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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2-22 같이와 가치


#명품과 여자의 가치는 수치로 알 수 있다

과하지 않을 만큼 찢어진 연청에 브랜드 로고가 찍힌 무늬 없는 검은색 반팔. 대부분 그가 입는 옷들은 이런 식이다. 캐주얼한 명품에 손목에 차고 있는 워치까지 비싼. 신고 다니는 운동화도 죄다 한정판이다. 브랜드와 명품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차림일 거라 생각할 듯싶다.

나는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싫어할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브랜드와 명품 자체를 싫어하진 않는다. 비싼 이유에는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하기에 말이다. 그러나, 명품을 입고, 걸치고, 신고 다니면 누군가는 수군거린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랑 구두 값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니 나이에 명품 걸치면 다 부모 찬스나 스폰 아냐?"

스무 살 후반, 성격이 털털하고 직설적인 직장 언니한테서 들었던 말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악의에 있어 묻는 게 아니었지만, 그 말은 내게 상처였고 충격이었다. 그 이후 20대에는 더 이상 명품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30대 초반에는 임신과 출산으로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다. 20대와는 다름을 느끼고,  명품을 다시 사기 시작했다. 명품을 두르고 갈 곳은 없었지만 그때는 비싼 소비만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언제라도 입고 걸칠 수 있다는_ 뭉개져버린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길인 듯 싶었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만 보던 날이 지루할 때쯤, 공동육아를 목적으로 또래 엄마들과 모임을 추천받아 나갔었다.

"시집 잘 갔나 봐? 아니면 남편이 부자인가? 부럽다"

이런 뉘앙스의 질문이나 부러움은 특히 더 듣기 거북했다. 돈만 보고 시집을 갔다는 말로 들렸으니까. 결혼을 한 이유는 오로지 '돈'이라는 맹목적인 목적이 있는 그런 '속물인 나'로 비쳤으니까.. 싫었다. 그렇다고 '그 반대다. 남편이 내게 장가를 잘 온 거다'라고 정정해 줄 만큼, 나는 당당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또 생각했다. 서른 초반은 아직 명품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구나하고...
30대 중반에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옷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대신 아이들의 용품들을 좋은 걸로 샀다. 그렇게 30대 중반이 지나 30대 후반에 왔다. 가끔 명품 가방을 들고 출근할 때나 지인을 만날 때면 듣는 소리가 있다.

"잘 사니까 막 쓰지, 명품을"

사실, 조심성이 있는 편은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내게 해가 될지 득이 될지 신중하게 계산하는 편이라 조심스럽지만, 물건에 대한 조심성은 없는 편이다. 예민한 성격에 물건까지 예민히 굴면 나는 아마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즉, 돈이 많아 명품을 막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차피 값을 주고 내 것이 되었으면 명품이고 명품이 아니든, 찢어지고, 긁히고는 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입지 않고, 들고 가지 않는 편이 맞다고 생각하니깐..

"돈 좀 번다고...."

아니, 명품을 입고, 메고, 신고 다니면 돈 자랑이다, 남편 잘 만났다, 부모 찬스 다며 부러워하면서 명품이 아닌 걸 입으면 '돈 다 모아서 뭐 할래?', '그리 알뜰히 하니깐...', '있는 것들이 더해', '아직 자기가 어린 줄 아나 봐' ㅋㅋㅋㅋㅋㅋㅋ
......
나는 예민한 편이다. 귀걸이, 팔찌, 발찌, 반지 이런 치렁치렁하고 걸리적거리는 게 신경 쓰여 액세서리를 하지 않는다. 결혼반지도 끼고 다닌 지 몇 해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 나의 행색을 보고 수수하다, 아기 키우는 엄마의 정석이다라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민한 탓인지, 그런 소리들이 예사로 넘어가지 않고 한 번은 귀에 걸린다. 오늘 출근 준비하다, 품질 좋은 가방, 실버골드 시계, 원단 좋은 옷피스를 입고 싶었지만 망설이는 나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것들은 젊은 여성들보다 40대가 더 잘 어울리겠지?
거울 앞에서 맵시를 가다듬는 세련된 중년은 내게는 아직 이르다고..


그래, 마흔이 넘은 중년에는 명품이 더 잘 어울리겠지.


#마흔이 다가올수록

여자 나이 마흔,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지만, 마흔이 되면 어떠한 일이 닥쳐도 아주 크게 당황하지 않게 된다는 '성숙함'이 내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경험치가 쌓인다는 거지만 말이다.
여자는 몸과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려야 한다는 말을 예전에 몇 번 들은 바 있다. 그러나 나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는 여자가 되고 싶진 않다. 바람에 마냥 흔들리는 꽃보다, 하나의 뿌리에, 하나의 꽃만 피는 꿋꿋하고 고고한 튤립에게 더 응원하고 지지하게 된다. 구근에서 발아한 튤립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새싹이 올라오는 그 광경이 참 멋있어 보이니깐. 척박한 겨울의 냉기를 품고 있는 땅에서 봄을 맞이해 굳건히 서 있는 듯한? 모습에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삼십 대는 여전히 성장 중인 '청춘'이라는 이름 뒤에 꽤 많은 걸 감추고 있는 시기이다. 조금 서툴러도, 힘들어도, 아직 젊다는 말로 위로받을 수 있고, 미래가 조금 불투명해도 "괜찮아, 아직 30대잖아"라는 말이 어느 정도의 여유와 위안을 준다. 그런데 마흔은 어떠한가. 왜 이토록 내일모레 마흔이 되는 나는, 벼랑 끝처럼 느껴지는 걸까. 마흔은 삼십 대와 다르다. 과정보다는 결과로 말해야 하고, 무언가를 이뤄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들이 그렇게 나를 내모는 것일까.
여자 나이 마흔. 이 문장이 유난히 낯설고 무겁고 시리다. 단지 앞자리 숫자만 바뀌는 것인데 말이다. 마흔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마흔에는 삶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이뤄놓은 어른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10대에서 20대로 바뀔 때는 설렘,
20대에서 30대로 바뀔 때는 희망과 성장,
30대에서 40대로 바뀔 때는 절망과 낙담
앞자리 4의 고비는 좀 크다. 사십 대가 가까워질수록 삶의 낭떠러지 앞으로 떠 밀려가는 느낌이 든다. 자칫 발만 삐끗해도 추락할 것만 같이 위태로운 낭떠러지.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은 아니었지만, 마흔이 되면 눈앞이 깜깜하고 나의 빛을 잃을 것만 같아 조금 무섭다.
딱히 이룬 것 하나 없이 나이만 먹는, 나는 서른여덟이다.


#마흔의 병

"뒤에 타시려고요? 앞에 타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아담하고 분홍 경차를 타고 있었기에. 뒷좌석 문고리를 잡고 여는데 기획편집자님이 내게 말했다. 나도 뒤에 타는 건 예의가 아닌 건 알지만 앞자리는 꽤 부담스러웠다. 기획편집자의 풍채가 커서 운전석을 충분히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어색하게 웃으며 조수석 문을 열었다. 차 안에서는 달큼하고 달달한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차 안은 생각보다 깔끔한 편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어깨가 닿을 거 같아, 최대한 창가로 몸을 붙이고 다리에 힘을 바짝 주었다. 하필 짧은 치마를 입어 더 불편한 듯싶었다.

"작가님, 편하게 앉아요. 좀 좁죠?"

그걸 말이라고.... 연신 꼼지락 거리는 걸 보았는지 나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나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아니라는 표현을 하며 웃었다. 내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무릎이 글러브 박스에 닿았다. 원래 이렇게 가까운가? 의자 밑에 손을 넣어 더듬었다. 다행히 조절장치가 있어서 살짝 당겼다. 살짝 당겼는데 드드득! 소리를 내며 뒤로 확 밀려났다.

"으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기획 편집자님은 내가 웃겼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키득거렸다. 썅..  민망했다.

"흠흠..!! 좀 좁았죠?^^"
"제가 분명 큰 편이 아닌데 무릎이 닿아서요"
"조금만 참아요. 금방 갈게요"

........????

다 같이 점심 약속장소를 향하는 길이었는데.. 그는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순간 손에 땀이 나고 무서웠다. 그냥 물어볼걸... 혼자 무서운 상상을 하며 두려움이 삽시간에 휩쓸려버렸다.

"작가님 내리세요^^"

좁디좁은 골목에 주차를 하고 내리라는 것이 아닌가?

"싫어요...."
"에???"
"안 내릴 거라고요!!!"
"아니... 내리세요!"
"싫다고요!!!!"

"오빠, 누구야??????"

낯선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빼꼼 내밀어 본 나는... 이제야 상황파악이 되었다. 분홍차는 그의 여동생 차였고, 그의 차와 이제 바꿔서 가려던 참이었단 것이다.
개쪽 팔려....

"오빠 나 늦었어. 저 여자 뭔데 안 내린다는 거야?"
"뭔가... 오해가 있었어요..ㅠㅠㅠㅠㅠ 미안해요ㅠㅠ"

기획 편집자님은 아까보다 더 꾹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대학생인 듯한 그에게 틱틱거렸고, 내가 내리자 그의 여동생은 나를 위아래로 기분 나쁘다는 식으로 쳐다보고 가칠게 차를 타고 가버렸다.

"작가님, 무슨 오해를 하신 건데요?"
"아무것도 아녜요"
"저 좀 웃어도 됩니까?"
"아니요. 창피하니깐 웃지 마요"
"넵 ㅋㅋㅋ 내가 납치라도 하는 줄 알았어요???ㅋㅋㅋㅋ"
"그런가 아니라니까요....."
"에이 맞는 거 같던데요?"
"그만 놀려요! 그러고 왜 편집자님은 미리 말 안 했어요!! 미리 말했음 오해하는 일은 없었잖아요"
"아까 대답도 하셨잖아요??"
"내가요???"
"네!"
"언제?"
"마케팅 부장님 오시기 전에요.. 기억 안 나세요?"

요즘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잠을 자지 못한 탓인지,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해서 멍 때리는 일이 잦았다. 그때 말했었나 보다..
그렇게 회사 식구들과 오랜만에 점심을 먹고 나와 다시 차를 탔다. 오후에 일정이 있었으므로...

모든 게 다.. 귀찮고, 다 싫다.
나는 다시 조수석에 앉았다.

"수고 많으셨어요"
"편집자님도 고생 많았어요"

창밖은 아직 여름이 천지였다. 올해 여름은 내게 더 길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를 떠올렸고, 나른해졌다. 사탕을 꺼내 물었어야 했다. 손하나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다. 나는 잠이 들었다. 며칠을 자지 못했으니까.. 수면에 도움을 주는 약도, 술도 마시지 않는 탓에 잠들지 못했다.
분명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결국은.. 다시 잠들었다.
누군가 나의 어깨를 흔들었고,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할게요"

남편 목소리였다.

흔들 어깨 우던 손을 멈추고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출판사 기획 편집자입니다. 작가님이 갑자기 잠드셨는데 일어나지를 않으세요"
"감사합니다. 마감일 맞춘다고 며칠 밤을 새워서 그런가 봐요. 제가 안고 갈게요"

손에 있던 가방과 휴다폰을 남편이 들고 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눈을 뜰 수 없었다. 떠지질 않았다.

"집에 가자"

뜨거운 남편 손이 목 뒤에서 느껴졌고, 곧 붕 뜬 기분이 들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저.. 작가님 치마 짧으셔서 담요라도 드릴까요?"
"네네 부탁드릴게요"
"잠시만요"
"감사합니다"

차가운 에어컨 속에서 남편의 체온이 따뜻하다 착각들 정도로 포근했다. 엘리베이터의 꿀렁이는 움직임이 남편 품에서는 더 무섭게 느껴졌다.

"고집부리더니만 결국은..."

남편의 불멘스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눈과 입은 떨어지짛 않았다. 침대에 눕혀 구두를 벗겨냈다.

"무슨 치마가 이래 짧노. 궁디가 다 보이겠구만"

타이트한 치마의 지퍼를 조금 열고,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뒷목으로 팔을 넣고 블라우스를 완전히 벗겨냈다. 뜨거운 남편의 손이 닿는 게 편치 않았다.

"내버려 둬"
"일어났어?"
"응"
"병원가서 링거 한 대 맞자"
"쉬면 돼"
"재워줄까"
"아니"
"너 몸 차. 데워줄게"

남편은 뒷목에 다시 팔을 넣어 안아주려던 참이었다.

"사랑해"
"오빠, 혼자 있고 싶어"

단지, 혼자 있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남편이 방문을 닫고 나감과 동시에 눈물이 났다.
그동안 너무 바빠 몸살이 난 것이 분명했다.
여전히 눈은 떠지지 않았지만, 감긴 눈 사이로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내일모레 마흔은 내게 좀 힘든 숫자인가 보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야 하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