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왜 글을 쓰냐면요, 그게 그러니깐요, 내 이야기 좀 들어봐 주실래요? 그런데 정말 모르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에 대한 고백인데, 모르실 리가 없을 텐데요...?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당신으로 향하는 모든 문장들이 고백이에요. 빼곡히 모두 다요.
내가 쓰는 고백은 당신에게 결코 가닿지 않을 마음이기에, 나는 오늘도 고백을 씁니다. 당신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보고 싶어서 안 되겠어요. 그런데 당장은 못 가요.. 당신이 그리워 잠들지 못한 밤들이 늘어날수록 살이 자꾸 빠져서 아파 보여요. 예쁘게 하고 가지 못하더라도 아픈 사람처럼 하고 당신에게 가고 싶지 않으니깐요. 오랜만에 당신을 보러 가겠단 생각에 힘내서 달렸어요. 진짜 춥더라고요. 그래서 쉬지도 않고 달렸어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이, 빨라진 심장박동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살고 있음에도 산다고 느꼈졌다고 하면, 이해하시려나요. 달릴 때 기분이 당신과 함께 있을 때와 같아요. 그래서 달리기를 좋아하나 봐요. 당신 같아서. 온통 나는 당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같은 결말이지만, 원한다면.
#라방 중
[사랑은 죄가 아닌데 왜 죽여요ㅠㅠ죽이지 마요]
[이왕 죽더라고 마지막으로 남주 만나고 죽여주세요]
[비 오는 날에 남주 한번 더 만나는 걸로 해주세요]
[여주는 끝내 남주를 짝사랑하다가 죽는다는 거임?]
[시대가 조선시대가 아닌데 왜 서로 연락을 안 하는 거예요]
[금지된 사랑을 한 대가가 너무 무거워요. 한 번이라도 여주가 행복한 장면이 있으면 좋을 듯.]
[짝사랑하는 모든 여자들이 공감할 거 같아요. 표현력이 담백하고 진솔해서 단숨에 전편 다 봤어요]
[나도 그런 사랑하고 싶다]
결말이 났다.
공식적으로 대외적인 시린 짝사랑의 소설은 종지부를 찍었다. 살을 붙이고 스토리를 넣어 다듬기만 하면 된다.
#같은 결말이지만, 행복이 첨가된
여자의 사랑표현 방식은 늘 소극적이다. 오늘도 머릿속으로 두 번, 세 번 용기를 내어 겨우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이 남자의 두 귀에 들어가길 바란다.
"편집장님, 이번 소설 마무리 다 된 거죠? 저.. 사직 처리부탁드려요"
"무슨 일 있어요?"
"이제 글 그만 쓰고 싶어요"
한번 더 묻지 않은 남자로 서운했지만, 발길을 돌려 사무실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붙잡지 않은 남자였지만, 배웅해 주는 남자를 여자는 마음 놓고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층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조심히 가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감사했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마지막일지도 모를 인사를 남겼다. 등을 돌려 건물을 빠져나가는 발걸음을 다시 돌려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저... 편집장님, 너무 보고 싶으면 다시 와도 돼요?"
거절할 남자의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여자는 덧붙여 말했다.
"많이 오진 않을 거예요! 가끔이요, 아주 가끔이요"
"네 ^ㅡ^"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잡고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뒤돌아서 가는 여자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건물을 벗어날수록 코를 자극하는 기분 좋은 냄새. 비오기 전에만 맡을 수 있는 냄새다. 그렇다. 흙냄새와 풀냄새는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비와 함께 오는 잔상이다. 금방 비가 쏟아져 내릴 거 같은 잔뜩 흐린 날씨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다. 여자는 단숨에 계단을 올랐다. 그 발걸음에는 소극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확신에 찬 신념만이 가득했다. 여자의 눈은 빠르게 남자를 찾아냈다.
"편집장님, 비 와요. 우산 빌려주세요"
"비 와요? 잠시만요"
허둥대는 남자의 뒷모습이 귀여운 여자는 가방끈을 만지작 거리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남자는 빈손으로 왔다.
"같이 내려가시죠. 차에 우산 하나 있을 거예요"
여자의 발걸음에 맞춰 걷는 남자의 모습에 여자는 웃었다. 온통 사랑이라 생각했다. 짝사랑은 별거 아닌 행동에도 과하게 부풀려 상상해내고 마는 고질병이니깐...
"타시죠, 태워드릴게요"
"바쁘세요?"
"아니요"
"그럼, 걸어서 데려다주시면 안돼요?"
물어봐놓고선 또 거절하지 못하게 덧붙였다.
"조금만 데려다주셔도 돼요! 저 비 맞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가시죠^^"
건물 앞에서 우산을 펼쳤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내리지도 않는 길을 우산 하나로 나눠 쓰며 걸었다. 여자는 행복했다. 내리지는 않지만 곧 쏟아질 비가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고, 우산 속에 있는 남자와 함께 하기에 덧 없이 황홀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툭툭 투둑-"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작가님이 좋아하는 비가 많이 오네요^^"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남자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여자는 몹시도 좋았다. 고백하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저, 편집장님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 저 보지 마시고 앞만 보고 들어요. 알고 계셨겠지만, 진짜 많이 좋아해요. 사랑을 받아달라는 말이 아녜요. 오해하지 말아요! 내가 편집장님 좋아하고 있다는 것만 잊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해 주세요. 그래서 나중에 살면서 힘들 때 내가 편집징님께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단지 그뿐이에요. 이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하고요. "
"고맙고 미안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네요."
"그동안 혼자 마음고생 많이 했어요. 편집장님께 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내게는 방법이 없었어요. 방법만 있다면 편집장님이 싫다고 해도 갈 수 있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정리하려고요."
"미안해요"
굵은 비가 내리는데 작은 우산 하나에 성인 남녀 둘이 함께 나눠 쓰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는 비 한 방울도 맞지 않았다. 힐끔 쳐다본 남자의 상체는 다 젖어있었다. 여자는 미안했다.
"내 전부를 편집장님께 주고 싶었어요. 속절없이 편집장님에게만 반응하는 두근거림을 부정하기엔 너무 깊이 빠져버렸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만해야 할 거 같아요. 항상 행복하세요"
"작가님도 꼭! 행복하세요.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여자는 슬펐다. 잡아주지 않아 슬픈 것이 아니었다. 남자가 없으면 쉬이 행복할 수 없는데 행복하라는 남자의 말이 슬펐다. 여자도 알고 있었다.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쯤은 진즉에.
'내가 당신 없이 행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듣고 싶은 말은 그 말이 아니란 말이에요. 내 행복을 정말 바란다면, 그 말이 아니라 같이 행복하잔 말이라고요"
여자는 사랑을 잃은 느낌이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슬픈 가락을 더 절절하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 남자는 집 앞까지 데려다줬고, 여자는 집에서 창문을 열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비의 느낌이 좋았다. 창문으로 내려다본 세상은 촉촉했으며 차분했다. 그 길 위로 남자가 사무실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렇게라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부디, 안온하길 바랍니다.'
그대로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굵은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여자는 남자와 함께 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남자와 함께이기를 선택했다.
여자는 슬프지 않았다. 여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여자가 좋아하는 비가 내리는 날, 함께 빗속을 걸어 집 앞까지 데려다준 남자의 모습에 마치 연인이 된 듯한 기억이 마지막이라 충분히 충분하게 행복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여자의 결말은 어떻게든 똑같다. 다른 이변이 없다. 슬픈 사랑이 비가 되어 남자와 여자의 몸을 한동안 계속 적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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