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았어요. 필자의 부모님은 시집가면 다하게 되어있다며, 집에서만큼은 전혀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필자는 요리하나 할 줄 못하는 상태에 서른을 6일 앞둔 스물아홉 크리스마스이브에 부랴부랴 결혼해서 지금은 8번째 추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집안의 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의 시댁은 가부장적입니다. 다행히 교인이라는 이유로 제사가 없긴 하지만 차례음식은 차립니다. 시댁 부모님께서 교회를 다니시긴 하지만 강요는 없으세요. 종교는 믿음에서 나오는 만큼 무교를 고집하겠다 미리 말씀드린 바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러나 남편과 결혼 후 시댁의 문화에 따라 군말 없이 음식을 차려야 하는 필자는 외며느리.
가게 일로 바쁘신 어머님과 집에 계시면 며느리가 불편할까 봐 나가시는 아버님, 필자는 두 아들과 함께 차례 음식을 만들어냅니다.

사진 말고 전이 더 있긴 하지만, 필자는 만들어내느라 바쁘고 우리 아이들과 남편은 먹기 바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루종일 부엌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야 해서 에어컨도 켜지 않은 찜통 같은 곳에서 육아와 차례 음식을 합니다.
어차피 차례음식은 며느리인 필자가 해야죠? 이왕 하는 김에 텐션을 끌어올려 명절 음식을 하는 필자입니다. 예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해야 맛도 좋겠죠?^^
사실, 추석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명절은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을 떠올리게 하지만, 저에게는 여러 가지 책임과 부담이 큽니다. 외며느리의 역할들과 장녀로서의 역할들이 머릿속을 떠돌며 명절 전부터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칩니다. 막상 명절이 되면 엄청 고되거나 힘들지 않은데 꼭 명절 전에 항상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이런 고민은 비단 필자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주부들이 저와 같은 고민이 있더라고요. 장녀가 느끼는 책임감이 공감받는다고 합니다. 첫째 딸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과 착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저는 남편이 외동이어서 조금 더 부담스럽기도 해요.

필자는 명절에 항상 시댁에서 1박을 하고 명절 당일에 큰집에 들렸다가 점심 전에 시댁으로 와요. 그러고는 점심을 먹고 마무리하고 친정을 간답니다.
시댁에서 음식을 다 하고 나면 1층에 가서 텃밭치고는 조금 큰 밭에서 이것저것 일을 합니다. 모기 기피제 뿌리는 걸 깜빡했더니 엉덩이에 모기가 100방은 물린 듯합니다. 헌혈 제대로 했네요ㅜ

그리고 아이들은 왜 맨날 꼭 엄마껌딱지일까요?
아빠 껌딱지 일 수는 없을까요?
일이 산더미처럼 계속 쌓이는데 둘째는 낮잠을 자지 않아 잠투정에 저만 찾고, 첫째는 심심하다고 덥다고 징징거리고.
엄마로서의 필자도 오늘 역할을 제대로 했습니다. 짐보리 비눗방울 놀이, 물총놀이, 가을 곤충 잡기, 잘 보여주지 않는 테레비도 보여줬어요. 결국, 징징거리는 아이들을 다라이에 물 받아 놓고 물놀이를 시키고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점심 식사는 지나갔고, 이제 오늘은 저녁 한 끼만 남았습니다. 저녁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얘들 씻기고, 빨래하고, 빨래 널고, 내일 아침 식사 준비만 하면 필자의 오늘 할 일은 끝이 납니다.
내일 큰집에 가면 마흔 되기 전에 딸하나 낳자라는 이야기로 한참을 오르락내리락할 생각에 머리가 아픕니다. 셋째가 무조건 딸이라는 보장도 없고, 시댁을 보아하니 딸이 굉장히 귀하던데... 그리고 저는 노산이기도 하고, 자연임신이 힘든 몸인걸 이야기하지 않았더니 지금까지 셋째 낳으라는 소리가 따라다니네요. 언제까지 하실 건지..... ㅠ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게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거 잊지 마시라는 겁니다.
오늘 신나게 열심히 요리했으니, 내일 어리광 부리러 친정 갈 수 있음에 힘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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