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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31 이별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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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할 용기와 사랑할 용기

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려 해요. 아주 명확한 판단이 섰어요. 내가 가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오직 당신이에요. 이로 인해 따라오는 결말은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죠. 막다른 골목이라고, 당신을 사랑하는 것 외엔 다른 패가 내겐 없었으니깐요. 함부로 당신을 사랑할 용기가 생겼어요. 반면에 이별할 용기도 생겼습니다.
그러니깐요 오늘, 아니 어제 일이네요. 왜인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어요. 잠을 자지 못했지만, 두통 없이 머리가 꽤 맑았거든요. 오랜만의 상쾌한 날이 반가웠어요, 유독. 외근 갔다가 다시 사무실로 향하던 길이었죠. 고객님 차 안이었는데요,  조수석에서 앞만 보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반대편 차선 제일 앞에 당신과 같은 차종을 봤어요. 같은 차종이 아니었어요. 당신 차였어요. 편집장님이 있을 사무실 근처였거든요..  점심 드시러 가시려나? 하면서 말이에요. 그마저도 반가웠어요. 굉장히 기분 좋았어요. 혼자 킥킥 거리며 '당신과 나는 운명일지도 몰라' 하면서 말이죠. 내 쪽에서 먼저 신호가 바뀌었고, 당신의 차를 스쳐 지나갈 때였어요. 당신의 얼굴을 보고 나면 당연히 오늘 하루가 더 행복 줄 알았어요. 선물 같은 날이라 생각했으니깐요. 아니었어요. 우연이라도 당신을 보지 말았어야 했어요.
당신을 너무 오래 보지 못한 탓이었을까요.
스쳐 지나가는 찰나 당신을 보는데, 너무도 명백한 마음으로 당신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보고 싶은, 그리움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냥 슬펐어요. 죄다 슬펐어요.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면, 차를 돌려 당신의 차를 분명 따라갔을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자, 아찔했어요. 이제는, 더 이상은, 나는 당신을 무해하게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피부로 깨달았거든요.
당신을 그렇게 지나가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온통 슬픔이었어요. 당신의 목적지가 내가 아닌 사실이, 당신의 옆자리가 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빠르게 슬픔으로 끌고 갔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것, 그거 말고는 내게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하면 안 되는 것도 선택지 없는 무조건이라는 것.
내 사랑이 이래요. 이것밖에 되지 않는...
사랑을 시작할 때엔 이 사랑이 영원을 데려다줄 운명이라 착각했고, 이별 앞에서는 이게 당신과 나의 거리겠거니 싶네요. 기꺼이 모든 걸 감수하고 팠던 당신, 죄다 틀린 것을 끌어안고 있어도 갖고 싶었던 당신,  이제는 꿈에서 깰 시간인가 봅니다.

"**씨, 괜찮으세요?"

운전을 하던 고객은, 갑자기 말이 없는 내게 향해 물었어요. 그 따뜻한 걱정이 서린 목소리가 마치 당신 같아서, 당신이었으면 해서 또 감당하지 못하고 울어버렸어요. 당황해하는 고객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씨 죄송해요"

당신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고객이었는데요, 그 고객을 부르는 게 마치 당신을 부르는 것 같아서, 당신을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눈물 콧물...  체면 차리지 않고 펑펑 울어버렸어요. 참아지지가 않았어요. 참고 싶지도 않았고요. 움직이던 차를 갑자기 멈춰 세우더니 곧 따뜻한 베지밀과 초콜릿 그리고 티슈를 건네주었어요.
손에 쥔 베지밀의 따뜻함이 마치 당신 같아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당신 같아서 한참을 울었다.  그 민망함은 오롯이 내 몫이었죠.

"진정됐어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죄송해요."

풉, 아마 오늘 출근하면 담당자 바꿔달라는 전화를 받을 수 있겠네요. 결국 오늘도 한숨도 못 자고 출근을 해야 되겠습니다. 출근 잘하세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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