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들어진다는 건 다시 새롭게 피어난다네
얘들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양수경의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노래가 흘러나왔다.
차량이 오는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어르신 한 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목시계와 차도를 연달아 보시는 어르신은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모양이었다. 허리춤을 올려 배바지 위로 둔탁한 혁대를 연신 만지작 거리셨고, 가득한 흰머리카락을 몇 번이고 넘기셨다. 뒷모습이었지만, 그 어르신은 낭만이었다. 혼자 상상을 했다.
'저 어르신은 필시 아내분을 기다리시는 걸 거야. 나도 늙어서 저렇게 기다려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껏 어르신을 보며 낭만적인 상상을 꿈꿨다. 어르신이 뒤를 돌아 얼굴을 확인하기 전이었으므로...
옷맵시를 단정히 하던 어르신은 뒤를 돌아 버스 정류장에 비친 모습을 확인하셨다.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것도 혼자 빵 터져버렸다. 어르신은 그런 나를 보셨고, 나는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가볍게 숙여 눈인사를 했다. 나를 이상히 보시는 듯싶었다. 그 어르신은 그의 친부가 분명했기에. 너무도 닮은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첫째 아이 차량이 먼저 도착했고, 그의 아들도 함께 내렸다.
"엄마~~~"
"할아버지!!!!!"
그의 아들은 내게 '이모~~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고,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더운데 수고했어'라고 답했다. 어르신은 다시 나를 보셨고, 나는 조금 더 상냥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어르신도 가볍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는 조금은 씻어내신 듯했다.
처음 뵙긴 했지만_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어르신은 그의 아버지가 분명했다. 유전자의 힘은 어마어마하구나 하고 생각 드는 순간이었다. 곧이어 그의 둘째 아이 차량이 먼저 도착했고, 거기 유치원에서는 할아버지와 형아가 있음에도 사전 연락이 없었으므로, 아이를 인계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급하게 비상 깜빡이를 켠 차가 멈춰 섰고, 그가 내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빠한테 와"
그렇게 차량은 갔고, 그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아, 제 아버지세요.
아버지 이 쪽은 이웃이자, 얘들 친구 엄마예요. 며칠 전에 다 같이 휴가 갔다던 그.."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다시 웃으며 인사드렸고, 아이에게도 인사시켰다. 어르신은 나의 이야기를 몇 차례 아들내외에게서 들었다고 하셨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걸까...'
"아까는 내 보고 웃길래 이상한 여자줄 알았다"
어르신은 나를 면전에 두시고, 그에게 물으셨다. 그는 의아한 듯 나와 어르신을 번갈아봤고, 나는 설명해야 했다.
"아.. 조금 전에 아버님 얼굴을 뵈었는데 그쪽이랑 너무 닮으셔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어요^^"
"아아 ㅋㅋㅋ 그 소리, 자주 들어요ㅋㅋㅋ"
"내가 젊었을 때는 한 인물 했지"
"지금도 충분히 멋지십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진짜 멋진 어르신이었으므로.
기분이 좋으신 어르신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나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5만 원씩 기어이 쥐어주셨다.
호의를 받는 건 갚아야 할 숙제처럼 불편한 사람이, 바로 나다. 해서, 우리 집 저녁 메뉴가 잡채였는데 당면을 더 사서 푸짐하게 하기로 했다.

많은 양을 했다. 원래 손이 큰 편이다. 특히 대식가 집안에서는 손이 큰 건 칭찬받을 일이므로.
저녁 식사 전에 갖다 드리기 위해 더운 여름 불 앞에서 열심히 움직였다. 제일 큰 그릇에 잡채를 담고 깨소금을 뿌리고 아이들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
"아이고, 젊은 새댁이 손도 크다"
그의 어머님이신 듯한 분도 함께 나오셔서, 더운데 이렇게 많이 했냐고 걱정도 하시고 칭찬도 하셨다. 그 자리에서 맨손으로 맛을 보시곤 입맛에 딱 맞다. 젊은 새댁이 음식도 잘한다며 야무지다며 면전에서 칭찬을 한 트럭 주셨다.. 민망했다.
"엄마, 새댁 아이고, 젊지도 않다"
굳이 젊지 않다는 말을 해야 했을까??
"올해 몇 이고??"
"서른여덟입니다^^"
"나가 많네. 요새 겉모습만 보면 나이 모르는 기다."
어려 보인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다.
"이만 가봐야겠어요 남편이 오기 전에 저녁 준비해야 해서요. 즐거운 식사 시간 되세요^^"
"아이고, 일도 한다면서, 서방 오기 전에 밥도 차려놓는가 봐"
"엄마는 고만하고 들어가 쫌"
"니는 자식아 저런 여자를 만났어야지. 돈이나 깨먹는....."
그는 그의 어머니와 아버님을 중문 안으로 밀어, 문을 닫아버렸다.
"잡채 잘 먹을게요. 아까 용돈이 부담스러웠던 거죠?"
"네 조금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들어가 보세요. 어르신들 기다리세요"
"같이 내려가요. 엘리베이터 못 타잖아요"
"얘들 있어서 괜찮아요. 들어가 보세요^^"
중문에 서 계신 어르신께 나와 아이들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왔다.
"조심히 가요, 연락드릴게요"
웃겼다.
그도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엄마한테 등짝을 여즉 맞는 말썽꾸러기 아들이었다. 귀여웠다. 필시, 그도 멋쟁이 아버님과 손매(?)가 매운 어머님 아래에서 사랑 듬뿍 받고 복닥복닥 자란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의 해맑은 표정과 긍정적인 행동들이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사진과 함께 카톡이 왔다.
<언니❤️❤️오늘 시부모님 오셔서 배달 음식만 내놓기 민망했는데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감사해요😍 먹어봤던 잡채 중에 진짜 쵝오!>
<엄마가 은근히 손 많이 가는 거라고 잔치 때만 잡채 한다네요. 맛있게 잘 먹었어요. 만간에 행님이랑 같이 커피 한잔해요. 빠른 육퇴 하세요^^>
젊어서 그런지 글자만 봐도 에너지 넘치고 활기가 넘쳤다. ㅋㅋㅋ 음성지원되는 듯 '언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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