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33 닿을 수 없는 연가


폭염보다 무서운 이별의 다짐에 흘러내리는 땅방울은 뜨거운 눈물이 되어 흘렀다. 연거푸 들이킨 차가운 물이 뜨거운 목구멍에서 넘어가기를 거부하고 다시 역류해 흘렀다.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그리움은 빠르게 차올랐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에 몸서리치면 더위는 금방 사라졌지만, 냉기는 그리움을 잠재울 수 없었다. 한낮의 열기에도, 파워 냉풍에도 당신을 향한 사랑은 식을 리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방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한 여름의 이별에 하릴없이 목 놓아 우는 거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나는 당신을 기필코 비워내야 하므로..

#성숙한 이별 따윈 없어요

당신과 닮은 사람만 보아도 제 위치를 알려주는 심장은 쉬이 멈출 줄 몰랐고요, 이름이 비슷한 사람을 불러도 당신을 부르는 듯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고요, 미지근한 무언가와 닿을 때면 느닷없이 당신의 온기가 떠올라 호흡이 빨라질 만큼 당신이 좋아요. 당신을 보고 온 날에는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고 다녀야 할 만큼 당신이 좋고 또 좋았어요.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하필이면 당신이 더 좋아질 줄은 몰랐어요. 하필이면....
당신을 품은 마음은 온도가 높아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일쑤고요, 에어컨과 선풍기만으로도 온도를 내리긴 힘들어요. 당신을 앞에 두고 얼마나 손부채질을 헤댈지 안 봐도 뻔해요.
그런데요, 이제 그만해야 할 거 같아요. 여름이 꽤나 길 모양이에요. 당신은 빼곡히 나의 여름이에요. 여름의 끝자락에서 당신으로 향하는 마음, 그 반대편에 서서 막을 거예요.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흘러갈 수 없도록 말이에요. 이번 여름 단단히 앓고 지나가겠지만, 어쨌든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잖아요. 소심하고 용기 없는 탓에 말하지 못하고 올까 봐 걱정이에요. 당신을 좋아해도 되냐고 물어보지 않은 채 시작해 버린 사랑이지만, 그래도 사랑이 끝났다는 건 알려줘야죠.. 그런데 그럴 수 있을지가 의문이네요. 나를 기다리진 않으실 테지만, 출근하지 않는 내게 연락하면 나는 분명 무너져버릴 테니까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고, 매일이 당신으로 행복했다고, 내가 사랑한 사람이 당신이어서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오도 가도 못하는 길목에서 너무 오래 발이 묶여있었다고.. 이제 당신을 보러 가는 일은 기필코 없다고.. 말해야 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래 묶인 탓에 절뚝이며 미련 뚝뚝 흘릴 것이 분명하고요, 기필코 출근하는 일은 없을 거지만 그 근처를 우연인 척 무수히 배회하며 지나갈 내가 불 보듯 빤해요.

당신에게 사로잡힌 순간부터 여태껏 내 마음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어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빼앗긴 채로 그저 당신만을 바라봤어요. 바람도 없이, 저항도 없이, 아무런 원망도 없이요.
그러나 당신에게서 달아나려는 순간부터 이미 내 마음은 죽어버렸어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사랑도 없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요. 그저 당신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낭만과 로망을 담아 웃어 보일게요. 그러나 뒤돌아서 갈 때는 차가울 것입니다. 구질구질한 마음 없이, 질척이는 마음 없이, 미련 없이요. 그러니 그 하루를 나를 사랑해 주세요. 온전히 내 사람이 되어주세요. 그 기억을 영원히 안고 살 거니깐요. 마지막이잖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지나가는 안부인사 따위에 괜히 기운이 빠지고,
작은 소리에 괜히 마음이 주저앉았으며,
바람 한 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해하지 말라,
무너지는 게 아니다, 단연코.
조용히 당신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당신은 나를 가여워말고, 불쌍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 소설 속에 가장 많이 쓴 부사는 '그래도'입니다.
그래도 사랑했어요, 그래도 당신이었어요, 그래도 당신이 좋습니다, 그래도 사랑했습니다, 그래도 끝내 내 사랑은 당신뿐이었어요. 그래서 당신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방법이에요, 당신을 보지 않는 것으로.

이별은 불가피한 일이에요. 그렇지만 당신이 무척 그리워요.
작가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하는 말인데요, 그리움이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잔인한 감정이 아닐까 해요. 지독하게도, 끈질기게도 나를 놓아주지 않거든요. 지긋지긋해요, 그리움. 이 새끼.

당신의 눈동자는 매번 나를 비추지 않아요. 그 공허한 당신의 눈을 보고 오히려 더 짙은 사랑을 했죠. 느긋하게 움직이는 당신의 몸, 피어오르는 당신의 숨결, 그 속에서 당신은 나의 심장을 당신에게 묶어두었죠. 이제는 거기서 나와야 해요.
온통 나의 여름이었던 당신은 그렇게 한 계절의 끝자락에서 흐리지 못한 채 고여있지만, 이제는 가을을 맞이해야죠. 여름에만 머무를 순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