나 하지 않겠죠?"
"네 그랬으면 저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죠"
"^^;;;"

그는 불을 붙였고, 내게 담배를 건넸다. 그러나 당황한 나머지는 빨아들인다는 게 불어버렸다.. 처음엔 당황해서였고,  다음에는 무서워서 빨아들이지 못했다. 후기에 아프다는 내용이 떠올랐으니까..

"제가 보여드릴까요?"
"끊었다면서요"
"뭐 한 개비 피는 거야 뭐.. 상관없어요. 잘 봐요"

살며시 입술에 담배 끝을 물었다.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이고 볼을 서서히 조여가며 담배 속 연기를 빨아들였다. 입안에 머금은 연기를 들이켰다. 매번 웃상인 그가 잔뜩 찡그린 인상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낯설었다. 아직 친해지지 않았지만...
그가 담배를 내게 내밀었고, 내가 담배를 건네받자 시범을 보였다. 담배를 살며시 물고 담배 속 연기를 깊게 들이켰다. 콜록거림과 헛구역질이 동시에 나왔다. 내 몸은 적극적으로 담배연기를 밀어내려 했지만 담배연기는 그럴수록 더욱 빠르게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아팠다. 매웠다. 맛이 없었다. 눈과 코가 따가웠다. 자리에 일어나서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러 연기를 없애려 했다.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괜찮아요? 비비면 안 돼요. 물 마셔요"

그가 내민 물을 입에 부었지만, 구역질과 기침에 삼켜지는 게 되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누가 보면 뽀뽀라도 할 만큼 가까이 말이다.

"..... 코로 숨 쉬지 말고 입으로 호흡을 뱉아요. 코는 막고 입으로 숨을 뱉어"

그의 말대로 손으로 코를 잡고 호흡을 뱉었다. 점점 나아지는 게 느껴졌고, 시간이 갈수록 괜찮아졌다. 이제 말도 할 수 있을 만큼 맵기도 사라졌다.

"미안해요"
"좀 나아요?"
"끄덕끄덕"

"이렇게 아픈데 담배를 왜 피우는 걸까요ㅜㅜㅜ"
"엉뚱 발랄 콩순이가 따로 없어요 진짜"

다리 힘이 풀렸고, 나는 계단에 앉았다.
그가 내 헬멧 쓴 머리 위에 딱밤을 때렸다.

"라이터도 못 킬 때 그때 말렸어야 했어"

그의 말이 맞았다. 다시 할 말을 없게 만드는 말에 나는 예쁘게 웃고 말았다.



"집에 가야겠어요.. 씻고 싶어요"
"네, 갑시다"

그가 먼저 계단을 올랐고, 나는 검은 봉지를 속목에 걸고 롱보드를 안고 따라갔다.

"주세요 제가 들고 갈게요"
"아뇨. 무거워요. 제가 들고 갈 수 있어요"
"주세요"

내가 주기도 전에 내가 들고 있던 롱보드를 그가 가져갔다.

"또 담배 태우실 겁니까?"
"제 인생에 담배는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럴 줄 알았어요"
"오늘 일은 잊어주세요"
"눈물 콧물 쏟은 거요? 아니면 물 뱉은 거요? 맵다고 울었던 거요?"
".... 전부 다요"
"ㅋㅋㅋㅋㅋㅋ 생각해 볼게요"
"....."
"저번에 식당에서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보호장구가 굉장히 잘 어울려요. 초등학생 같아요 ㅋㅋㅋㅋ"
"오늘은 놀려도 봐드릴게요. 오늘 일은 잊어주세요"
"재미있는 걸 왜 잊어요. 두고두고 기억해야죠!!"
"압..... 제가 다음에 팥빙수 살게요"
"이것 봐 이것 봐 자기 불리하니깐 뭐 사준다고 하고"
"......"
"삐졌어요?"
"내가 맨날 뭐 삐지는 줄만 아세요??"
"자주 삐지시고 토라지시던데요?"
"....."
"오늘 팥빙수 사주면 잊어볼게요^^"
"제 몰골을 보세요.. 같이 팥빙수 먹으러 갈 수 있겠어요??"
"왜요? 귀여운데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낯간지런 소리를 잘하세요?"
"말했잖아요 원래 잘했어요"

그렇게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과 내용은 무관하며,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지나친 흡연은 건강에 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