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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

엽편소설)#1-242 티날 수 밖에 #미련 나만 놓으면 끝날 관계라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습니다.열 번, 백번 상처받는 것보다 당신을 안 보는 게 더 아플 거 같아서 붙잡고 있었어요. 쓸데없이 고집부렸죠. 겁이 많아 라이터를 켜지 못해요. 그런데 왜인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나는요, 승부욕이 강하거든요. 라이터를 켜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눈에 불을 켜고 라이터를 붙들고 혼자 끙끙 씨름을 했어요. 사무실 언니들이 그런 나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면서 그만하라고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요, 나는요, 포기히지 않았어요. 미련한 일이었죠. 결국, 마찰력에 쓸리고 데이고 말았지요. 빨갛고 부풀어 오른 엄지손가락을 입가로 가져다 대고 호호, 불었어요. 보다 못한 짝꿍이 라이터를 가져가 단번에 내 향초에 불을 붙여주었어요. "과장님은 역시 손이 많이 가는 .. 더보기
엽편소설)#1-241 키다리 아저씨 깊은 밤은 언제나 당신을 내게 데려다 줘요.무겁게 뱉은 한숨이 어느새 방바닥을 깔았을 때 커피포트에 물은 다 끓어 그 김은 당신과 함께 있던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연기처럼 천장으로 향하다 이내 사라져요. 남은 건, 컵 속에서 피어나는 핫초코의 잔해뿐이죠. 나는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아련하게 떠오르는 당신 모습이 내 두 눈을 가립니다. 내가 받고 있는 상처가 깊을수록, 힘이 들수록, 당신을 향한 사랑 또한 깊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아려오는 마음을 방치하는 거 말고는 달랠 방법이 없어요.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해야 당신을 가슴에 묻어둔 채 애써 외면하며 살 수 있을까요. 기다리다 보면 봄이 오듯이,기다리다 보면 당신도 잊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그런데요, 쉽지가 않아요. 쉽지 않은 게 아니.. 더보기
엽편소설)#1-240 그린라이트죠? 당신과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는 건 어쩐지 과거형이 되어버린 탓에 동화책을 쓰는 것 같아요. 먼지 덮인 책을 후- 하고 불면 마법의 가루가 날려서 아름다운 동화 속으로 돌아가 넘실대는 사랑에 가 닿아요. 내가 쓰는 동화에선 순수하고 어여쁜 공주, 용맹하고 멋진 왕자는 없어요.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갗에 새기고 한 지붕 아래 사는 중년 남자와 모든 걸 가졌음에도 텅 비어있는 중년 여자가 주인공일 뿐이죠. 우아한 드레스에 비즈 박힌 유리 구두를 신거나 멋진 턱시도 따윈 없어요. 그 대신 삶에 무게만큼 무거운 유니폼과 매일이 불안함 속에서 갑옷처럼 스스로를 지키는 오피스룩을 등장하죠. 감미로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별빛달빛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 따위도 없어요, 그렇지만 무도회의 주인공은 당신과.. 더보기
엽편소설)#1-239 누가 그래?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당신에게서 안정감을 느껴요. 그동안 나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잔뜩 움츠려 들고, 긴장하며 살았어요.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누구에게 잡히면 안 되는 사람처럼 줄행랑치기 일쑤였어요. 그런데 당신에게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어요. 당신 손바닥 위에 얌전히 있고 싶어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당신에게 잡히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오늘도 당신 주위를 쉼 없이 빙빙 맴돕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의 휴대전화가 되었으면 해요.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당신의 손아귀에 있을 그 휴대전화가 말이에요. 귀하진 않지만 없으면 굉장히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그런 핸드폰이 되어 당신 곁에 머무르고 싶어요. 봐달라 하지 않아도, 어루만져 달라 떼쓰지 .. 더보기
엽편소설)#1-238 입술 #목이 말라 마시고 마셔도 목이 말라요. 이상하게도 당신을 그리워하면 그렇게 목이 마르더라고요. 다정히 나를 달래는 음성과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는 손길에 경직되어 있던 몸을 한없이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온화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 생각을 할 때면 특히 더 목이 말라요. 단순히 화장실이 두려워 참아야 하는 목 마름이 아녜요. 수시로 마셔도, 벌컥벌컥 마셔보아도 마른 목을 잠재울 순 없었어요. 내 생각에는요, 단 한 번도 내 것이 되지 않은 당신의 이유로 내 온 우주가 죽어버려서 일까요. 죽어있는 내 우주가 물을 원하는 걸까요. 새 생명을 불어달라고..? 아니면, 당신을 갈망하는 욕망과 욕정 같은 것일까요. #입술 입술은요, 입의 바깥 부분에 노출된 살을 의미해요. 섬세하면서 예민한 부위죠. 사랑의 .. 더보기
엽편소설)#1-236 하얀세상 어느 날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다가도, 문득 당신이 떠올라요.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깊은 밤공기가 차가워질 즈음, 창문 너머 희미한 별빛과 환한 달빛이 두 눈에 담긴 순간, 잊으려 했던_잊어야 하는_당신이 불쑥 내게 찾아와요. 그런 당신을 나는 또 어김없이 되뇌입니다.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기엔 늘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분명한 사랑이에요. 이게 사랑이 아닐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잖아요. 잠을 자야 하기에 이번 주 약을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현대인의 고질병이라고 하죠, 불면증 말이에요. 약이 또 몸에서 적응을 했나 봅니다. 이른 저녁잠에 들었지만, 새벽, 어둠이 깊을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어요. 커튼틈으로 스며든 희미한 달빛이 방 안을 채우고, .. 더보기
엽편소설)#1-235 알아요? 알고 있으세요?내가 당신 생각을 얼마큼 하는지요.알기나 하세요?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지요.알고 계십니까?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가고 싶어 하는지요.알기는 할까요?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요.모르고 계셨다면, 이제는 아세요.모른 척하고 싶으셨겠지만, 이제는 아셔야지요.알고 싶지 않으셨겠지만, 아셔야지요.그래야 내가 덜 억울하지 않겠어요...? '당신과 나'라는 실타래를 풀어 '우리'라는 이름으로 몹시도 엮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요. 풀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어버리고 싶어요. 그걸로 부족해요. 한 번 묶고, 또 한 번 더 꽁꽁 묶고도 그것도 부족해요. 마지막 매듭까지 단단히 묶어 버리고 싶어요. 내가 당신과 나 사이를 실타래로 꽁꽁 묶고 있으면, 당신은 가위를 가져오겠지요.. 그.. 더보기
엽편소설)#1-234 낮에 뜨는 달 #살앙, 또다시 사랑보이시나요? 사진 위에 보이는 낮에 뜨는 달, 낮달말이에요. 당신도 낮달을 보셨나요? 사진을 찍는데, 희미하게 비치고 있는 하얀 낮달이 보이는 거 있죠? 너무 반가운 거예요. 얼마 전에, 낮에 달이 뜨면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했던 글 기억하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온 우주가 당신을 사랑하게끔 밀어주고 있다니깐요. 그런데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거예요.. 낮에 뜨는 달을 가끔 보는 현상이지만요, 볼 때마다 참 오묘한 느낌이 들어요. 착잡하고 서글프며, 희망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퇴색되어 버린 젊은 날의 흔적처럼요.한밤중의 달처럼 환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성실히 차오르는 낮달이 퍽 마음에 들어요. 밤에 떠있는 밤달보다 낮에 홀로 희미한 존재감으.. 더보기