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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기록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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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법적으로 호적상에 서로가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두는 혼인신고와 주변 지인들과 일가친척들에게 부부가 된 것을 알리는 결혼식을 통해 합법적인 정식 부부 되는 것을 결혼이라 말하고 일컫습니다.


여자 나이, 스물아홉

암만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지방에 사는 여자 나이가 스물아홉이 넘어가면 다들 한 마디씩 합니다.
"언제 결혼해서 아 낳고 살끼고?", "노처녀 히스테리다." "한창 예쁠 때 남자한테 사랑받아야지 쪼글쪼글해서 만날끼가" 등등 결혼하기 전에는 명절에 일가친척들 집에 방문한다는 게 필자에겐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되었었습니다. 사실 정작 필자는 결혼에 대한 필요성과 확신이 없었고, 생판 살아온 환경도 생각도 다른 타인과 평생을 산다는 게 별로 그다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친구와 함께 갔던 소모임인 영화모임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남편을 처음 만났습니다. 영화모임의 특성상 매번 만남과 번개의 목적은 "영화"였습니다. 인연이 시작된 건 하필 영화장르가 공포 스릴러였고, 제 옆좌석 앉은 사람이 남편이었습니다.

시작은 나로 인해


일명 쫄보라고 불릴 정도로 무서움도 많고 잘 놀래는 편인 데다 불안까지 있는 필자인데 하필 영화가 공포영화였다니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기.. 손 한 번만 잡아줄 수 있어요?"
무서움이 온몸으로 덮쳤고 무슨 용기인지 타인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그 타인은 대답 없이 손을 내게 내밀었고 그게 시작으로 그 타인이 지금은 남편이 되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성적인 성향의 남편
감성적인 성향의 아내


남편은 너무 잘 울고 너무 잘 웃는 필자를 방청객 같다며 신기해했고, 필자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었던 남편이 신기했습니다. 6월에 만나 그 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그렇게 초스피드로 우리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필자는 서른이 되었고, 그때부터 양가 부모님들은 '임신'이라는 압박을 제게 티 나지 않게 주셨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생길 거라고 믿었던 아이가 바로 생기지 않아 불안과 압박은 내 목을 옥죄었고, 스스로 나를 죄인으로 만들어 힘들었습니다.
결혼 식을 올린 후 6개월이 지나고 첫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내 배에 아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임신한 내가 너무 기특했습니다. 양가 부모님 사랑과 예쁨을 독차지하고, 남편의 특별 대우를 받으며 뱃속 아이와 필자는 행복한 임신기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 쭈쭈바나 빨던 철없던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편에게만 갔던 필자의 관심과 사랑이 모두 아이에게 향했고 남편은 조금씩 서운해했었습니다. 그걸 알았지만, 나만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라는 사실이 남편의 서운한 마음은 곧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건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죠.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던 남편은 쌓인 서운한 감정들이 곪아터지게 되었고, 우리는 다시 그 계기로 돈독해졌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생각해 보면 책임감과 가족이라는 소속감으로 똘똘 뭉친 가족애를 처음 느꼈습니다. 불안과 강박이 있는 필자에게 흔들림 없이 든든한 이성적인 남편은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맑은 하늘 쾌적한 날, 잔잔한 파도 위에 순항하는 배와 같았습니다. 설렘과 애틋함은 없었지만, 잔잔한 파도 위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나에게는 충분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4살 되던 해 둘째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를 낳고 호르몬의 문제인지 강박과 불안이 문제인지 나의 불안은 극에 달했고 순항하는 줄만 알았던 나의 결혼생활에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계속된 불안과 예민함으로 이성을 잃지 않던 남편이 점점 나를 버거워하고 힘들어하는 게 보였지만 당사지인 나보다 힘들겠어?라고 생각하고 안일했습니다. 이 일이 해결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결혼생활이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엎친데 격친 격으로 남편과 나의 육아관이 너무나 달랐고 아이들 훈육 문제를 시작으로 부부싸움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버겁다고 생각될 때, 우리가 해결하기엔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부부관계를 위해 도와줄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 일로 다시 우리 관계는 금방 회복되었으며 큰 굴곡 없이 잘 지내오고 있습니다.



매 순간 사진이 남는다며 사진과 영상을 담으려는 자와
잘 찍으려 하지 않는 남편.
저의 대부분의 사진을 찍어주는 남편은 본인을 찍사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신혼 때에는 부부사이에 벽이 있어야 된다 생각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부부생활에 조금 익숙해지고 그 벽을 허물기 시작했고 완벽히 벽이 허물어짐과 동시에 부부사이가 악화되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필자는 부부생활에도 어느 정도의 선과 벽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선을 지키지 않으면 선을 넘게 되는 일은 허다하더라고요.


다 그런 거죠?

남편한테 뭐든 배우지 마세요!

이성적이고 이론적인 남편은 필자가 겁이 많아 자전거를 못 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정확하게는 7년 동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긴 시간 잔소리하는 게 듣기 싫으면 자전거를 안 타면 그만인 것을 필자는 자존심이 상해 계속 시도하려 합니다. 타인의 눈에는 창과 방패 같은 모습일 거예요. 분명.



아니, 이 정도면 제법 잘 타지 않나요?? 제가 보기엔 자전거 타는 실력이 굉장히 늘었습니다. 분명히 말이에요. 일단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 그럼 잘 타는 거죠! 위에 영상은 자전거를 배우려고 탄게 아니라서 헬멧이나 보호장구 없다는 점 참고하세요^^



자전거 배우는 거 말고도 모든 운동 신경이 아예 없는 필자는 리뷰할 때마다 가끔 곤욕을 겪기도 합니다. 축구공 리뷰에서 멋진 헤딩샷을 찍어달라는데... 멋지긴커녕 B급 감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동영상 밖의 남편과 제 모습은 거의 이혼까지 갈뻔했습니다. 지인들은 티카티카 하는 모습에 부럽다? 톰과 제리 같다, 꽁냥꽁냥하다, 연애하는 거 같다 등등 좋게 봐주시지만 정작 남편과 필자는 전쟁입니다.



이제 결혼 생활 8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남자는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남편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니 아들하고 싶다."

두 아들에게 필자의 사랑이 가는 게 섭섭한 모양인지 샘이 나는 건지 자기도 저의 자식이 되어 저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데요. 네 맞습니다. 부부는 닮는다죠? 저와 살면서 남편은 없던 결벽증이 조금은 생겼고, 감정 표현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변했습니다.
남편 눈에는 저도 많이 변했겠지만, 남편의 변하는 모습도 아내인 제가 많이 느끼는데요.

"나 안사랑하는 거 같아"라는 표현도 종종 해요.
그리고 많이 바뀐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잔소리, 잔소리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속옷리뷰 하지 마!", "옷이 짧다." " 너무 활짝 웃지 마라 눈이 없어진다" 등등
점점 잔소리가 늘어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필자의 남편은 필자를 놀리는 재미로 사는 사람입니다. Ai 계산기, 울보, 먹보, 찡찡이, 촌년 등 남편이 저를 부르는 별명이 많은데요. 하체가 짧다며 요즘 저를 박스훈트라고 부른답니다. 이렇게 사진까지 만들어 주는 거 참 정말 다정한 남편.




아! 강박증 있는 아내를 만나 같이 살면서 남편 또한 약간의 강박이 생긴 듯합니다. 그 강박은 바로 몸에 상처가 있거나 흉터가 생기는 걸 굉장히 싫어하더라고요. 육아를 하다 보면 어딘가 부딪히고 또 나이가 들다 보니 멍도 잘 생기고 뿐만 아니라 늘 긴장하는 탓에 치료를 받다 보니 이렇게 상처가 생기는 데 보기가 싫은가 봐요. 앞으론 더 몸에 상처를 많이 만들어야겠습니다 ㅋ



결혼생활이 매일 쾌적한 날 맑은 날일수는 없지만, 흐렸다가, 먹구름이 꼈다가, 비가 왔다가, 폭풍우를 만나도 여전히 쾌적하고 맑은 날이 다시 온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평범하고 지극히 행복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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