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쑤나 소리 듣기 싫으면 계집처럼 하지 마라"
아버지, 영원한 내 편.
아버지라는 말보다는 아빠가 더 입에 익숙한.
끔찍이도 딸을 사랑하셨고,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하신다. 현재를 살며 그 지난날이 모두 사랑이 아니었던 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빠, 친구가 놀렸어ㅠㅠ 나보고 짜리 몽땅 이래ㅠㅠ"
순둥이였다. 뭐 가끔 엉뚱 발랄하여 골칫거리였다지만, 순했다고 했다. 퍽 잘 울어서 울보와 짬보라는 별명과 함께 늘 잘 웃었다고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가 놀려 속이 상해, 아빠한테 고자질하는 날이면 그 뒷날 하교할 때 늘 아빠가 차를 끌고 나를 기다리셨다.
"어떤 놈이 우리 공주를 놀렸노?"
"아빠, 쟤야!!!!!!"
교문 앞에서 아빠 손을 꼭 잡고 있다가 손가락으로 나를 놀려댄 아이를 콕 집으면, 아빠는 씩씩거리며 그 아이를 낚아챘다.
"니가 짜리 몽땅 이라 놀렸나?? 어??!!!"
"선혜가 먼저 놀렸어요ㅠ 똥돼지라고 선 넘어오지 말랬어요"
그렇다. 나는 내가 불리한 이야기를 아빠한테는 쏙 빼놓고 한 것이었다. 물불 가리지 않는 아빠는 무조건 내 편이셨고, 이런 식은 매번 같은 결말 같았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니가 덩치가 좋은께 우리 선혜 단디 잘 봐주고.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줄게"
그렇게 아빠와 나는 나란히 차를 타고 콜라맛 쭈쭈바를 하나씩 입에 물고 엄마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늘 아빠와 사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니는 커서 뭐가 될래"
"난 공자 맹자처럼 글을 쓸 거야!!!"
"밥 벌어먹는 걸로 해라"
"그럼 대통령 할 거야!!"
"말 장난 하지 마라"
"진짜야!!! 말장난 아니야!!"
빠닥빠닥 말대답하는 나를 한 번은 굽히기로 굳게 마음먹으셨다. 책을 멀리 하신 아빠는 내가 읽기에 아주 어려운 셰익스피어 전집을 골라 일부러 필사하고 와서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14살, 고작 초등학생 티도 벗지 못한 중학생 1학년인 나는 셰익스피어의 전집 8권을 필사했다. 덜 자고, 덜 먹고 악에 받쳐 울면서 몇 날 며칠을 썼다. 다행히 나는 양손잡이었고, 오른손으로 쓰다 아프면, 왼손으로 번갈아 썼다.
"다 썼어. 한 장도 안 뛰어넘고 다 썼어. 맹세해. 나 글 쓰는 일 할 거야!!!! 다 쓰고 나면 아빠가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잖아! 다시 이야기해!!!"
"어떻게 한 번을 안지노!!!"
"내가 왜 져!! 이기고 살라매!!!! 지고 살지 말라매!!!"
"아빠한테만 이길 거야???!! 책만 읽어서 뭐가 될 거냐고!!"
"그게 좋다고!!!"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곱게 있다 나이 차면 시집가"
"싫어!!! 시집 안가!!!!!!!!!! 아빠 미워!!!!!!!"
그렇게 나는 아빠와 처음으로 크게 대들었고, 아빠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그것이 무척 서러웠다. 그리고 얼마 뒤 아빠는 내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흰 깃발을 먼저 흔들어 휴전 상태를 선언했다. 나를 꽁꽁 숨기기로 하셨다. 숨겨놓고 있다가 시집을 보낼 심산이셨다. 나약하고 강하지 못해 이래 저리 치이는 나를 위한 길이라 여기셨다. 부모의 그늘 없이 오롯이 홀로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직업과 당당함을 원하셨다. 평생 나의 그늘이 되어주지 못해 주시기에. 그렇게 세상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기를 바라셨다. 그러면서 늘 미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내게 그런 말을 하셨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일은 돈과 위치(권력)다.
둘 중에 하나는 쥐고 살아야 편히 살 수 있다.
아빠가 보기엔 나는 나약했지만, 나는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강했고, 이기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해내지 못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영락없이 아빠 딸이 맞았다. 그래도 아빠 눈에는 성에 차지 않았고, 내게 많은 운동을 알려주셨다. 여자가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줄 알아야 한다면서 말이다. 보기 좋게 모든 운동은 흥미가 없었고 즐겁지 않았다. 집에는 각종 도복으로 장롱 한 칸을 채웠을 때쯤, 또다시 흰 깃발을 흔드셨다. 그럼 도망이라도 잘 가게 아빠랑 같이 달리자라고 하셨다.
같이 달리면서 아빠와의 관계는 기하급수적으로 사이가 좋아졌다. 누구보다 빨랐고, 달릴수록 심장소리가 벅차 행복에 물들게 했다. 아빠와 나란히 발맞춰 뛸 때쯔음, 다른 운동을 권하셨지만, 나는 달리기만 할 뿐이었다.
살면서 도망가야 하는 수많은 순간에 단 한 번도 도망가지 못했고, 두 눈을 감고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멈춰 섰다. 꼼짝할 수 없었다. 그 좋아하던 달리기가 겁을 먹으면 한 발자국을 떼지 못하는 나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알았다. 이게 나의 인생에서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철딱서니 없는 나는 지방에서 시집 잘 가는 직장? 에 다니게 되면서 부모님의 걱정은 한시름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이는 차고 있었지만, 남자를 만나지 않는 나를 그제서야 통금시간이 급하게 봉인해제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갈 곳이 없었다. 늘 도서관에 살았고, 그동안 금지되었던 철학 책을 아빠 몰래 도서관에서 대여해 독서실에서 읽기 시작했다. 곧 그 생활은 들통이 났다. 20대 후반, 나는 수많은 맞선과 중매를 보아야 했다. 돈이 많으면 배가 나왔고, 직업이 좋으면 예의가 없었다. 잘생기면 말을 예쁘게 하지 않았고, 집이 잘 살면 나를 위아래 훑어보았다. 나이가 어리면 무서웠고, 나이가 많으면 팔려가는 기분이었다. 반항 없이 맞선만 주야장천 보던 내가 무언가 잘 못 되었음을 아셨고, 타인에 대한 거부와 결벽증이라는 걸림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맞선과 중매만 보다 거기다 심리상담까지 추가되어 나이만 먹고 있었다. 점점 내게는 '시집'이 굉장한 스트레스였고, 정답이 나와있지 않는 애매모한 서술형 문제로 불만만 더해졌다.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맞선에 나가는 내게 항상 부모님 표정은 죄인이었으니까. 나는 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집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의 숙제였다.
어느 날, 나는 부모님 앞에서 펑펑 울면서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팔려가기 싫어요!!!!!!!!!!!!!!
그 한마디에 나의 중매와 맞선은 더 이상 없었다. 누구를 만나라는 강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심리치료를 계속 받았다. 남자에 대한 강한 거부와 오염에 대한 강박은 조금씩 치료되고 있었고, 그러다 친구 따라 간 소모임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특별할 거 하나 없는, 평범한 취준생.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내 결혼을 포기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평범한 취준생과 손을 잡게 된 계기가 생겼고, 그 잡은 손이 더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이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을 운명이라 여겼다. 치료사님은 내 결벽과 강박이 치료되었다고 몇 번 말해주셨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서른을 6일 앞두고 나는 부랴부랴 결혼을 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부모님의 긴 숙제를 마쳐 안도했다. 취준생이었던 그 남자는 결혼 후에 직장이 생겼다. 순조로웠다. 배우자가 생겼고, 그다음은 아이를 낳아 평범한 가정을 만드는 일은 내가 생각한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믿었다. 뭐든 빠르게 서두르면 놓치는 것들이 있기 마련. 결혼이라는 서류상의 관계는 서로 단점이 있어도 다시 무를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된다. 살면서 배우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다시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도 무조건적으로 내 편에 서서 나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부모님이 눈에 밟혔다. 나는 돌아가기를 포기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행복을 찾고자 했다.
아이를 갖는 일은 인간의 소관이 아닌,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게 임신을 위해 노력하고 생리가 늦어지면 임신 테스트기 한 줄과 두 줄에 울고 웃었다. 참 많이도 울었다. 내가 임신을 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내 배 안에서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벅찼고, 설레었다. 아이와 함께 할 행복한 날들을 꿈꿨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그렇게 될 거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임신은 되었지만, 유지할 수는 없었다. 행복한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습관성 유산이라는 꼬리표가 내게 달렸다. 그 꼬리표 보다 내 아이를 사지로 내몰고 있는 건, 엄마인 나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저주했다. 아이를 지킬 수 없다는 것과 아이를 품을 수 없는 나의 몸을 그렇게 증오했다. 그 시간은 필히 짧았지만 당사자인 내게는 한 달이 10년 같았다.
의도치 않게 세상에 발도 디디지 못한 내 아가들아.
한 번도 꺼내보지 못했다. 묻기만 했었으니까..
다시 내 부모가 있는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직 그것만이 내 살길이라 생각했다. 내가 결혼을 포기하고 나서야 결혼을 했듯이 엄마가 되기를 포기했더니 다시 아이가 찾아왔다. 기쁘지 않았다. 또 품지 못하고 흘러내릴 거라 예상했으니까. 아이를 몇 번 보내면서 그 느낌을 너무도 잘 안다. 극심한 통증 후에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움을.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하루하루 두려웠지만, 반면에 끊임없이 설레었다. 드디어, 작은 핏덩이를 내 품에 안았다. 아이를 낳고서야 내 부모는 사위와 시댁에 고개를 숙이지 않게 되었다.
아이는 너무 작았다. 다른 아가들 사이에서 유독 내 아이는 더 작았다. 그럼에도 나는 좋았다. 엄마 아빠가 내게 그러하듯, 작은 아이의 온 우주가 되기로 했다. 아이는 내게 살아가는 힘이었다. 내 젖을 먹고, 내 품에 잠드는 아이. 몸은 너무 힘들었지만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런 내게 상처를 준 건 배우자였다. 이제는 내 아이를 위해 나는 내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게 대부분의 삶 비슷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귀하디 귀하게 키운 나는,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
나보다 더 아파할 부모를 볼 자신이 없다.
그러나 사실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내 삶은 내 거니까.

<실화바탕이 아닌, 소설임을 명시합니다. 사진은 모두 내용과 관련 없어요>
'감성 글쟁이 > 엽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엽편소설)#1-342 비극적인 (11) | 2025.09.13 |
|---|---|
| 엽편소설)#2-24 느닷없이 가을이 왔다 (0) | 2025.09.11 |
| 엽편소설)#1-340 미련이 남아서 그래요 (0) | 2025.09.08 |
| 엽편소설)#1-339 잃어버린 우산 (5) | 2025.09.05 |
| 엽편소설)#2-23 개조심 (2) | 2025.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