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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34 멸종되기를


"당신은 바람이었어요"

어느 누군들,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 없다.
한 점의 바람결에 사랑이 실려와 내게 불어온다면 그 바람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은 바람을 타고 온다고 믿게 되었다.
지금 느낀 바람이 누군가 당신에게 사랑을 실어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살며시 스쳐 지나가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당신에게 가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는 무해하고, 무해한 사랑만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내 선택입니다.
부디 안온하시기를, 부디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에둘러 글로 표현하고 있지만, 진심을 가장한 소설임을 안다. 그러하기에 연필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리운 그를 잊기 위해..

'사랑은 죄가 아니다'
수없이 되뇌이고 고민해 보지만, 누군가의 눈물이 되기에...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숨겨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핑계가 사실이므로 말할 수 없다.

'한 여름의 무더위는 바람마저 지독히 뜨거웠다'
부정할 수 없는 끌림은 한 사람을 태우고 남을 만큼 뜨겁게..


#멸종위기 '사랑'

어느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 신출내기 작가 하나가 들어왔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더 평범한 인상과 작은 키.

'일하러 온 주제에 잔뜩 긴장한 저 눈빛은 뭐야....?'

아무튼 내가 기억하는 작가의 첫인상은 그게 전부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쭈뼛거리며 다가온 여자를 앉혀두고 프로필을 확인했다.
별 특이사항이 없는, 제대로 대박 난 글 하나 없는 이력에 인상이 절로 찌푸러졌다.

'편집할 때 골치 아픈 거 아냐?'

괜스레 두통이 온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편집할 때마다 아집과 고집이 센 작가들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경우가 있다. 혹여 그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내심 앞섰다.

아, 내 소개가 빠졌네. 올해 마흔. 직업은 웹소설 편집자다. 글을 쓰는 일을 관두고,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일곱 해가 지났다. 활자를 좋아하는 나는 이 일이 천직으로 알고 살고 있다. 그동안 작가들과 함께한 작업으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킨, 업계에서 인정받는 편집자다. 일만 잘하는 것은 아니었고, 내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잘난 얼굴로 연애를 쉰다는 건 재능 낭비오, 여자들에게 희망고문이었으므로. 나는 공백기간 없이 연애를 이어왔다. 그러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고, 여전히 그 사랑은 진행 중이다. 하여튼, 일도 연애도 열렬하게 잘한다고 자랑하고 싶은 것뿐이다. 내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고...


신출내기 작가가 나의 편집을 별 탈 없이 수용할 수 있도록 밑밥을 뿌리기로 했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대충 관상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대충 예측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출내기는 다정히 대해주면 필시 먹힐 것이 분명했다. 이유는 프로필 아래 한 줄로 설명하는 나에 대해, '다정과 낭만 그리고 로망을 쫓는 작가'라고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눈썰미는 정확했고, '다정'이 신출내기한테 먹혔다.
신출내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긴장을 풀었고, 편히 작업할 수 있는 사이로 발전되었다. 순조로운 작업시간이 이어지다 불현듯 그녀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글이 써지지 않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재촉하는 연락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글이 안 써지는 당사자는 오죽하겠는가.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나타난 작가는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통통한 살들이 정리되었고, 후줄근한 옷차림은 볼 수 없었다.

"어디... 아팠어요?"
"아뇨. 전에 다니던 회사에 다시 취직했어요^^"

투잡 한다는 말을 저렇게 당당히 하는 작가는, 서른 살이고, 나와는 다른 세대의 사람이다. 열 살이나 어렸으므로. 그날의 출근을 시작으로 신출내기는 글을 꾸준히 써왔고, 우리는 매주 작업을 했고, 편집을 하고 투고를 했다.

'내가 편해졌나 봐?'

편집하는 나를 빤히 보는 작가가 느껴졌다. 뭐 대수롭지는 않았다. 종종 있는 일이었으므로. 꽃에 나비가 끊이지 않듯이 말이다. 신출내기 작가는 나와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작업이 지속되었다. 글은 항상 슬픈 내용이었고,  죄다 슬픈 끝맺음으로 썼다. 편집자의 입장에서 소설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듯 보였다. 그런 작가를 돕기 위해 손바닥 소설을 제안했고, 그녀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게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 작가의 연재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늘어남으로 나는 오너의 칭찬을 받았다. 해서, 신출내기 작가가 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배려하기로 했다.

"다음부턴 회의실에서 작업합시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작가의 뒷모습을 보고, 내성적인 성격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굳혔다.
며칠 뒤, 분량의 글을 썼다고 쭈뼛거리며 출근을 했다.
신출내기와 회의실에 들어와 블라인드를 쳤다. 조심스러운 성격에 내성적이고 예민한 작가를 위한 편집자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노트북을 켜, USB를 꽂았다. 그러고선 작가가 써온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보고 있지만,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신출내기의 눈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똑바로 쳐다보고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그랬다간 소심한 작가가 도망가버리면 나만 출판사님께 찍히므로... 껄끄러웠지만,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라 생각했다. 화제를 돌려야 했다.

"글이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갑자기 비결이 뭔가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손바닥 소설은 매일 써요?"
"네 매일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매일 쓰는 게 작가님께 도움 될 거예요. 글 쓰는 데도 근육이 필요하거든요. 그 근육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꾸준히 써봐요. 훨씬 글이 현실적일 거예요"
"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 싫은 건가...??
다시 물었다.

"어디에 업로드해요? 홈페이지에는 없던데.."
"비밀이에요..."

뭐야? 그렇게 궁금하진 않았으나 비밀이라고 하기에 궁금해졌다. 그렇게 작업은 끝났고, 연재소설이 마감날짜에 맞춰 업로드되었다. 작가와의 합이 이 정도라면 완결까지 기일 연장 없이 수월하게 마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기만의 색을 예술이라 고집하는 작가들 사이, 유독 내 말을 고분 하게 잘 따라주는 작가가 기특했다. 나로서는 돈도 벌고, 출판사님 칭찬도 받고.. 미워할 이유가 딱히 없는 작가였으니.

다음 출근 날에는 연신 싱글벙글 웃어댔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아.. 웃으니깐 갑자기 생각난 건데, 약간 조증이 있는 거 같단 말이지. 한 겨울 어느 날, 추운 날씨 탓인지 두 눈과 코가 빨개져서 출근했다. 나란히 앉아 작업 중인데 연신 들리는 훌쩍임에 신경이 쓰여 봤더니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난감했다. 다 큰 여자가 운다고?? 다시 봤지만 분명 울고 있었다. 나는 우는 소리가 정말 싫다. 예전에 퍽 잘 우는 여자와 연애를 한 적 있었는데, 감동해도 울고, 슬퍼도 울고, 걸핏하면 울어대서 진절머리가 났다. 달래주면 고맙다고 울고, 달래주지 않으면 서럽다고 울어대는 통에 머리가 지끈거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원래 작가들이 예민하고 민감하고 공감능력이 좋아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을 때 눈물을 흘리는 작가들은 간혹 봤지만, 이렇게 이유도 없고 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리는 작가는... 뭐 하는 여자야... 대체.
잠시 고민해야 했다.
달래주면 더 울겠지? 달래주지 않아도 날 욕하겠지?
고민하던 차에 아무 말 없이 티슈를 건네주는 걸로 선택했고, 그 작가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눈물을 닦았다. 그러고 또 계속 울었다지...?
여하튼 방실방실 웃는 작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울던 작가가 떠올라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역시 이상한 작가임을 다시 확인했다.

"제 글 찾으셨어요?^^"
"아뇨 힌트를 주셔야 찾죠"

뭐야, 찾으란 말이야. 찾지 말란 말이야? 장난해? 그래도 작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순 없었다. 완결이 날 때까지는 말이다.

내 앞에서 유독 어리바리한 작가는 늘 삐걱거렸고, 작가의 실수로 나와 닿는 일이 있었다. 뭐야? 몰랐나...? 모른 척하는 건가? 아무렇지 않나?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비밀인데요?"

꼬숩다 생각했다. 나도 한방 먹인 듯했으니깐. 하지만 잠시 뒤 나이를 알려주었고, 작가는 놀랜 듯했다.

'뭐야... 그 반응..'
"나이가 굉장히 많으시네요...."

늙었다고 대놓고 까네? 웃긴 여자네.. 그러나 다음 작가의 말에 내 마음은 다시 평점심을 찾았다.

"어려 보이셔서 그렇게 나이가 많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어요"
"제가 좀 젊어 보입니다. 하하^^"

역시 작가가 보는 눈이 정확했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많든 적든 무슨 상관이람? 이상한 여자가 분명하다니까..

그렇게 신출내기는 막힘없이 매주 써서 내게 들고 왔고, 우리는 같이 편집하고 작업하며 연재글은 계속 이어졌다. 여전히 회의실에서 긴장하던 모습은 이제 풀어졌고, 경계하는 눈빛도 사라졌다. 진정으로 내가 편해진 탓이겠지. 그러다 좁은 회의실 안에서 닿는 일이 또 생겼다. 이번엔 제대로 작가의 표정을 보았다. 닿았다는 걸 알았다, 분명히. 그러나 개의치 않아했고, 곧 평점심을 찾는 듯했다. 좀 헤픈 여잔가? 날 너무 믿는데?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종착지에 도착했다.

'장난 좀 쳐볼까'

내가 보는 작가는 그러했다. 내게 한없이 호의적이고, 내가 하는 말에 토를 단적 없는 순종적인_ 닿았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거부감 없다는 건 상대방도 닿기를 바라는가? 확인해 보자.

다음 출근에도 신출내기는 한껏 기분 좋아 보였다. 작가가 하는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시험해 보기로 다짐한 뒤론 말이다. 둘만의 회일실, 신출내기는 경계 없이 날 대했고, 나는 긴장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분명히 닿았다. 그러나 거부도 없었고, 아무 말도 없었다. 장난만 쳐보겠다 시작한 일은 바로 멈추진 못했다. 부드럽게 미끌거렸으니까. 마치 내가 닿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만... 할까요?"

손등으로 얼굴을 가려 표정이 보이진 않았으나, 작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더 머물고 있을 여지를 내게 준 건 분명, 작가의 선택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건 당연지사. 손 움직임에 따라 움찔거리는 신출내기의 깊은 곳으로 향해 가려는 손을 일말의 양심으로 멈춰 섰다. 그러나 그 멈춤은 곧 후회하게 되었다. 계속 생각났기에. 자이가르닉 효과였다. 끝마치지 못한 일은 심리적으로 긴장감을 주어 곧 미련을 갖게 하는 심리현상 말이다.

그다음 출근에도 그녀는 지각을 면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다다닥 달려왔다. 얼굴엔 누가보아도 지각해서 미안함이 잔뜩 묻은 채로. 더 이상 나는 그녀가 써온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닿았다. 다리를 벌려 반겨준 건 그녀였다. 이유는 알지 못하나 분명 작가도 원하는 일이었으므로 망설이지 않고 깊은 곳까지 닿았다. 늘 합법적인 관계를 벗어난 상황은 빠르게 빠져들기 마련이다.  발그레진 피부를 보고 내 손에 만족하는 듯 보였고 나는 더 이상 망설이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미련과 아쉬움을 남기고 작가는 퇴근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작가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고, 결국 작가의 손바닥 소설을 찾기로 했다. 그동안의 힌트들과 이야기를 조합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읽어 내려갈수록 그녀가 알려주지 않은 이유를 단번에 깨달았다. 크게 놀라진 않았다. 작가의 행동과 눈빛에서 나에 대한 관심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확인하니 전과는 달랐다. 분명 달라졌다. 그리곤 선뜻 글을 찾아 읽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민망하다는 이유로 출근을 하지 않으면 독자들과의 연재소설은 쫑 나버리므로. 그저 작가를 지켜보기로 했다. 기분이 묘했다. 나를 좋아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는 작가와 모든 걸 다 알아버렸지만 지켜보는 나는 서로 묘한 기운이 돌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 재미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몰래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에 매일 들락거렸고, 나의 행동이 글 속에 녹아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조금 더 심하게 장난을 쳐도 밀어낼 작가는 아님을 알게 된 이상, 이용하기로 했다. 내게 마음이 있는 것이 분명했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남자를 몰래 좋아하는 여자와 그걸 알고도 이용하는 남자. 누가 더 나쁜 짓을까.. 내가 봤을 땐 도진개진 이다. 닿을 걸 알면서도 출근하는 여자는 뻔하니까. 어김없이 나를 향한 마음을 숨긴 채 겉과 속이 다른 작가는 출근했다. 나도 똑같이 그녀의 마음을 다 알지만, 한 발자국 물러나 관객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가만히 있던 작가의 작은 손이 이끌리듯 날 향했다. 맨살에 만져지는 손이 낯설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손짓이었다. 손등으로 입을 가린 작가의 입에서 '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는 작가가 무척 낯설었다. 장소가 회의실이 아니었으면 당장 그녀가 원하는 대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이었기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거절을 표했다. 거절을 표했지만, 이성이 끊어지면 실수할 것이 분명할 정도로 분위기에 휩쓸렸다. 그렇게 그녀는 퇴근해 버렸고, 아쉬움에 휘말려 있을 때였다.

"비 와요.. 우산 빌려주세요"

다시 작가가 내게 왔다. 무작정 차에 태웠다. 신출내기도 이대로 가긴 아쉬웠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 집에 가는 길에 조금 전의 상황은 쏙 빠져있었다. 하고 싶었다. 늘 닿기만 하다 오늘에서야 작가의 손이 내게 닿았는데 이대로 헤어지긴 싫었다. 그러나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태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가버렸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단 한 번도 와이퍼를 켜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내가 아직 글을 찾지 못했다 했기에 작가는 아마 계속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들키고 나면, 소심한 작가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래서 조금 더 몰래 훔쳐보기로 했다. 결국 작가와 나는 몸을 섞었다. 별 특별할 것이 없는 하루에 작가와의 시간은 큰 즐거움이었다. 금기의 관계는 빠르게 빠져들었고, 작가는 내게 더 빠졌다.
글을 보아하니 단순한 호감이 아니었고, 내게 진짜 사랑임을 확신한 듯해 보였다. 그 나이에 첫사랑이라니... 쯧쯧... 출근을 건너뛰는 날엔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글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모르던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은 내게 고백을 하겠다고 얼음장을 놓았고, 어느 날은 늙은이라 칭했으며, 똥멍충이라고도 불렀다. 이뿐이게? 욕도 하고, 질투도 하고, 분노도 하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몰래 보는 재미는 아주 좋았다. 내게 고백하기 전에 이제 나도 글을 찾았다고 말하기로 했다.

"내가 그 똥멍충인가요?^^"
"찾으셨어요?"

웰소설을 편집하고 검토하는 내가 작가의 장식 연재작도 아닌 단편소설을 매일 찾아보는 독자가 되었다. 그녀의 속마음을 세세히 아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으므로. 내가 글을 찾았다는 말만으로 내게 할 부담스러운 고백은 면했다 ㅋㅋㅋ

"고맙고 미안해요"

사랑을 받아달라는 고백이 아니라는 건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차분히 내 입장과 고백을 받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고, 작가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다며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빈말로 던진 '밖에서 한번 봬요'도 같이.
며칠 뒤 그녀의 글에는 그렇게 말한 나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차있었다. 마냥 나를 좋게 봐주는 작가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 빈말이 진짜인 줄 알고 있는 듯해 미안함 마저 들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여자가 어느 순간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누군가의 첫사랑이 된다는 건 조금 더 신경 쓰이는 일이었으니까. 그녀의 글을 볼 때면 예전에 연애하던 때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신출내기도 복잡한 마음을 글로 세세히 표현하며, 또 나를 보러 왔다.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커지는 듯싶었다. 그럼에도 나를 찾아오는 작가를 밀어내기는 싫었다. 그건 내 욕심이었다.
점점 그녀가 안쓰러웠다. 사랑이 처음이라는 여자는 필시 헷갈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술만 먹으면 강제로 작가를 안으려는 남자와 반대의 나 사이에서 헷갈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그러하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랑임이 분명해졌다. 안쓰러운 여자를 마음대로 안아줄 수도 없는 입장에서 더 부담스러워졌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그녀의 글에서 나의 의도를 의심했다. 뜨끔했다. 장난이었다는 말로 상처는 주기 싫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이 아닌 밖에서 따로 만났다. 밥을 사줬고, 시간을 함께 보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는 암시하고 있었다. 한동안 그녀의 글을 보지 않았다. 이미 내 쪽에서는 그녀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더 유발하지 못했으므로.

다시 그녀가 출근했다. 신출내기의 글은 더 진솔하고 더 진한 사랑으로 변해있었다. 매일이 나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다. 연민과 동정이 일순간 커졌고, 그녀는 정확하게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이 작가만큼 나를 사랑할까'

이제는 대놓고 글을 아침에 읽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녀의 고백으로 내 하루가 행복하고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게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출근하기 전에 차 안에서 그녀의 sns를 찾아 글을 읽는 일은 습관이 되어갔다. 출근하면 여지없이 몸을 나눴다. 그렇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어이 하나가 되겠다는 그 일념하나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쾌락은 짧고 기다림은 길었다.

나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올려다 볼때면 고마우면서도 안쓰럽고, 미안하면서도 좋았다.

날이 갈수록 신출내기는 나에 대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짐에 힘들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사랑을 달라는 협박성 문구들에 지레 겁먹고 사랑을 주자니 겁이 났다. 내게 더 들러붙을 것이 분명하니까...

작가를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뿐이라고..

사실은 진짜 사랑일 수도 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뤄질 수 없는 관계다.

우연이라기엔 타이밍이 맞지 않고,
운명이라기엔 너무 천천히 다가왔으며
악연이라기엔 슬픈 끝맺음이다.
필연이라기엔 금기된 사랑.
결국 만나지 말았어야 할.

그래서 조심했는데 그래서 더 깊어졌다.
나는 기필코 작가를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한다.
나의 안온한 삶을 바라듯이 나도 그녀의 평온한 인생을 바란다.

서로가 말하지 않지만,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그녀를 원래 자리로 돌려보낼 것이다.
내게 오겠다 하기 전에 주인에게 다시 데려다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줄 수 있는 낭만이고 다정함의 모든 것이다.
내가 주는 건 그녀에게는 죄다 슬픔이기에.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나는 그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것.
원래 내 것이 아니었지만 돌아가지 않을 그녀를 돌려보내야 하는 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연재소설은 마지막화만 앞두고 있다.
모든 타이밍은 완벽했다.
돌려보내기만 하면 된다.

무너지더라도 본래의 자리에서 무너지는 편이 백번 생각해도 옳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뿐이다.

돌아갈 곳이 있을 때 돌아가야 해.
현실이 원래 그래.

여름의 불꽃처럼 사랑이 사라져도, 오래도록 마음을 데운다.
덜 아프기를. 덜 외롭기를. 덜 슬프기를 바라.

사랑의 종말론.
멸종되기 전에 나를 버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