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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23 개조심


#금요일

"이모~~~~~"
"삼촌~~~~~"

멀리서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소리와 내 아들들이 그를 부르는 소리는 확성기를 켠 듯, 크게 울려 퍼졌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안경을 쓰지 않았지만, 멀리서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고, 그도 나를 따라 답례했다.

"오늘 화장이 너무 진하시네요...?^^"
"....."

오늘 나의 날씨는 구름이 잔뜩 낀 매우 흐린 날씨였다.
허나, 오전의 날씨는 나의 날씨와는 확연히 다른 맑음이었다.
둘째들이 등원차에 오르고 늘 그렇듯 우리 넷은 함께 등굣길에 올랐다.

내 손을 잡고 있던 내 아이가 영화 ost golden을 불렀고, 그의 아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너 가사 틀렸어!"
"맞아!!"
"아니야!! 나 영어 학원에서 맨날 부르는데 너 틀린 거 맞아!"
"맞다니까 나 10번 넘게 봤어"
"나도 어제 케이팝 데몬헌터스 봤어! 노래는 저번에 들어봤고!"
"재미있지?"
"응!! 이것 봐, 너가 틀린 거 맞지?"

기어이 내 아이는 영어학원에서 준 용지를 그의 아들 얼굴에 내밀고 한층 더 목소리에 힘이 실린 듯 느껴졌다.

"네 말이 맞네"

작은 목소리로 그의 아들은 틀린 가사를 인정했다.

"둘째도 같이 봤어요?"
"네"
"안 무서워하던가요?"
"뭐.. 가끔요"

대답이 시원치 않았는지 그는 내 아이에게 질문을 돌렸다.

"다 같이 본거야?"
"네! 밥 먹고 숙제하고 다 같이 봤어요"
"어땠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울었어요"
"응????? 영화 보고???"
"네, 그래서 재미있는 영화는 아닌 거 같아요"
"슬픈 영화도 아닌데?"

내 아이는 내 얼굴을 보며, 그의 말에 대답하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는 영화가 슬퍼서 운 게 아니야. 영화는 재밌었어. 그런데도 눈물이 났어. 우는 건, 웃는 것만큼 자주 표현해야 하는 감정이야. 그냥 눈물이 났어. 같은 영화를 봐도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순 있잖아?^^"

그렇게 설명하는 동안, 정문 앞까지 왔다. 각자 아들들에게 인사하고 교문을 넘어,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빠르게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았다. 그와 대화를 주고받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므로...  흘러나오는 노래는 김학래의 슬픔의 심로였다.

"무슨 일 있어요??"

들렸지만, 들리지 않는 척 답하지 않았다.
다시 우린 횡단보도 앞에서 나란히 섰고, 그는 또다시 말을 걸었다.

"많이 울었나 봐요? 많이 부었어요"
"네...."

더 이상 그의 말을 씹기에는 마음이 불편해서 짧게 대답했다.

"케데몬이 그렇게 슬펐어요?"
"응?? 케데몬???"
"케이팝 데몬 헌터스요"
"아... 네"
"어디 가요?"
"왜 자꾸 코치코치 캐물어요!!"
"네?"
"왜 자꾸 물어보냐고요!!!"
"아니...."
"내가 슬펐다면 슬픈 거지, 뭘 자꾸 캐물어요!!"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니에요!!"

걸으면 걸을수록 기분이 나빴다. 왜 인지는 잘 모르겠다. 눈물이 터저버렸다.

"슬픈 걸 슬프다 그러지....."

혼잣말로 읊조렸다. 그걸 또 들은 모양인갑지?

"괜찮으세요??"
"괜찮아요ㅠㅠ"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행님한테 와달라고 전화드릴"
"아녜요. 괜찮아요"

그의 말을 잘랐다.

"괜찮치 않아 보여요"
"괜찮다 했잖아요ㅠㅠ"
"달달한 초코라떼 사드릴까요?"
"내가 안 먹는다고 했잖아요!!!!! 살찐다고요!!"
"아.. 저..."
"그냥 다 괜찮아요^^;; 그쪽은 출근하세요"
"아니, 이렇게 길바닥에서 울고 가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미간을 잔뜩 찌푸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그가 보였다. 눈물이 흐리기 전에 손등으로 빠르게 닦아냈다.

"안 좋은 일 있으세요?"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에 괜히 버럭한 내가 한심스러웠고, 미안했다. 화살이 또 잘못 날아가버린 탓이었다.

"그런 거 없어요..."
"뭐 때문에 그래요..?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살 빼야 되는데 자꾸 빙수 사준다 하고, 초코라떼 사준다 하고 하니깐.. 살이 찌잖아요...."
"그거 아니잖아요"
"맞아요"

그렇게 말없이 함께 걸었다.
내가 조금 느리게 걸어도, 내가 조금 빠르게 걸어도 그는 언제나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일정 거리를 두고 함께 걸었다.  편의점을 지나칠 무렵이었다.

"폴라포 먹을래요?"

반사적으로 나는 네라고 대답해 버렸다. 자존심 따위를 집에 두고 온 것이 분명했다.

"폴라포는 살 안 찌니까 괜찮아요^^"

놀리는 듯한 그의 말에 말없이 편의점으로 따라 들어갔다. 변함없이 나는 폴라포, 그는 빠삐코를 쥐었다. 계산대 근처에 진열된 약과 2개도 함께 계산대에 올렸다. 한 손에는 폴라포, 다른 한 손에는 약과를. 한입 베어문 약과가 굉장히 달달하고 달콤했다. 마치 아무 일 없던 것 마냥.

"음~~~~~~~~"
"ㅋㅋㅋ 그렇게 맛있어요??ㅋㅋㅋㅋ"
"네.. 하나 드세요"
"아뇨 아뇨. 전 빠삐코로 충분해요. 드세요^^"
"맛있는데..."
"아니, 살찐다고 그렇게 화를 내시더니........"

혼잣말인 듯 말했지만, 내가 듣길 바라는 듯했다.

"나 뚱뚱해요???"

나란히 걷던 나는 그의 앞으로 가 마주 보게 서서 물었고, 그렇게 뒷걸음질로 걸었다.

"아뇨 전혀요"
"전 다시 뚱뚱해지기 싫어요..."
"뒤로 걷다가 또 넘어집니다. 옆으로 와요. 그리고 그런 말을 양손에 먹을 걸 들고 하니깐... 와닿진 않네요 ㅋㅋㅋ"
"ㅡㅡ 여하튼, 절대 다신 뚱뚱해지긴 싫어요. 저 뚱뚱했을 때 봤잖아요"
"소아비만이셨어요?"
"아뇨!!!!! 모유수유하면서 쪘어요. 진짜 엄청 먹었거든요... 그전에는 안 쪘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적게 드시진 않는 거 같....."
"적게 먹고 있는 거예요!!!"
"휴가 때 라면 먹는 거 보고 진짜... 놀랬어요.."
"됐어요. 말 안 해. 안 해!"
"아니, 왜요ㅠㅠ 또ㅠ"

틱틱거리는 사이, 목적지에 도달았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그는 차를 가지러 다시 집으로.

"오늘도 화이팅하세요. 길바닥에서 울지 마시고요"
"네^^;; 애기아빠도 안온한 하루 보내고, 나중에 봬요"
"네^^"

다 먹은 약과 봉지와 폴라포는 그가 말없이 내 손에서 가져갔다. 초록불이 바뀌고 반쯤 건너서야 일정거리를 둔 거리가 벌어졌고, 나는 고개를 짧게 숙였다. 그도 같이 답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