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37 나의 온 우주가 노을이 되어 지고 있다


하릴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흐르는 눈물만 손등으로 문질뿐이었다. 길 위였으므로.

내게는 15분의 여유가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중문 앞에서 샌들을 벗어내려 했다.
닦아도 닦아도 차오르는 눈물로 샌들 끈을 풀지 못했다. 뿌옇게 보였으니까... 그러다 이내 울음이 터져버렸다.

참아왔던 서러움과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이제 편집장님 덜 좋아해 보려고요.....^^"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뒷말은 기억나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 노력하느라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선 다른 특별한 말은 없었다.
한 번만 잡아주기를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의 대답을 듣고 기대한 나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선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한마디만 더 꺼내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힐끗 쳐다본 그가 나의 빨개진 눈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 날이었으니,  눈물로 얼룩진 모습을 보여주긴 싫었다.
훌쩍 거림은 계속되었고, 그는 앞만 보고 운전만 했다.
이대로 같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윤심덕의 사의찬미는 드라마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결코.  사실이며, 실화다. 시대의 비극 속에 피어난 사랑, 사의찬미.
결코 나는 비극으로 끝낼 수 없는 현실에 있다. 비극으로 끝나기엔, 남은 사람들이 가져가야 할 무게와 상처를 안다.
죽음마저 기꺼이 그와 함께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그는 결코 모르고 끝이 났다.
마음이 생긴 쓰라린 고통과 몸에 생긴 쓰라린 상처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움직일 때마다 그의 겨울은 흘러내렸고,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제대로 인사를 못하고 왔어요. 오늘 여러 모로 감사합니다. >
<아니에요~ 서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그동안 보잘것없는 저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한편으로는 삶에 지쳐있던 저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어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작가님의 밝은 모습기억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들과 묻고 싶은 말들은 결국 침묵이 되어 사라졌다.
아마 그럴 기회가 있어도 나는 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 물음이 그에게 상처가 될까, 혹여 부담이 될까...  만일 또다시 그를 만나러 간다고 해도 결국은 전하지 못하겠지. 내 사랑은 어차피 그에게 닿아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누구나 필연적으로 만남이 있으면 이별을 하게 된다.
이별은 그만큼 흔하다. 나 역시 몇 번의 이별을 경험했다. 어떤 이별은 아팠고, 어떤 이별은 더 깊이 아팠던 적도 있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를 아프게 했을 수도 있다. 아마 그랬을 수도 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모두 남 탓은 아니었기에.  돌이켜 보니 그렇다. 지난날의 철없음과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고 한 이별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대인 관계에선 젬병이다.. 다른 종류의 이별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죽고 사는 생사는 나의 노력으로 이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이별이 있다.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까지 한다는데.. 그게 말이 돼? 나는 공감하지 못했다. 사랑하는데 헤어져야 하는 말 따위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도록 새드엔딩 소설을 쓰는 작가였으면서,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을 해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나는 달랐다. 아니, 다르다.
'내게 오겠다' 그 한마디면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내게 올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방법이 없어도 만들어서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모든 수단은 중요치 않으니까. 그가 내게 오면 모든 일들은 별일 아닌 일이 되어버리므로..
그러나 그에게선 아무 말이 없었다. 잡지 않았고, 얼토당토않은 감사인사를 했다. 내 사랑이 그에겐 감사할 일, 그뿐이었다.

그동안 사랑이 없었던 나는 그를 만나 사랑이 봇물 터지듯 써졌고,
그동안 잠들지 못했던 밤은 그를 만나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정로환 냄새마저 건강하다 믿는 쾌쾌 묵은 중년 남자의 만병통치약은 한약 냄새나는 정로환이었고,
나의 영원한 뮤즈로 사랑을 쉼 없이 쓰게 한_ 잠들지 못한 지난날들의 자장가_ 내게 만병통치약은 그였다.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나의 모습에 취하는 변태스러움까지 장착한 인간이란 동물은, 그래서 인간적이다.
'조건 없는 사랑'
내 사랑이 첫사랑, 짝사랑, 외사랑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를 향한 내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적고 보니 쓸쓸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랑하지 않겠다,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회하는 솔직한 내 감정은 몹시도 인간적이다.
분명 준비된 이별이었다. 그러나 나는 혼란스럽다.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도무지도 모르겠다.
굳이, 기어이, 기필코 그와 비효율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는 '낭만'이 그와 몹시도 하고 싶다. 그에게 사랑을 바라는 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였다. 그의 사랑 따위가 없어도 충분히 나는 그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할 것이었다.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를 사랑할 수 없고서야 간절함은 더해졌다.
떨어져 봐야 더 간절하고,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

결국 결론이기를,
마침내 종결이기를,
끝끝내 끝이기를,

그를 잃고,
나는 세상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