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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32 상관없어


언제나 그러하듯,
어김없이 새벽이 찾아올 때면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당신과 함께한 날들을 밤하늘의 별에 새깁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당신을 떠올리며 달빛 아래에서 조용히 슬퍼집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밤하늘의 달에 꽁꽁 동여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나는 밤하늘 올려다봅니다.
어두운 밤을 동경하고, 사랑하면서 그렇게 매일을 올려다봅니다.
당신은 내게 밤하늘의 별이 되어주세요.
당신은 내게 밤하늘의 달이 되어주세요.
언제나 당신을 그리며 올려다볼게요.
당신은 내게 깊고 고요한 호수가 되어주세요.
나는 그 호수의 작은 물고기가 되어 당신 품 안에서 맴돌고 싶어요.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당신은 내게 울타리가 되어주세요.
나는 그 울타리를 타고 피어나는 처연한 능소화 꽃이 되어 당신 곁에서 곱게 피어날게요. 언제나 당신의 시선을 내게 머물게 하고 싶어요.
그리움이 깊어지는 밤이 오면,
당신이 몹시도 보고 싶어요.
언제나 그러하듯,
당신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이대론 도저히 안 되겠어요

당신은, 허공에 불러보는 이름이 있나요?
나는요, 어리석게도 허공에 대고 부를 수 없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곤 합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내게는 당신이듯, 당신도 내가 떠올랐으면 해요.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사는 추억. 그걸로 만족하며 살겠다 다짐했죠. 그런데 그 다짐은 매번 당신으로, 당신 때문에 와르르 깨지고 말아요. 사실은요, 만족하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당신에게 가는 길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어제는 몰아치는 업무들로 조금 힘든 날이었어요. 퇴근길에 버스에 몸을 싣고 무작정 당신 회사 근처에서 내렸어요. 차가운 바람을 맞고 걸으면 당신에게 향하는 마음을 바람에 날려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요.
이어폰 너머 들리는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었어요.
저만치서 다가오는 남자가 보였는데, 왜인지 느낌에 당신 같아 보이는 거예요. 당신 회사 근처이니, 진짜 당신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찰나 경직되었던 몸이 느슨해지고, 숨통이 탁 트이면서 눈물이 핑돌았아요. 다른 생각의 여지는 내게 없었어요. 달려가서 인사하고 싶었지만, 달려가기엔, 또 당신에 대한 고백이 되어버릴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빠른 걸음으로 당신에게 갔어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붕 뜬 마음이 착 하고 가라앉았어요. 당신이 아닌 걸 깨달았죠. 다리에 힘이 풀렸어요. 안경을 쓰지 않았지만, 분명 아니었어요. 피부색이며, 생김새든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당신은 분명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는 사실보다, 당신 같아 보이는 사람을 보고  무작정 달려가려는 내게 실망을 했어요. 불과 하루 전만 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 말해놓곤 말이죠. 그 뒤로 검은색 롱패딩만 입은 사람들만 보면 줄곧 당신 같아 보였어요. 아마 삼일을 꼬박 밤을 지새워 그럴 수도 있겠죠.
그리고 생각했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일을 갑자기 내게서  멈춰버리면 내가 살 수 없겠다고 말이에요. 당장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선 살아가고프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말이에요. 그리하여, 아직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일이 내게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거죠. 참 웃기죠? 나는요, 말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는 건지도 몰라요. 무거운 말일수록 아껴야 함을 알고, 속에서 삭혀야 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지만요, 당신에 대한 이 고백이 내게는 그래요. 결코 쉽게 써 내려가는 말이 아니란 말이에요. 하루는 사랑을 하겠다, 하루는 이별을 하겠다 하는 다짐이, 갈팡질팡 거리는 내가, 내가 아닌 거 같아요. 내가 아닌 거 같은 내 모습이 지금의 내 진짜 모습이에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일을 멈출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런 나를 당신이 본다면 줏대 없어 보이겠지만요... 당신에게 그렇게 보이는 건 나도 추호도 싫지만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이해해 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통보예요. 어차피 사랑도 허락받고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끝도 내가 정할 거예요.
이제 그냥 당신이 내 글을 보셨으면 좋겠어요. 사랑을 숨기는 일도, 아닌 척하는 일도 다 하고 싶지 않아요. 내게는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그러고 싶지 않아요.


#술이 웬수야, 웬수.

"닌 공주잖아? 할 수 있겠어?"

연인 간의 애칭에 아기(baby), 공주 등과 같은 낯간지러운 애칭을 부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아기, 아가, 공주님, 왕자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기 마련인데 이는 내 짧은 견해로 해석하기로, '내 자식을 대하듯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껴주고, 보호해주고 싶은 상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고로, 연인들 사이에서 이 애칭은 로맨틱한 말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위에 저 남자가 여자에게 내뱉는 애칭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는 애칭이 아니다. 결코.

"내가 그런 의미로 공주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여자는 술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없다. 술에 취하면 남자는 합법적인 관계라는 명분을 핑계 삼아 과한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현관 비밀번호를 틀리는 남자에 여자는 긴장했다.

"오빠 왔다!!!"
"쉿! 늦었어 ㅠ 씻고 어서 자. 내일 출근이잖아"
"응"

여자는 남은 일을 다시 이어가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핫초코 한잔 타줄까?"
"아니, 괜찮아. 오빠 속은 괜찮아? 꿀물 마실래?"
"나도 괜찮아. 배불러"
"응, 그럼 먼저 자. 나도 금방 하고 들어갈게"
"같이 자자. 기다릴게"

여자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많이 취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취했으니까.

"재워줄게. 들어가자"
"응, 오빠 나 머리 만져줘. 잘 수 있게"

남자는 여자에게 팔베개를 해주고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귀뒤로 넘겨주기를 반복했다. 여자가 잘 수 있도록.
여자는 그런 남자의 품에서 풀풀 나는 술냄새를 맡으며 취기로 잠이 드는 것인지, 손길에 잠이 드는 것인지 모를 이유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반복적인 행동이 현저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등을 돌려 이불을 끌어안아 잠에 들기를 기다렸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남자의 손은 여자의 상의 잠옷 속에서 여자의 배를 만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속옷을 입지 않은 여자의 맨살에 닿았다.

"싫어. 오늘 하는 날 아니잖아"
"두 달 못했잖아"
"그래도 지금은 싫어"

그대로 남자는 여자를 안고 서재방으로 향했다. 발버둥 쳤지만 여자는 역부족이었다.

"사랑해"
"잠깐만 싫어. 싫다고!!!!"

막무가내로 키스를 퍼붓는 남자를 여자는 있는 힘껏 밀쳐냈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눈물이 났지만, 남자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 듯 울지 않았다.

"오빠, 내가 입으로 해줄게"

여자는 아프기 싫었고, 그래서 내뱉은 말이었다.

"언제는 더럽다며, 결벽증 치료되면 한다며?
닌 공주잖아. 할 수 있겠어?"
"내가 그런 의미로 공주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할 수 있겠어?"
"응. 대신, 입으로만 하고, 말일에 해. 약속해"
"그래"

여자는 남자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고, 그러고는 남자의 잠옷과 속옷을 아래로 내렸다. 손아귀에 쥐었으나 막상 입에 넣으려니 주춤거려졌다. 그렇다. 여자는 결벽증 치료가 완벽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어나"

남자는 여자를 일으켜 세웠고, 잠옷을 빠르게 벗겨갔다.

"입으로 한다고 했잖아"
"넌 못해. 하지 마. 안 해도 돼"
"아니, 할 수 있다니깐!!"

여자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남자가 하려는 일에 집중했다.

"아플 거 같아 오빠, 내가 위에 갈래"

여자의 방어태세다. 여자가 위에 있어야 남자를 내려다보는 행위에서 오는 불안을 낮출 수 있는 심리적 자기 방어태세.

"사랑해, **야"

샤워를 마친 여자는 침대에 누워 새벽 내내 이불을 뒤 짚어 쓴 채 남자의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숨을 죽이고 울었다. 남자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여자는 마음이 너무 시리고 비참했다. 아침이 되었고 다시 샤워실로 향했다. 살이 벌게 질 정도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그럼에도 시린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술에 취한 남자는 꼭 여자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여자는 이 생활이 불편했지만,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 합리화시켰고, 지금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처음에 용기 내 몇몇 지인들에게 넌지시 이야기했지만, 다들 하나 같이 사랑받고 있음에 호강에 겨워 배부른 소리 한다는 둥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이 생활이 이제는 싫다. 술이 깬 남자는 지난밤 일을 반복하여 사과했지만, 이미 여자는 마음이 단단히 상해버렸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